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3살 가을의 책 - 안녕이라 그랬어

각자의 인생 각자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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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몇 단편을 읽을 때까지는, '아차 김애란 작가 책은 다시 안 읽으려고 했었는데'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할 정도로 글 중의 문체들이 너무 꾸밈이 많고 화려해서 내용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읽어 나가면서, 다행히도 다른 단편들로 넘어갈수록 문체가 상대적으로 정갈해졌고 깊이도 더 깊어졌다. 우리말을 너무 마음껏 사용하거나, 또 너무 사회적인 문제에 깊숙하게 들어가는 우리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 내가 자주 하게 되는 생각과 이 단편들에서 이야기하는 주제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돈을 제법 들여 집을 싹 공사하고, 또 그러면서도 당장의 돈 걱정이 없이 살고, 배고프기는 커녕 너무 많이 먹어서 다이어트를 걱정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면서도 순간순간 내가 속한 그 사회의 기준 때문에 행복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 행복이라는 것이 사회의 내에서 남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도,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이렇게 걱정없이 산다',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은 승진하고 잘 나가는데 왜 나는 승진 한번 못하는가' 이 따위의 남과 비교한 결과값이 나오게 마련이다.

어제 토요일 아침 일찍, 주말을 잘 시작해 보겠답시고 집에서 열정적으로 요가를 하다가 끝내고 일어나 보니 어느 순간 허리가 삐끗해 있었다. 도저히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어 급한 대로 가까운 양재에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왔지만, 아무래도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주말의 모든 외출 일정을 캔슬하고 토일 내내 오랜만에 집콕을 했다. 밀린 회사 일도 엄청 하고 회사 숙제도 많이 하고 책도 읽으면서, 정말 날씨가 좋은 바깥을 오래오래 바라봤다. 오히려 밖에 다닐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집에 있으면서 모든 창문을 열어놓고 가을 햇살과 바람을 맞다 보니 오히려 문득 너무 이 순간 내가 호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안녕이라 그랬어'에서는 '사회 내에서의 상대적인 빈곤'이라는 주제가 가늘거나 굵게 모든 단편을 꿰뚫고 있다. 남과 비교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남과 비교하면서 불행해하거나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이, 참 허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질기고 얇은 막처럼 모든 소설들에 쫙 깔려 있다.

이렇게 아플 때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또 걱정없이 병원비를 쓰면서 내일 갈 회사 앞 한의원을 예약하고, 또 맛있는 샌드위치를 배달시켜 먹는 나의 삶에서, 또 어이 없게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 상대적 박탈감을 항상 있는 것이다. 왜 나는 더 잘되지 못했을까 왜 더 잘나갈 수 없을까 내가 잘나가는 사람이 아니어서 누가 날 무시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또 한편으로 시달리면서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내다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잊어버리곤 한다. 그런 점에서 허리를 다쳐서 집에 있는 시간 때문에 오랜만에 나를 혼자 들여다 보았다. 나는 10대의 나와 어쩔 수 없이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고,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만큼 나의 사회적인 생활 수준은 정말 엄청나게 달라졌다. 같이 일했던 동료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이 땅에 남아있는 우리들은 역시 '삶'이라는 가치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또 '상대적인 상태'만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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