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드로잉 시화 24
그림 리퀘스트 느는 많이 들어봤을 거다. 하지만 글 리퀘스트는 아마도 처음 듣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2025년 11월 25일 나는 글리퀘스트 해드린다고 글을 올렸다. 사진이나 장르와 분위기 등을 맞춰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소소한 작업을 원해 시작했다. 무료로 진행되는 대신 기한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 또한 내가 여기 브런치에 공유하듯 받은 사람도 공유할 수 있으나 단, 내 필명을 반드시 표기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조건을 건 이유는 글이기 때문이다. 글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쉽다. 미연의 방지 차원이며, 해당 서버에서도 공유시 작가 이름을 반드시 표기하도록 적혀 있기도 하다. 무려 한 달이 넘도록 아무도 주지 않던 리퀘스트가 오늘 떴다. 늦은 확인만큼 심사 숙고하고 고민해서 그을 썼다. 물론 머릿속에 있는 그림은 인물이다.
이 글은 반드시 인물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오늘 연습한 인물 그리기가 옆모습이었다. 그래도 한번 그려봤다가 성별이 바뀌었으나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매번 두상을 너무 크게 잡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포토샵이라 두상만 지정해 크기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개의 방향도 포토샵이기에 원하는 각도로 꺾을 수 있다. 덕분에 편의점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 있는 남자를 그릴 수 있었다. 퇴근길이라는 느낌을 살려주기 위해 인중과 턱에 살짝 자란 털도 그려 넣었다. 비록 멀리 서는 보이지 않지만, 근접하면 보인다. 물론 조몽쌤을 찾듯 수염도 그리 찾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똑바로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이 남자는 지쳤으니까 말이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온종일 직각으로 앉아 있었을 다리를 펴고, 키보드 위에서 쉬지 않았을 손도 늘어놓는다. 이게 내가 이번 그림을 설정한 것이다. 원래는 상반신만 있었다. 그런데 그리고 나니 느낌이 살지 않아 하반신도 그려 넣었다. 청바지의 느낌이 잘 나와 다행이다.
글은 일부로 왼쪽으로 붙였다. 매번 오른쪽으로 썼을 그를 위해 가끔은 왼쪽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나의 위로다.
우린 항상 바쁜 소음 속에서 일한다. 사무실의 정적 속에서 멈추지 않는 키보드는 컴퓨터 화면에 커서가 요구하는 대로 쉬지 않는다. 틈틈이 울리는 전화기 속에 나의 소속과 이름을 대며 무료하고 건조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소리 지르고, 굽신거리고, 사과한다. 그러고 나면 같은 사무실 사람들과 늘 같은 인사 속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나면 퇴근 시간 1초는 시력 나쁜 사람도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다음은 눈치 작전, 누가 먼저 일어나서 나가느냐? 눈치 좋은 상사를 만나면 서둘러 나가 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나가도 되는지 안되는지 재야 하는 직장 생활, 드디어 사무실을 나온다고 한들 지옥철과 주차장을 방물케하는 도로 위에 서야 한다. 평소 20분이면 되는 거리를 1시간이 넘도록 운전하고, 숨 막히는 사람들을 뚫고 집에 오면 시원에 들이키는 물 한잔, 맥주 한 잔, 음료 한 잔이 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소소한 행복이지만, 큰 행복 못지않는 숨을 틔워주는 행복이다. 오늘 나의 글은 그런 행복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