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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42살 겨울의 행복 - 골든걸스

골든걸스

11월말이 되어 어김없이 돌아온 생일에 42살의 생일을 맞았다. 11월 29일이라는 생일이 뭔가 '본격적인 연말시즌의 직전'이다 보니, 생일의 전후로 친구들과 약간 이른 송년회도 하면서 항상 한 해를 미리 돌아보고 12월을 준비할 수 있어 참 좋다. 

다른 사람들보다 젊음을 막 신나게 누리면서 신나게 놀았다고도 하기 어렵고, 또 그렇다고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한 적도 없는 것 같지만 요즘 생각해 보면 난 그래도 뭔가 내가 꾸준히 나이를 먹고, 또 그렇게 언젠간 진짜 노인이 되고 결국엔 죽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 자체를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2023년은 정말 엄청난 깨달음과 행복과 감사가 가득한 한 해다. 2008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당연히 정말 너무 힘들었고 또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깊게 파헤쳤던 시기가 꽤 길었지만, 올해는 내가 직접 초입(아주아주 긴 입구의 대문만 멀리서 슬쩍 보고 돌아왔지만)에 잠깐 다녀오다 보니 정말 오만가지 감정이 다 교차했다. 정말 무섭기도 했지만 또 정말 이상하게 하나도 안 무섭기도 했다. 당장 아픈 건 너무 무서웠지만 언젠가 죽는다는 건 이상하리만큼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물론 이것도 내가 사망 예상날짜를 받게 되면 다른 얘기가 될 것)

2023년을 그 어떤 해보다 신나고 행복하고 또 차분하게 마무리할 준비를 하면서, 내가 앞으로 40대와 50대, 60대와 그 이후의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또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올해를 시작하고 3월 정도부터 집에서 명상과 요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는데, 명상과 요가가 몸에 익으면서 4-5월 경부터 주말 오전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요가를 할 때, 그리고 일을 마친 평일 저녁에 명상과 스트레칭을 할 때 정말 충만한 행복을 경험했다. 너무 좋아 열심히 하다 보니, 꼭 요가를 하는 시간이 아니어도 그 행복감이 생활 속에서도 드문드문 밀려왔다. 어떤 때는 '아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하는 생각마저 꽤 자주 들어서, 또 그런 행복이 조금 불안하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7월말에 갑자기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수술이 모두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그동안의 일들이 잠깐 동안의 해프닝으로 느껴질 만큼 후루룩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봄에 느꼈던 순간순간의 행복들이 이제는 훨씬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냥 마냥 아 행복하다 이런 느낌보다는, 아 이런 행복이 영원하지 않으니 순간순간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와 함께 앞으로 천천히, 꾸준히 계속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언젠가는 죽음의 앞에 서게 될 나와 시간에 대해서도 좀더 살갗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더 깊게 하게 된 요즈음, '골든걸스'가 시작한 것이다. 네 분의 대단한 여성 가수들 중 특별히 내가 어느 분께 팬심이 있었다라고는 하기 어렵지만, 그리고 JYP가 뭔가 인생에 대한 엄청난 고찰을 하면서 엄청난 대의를 가지고 이 예능을 기획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여튼 어찌되었든 이 프로그램을 만든 JYP라는 대단한 프로듀서께 다시금 정말 감사한 마음을 매번 가지면서 정말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고 있다. 노래 실력과 한국 가요사에 그은 획의 두께(?)라면 서로 누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대가들이고, 이제 후배 가수들에 대해 잔소리만 간간이 하면서 편하게 살아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분들이다. 내가 이렇게 예능에 비춰지는 이 멋진 언니들을 보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매번 감탄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정말 그 나이로서는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요즘 나의 최선의 목표가 '적당한 경험을 가진, 우아하고 현명하고 센스있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는 것'인데, 뭔가 애매하게 '할머니'의 정의를 두고 볼 때 아슬아슬한 인순이와 아직 할머니라고 절대 할 수 없을 다른 세 분 모두 하나같이 그 건강한 미소가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방송에서 나오는 모든 멘트와 대사에 우선 의심의 필터를 한 겹 끼고 보는 나로서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하는 행동이나 말에 쉽사리 감동은 받지 않는 편이지만, 이 다 가진 언니들의 여유있는 미소는 '배부르고 탐욕스러운 부자들의 미소'와는 또 너무 다른 것이다. 

JYP가 의도한 대로 열심히 연습하고 화음을 맞추어 완성된 곡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충분히 시나리오대로 너무 멋있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비슷한 나이셨을 인순이 가수님(우리 엄마보다 한 살 어리심)의 그 유연함, 신효범 가수님의 긍정 에너지, 박미경 가수님의 귀여움과 센스, 이은미 가수님의 너무 예쁜 눈빛까지 모든 것이 조금 더 늦게 뒤따라 나이가 들어가는 여자로서 환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0대 초반에 너무 일찍 가신 엄마, 그리고 이제 곧 40대 중반이 코앞인 나의 50대, 60대, 70대... 를 생각하면서 이 분들의 멋진 에너지에 정말 푹 빠져서 보고 있다. 사회생활에서 벌써 살짝 '나이가 많은 여자' 축에 들어가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때에 따라 어떤 새로운 도전이나 처세에 있어서 위축될 때가 있다. 나도 나름 30대에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직장이라고 할 수 있을 회사를 그만두고 완전 어느 것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로 무작정 미국 유학을 갔던 용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이제 조금 늦었을지 몰라'하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는 것이다. 프로듀서 JYP의 의도가 대부분 이것이었겠지만, 나와 같은 만 42살이 무슨 도전을 한다고 하면 늦기는 커녕 너무나도 좋은 나이일 테고, 또 당분간 최소 앞으로 십년 간은 나는 '젊은 도전'을 할 수 있을 거다. 

골든걸스 여자 가수님들이 방송에서 보여주는 멋진 모습처럼, 나도 내 나이의 위치에서 가까이는 30대, 약간 멀리는 20대 여자 후배들에게 보기 좋은 여자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또 다시금 들었다. 나의 2,30대 때에 비교하여 지금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거의 신경쓰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남의 기준과 시선에 맞추기 위해 나를 괴롭히던 2,30대 시절보다 내가 나를 정말 충분히 사랑하는 40대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 동생들이 또 나를 보고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수 있다면 또 좋겠다. 무엇보다 올해 2023년에는 무언가 또 하나의 생명과도 같은 삶을 선물 받은 느낌인 만큼, 더 새로운 마음으로 더 행복한 새 삶을, 내가 정말 사랑하는 내 자신과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다른 사람의 시선만 보던 것에서 눈과 귀를 돌려, 내 자신을 더 들여다보고 내 자신을 더 사랑하고 보듬는 그런 충만한 12월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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