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드로잉 시화 11
흐릿하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다른 존재를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완전 옛날 사람인 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흐릿해서 더 어울리는 두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진하게 그렸다면 좀 달랐을까 생각해 본다.
냇가의 조약돌을 좀 크게 잡았다. 아니 처음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글의 양이 많아 가로 세로가 함께 줄이면 그림 자체가 작아져서 세로만 줄였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돌에게 준 입체감이 정말 사라졌다. 그걸 이 글을 정리하는 지금 발견했다.
이 글도 매거진에 있다. 그때는 디지털 드로잉을 계속 그려도 기존 사진 시와 동일하게 정리했었다. 그런데 그림 작가님들이 시화와 일반 글을 분류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에 분류를 시작한 것이다. 이 글을 쓴 걸 지울까 싶다가도 그 당시의 내 생각이 담긴 글을 지우기는 아깝다. 결국 그냥 이 글에서는 그림적인 것만 담기로 했다.
이건 그리움을 노래한 시다. 그래서 흐릿하게 그린 것이다. 돌 사이의 하얀 물거품은 나뭇잎 브러시로 그렸다. 포토샵 업데이트 후에 생긴 브러시였다. 그냥 나뭇잎을 아주 작게 만들면 거품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돌 하나에 최소 4개의 레이어가 들어갔다. 본바탕과 어둠과 밝은 부분, 각지고 푹 패인 부분까지 각각 그려서 레이어 쌓기를 했다. 물도 전체 색, 흐름, 파도, 물거품 위치에 따라 레이어를 다 따로 잡았다. 왜 이렇게 하냐고 묻는다면 그림을 그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시화는 A4 용지에 그린다. 솜씨가 없는 난 모든 그림을 한 장 가득 그리고, 원하는 위치로 옮기고 크기를 줄인다. 그렇기에 내가 그리는 장면을 보면 도대체 뭘 그리고 싶은지 알 수 없다. 당연하다. 장면 하나를 페이지 한가득 그리는 데, 알 턱이 있나? 모르면 아니 모르기에 내 방법대로 그리는 것이다. 디지털이지 않은가. 최대한 활용 가능한 건 모두 쓰는 것일 뿐이다.
조몽쌤을 그릴 땐 나름의 설정을 한다. 도장 캐릭터이라고 하나의 포즈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림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자기 페이지를 채우려 노력했다. 냇가는 흔히 제일 많이 하는 놀이가 있다. 물론 요즘은 아닌 듯 하지만 말이다. 그냥 나라는 생각으로 그린다. 그리고 넣고, 숨은 그림 찾기처럼 적절하게 숨기기도 하고 혹은 그냥 둔다. 그냥 둬도 눈에 띄지 않는 선으로 색조차 없이 선만으로 표현한다. 그게 내 도장 캐릭터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