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드로잉 시화 19
11월은 기일이 있는 달이다. 허무하게 생을 달리 한 사촌이면서 친구였던 결혼하고 한참 보지 못한 그 친구가 간 날...... 그날이 11월에 있다. 잊으려 하지도 잊지 않으려 하지 않았다. 있는 곳이 집 근처라 가끔 가야지 했지만, 겨우 한 번 갔다. 혼자 외롭게 살다 혼자 외롭게 갔다. 어쩌면 자신이 생의 기로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을 정말 외로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게 해 줘야지 마음먹었는데, 다짐은 1년을 넘기면서 흐려졌다. 어느새 11월이 다가오면 '가야지' 마음으로 말하고, '또 못 갔네.' 차마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하는 죄만 짓는다. 오늘은 벌써 몇 주나 지난 후다. 그런데도 마음 깊은 곳에선 그 친구를 잊지 않았나 보다. 이렇게 밖에 기억 못 하는 내가 참 한스럽기만 하다.
요즘은 나이 때문인지 부고가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은 검은 양복과 넥타이를 맸다. 가끔 죽음은 한 번에 몰려오는 느낌이 든다. 나이 때문일까? 그 해의 첫 번째 부고 소식을 들으면 내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지인의 부모님의 부고가 가장 많다. 먼 미래이길 바라는 그런 부고가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이 그림을 그리고, 글 공유하는 지인과 단톡방 한 곳 외에는 보내지 않았다. 연락이 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카톡에 새롭게 생긴 공간에 공유했다. 친구 한정으로 해놔서 그런지 안 볼 줄 알았는데, 찾아서 보는 지인이 더러 있었다. 괜찮다는 질문에 괜찮다 해주었다. 단지 글뿐이라고 말했지만, 글로 소통하는 거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목소리였다면 떨릴 일이다.
글 속에 '검지와 중지가 아닌/엄지와 검지로 잡던 당신이' 이 부분은 친정아버지를 생각했다. 결혼 후 내려간 그날 비가 왔었다. 담배 연기에 한 소리 들은 아버지는 담벼락 앞 계단에 앉아 그림처럼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슬리퍼에 늘어진 티를 입고, 한껏 작아진 모습으로 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는 나도 담배 연기에 인상을 썼다. 지금은 담배도 거의 피우지 않으신다. 심하게 아프신 후로는 좋아하던 술도 담배도 확 줄이셨다. 더 마르고, 작아진 아버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그 옆에 더 마른 어머니는 자식 온다는 소리에 낮은 담벼락에 두 팔을 대고, 잘 보이지도 않는 골목 어귀를 목을 빼고 앉아 있다. 무표정한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면 자주 오지 않았다는 불효가 가슴을 찡하니 울린다.
나이가 먹어도 부모님은 엄마고 아빠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부모에게도 성인이 된 딸이 있는 내가 안쓰러운 건 여전할 텐데, 나라고 다를까? 전화라고 한통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