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

디지털 드로잉 시화 13

by 그래
20250917_길잡이_시화.jpg 멀리서 보면 사진 같고, 가까이서 보면 초보 티가 확 난답니다.

어디 공용 화장실에 가면 이런 글이 종종 있다. 무심코 읽으면 음... 하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림도 모두를 채웠더니 딱 포스터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사진을 키우고 나서야 아, 시화구나 한다. 그냥 봐 참 못 그렸느데, 자세히 뜯어보면 더 못 그렸다.


안개 속에서 헤매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림자처럼 지친 모습 속에서는 우연히 발견한 작은 불빛이 유일한 길이다. 저 빛을 따라가면 이 막막한 곳에서 빠져나갈 것 같다는 기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평안히 걸어서 아쉽다.


다시 수정하고 싶지만, 저 그림을 그릴 때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레이어를 얹고 또 얹고 하다보니 어느새 뭘 그리고 싶은 건지 까먹고 말았다. 결국 수정은 포기했다. 그냥 짙은 안개를 표현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현재 시점을 적용하면 아무 불빛이나 보고 따라가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다. 소위 눈 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이니, 불빛도 나에게로 달려오는 자동차 등인지 활활 타오르는 불인지 확인하고 따라가야 한다. 잘못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나는 그런 전제를 배제했다. 오늘 경우의 수를 적용하면 글을 쓸 수 없다.


등을 따라가는 사람은 지쳤다. 지친 사람에게 필요한 건 한 줄기 빛이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거창하고 멋드러진 무엇이 아닌 배고픔처럼 작은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된다. 나의 글에서 글은 그런 작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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