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드로잉 시화 18
여전히 사진 위에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문득 이 글에 어울리는 그림이 생각났다. 귤은 겨울에 많이 먹으니까 눈이 오는 계절을 선택했다. 짝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그 사람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표현했고, 앞에 사람은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쓸쓸한 이미지를 담고자 코트와 목도리를 이용했다. 남자는 회색 장갑을 끼고 있지만, 여자는 맨다리와 맨 손이다. 외로운 짝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표현했다.
노점 할머니는 주인공도 아니지만, 나름 고민해서 그렸다. 원래 의도된 그림은 박스 상자를 대충 잘라 그 위에 2000원짜리 귤을 파는 모습이다. 쓸쓸이라는 키워드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그런데 얼핏 박스에 올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닥에 종이를 깔고 앉아 있지만, 전혀 추워 보이지 않는 건 내 착각이길 바라본다.
쌓인 눈은 두 사람의 사이를 말해준다. 듬성듬성 빈 곳이 많은 쌓인 눈과 배경을 전부 덮고 있는 흐릿한 눈은 두 사람이 울고 있음을 표현했다. 물론 하나하나 의미를 담아보지만, 그렇게 보일지는 미지수다. 무엇이든 글과 어울리면 그걸로 되었다 생각하고 마무리 지었다.
처음에 그림을 다 그린 후에 공유했는데, 지인이 "누나의 동시적인 시는 아무도 못 따라가"라고 말했다. 순간 글이 잘못되었다는 걸 그 말을 듣고 알았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말야
그러니까
그 사람이
울었어.
가장 포인트 되는 글이 잘린 것이다. 이 글에서 이 부분이 없다면 지인의 감상한 게 맞았다. 이 부분이 없어서 글이 이상하지도 않을뿐더러 어색함도 없다. 단지 무슨 상황일까 열린 결말이 된다. 그러나 여자의 손에 올려진 귤의 의미가 담긴 이 부분은 글에서 중요 포인트다.
그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글이 쓰인 부분이 잘렸다. 제번 긴 문장인 걸 그림에 치중해 필자인 나조차 잊은 것이다. 잘린 부분을 수정해 다시 보내줬더니 그제야 "이제야 완성됐네. 역시."라는 답이 왔다. 글을 쓰는 지인이라 그런지 필자의 의도가 사라졌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본 것이었다.
덕분에 온전한 한 편의 글이 되어 완성되었다.
슬픈 시를 쓰려고 한 건 아니다. 그런 예쁜 귤 사진에 뭔가를 이야기를 덤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랑시를 썼으나, 어울리지 않았다. 벗겨진 귤이 너무 예쁜데, 너무 예뻐져 미웠다. 최근 귤을 한 박스 샀었다. 제주에서 3일이나 걸려 올라 온 귤은 초록색이었다. 요즘은 억지로 노랗게 변하게 하는 약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며칠 지나면 전부 노랗게 될 거라고 확신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색은 여전히 초록색이었고, 하나 먹어본 귤은 시다 못 해 썼다. 그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귤이 너무 미웠다.
그래서 슬픈 시가 되었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으나, 원망을 담다 보니 귤에게 미안했다. 죄가 있다면 귤이 아니라 보관법을 잘 모르던 나에게 있는데, 말이다. 다음에 구매할 귤은 좀 달고 맞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