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환한 기운에 눈을 떴더니 5시30분. 커튼을 치지 않은 방안이 대낮처럼 환했다. 방안 온도는 덥지 않다. 오히려 약간 싸늘할 정도여서 얇은 차렵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봤다. 간밤에 나의 잠자리는 어땠나 되짚어보니 두 세번정도 에어컨을 켰다가 껐던 것 같다. 에어컨 찬바람이 싫다는 나의 의식과 그래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내 몸이 싸우고 타협한 결과다. 잠이 들었음에도 몸은 귀신같이 방안의 높아진 온도와 습도를 불쾌하게 느끼고 반응한다. 등에 밴 땀이 이불 위를 축축하게 적시려고 할 즈음, 깔깔한 소재의 여름 패드가 핫팩처럼 후우 하고 뜨거운 김을 밀어 올릴 즈음, 나의 뇌는 얼른 손을 뻗으라고 명령을 내린다. 자기 전에 세팅해 놓은 에어컨 리모콘이 있는 침대 왼편 상단으로. 혹여나 리모컨이 거기에 없을 땐 일이 커진다. 더듬어도 못 찾을 때엔 불을 켜야 하고 불을 키면 얌전히 같이 자던 강아지 두 마리가 잠을 깨는 것은 물론 내 수면의 질도 최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리모컨은 제자리에 있고 다시 전원 버튼을 켜는데 오차는 없다. 이렇게 애를 쓰며 열심히 잤으나 아침이면 머리는 안개가 낀 산 정상의 무거운 바위같은 느낌이다. 7시간 수면을 했는데 잘 잔 낮잠 30분에 못 미치는 수준. 열대야라고 잠을 포기할수도 없으니 그저 최선을 다해서 잘 뿐이다.
집안 곳곳의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아무리 더운 공기라도 ‘환기’라는 단어에는 새것의 의미가 있고 순환의 효력이 있어서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엔 창문을 여니까 솨아아 매미의 합창 소리가 들렸다. 어찌 들으면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 같고 다른 한편으론 파도가 먼 바다로부터 밀려왔다가 다시 쓸려나가는 소리같기도 했다. 소리가 청량해서 잠시 시원하다는 착각을 했다. 매일 시끄럽다고 투덜거렸는데 왜일까? 너무 더우니 매미들이 화이팅이라도 하라는 걸까? 한여름의 ASMR, 제법 어울리고 시원했다.
식사는 되도록 간편하게 준비한다. 불을 많이 써서 하는 요리는 안하는 게 좋다. 한여름은 그렇게 넘기는 게 지혜다. 대신 얼음을 부지런히 얼린다. 모자라면 얼음틀에 물을 붓고 다 얼면 틀을 180도 아래로 돌려서 우다다 쏟으며 얼음저축을 한다. 식구들마다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콩국수를 먹고 얼음물을 찾으니 그래도 모자라서 둥그런 구모양의 큰 얼음틀을 세개나 더 사왔다. 시장의 얼음집이 바쁜 것처럼 우리집 냉동실도 바쁜 계절이다.
이부자리를 얇으면서 바스락거리는 것들로 바꿨다. 이불이 필요없다고 여겨 안 덮었다간 또 여름 감기에 발목을 잡힐 수 있으니 있을 건 있어야 한다. 세탁이 끝난 이불과 수건을 습관처럼 건조기에 돌리려다가 멈칫했다. 발코니에 조금만 나가도 눈이 부시고 숨이 턱 막히는 날씨인데 내가 뭐하는 건가 싶었다. 건조기의 동그란 문을 열었을 때 훅~ 하고 몰려나오는 뜨거운 열기는 발코니의 뜨거움과 결국 같은 것이 아닌가. 고로 건조기를 돌리는 건 집안에 무더위를 또 하나 만드는 일 아닌가. 젖은 것들을 햇볕에 널기로 했다. 타들어갈 것 같은 뜨거운 태양, 이 싱싱하다 못해 과하게 혈기왕성한 태양을 그냥 두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젖은 수건들아, 가지런히 빨랫줄에 널어줄테니 부지런히 태양을 빨아들여라. 지구의 온도를 조금은 내려줄 수 없겠니? 수건을 널고 들어와 벌개진 얼굴로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프리카보다 덥고 싱가폴보다 습하다는 그 여름, 대한민국의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