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드로잉 시화 20
'문향' 동아리 주제는 '용기'였다. 언어유희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동아리장님은 웃으셨다. 할 수 있다면 해보라는 말에 덥석 미끼를 물었고, 누군가 "그릇"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단어에 뜻에 집중하면서 본래의 뜻을 헤치지 않게 표현하려 문 앞에 선 한 여인을 표현했다.
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있어야 한다. 그녀가 나가야 하는 이유는 이 빛이니까 말이다. 푸석한 머리는 정돈되지 않고, 들쑥날쑥 이어야 하고, 옷은 회색이나 오랫동안 갈아입지 않아 짙은 회색이어야 한다. 어느 정도 때가 탄 느낌과 늘어진 소매, 현관문 손잡이와 손의 거리, 뭔가 잡으려는 손동작 글에 어울리는 묘사를 위해 평소 그리지 않던 사람을 도전해 보았다. 뒷모습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제일 어려운 이목구미는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문은 짙은 남색을 사용했다. 검은색보다 남색을 선호한 이유는 가능성 때문이다. 검은색이면 아예 갈 수 없는 세계, 즉 단절된 느낌이 들지만 남색은 흔하게 쓰는 문색깔이면서 너무 차갑지도 너무 따뜻하지도 않다. 주황빛도 어우러지게 보인다.
점점 그림을 그리면서 구도도 보고, 설정을 잡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도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일까? 자화자찬을 하다가도 여전히 그리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에 좌절모드에 있기도 한다.
오늘 글을 낭송해 볼까 했다. 그러나 길쭉한 사각형의 그림을 어떻게 릴스에 맞게 줄이느냐... 고민하다 결국 시일을 놓치고 말았다. 동영상은 그렇게 미완성의 그림으로 남아 버렸다.
세상에 나가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 세상은 생각이상으로 두렵고, 무섭다. 특히 같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 다르다는 이유, 행색이 남루하다는 이유 나와 다른 별가지의 이유에 맞추다 보면 점점 나 자신이 작게만 느껴진다. 괴롭히는 그들이 잘못인 줄 알지만, 어느새 그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타당하다 느껴지면 더 이상 세상 앞으로 나아갈 수었다. 나중에는 현관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도 사라진다. 용기란 대단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닌 지금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던 보금자리에서 한 걸음 내딛는 그 간단한 행동도 어떤 누구에는 가장 큰 용기이게 된다. 나 역시 번아웃은 물론 사람에게 치이고, 지친 경험이 많다. 한번 휘청거리면 세상이라는 모든 세계가 두렵다. 한걸음 내딛는 것이 무서워 신발을 신지도 않는다.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신발을 신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기에 문 앞에 선 여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미 많은 시간을 적응한 혼자라는 삶을 끝나겠다 마음먹었다고 당장 문을 열 수는 없다. 그렇기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문과 가까워지는 것부터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