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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선 곳에서

하루시

by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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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공저와 씨름하고 있다. 왜 공저를 기획했을까? 혼자 머리를 싸매다가도 피드백을 하고 있으면 또 즐겁다. 책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는 그 순간도 즐겁다. 스불재이면서 동시에 즐거운 아이러니한 하루이다.


오늘 두 분의 작가님과 작별인사를 했다. 한 분은 본인의 색을 고수하고 싶다고 하셔서 스스로 떠나셨고, 한 분은 본인의 색이 너무 강해서 내가 요청했다. 어떤 이별이든 아프고 힘들다. 그게 인연의 고리를 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공저는 공동저자의 줄임말이다. 공동저자로 쓴다는 건 여러 사람이 한 권의 책을 만든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색깔이 두드러진 작가님의 글은 책 속의 책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만들고 기획 중인 공저와 어울리지 않았다. 다행히 이해해 주시며 물러나 주었지만, 말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밤 11시다. 오후 1시에 책상 앞에 앉아 3시쯤 20분 동안 밥을 먹고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글 쓰는 버릇 그대로 책을 만들고 있는 나를 보고 반성하다가도 또 일어날 생각은 안 한다. 힘들다 힘들다 해도 좋다. 그래도 힘들다. 체력적으로 심적으로 모두.


그러다 사진 공유를 받았다. 우희헌 방이다. 우희헌은 우리 동네 희한한 헌책방의 줄임말로 단톡방 이름이다. 주로 책이야기가 많지만,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간다. 그냥 별 거 아닌 일상도 쓸데없는 농담도 마치 친구처럼 가족처럼 오가는 곳이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 나를 알아봐 주는 따뜻한 인연들이기도 하다.


산책길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같이 사는 친구의 시선이 무엇인가 응시하듯 보였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글의 서문이었다. 이게 글감이 되었고, 그렇게 한 편의 시가 완성되었다.


우희헌 방에 사진 허락을 구하며 공유했다. 어느 인연이 자작시냐고 물었고, 우린 자연스럽게 시 이야기를 했다. 그때 아는 지인의 글이라며 봐달라고 했다. 어린 친구의 시는 숙련된 작가의 시보다는 어설펐지만, 개성이 뚜렷하고 자유롭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갖추고 있었다.


예전에는 진짜 부러워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었는데, 나도 저분처럼 아껴주는 사람이 일찍 만났다면 분명 다라진 삶을 살았을 텐데.. 같은 부러움이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부러워한들 달라질 것도 없을뿐더러 지금도 만족한다.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긴 밤이 될 듯하다. 우희헌의 인연이 주는 여유가 잠시 휴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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