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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버린 자리

하루시

by 그래


내가 기획 중인 공저는 매일 내가 정한 시제에 따라 A4 한 장 분량의 장르 구분 없이 글을 써서 엮어 내는 전자책 출간을 위한 글쓰기다. [오늘의 시제는] 허전함이었다. 시제는 이미 예전에 만들어 둔 거지만, 오늘 나의 기분과 너무나도 잘 맞았다.


며칠 전 올린 글처럼 첫 작품과 작별 시간을 갖는 지금, 내가 제일 많이 느끼는 감정이다.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알게 된 지금 나의 감정이었다. 내가 찾아보지 않으면 있다고 믿을 자리에 있던 책인데, 매일 어디까지 지워졌는지 확인한다. 인정하기 위한 발버둥인지 잊지 말아야 하지 하는 다짐 때문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기분에 취해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갔다. 시적 운율을 따지려고 하지도, 누군가 읽어주길 바람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기분 따라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써 내려갔다. 이걸 어디에 공개해도 슬픈 글이나 느낄 뿐 필자의 마음을 할 사람은 없을 거다. 그래서 그냥 공유했다. 마치 시제를 따라 쓴 것 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다.


하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키보드 앞은 나는 날카롭고, 예민하기만 했다. 다행히 대화를 나눈 작가님의 배려로 큰 문제없이 넘어갔지만, 상대방의 기분도 좋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결국 컨디션 난조를 알리며 피드백 문서는 열어보지 않았다.


대신 포토샵을 열고, 선물 보낼 그림을 수정했다. 배우는 중에 욕심으로 그린 독후화였다. 인쇄 전 마지막 점검차 열어본 그림은 참 엉망이었다. 레이어 구분도 엉망이었고, 그림도 오점 투성이었다. 아마도 오늘 수정하고, 다음에 보면 그때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선물을 보내는 입장으로 지금 나의 최선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레이어 정리를 하고, 한 레이어의 모두 그려 수정 불가능한 것은 지우고, 고치고, 다시 그렸다. 센스 없는 나와 달리 눈썰미가 좋은 딸의 눈을 빌러 피드백을 받고, 이제야 완성했다. 주문을 하고, 메일을 발송하고 나니 또 허전함이 몰려온다. 오늘은 무엇을 하든 계속 작업을 해야겠다. 일하다 지치면 자고, 일어나 23일부터 24일까지 카톡으로 이루어지는 오프라인 독서토론을 준비해야겠다. 제발 대성당의 다른 단편과 달리 내 눈을 즐겁게 해 주길 기대하며 어떤 글을 쓸지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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