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존재

피해의식만 남은 인생에 대하여

모두 가족 내의 나름의 다양한 사연이 있어서, 내 이야기가 그렇게 특별하고 내가 더 힘들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제 나와 외삼촌이 늦은 오후부터 빠르게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정의한 아버지의 가장 짧은 설명은 ‘우리 누나/엄마를 죽인 살인자’다. 아빠는 당연히 본인이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본인이 여자를 잘못 만나서 인생을 망친 사람으로 정의하고 살아오고 있으며 그 피해의식은 지금도 계속 더 커지고 있다.

아빠는 엄마와 선 비슷한 소개로 만나서, 외삼촌의 표현에 따르면 ‘잘난 척하기만 하는 번드르르한 전문직 남자들 사이에서 약간 특이하게 순수해 보이는 남자’였고(어제는 ‘그게 돈이 없어서 순수해 보인 것이었다’라고 다시 정의했다), 외삼촌의 약간의 부추김과 함께 결혼했다. (외삼촌은 어제 끊임없이 본인이 두 사람의 결혼을 부추긴 것에 대해서 자책하면서도, 또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없었을 거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내가 어린이로서 어느 정도의 자아의식을 갖게 된 후 보게 된 시점으로부터만 보아도 최악이었고, 엄마는 인생의 모든 의미와 사랑을 나에게 쏟아부었다. 아빠의 끊임없는 사업 실패로 우리 집은 많이 어려웠고, 내가 어렸을 때 1년에 몇 번씩 도망가듯이 엄마와 둘이 이사를 다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생 때에는 빚을 독촉하는 무서운 아저씨들이 떼로 들이닥칠 때마다, 엄마와 놀이터 같은 곳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IMF를 맞아 아빠는 도저히 한국에 있을 수 없게 되었고, 96~97년경에 아버지는 중국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전에도 이미 거의 집에 오지는 않았다)

엄마는 아빠가 어딘가를 통해 조금씩 보내오는 생활비를 악착같이 모으고, 조금씩 불려 어느 정도의 돈을 겨우 마련했고 상도동에 우리의 첫 자가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 집에 공사도 아직 덜 되었을 때 들어가 처음 잠들었던 날의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페인트나 락카, 니스 냄새를 맡으면 그때의 기쁨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 집에 1~2년도 살지 못하고 엄마는 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때 아빠가 10여 년 만에 다시 한국에 들어왔고, 엄마의 마지막 6개월 중 일부를 함께 보냈다. 엄마가 그래도 유일한 가족이니 본인이 떠나고 나면 함께 살면서 잘 지내라고 당부했지만, 아빠를 그렇게 다시 만나니 도저히 둘이 함께 살 수는 없었다. 각자의 집에 살면서 내가 유학을 가기 전까지 약 5년의 시간 동안 나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아버지와 종종 만나 밥도 먹고, 북경 여행도 다녀왔다. 내가 미국에 갔을 때는 한 학기가 끝나고 아빠가 미국으로 와서, 뉴욕과 서부 여행을 짧게 하기도 했다.

나는 뉴욕에서 2년간의 석사 과정을 끝내고 가능한 한 미국에서 취업을 해보려고 했지만, 문과인 나에게 언어 장벽은 너무 높았고 또 때마침 내가 워싱턴 DC에서 프로젝트성 일을 맡아 나름 돈을 잘 받으며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을 때(2015년), 트럼프가 곧 대통령이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빠도 몇 번의 연애 비슷한 관계를 끝내고 혼자가 되어 있을 때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잽싸게 한국으로 들어와 SAP 코리아에 취업했다.

그때부터 다시 보게 된 아빠는 주변의 매우 가까운 오래된 지인들을 한 명씩 관계에서 도려내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이유는 ‘이렇게 인간말종인 줄 몰랐다’, ‘나에게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준다’, ‘그런 인간 쓰레기는 내 곁에 둘 필요가 없다’로 거의 모두 동일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말을 절대 듣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두었다.

최근 아빠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뇌로도 일부 전이가 되어 다음 주 간단한 뇌 수술을 하고 항암을 시작한다. 진단을 받고 얼마 후 아빠는 갑자기 나에게 전화로 위와 같은 말을 퍼부었다.

‘너희 엄마도 인간말종이었고 너도 엄마랑 똑같이 쓰레기다’
‘이제까지 자식이라서 참아왔지만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다’
‘너야말로 인간 말종이면서 나를 막 대하는 것이 혐오스럽다’


회사 팀에서 즐겁게 워크숍을 가면서(물론 아빠가 아픈 상태는 계속 마음에 걸렸지만) 전화해 보았다가 이런 말들로 봉변을 당했기에, 나도 처음으로 아빠에게 심한 말들을 퍼부었다. 그리고 워크숍에 가서 저녁에 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 친구들 중 가장 똑똑한 친구 중 하나인 S는, ‘너희 아버지는 심각한 피해망상이 있고 이제 그 타겟이 너에게까지 향하기 시작했으니 그 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낫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에 아빠는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고 그러면서 전화로 싸운 이후 처음 만났다. 괴로웠지만 묵묵히 응급실–요양병원–서울대병원–아빠 집 등을 오가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했다. 지금은 앞으로 서울대병원에 자주 가서 각종 검사와 항암 치료 결정, 뇌 수술 등을 해야 하지만, 어쨌든 아빠 집에 간병인과 있는 상태다.


