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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하루를 살아야 한다면

마지막으로 후회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엽편소설

by 아루하 Mar 13. 2025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뭐야?'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안다. 지금 내가 시작하는 모든 게 마지막이 될 게 뻔했다. 언제 죽을지 정해진 삶! 그게 바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나의 운명이다. 그렇다고 굳이 마지막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어차피 삶이라는 끝이 있는데, 나는 조금 빨리 온 것뿐이다. 내 나이 47이면 많이 살았지 않은가. 나는 만족한다. 아이들은 이미 20살이 다 되어가고, 죽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이다. 오랫동안 나의 연인이 되어 준 남편이 좀 아쉬울까? 나는 아쉽지 않다. 그래, 나는 아쉽지 않다. 그러니까 굳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니, 언니 우리 이번에 여행 갈까?”

“무슨 여행?”


친한 동생이 방문했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퇴원을 권고한 직후 집에 있을 때였다. 


“언니, 전국 일주해 보고 싶다고 했잖아. 우리 전국 일주 가자.”

“농담이지?”


정말 어이없는 말에 한참 웃었다. 작년이었다면 아마 흔쾌히 “응”을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날 위한 시간은 이미 병원에서 충분히 가졌다. 6개월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수많은 밤을 혼자 지새웠고, 수많은 낮잠도 잤다. 고통도 없었기에 간혹 이어지는 치료가 오히려 곤욕이었다. 지금은 이대로 있고 싶었다.


“언니, 진짜 안 가고 싶어?”

“응. 지금은 이대로가 좋아. 있잖아. 진짜 마지막이 되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바로 이 소소한 일상이야.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고 TV 보고 하는 게 제일 좋았다는 걸 알게 돼. 네 마음은 고마워. 하지만 나는 지금이 제일 베스트야.”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인 듯한 동생은 날 위해 이번에 탄 적금을 쓸 요량이었는지 아쉽다면서도 한 편으로는 크게 숨을 쉬었다. 친동생 같다고 생각할 만큼 동생은 날 많이 챙겼다. 남편이 부재중일 땐 항상 동생이 왔었다. 내가 처음 병을 알게 된 것도 그녀가 일찍 병원에 데리고 가줘서 알게 되었다. 덕분에 1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더 주어졌고, 또 삶의 소소한 행복을 배울 수 있었다.


“은영아, 너한테는 늘 고마워. 동생이지만, 언니처럼 날 챙겨줘서 고마웠어.”

“뭐야, 새삼스럽게. 언니하고 나 사이에 그런 게 어딨어?”

“눈물 꼭지 잠가. 너한테 우는 건 어울리지 않아. 나중에 진짜 나 없으면 그때 울어.”


은영은 화장실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한참 물소리가 난 뒤에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동생이 돌아간 후 일찍 온다던 남편이 늦는다는 연락이 왔다. 오랜만이었다. 집에 혼자 있을 내가 걱정되었는지 그 몇 분의 시간 동안 되돌아온다는 은영을 만류하고, 따뜻한 차 한잔을 들고 창가에 섰다. 12층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파랗고, 모양도 형성되지 않는 구름은 하얗다. 살짝 열린 문틈에서 차가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건들고 있었다.


“벌써 11월인가? 언제였더라. 올해 4월쯤 입원했으니까 딱 6개월이네. 봄과 여름, 가을까지 병원에서 보냈네. 겨울은 다 채울 수 있을까?”


아주 잠깐의 어지러움이었다. 평소에도 어지러움이 있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땐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은영이 데려다준다며 카페 앞에서 잠시 기다릴 때였다. 돌 틈을 비집고 나온 들꽃이 예뻐 자세히 보려 몸을 웅크릴 때 현기증을 느꼈다. 잠깐 그러다 말겠지 하고 무시했다. 아주 찰나의 눈 깜박임이었는데,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꼬박 3일 동안 의식이 없었다고 하는데, 내게는 고작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머리 여기저기에 퍼진 암세포들은 감히 손댈 수 없을 만큼 광범위했고, 약물치료와 항암치료는 효과가 없었다. 어차피 그 시기도 지난 후라 남겨질 가족들을 위한 위로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 아무것도 내게 소용이 없다는 걸 말이다. 언제 찰나의 시간이 영원이 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늘 오늘이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남편은 어떨까?   

