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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41살 가을의 행복 - 공부

공부가 취미?!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당연한 것도 같은데, 정말 유독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학창 시절에 계속 공부를 하지 않고 빈둥 거리면서 '좀만 있다가' '십분만 누웠다가 해야지' 모드를 시전하고 있을 때, 엄마가 벌컥 방문을 열고 "공부 안하냐?"라고 하시면 그나마 하려던 공부가 딱 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공부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참 그래서 나는 참 지독히도 공부하라는 말을 잘 듣지 않았고 가장 공부를 많이 해야만 하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나름 공부의 양에 있어서는 반항기를 겪었다. 

그러다가 내가 진짜 제대로 공부를 하게 된 것은 대학을 가면서부터이다. 거의 모든 수업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심지어 나는 편입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지라 원래 첫번째 대학에서의 전공과목은 단 하나도 듣지 않는 기염을 토했다)이 정말 너무 신이 났던 것 같다. 엄청 어려운 과목도 막 도전해서 들어보고,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가르칠까 싶은 것도 최대한 많이 들어보았다. 내가 갑자기 자기 주도적인 공부에 미친 듯이 빠지게 되면서 대학 1학년은 정말 친구를 사귀거나 노는 것도 거의 하지 않고 진짜 메마른 논에 물을 콸콸 들이붓듯이 공부했다. 어떤 학기는 완전 어려운 전공 과목만 5개를 들었는데, 5개 모두 A+를 받고 그 중 회계학 교수님은 나에게 몇 번이나 연락 주셔서 그쪽으로 권유하시기도 했다. 그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의 재미를 정말 실컷 맛보았다. 생각보다 교강사님들은 훌륭했고, 세상에는 배울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러다가 고대로 편입을 하게 되고, 편입 후 동아리에 또 푹 빠지는 바람에 2년 동안 거의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음악만 하다가 겨우 졸업을 했다. 참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던 것이, 분명 내 3,4학년 학점이 내 발목을 잡을 것을 알았음에도 약간 일정 부분은 포기를 한 상태로 무작정 기타만 쳤다. 그래도 또 생각해 보면 진짜 실컷 음악을 하고 연주회도 하면서 원없이 하고 싶은 것을 했던 것 같다. (지금 대학생들은 그렇게 못하겠지...) 

참 웃기는 것이 또 그러다가 삼성전자에 입사를 했는데, 입사 연수 때에 난 참 지독한 반항사원이었다. 시키는 교육을 거의 하지 않거나 진짜 최소한으로만 했고, 명색이 (연수 그룹에서) 팀장이었기 때문에 지탄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또 그렇게 입사하고 싶던 회사였는데도, 강제로 시키는 커리큘럼(거의 회사의 사명과 사상, 정신교육 이런 거였지만)이 정말 너무너무 싫었던 것이다. 그때 연수 프로그램에서 무작정 우리를 대구 시내에 떨궈놓고 디지털카메라를 팔게 한 날이 있었는데, 그때 파트너였던 오빠와 그냥 하나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지금 세일즈를 하고 있다니 참 인생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길고긴 연수가 끝나고 부서 배치 후 업무를 하게 되면서, 나름 자기 주도적으로 알아서 할 수 있는 공부들을 찾아서 또 간간이 열심히 했던 것 같(은 기억이 사실 가물가물하)다. 그러다가 4년차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이후 마음도 추스리고 집중할 것을 찾던 중에 엄마도 정말 열심히 했고 나도 나름 조금 했던 일본어가 떠오른 것이다. 또 그 와중에 갑자기 삼성전자 DS사업부에 8주짜리 일본어 교육 합숙 프로그램이 생겼다. 난 거기 나를 입과시켜 달라고 부장님께 드러누웠고, 결국 그 해 11-12월에 모든 업무를 후배에게 맡겨두고 연수소에 입소했다.

정말 그때 8주 동안 일본어만 공부했던 그 기억은 내 인생에 최고의 기억 중의 하나다. 아예 업무에서 배제된 것도 당연히 좋은 거지만, 정말 '작정한 나'를 알아본 선생님은 나를 완벽한 초보 단계에서 어느 정도 그럭저럭 중급의 대화 실력을 가질 수 있도록 나에게 초집중했고(단기간의 극명한 효과를 위해서 선생님은 나의 읽기/쓰기를 포기하고 듣기/말하기에만 집중했는데, 그래서 지금도 읽기와 쓰기는... 좀처럼 늘지가 않는다), 나도 그 한국인 선생님과 일본인 선생님을 백번 활용했다. 같이 입소한 또래 대리들과 어줍잖은 일본어로 수다를 떨고, 빠른 속도로 늘어가는 나의 일본어를 느끼는 건 정말 짜릿했다. 연수가 끝난 후에는 거의 곧바로 오사카로 여행을 가서, 최대한 현지 사람들과 일본어만 해보는 데에 집중했다. 오사카 사투리가 걸림돌이긴 했어도, 엄마 장례 후 바로 도쿄에 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달라진 내 일본어를 체감할 수 있어 너무 신이 났다. 

이후 유학을 다녀와서 IT업계로 커리어를 바꾸게 되면서, 또 이 분야에서 회사가 시키는 공부와 내가 알아서 하는 공부가 시작되었다. 2016년 1월에 시작했으니 벌써 8년을 꽉 채워간다. 여전히 지식은 미미하지만, 처음에 정말 바보 수준이었던 나의 IT와 세일즈 지식은 그래도 8년이라는 시기를 어떻게든 채운 만큼 아주 조금은 늘었다. 또 어쩌다 보니 SAP와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즈포스라는 정말 큰 IT회사들에서 쫀쫀하게 짜여진 교육 프로그램들을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도 큰 복이다. 억지로 기한 내에 어떤 시험을 보고 숙제를 해야 하는 회사 교육은 정말 여전히 싫지만, 그래도 필수 교육이 아닌 내용들을 찾아서 내가 알아서 공부하는 기쁨은 여전히 크다. 

요즘은 최대한 공부하는 시간을 따로 지정해 놓고, 회사 관련된 공부와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를 나누어서 최대한 틈틈이 공부를 하고 있다. 회사의 제품과 기술에 대한 공부는 해도해도 끝이 없지만 그래도 알면 알수록 확실히 업무에 약간의 자신도 붙고 보람도 있어서 최대한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다. 개인 공부는 영어, 일본어 위주로 하고 프랑스어도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아주 간간이 하고 있다. 확실히 어학은 내가 공부하는 만큼 느는 것이 느껴져서 더 공부할 맛이 나는 것 같다. 뭔가 안 해 본 공부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어쩌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할 줄 아는 것을 더 잘 하게 만드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아 아직까지는 이렇게만 집중하려고 한다. 이 바로 전 글에 책을 읽는 나의 행위에 대해서도 일종의 명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썼는데, 나에게 있어 공부도 어느 정도 그렇다. 생각할 필요 없는 고민과 걱정거리, 업무 생각을 완전히 잊고 다른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머리를 더 맑게 비워주기도 한다.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도, 계속 꾸준히 공부하고 집중하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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