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이 걱정되는 당신이 읽어야 할 책 5권 (1)

마리 루티 저,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by 마리아

얼마 전, 트위터에 '밑도 끝도 없지만 자녀 교육에 대해 걱정하신다면 이 책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요' 하며 책 몇 권의 표지 사진을 올린 적 있습니다. 왜 추천하는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책 표지 사진 속 제목만 보고 몇 백 건이나 리트윗이 되었습니다.


그 날은 지인의 가족을 만난 날이었습니다. 부모도 아이들도 연령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어울리기 좋았고 꽤 즐거운 자리였지만 돌아와 내내 가슴에 묵직하게 돌 하나가 얹힌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마음을 어지럽혔는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대충 어림하여 책 다섯 권 분량쯤? 결국 어떻게 줄여서 풀어보려던 시도를 포기하고 정말 밑도 끝도 없이 표지만 덜렁 올렸습니다.


자녀 교육과 관련된 글은 언제나 리트윗이 많이 되는 편입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높은 교육열 덕분일 수도 있고, 넘치는 정보들 사이에서 도리어 그래서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작지만 뜨거운 관심에 부응하고자, 고민 끝에 좀 더 길게 떠들 수 있는 공간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어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만, 기왕 글을 쓰기로 하였으니 단호히 저질러 보겠습니다.


자녀를 잘 가르치고 싶다면 아들이라, 딸이라 어쩌고 하는 말은 집어치우세요. 교육 전문가가 그런 말을 한다면 무조건 한 번 의심하시고, 그런 비스름한 말이 들어있는 책은 그냥 집어던지세요. 특히 남자아이를 파란색과 로봇 또는 자동차, 공룡 등과 엮고 여자아이는 분홍색과 인형, 소꿉놀이랑 엮는 책이 있다면 불 싸질러 버리시길.


제 말이 너무 급진적이고 공격적으로 들리시나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후 남녀가 유별한 것은 우리 조상님들의 가르침을 넘어 전 우주적인 법칙처럼 자리 잡았는데 지나치게 단정하여 말하는 것 같으신가요? 남녀의 차이를 밝히는 무수히 많은 경험적 증거와 과학적 증명들을 들고 오실 건가요? 그런 분들을 위해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를 강력히 권합니다.



사실 이 책은 육아나 자녀 교육과 관계가 없는 책입니다. 작가는 '사랑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연애 관련 자기 계발서들을 읽'다 그것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얄팍한 논리와 근거로 쓰인 것인지를 발견하고 이 책을 썼고, 그래서 연애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그럼에도 제가 자녀 교육을 걱정하는 당신에게 이 책을 제일 먼저 권하는 이유는 남녀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되지도 않는 고정관념을 그만 버리실 때가 됐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수렵 채집 생활을 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여자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에 집중하고 남자는 사냥을 하여 여자와 자식을 부양하는데 힘써왔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친숙하다 못해 고루하게까지 느껴지는 이야기는 진화심리학에서 남녀의 유전적 차이를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언뜻 들으면 굉장히 과학적으로 들리는 진화심리학의 주장은 그러나 사회적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기 위해 분명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스스로의 주장 안에서도 충돌하는, 그다지 과학적이지 못한 학문 - 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은 - 영역입니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의 저자는 '진화심리학의 폐해는 우리 문화에 가장 깊이 뿌리 박힌 몇 가지 성 고정관념에 과학적 인증을 찍으려고 시도했'다고 비판합니다.


이 책은 한 장을 할애하여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를 맹렬히 비판하는데, 이 책에서 버스는 남녀가 배우자를 고르는 데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질을 조사한 연구를 바탕으로 남녀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른지 설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같은 연구의 결과를 사뭇 다르게 소개 했다는 것입니다. 논문에서 버스는 성별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2.4%에 불과하다 말하며, 성 차이보다 출신 문화 사이의 차이가 더 컸음을 인정했음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대중 심리학 서적인 <욕망의 진화>에서는 마치 엄청나게 큰 성 차이가 있는 것처럼 설명하지요. 그러니까 남자끼리의 공통점, 여자끼리의 공통점보다 오히려 출신 문화 사이에서의 공통점이 커서, 예를 들자면 미국 남자와 여자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 남자와 여자는 비슷한 편이었고 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차이가 더 컸는데, 역시 남자와 여자는 다르게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참고로 성 차이에 대해 덜 단호하게 주장했던 논문마저도 동료 과학자들에게 크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아전인수격인 연구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진화심리학이 과학의 이름을 오용하여 공고히 하려 드는 사회적 고정관념은 평상시에 큰 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자녀의 교육처럼 정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판단해야 하는 중요한 일 앞에선 무척 해롭습니다. 만약 어떤 교육 전문가가 A형 아이는 소심하지만 꼼꼼하니 너무 크게 혼내지 말고 살살 구슬려가며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말을 신뢰할 수 있으신가요? 이 아이는 호랑이 띠라 드세서 가르치기 힘들다는 말은 어떠신가요? 전문가라며 자녀 교육에 대해 떠드는 사람 치고 너무 나태하고 게으른 태도 아닐까요.


남자아이라서, 여자아이라서 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전형적인 남자아이, 전형적인 여자아이 같은 것은 없습니다. <평균의 종말>에서도 평균적인 인간이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하였지요. 대부분의 아이는 남자아이지만, 여자아이지만 등의 말로 설명되는, 각각 개별적이고 고유한 특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만한 남자아이의 산만함을 남자아이의 고유한 특질로 여겨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을까요? 자기 의견을 즉각적으로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여자아이의 수줍음을 여자아이의 고유의 특질로 여겨 그저 답답해하기만 하는 것은요? 산만한 여자아이를 여자애가 왜 그러냐며 꾸짖고, 수줍은 남자아이를 사내자식이 왜 그 모양이냐고 혼내는 것은?


유독 남자아이라서, 여자아이라서 그렇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제 주변에도 의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았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을 남녀의 성별로 나누는 세계는 평화롭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명쾌하게 설명되고, 설명되지 않는 것은 일부의 예외로 취급하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만든, 혹은 제가 이렇게 생각하도록 사회가 만든 허상의 세계에 끼워 맞춰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제 아이는 자기답게, 자기의 방식으로 바르고 똑똑하게 키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여깁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증명된 것처럼 보였던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는 사실이 아니며, 이미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떠들었습니다. 물론 남녀 사이의 차이는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유전자에 박힌 '근본적인' 차이는 아닐 뿐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제게 있어 '과학적으로 입증된 자녀 교육법에 대해 알고 실천하려 한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적으로 입증된' 학습법과 자녀 교육법은 우리의 직관과 상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 자신의 고정관념과 기분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니 시작선에서 세상에서 가장 묵직한 고정관념은 최대한 버리고 출발합시다.




+) 함께 읽으시면 좋을 책

박한아 저,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수전 팔루디 저, <백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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