  

그 사람을 만난 게 언제였더라? 고등학교 1학년이었나? 친구의 소개로 만난 그는 수줍은 소년이었다. 꽤 짧게 자른 머리 아래로 얇은 목선이 보였다. 학교를 마치고 뛰어왔는지 이마와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남색 교복 아래 운동화는 흰색이었고, 한쪽으로 멘 가방은 꽤 거칠게 다뤘는지 바란 실들이 얼핏 보였다. 내가 걷는 걸 좋아한다는 건 어찌 알았는지 나름 멋있게 “걸을까?” 한 마디를 외치고는 또 멀뚱히 멀어져 걸었다. 크지 않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사람들이 많아질 땐 내가 치이지 않게 닿지 않는 어깨 위 손등이 적당히 타 검다. 얼핏 쳐다본 눈은 사슴처럼 맑았고, 꽤 컸다. 그때 막 여름이 오려는 시점이라 걷는 동안 그의 머리카락에는 땀이 맺혀 그의 손등은 연신 축축했다. 그와 처음 손을 잡은 게 만난 지 1년이 지난겨울이었다. 빙판에 넘어지려는 날 잡아주며 자연스럽게 잡힌 손은 그 뒤로 절대 놓지 않았다. 우린 오랜 기간 연애했고, 결혼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렇게 두 아이를 낳고, 한 번도 헤어짐 없이 살았다. 물론 다툼도 있었고, 미운 적도 있었다. 그런다고 한들 그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당신, 나와 결혼한 거 좋아?”

“응. 왜?”

“나랑 사는 게 재밌어?”

“응. 넌 싫어?”

“아니.”


아주 오래전에 대화가 문득 생각난다. 그에게 난 당연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나 역시 다름은 없지만, 이젠 달라질 것이다. 나는 그를 떠나야 하고, 그는 내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는 아주 잘 살 것이다. 아픔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힐지 모르지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니 두 아이의 아빠로서 잘살다가 어느 날 날 따라오지 않을까? 그때도 날 찾아올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뭐가 그리 재밌길래 혼자 웃고 있고? 나도 좀 같이 웃자.”


언제 왔는지 이미 옷까지 다 갈아입은 남편이 뒤에서 날 안았다. 손도 품도 따뜻한 사람이다. 차가운 내 손을 항상 데워주던 커다란 손을 만져보았다. 꽤 많이 늙었다. 탄력 좋던 살결은 이제 늘어져 있고, 날씬했던 목선도 없다. 불룩 나온 배는 나잇살만큼―그의 말을 빌리자면―늘어져 있다. 그러다 여전히 나보다 크고, 따뜻한 품이다. 밖에 날씨가 꽤 차가웠던지 그의 살결이 차갑다.


“밖에 추워?”

“응, 추워.”

“어! 노을 진다. 예쁘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지? 애들 올 시간 됐겠다. 밥 해야지.”

“오늘 외식할까?”

“외식?”


밖으로 나가는 게 싫다. 예전에도 굳이 약속이 있지 않으면 잘 나가지 않았던 성격이라 외식하자는 그의 말에 선뜻 그러자 하지 못했다. 그도 안다는 듯이 배달 앱을 열었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뭐 먹고 싶어?”

“당신은?”

“나는 아무거나 상관없어. 너 먹고 싶은 거에 맞춰서 아무거나 한잔하지 뭐.”


반주를 좋아하는 건 시아버지를 닮았다. 아이들도 있는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메뉴 추천을 받았다. 그때 아들이 학교 앞에 맛있는 떡볶이집에서 잔뜩 사서 가고 있다고 10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날 우리는 분식 잔치를 벌였다. 남편의 술안주는 시원한 어묵 국물, 보슬보슬한 순대와 함께 소주를 마셨다. 

     

아주 보통의 시간이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건 일주일이었고, 우리의 일주일은 행복했다. 남편은 여느 때처럼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함께 저녁을 보내고, 하루 있었던 일과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반복되는 하루 중에 특별하거나 사건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의 몸은 늘 그렇듯 큰 변화는 없었다. 단지 두통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잠들 시간, 이상하게 오늘은 나와 같이 자고 싶다던 아이들을 타일러 각자의 방에 보내고, 누웠다.


“사랑해.”


평소에도 뜬금없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나도”라고 답했다. 그러면 나는 다시 “사랑해”라고 말했고, 그의 같은 대답을 두, 세 번 들은 후에야 겨우 “나도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런데 그도 알았을까?


“나도 사랑해.”

“행복했었어. 그러니까…….”

“응.”


우리의 마지막은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돌아온 일주일 동안 한 번의 주말을 함께 보내고, 5일의 아침과 저녁을 보낸 어느 날이었다. 

         


작성일 : 2024년 11월 12일
출판사 : 포레스트웨일
구매처 :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1045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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