그저께 금요일에 위의 친구 S를 포함한 친한 친구들과 전부터 별렀던 아주 짧은 목포 여행을 갔다. 친구들은 금요일 아침부터 일찍 내려가 월출산 등산을 하고, 나는 친구들이 하산하는 시간에 맞춰 오후 반차를 내고 내려갔다. 저녁에 꼭 가보고 싶었던 식육식당에 가서 맛있는 고기를 먹고, 숙소에서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시며 편안한 대화를 하고 다들 일찍 잠들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눈을 떠보니 아빠로부터 밤 11시 반경에 온 부재중 전화가 있고 카톡으로 연락 바란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일어나셨을까 싶었지만 새벽 6시 반에 바로 전화를 했더니, 아빠가 할 말이 있으니 당장 오전 중에 외삼촌과 둘이 오라고 했다. 차마 목포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외삼촌이 일어나는 대로 연락이 되면 함께 가겠다고 하고 끊었다. 친구들도 눈이 오기 전에 빨리 올라가자고 해서, S의 차로 이른 아침에 다 같이 목포를 출발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중간에서 아점을 먹고 다시 운전을 해서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고, 집에 와서 허겁지겁 준비해 아빠 집에 도착했더니 오후 3시 반쯤이 되었다. 외삼촌은 이미 두 시간 전부터 와 있었고, 외삼촌의 표정을 살펴보니 살짝 쎄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의 얼굴에는 나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가득 차 있었다. 아빠가 말을 시작했다.


(아빠) :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다시 말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그럴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너에게 대한 부탁이 아니고, 요구다. 그리고 이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 옆에 들어줄 너희 외삼촌을 불러 놓은 것이다.

(나) : ...

(아빠) : 이 순간부터 나는 너와 모든 관계를 끊는다. 그리고 너는 친척들을 포함한 어느 누구에게도 나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고,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말아라. 네가 자식이라고 해서 나에 대한 어떤 권한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지 마라. 그 어떤 내용이라도 너의 입으로 나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것은 부탁이 아니다.

(나) : ... (어이가 없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아빠) : 너는 나와 관련된 일에 일체 나타나지도 말고, 내 장례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할 것이니 너는 얼씬도 하지 말아라. 너는 내 자식으로서 어떤 권한도 없다. 앞으로 나와 관련된 모든 일에 네가 자식이라고 어떤 행세를 한다는 것을 나는 용납할 수 없다.

(나) : ...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손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아빠) :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지금 너의 표정도 가관이다. 이제 다시 볼 일도 없으니 괜찮다. 네 마음대로 여기 오거나 어떤 이유로든 연락하지 말아라. 이건 부탁이 아니고 요구이며, 너는 이 말을 들어야 한다.

(나) : 왜 이렇게 결정하셨는지 이유는 안 말하실 거죠?

(아빠) : 굳이 내가 너한테 말을 해줘야겠나?

(나) : 네... 할 말 다 하신 거죠?

(아빠) : 그래. 난 할 말 다 했다.


나는 바로 일어나서 그대로 아빠 집을 나왔다. 온몸이 떨려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지만, 아빠 집 건물 로비에서 소리를 한 번 크게 지르고 나니 조금 정신이 차려졌다. 후들후들 걸으면서 외삼촌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하는데, 바로 뒤에서 외삼촌이 쫓아 나왔다. 갑자기 강한 허기가 몰려와 외삼촌과 아무 식당에 들어가 대충 음식을 시켜 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여기서 모르는 사람은 ‘아빠가 윤형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혹은 ‘아빠가 윤형에게 정을 떼려고’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상태는 그런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외삼촌은 내가 도착하기 몇 시간 전부터 이미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빠의 나에 대한 겹겹이 쌓인 증오와 피해의식에 대한 내용을 이미 들은 상태였다. 술을 마시면서 외삼촌은 “아빠가 작정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너에게 최대한의 복수를 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외삼촌과 거의 여섯 시간 넘게 술을 마시고 둘이 만취한 상태로 외삼촌 집으로 가서, 외숙모와 함께 밤늦게까지 셋이서 긴 대화를 나눴다. 유일하게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였던 외숙모는 나에게 “윤형이 너는 정말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해주셨다.


외삼촌, 외숙모 말씀대로 그냥 차라리 잘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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