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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번에 하나밖에 못해?

by 훈훈

박스들이 현관에 그대로 있었다.

조금 전 나가는 남편에게 분리수거를 부탁했는데 잊어버렸나보다.

돌아온 남편에게 이유를 물었다. 강아지를 산책 시키느라고 그랬다는 것이 그의 답.

나는 ‘산책 나갈때 박스 몇개 들고나가서 버려줘’ 라는 의미였는데 말이다.

입이 근질근질 참지못하겠는 나는

“당신은 왜 한번에 하나밖에 못하는 건데?” 라고 따진다.

말을 뱉어놓고는 속으로 나도 놀란다. 아니 찔린다.

한 번에 하나를 하는 게 정상인 것 같아서다. 특히 요즘 세상에는.

그럼 그동안의 나는 뭐였나? 비정상? 혼자 80년대를 살았나?

그래도 밀린 일이 얼마나 많은데, 손이 세개여도 모자를 판인데,

퇴근하면 옷도 못 갈아입고 집안일 시작이고, 집에 왔다고 끊어지지 않는 업무 생각에,

걸려오는 전화도 받아야 하고 아들도 챙겨야 하고 강아지들 산책도 시켜야했다고….

그런데 당신은 왜 혼자 정상이야? 어쩜 그리 느긋해?

두번째 말은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화가 나는 건지 야속한 건지 답답한 건지 심란했다.


그러다 비슷한 말을 후배들에게도 종종 했다는 걸 깨달았다.

주로 업무를 배분해야할 때의 일이다. 일단은 해당 프로젝트에 맞는 팀장을 부른다.

“일을 하나 해야겠는데!” 로 선제 공격을 날린다.

그러면 “네,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다거나 혹은 걸린 일이 꼬여서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를 맛깔나게 표현하며 수비한다.

넋 놓고 듣다가는 “어휴, 힘들겠다, 어쩌니?” 공감만 해주고 빈손으로 끝난다.

고비를 넘겨 대화를 이어가면 다시 본인 휴가, 팀원휴가라는 이유로 고사한다.

그럼 내 목소리는 조금 강해진다. “일은 원래 두개 세개씩 하는 거야.

자기는 잘하니까 금방 할 수 있어, 발로 해 그냥 발로!”라며 눙을 치던가

“얘, 한 번에 하나씩 밖에 못하면 회사가 돌아갈 수가 없어! 하나 더 하고 보너스 받자”

라고 회유하거나 반협박, 혹은 떠넘기기 기술을 시전했다.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는 원초적이고 치사한 미끼도 던진다.

밥을 마다하는 건 꽤 심각한 시그널이기도 한데 어쨌거나 나는 한번에 하나 이상을 하게끔

그들을 설득해야하는 적이 많았다. 살다 보면 안다. 일은 늘 한 시점에 죄 몰리기 마련이고

우리에게는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그것을 해낼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없는 시간 쪼개어 릴레이 회의를 하고 노트북으로 자료찾다가 휴대폰으로 아이를 챙기고,

식사 준비 해놓고 밤에 편집실 가서 일하고, 가족의 달에는 그달에 집중적으로 몰린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행사들을 다 챙겨가며 살았다.

모든 임무를 완수하려면 몸이 느긋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나의 강박이고 속도, 추구미였던 ‘한번에 여러개를 빨리 하기’는

되돌아보니 후진적이고 비정상적인 행태의 라이프였다.


퇴직 후 얼마 안돼 병원에 갔다. 동네에서 꽤 알려진 이비인후과로 대기자가 많아서

한번 가려면 시간 계산을 잘 해야했었다. 그날 내 순서는 열다섯 번째였다.

대충 봐도 한시간 삼십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뭔가 마음이 초조해졌다.

다음에 다시 와야 하나? 그러다 번개처럼 깨달은 사실 하나는 내게는 복귀해야할 회사가 없다는 것.

그 말인 즉 기다려도 된다는 것. 기다리는만큼 내 몸을 위하는 느낌이 들어서 뿌듯하기도 했다.

가방 안에 읽던 소설책이 있어서 간호사 선생님께 차례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느긋하게 대기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갑자기 내게 주어진 여유가 감동적이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 같았다. 조용히 속으로 ‘그래, 사람이 이렇게 사는 거지! ‘를 외쳤다.


엄마를 모시고 부산에 사는 조카의 결혼식에 다녀와야 하는 일이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SRT를 타고 갔는데 내려가는 표는 예약했으나 올라오는 표는 사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느냐고 누가 물어도 글쎄~라며 잘난 척을 했다.

나는 이제 월요일에 올라가도 되고 화요일에 올라가도 되니까.

주말표를 구하려고 아둥바둥, 미리 표를 준비하지 못한 나를 탓하지 않아도 되는 삶. 시간의 플렉스였다.


이것은 그동안 비정상으로 바쁘게 살아온 내게 주어진 선물같은 느긋한 라이프인가?

일하는 속도가 빠르고 손이 빨랐던 내가 이제는 천천히 저속으로 살아도 되는 건가?

그러다가 문득 예전 버릇이 튀어나온다. 친정에서 엄마와 함께 점심을 차리다가

서두르는 바람에 유리잔을 깨버렸다. 유리잔이 박살이 나 사방으로 작은 조각들이 튀었다.

어디로 숨었는지 모르는 유리조각들을 하나하나 찾아 치우며 속상해했다.

아직 멀었구나, 급할 거 하나 없는데 왜 서둘렀을까…친정 엄마는 나의 속도전을 걱정하신다.

늘 쟁쟁거리며 뛰어다니고 정신없는 급한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리라.

그날로 천천히 해라, 서두르지 마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더 강해졌다.


내 습관들이 저속 라이프에 적응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새로운 목표를 하나 세워보려고 한다.

‘한번에 하나만 하기’, 그 하나를 느긋하되 정성껏 하기.

안되면 내일로 미뤄 마무리하기.

얼마나 좋아. 생각만으로 평화가 찾아온다.

악착같은 옛날 사람처럼 살지 말고 현대에 맞는 쿨한 사람이 되는 거다.

내 삶이 드디어 정상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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