쩜오. 마시멜로를 좋아하세요?

by 마리아

저희 첫째는 유독 먹을 것에 욕심이 많습니다. 먹는 것 자체도 좋아하지만 만들기도 그리기도 먹는 것이 주된 소재이고 심지어 독서도 음식에 대한 걸 우선 뽑아 읽습니다. 첫째가 10개월인 무렵 지인네 집에 놀러 가서 어른 주먹만 한 감 두 개와 귤 다섯 개를 먹어 지인 내외를 경악하게 만들고, 그러고도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배고프다고 보채 주변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가방에 챙겨갔던 이유식 200cc를 먹였던 적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키워본 분은 아시겠지만 10개월 아기가 이유식 200cc를 먹는 일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첫째 못지않게 많이 먹은 편인 셋째도 그만큼은 못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첫째의 끝없는 식탐은 제게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7살이 된 지금이야 그러지 않지만, 5살 때 까지도 제가 조금만 늦게 일어나면 아침부터 찬장을 뒤져 과자며 빵을 모두 꺼내 먹었습니다. 물론 그러고 나서 아침밥도 다 먹었으므로 영양 불균형을 걱정할 일도 없고, 키는 크지만 마른 편이라 비만을 염려할 상황도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이것이 자제력 문제로 보여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교육학과 심리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마시멜로 실험'을 알고 계신가요? 1960~70년대 미국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 윌터 미셀이 4~6세의 유치원생들에게 한 실험으로, 아이들을 한 명씩 방으로 데려가 마시멜로 한 개가 놓여있는 접시를 보여주고는 "선생님이 잠깐 나갔다 돌아올 거야. 그때까지 이걸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한 개 더 줄게"라고 말합니다. 실험에 참가한 약 600여 명의 아이들 셋 중 하나는 그 잠깐(15분)을 참지 못했고, 결국 마시멜로를 하나 더 얻지 못했습니다.


이 실험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이뤄진 후속 연구 때문입니다. 2009년 5월 18일 '뉴요커'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15분 동안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들의 SAT 점수가 겨우 30초 만에 마시멜로를 먹은 아이들의 SAT 점수에 비해 평균 210점(1600점 만점 기준)높았다'고 합니다. 2012년에 발표된 후속 연구에서는 15분 동안 마시멜로를 먹지 않은 아이들이 먹은 아이들에 비해 더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기 계발서나 강의의 단골 소재인 이 실험을 알고 있던 저는 첫째가 15분도 참지 못하는 아이가 될까 싶어 불안했습니다. 타일러도 보고, 혼내도 보고, 간식을 안 사다 놓거나 더 꽁꽁 숨겨놓기도 했지만 먹는데 까다롭지 않은 첫째는 뭐든 더 먹으려 들었습니다. 이 문제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무렵, 알고 지내던 선배 양육자께서 이런 요지의 말을 해주셨습니다. 과자 그거 좀 더 먹는 게 뭐 어떠냐. 밥을 안 먹는다면 조금 문제가 되겠지만 밥도 잘 먹으면 그냥 두면 그만이다. 먹고 싶은 거 먹고 즐거운 편이 낫다.


과연 맞는 말입니다. 첫째는 과자를 먹어도 밥도 먹었고, 자기가 배부르다고 느끼면 더 권해도 먹지 않았습니다. 일상의 다른 면에서도 아이답게 어떤 것은 참지 못했지만 또 어떤 것은 잘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현명한 조언 덕분에 과자 전쟁은 일단락되고, 저는 가급적이면 건강에 크게 해롭지 않은 과자로 찬장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어쩜 마시멜로를 두 개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가며 냉큼 먹은 아이들은 그 날 따라 배가 고팠거나 우리 애처럼 먹을 걸 잘 못 참는 아이들인가 보다' 쯤의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학생들에게 인내력을 주제로 동기부여 코칭을 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다 충격적인 기사를 발견합니다. 마시멜로 실험의 참가자들이 애초에 대학 부속 유치원을 다니는 백인 부유층 가정의 자녀들이었으며, 후속 연구에는 600명의 1차 실험 참가자들 중 극히 일부만이 참가하여 그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에서 소개한 미국 뉴욕대와 UC 어바인대 공동연구팀이 국제저널 ‘심리 과학’에 발표한 논문(‘Revisiting the Marshmallow Test’)에 따르면 어린아이의 자제력에는 가정환경, 부모의 양육방식, 인종, 성, 인지 능력 등 환경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이 컸고, 측정 결과가 나중의 삶에 미치는 예측력은 부모의 학력에 따라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용 기사 링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53/0000031218?sid=001)


이제 마시멜로 실험의 검색 결과에는 인내력과 자제력의 중요성보다 실험의 오류에 대한 내용이 더 많습니다. 미셸 박사의 체면을 조금 살려 보자면 이 실험은 사실 아이들에게 전략적으로 인내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였고, 후속 연구를 계획한 것도 아니었으니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전문가를 포함한 꽤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과 자제력의 놀라운 영향력만 알 뿐, 조금만 찾아봐도 발견할 수 있는 후속 연구들을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 포털 사이트의 마시멜로 실험 검색 결과


과학적인 실험의 결과라고 알려진 꽤 많은 것들이 이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후속 연구로 실험의 오류가 밝혀진 경우도 많고, 후속 연구 자체가 없어 실효성이 의심되는 것들도 많습니다. 뿐만인가요. 아예 과학적인 실험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그럴싸한 기사가 사실은 가짜 뉴스인 경우도 넘쳐납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하루에도 열 번씩 스스로를 의심하고 주변을 곁눈질하게 되는 우리에게 이런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시간낭비요 독과 같습니다. 그러니 기억하세요.


마시멜로 그깟 거 얼른 집어 먹었다고 수능 점수 안 나오고 형편없는 직장에 다니게 되고 40살 이후 배는 뿔뚝 나오게 되고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늘 유독 배가 고팠을 수도 있죠. 늘 집에 먹을게 넉넉해도 형제가 많아 뺏기기 전에 먼저 입에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요. 다행히 세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여 마시멜로를 안 먹고 참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넘치니까요.


“자제력에 대한 연구는 전체적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해 의지가 굳기 때문에 자제력이 더 크다는 발상은 점점 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스스로 자제력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유혹을 적게 받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미국 인디애나대 사회학 교수 제시카 칼라르코의 말이다. (인용 기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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