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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Dec 06. 2024

엘리너 캐턴의 <루미너리스>

영화 <더 루미너리스The Luminaries>  2020년

12개의 별자리를 닮은 12명의 남자와 12개의 진실. 『루미너리스』는 황금을 둘러싼 그릇된 탐욕과 엇나간 운명을 그리고 있다. 뉴질랜드 골드러시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를 배경으로 정교하게 얽힌 미스터리를 펼쳐놓는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것이 천체의 역학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요 인물인 12명의 남자는 황도 12궁을 대표하며 그에 맞는 성격과 특성을 지니고, 나머지 인물들은 행성에 속해 이들 사이를 넘나든다. 테 라우 타우웨어(녹암 채집가), 찰리 프로스트(은행원), 벤저민 뢰벤탈(신문사 운영자), 에드거 클린치(호텔 경영인), 딕 매너링(금광촌 거물), 퀴 롱(금 제련사), 하랄 닐슨(중개상), 조지프 프리처드(약제사), 토마스 발퍼(해운업자), 오베르 개스코인(법원 서기), 숙 용승(모자장수), 코웰 데블린(목사) 등이 별자리의 주인공들이다. 영어 원제 ‘Luminaries’는 고어(古語)로 발광체라는 뜻. 점성술에서 가장 밝은 두 천체인 태양이나 달을 의미한다고 하니 복수형 ‘루미너리스’는 반짝이는 뭇별쯤 될 것 같다. 소설은 골드러쉬가 한창이던 1866년 무렵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다 명멸해 간 뭇별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1]

“그 이후에 대해서는 꿈을 꿔봤습니다. 그러니까 그 금으로 무엇을 하느냐, 그 금을 어떻게 쓸 거냐 하는 것 말입니다.”
 남자는 이 대답에 만족하는 기색이었다.

“난 그런 걸 역연금술이라고 부르지. 그것도 전체 과정의 일부야. 기대하는 것 말이야. 역연금술. 알겠어? 금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금으로 다른 걸 만드는 거니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남자의 말은 거꾸로 된 공중 오락장에 관한 무디의 공상과 꽤나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기발한 비유군요.”

“그리고 자네의 질문 말이야. 앞으로 여기저기 묻고 다닐 거라고 했던 그 질문들. 아마 어떤 삽을 쓰고 어떤 선광대를 쓰냐, 지도 같은 건 어디서 구하냐, 이런 질문들이겠구먼.”     (P21)  

   

“선생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말씀하시는군요.”

여전히 웃으면서 발퍼는 손을 흔들었다.

“설득이라는 건 사람을 교활하게 속이는 걸세.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뿐이야.”     (P31)     

월터 무디는 다른 사람이 미신을 믿는 것을 굉장히 재미있어했지만 본인은 미신을 믿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이미지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의 인상에 쉽게 속지 않았다. 그가 영리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경험이 많기 때문이었다. 뉴질랜드로 떠나오기 전에는 그의 경험이 딱히 넓다거나 다양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금껏 살면서 그는 계산된 확고한 의혹만을 알았다. 의심, 냉소, 가망성 같은 것만을 알았다. 사람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 때 깨닫게 되는 무시무시한 사건의 원인, 그런 원인을 밝혀내고 나서 느끼게 되는 끔찍한 공포,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는 공허함 같은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뭔지 모를 경험들에 관해서 비교적 최근까지 다행스럽게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는 공상 같은 것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실용적인 목적이 있지 않은 한 가설을 세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사실은 지식적인 면에서만 흥미로운, 하찮은 소재일 뿐이었다. 그리고 종교가 없기 때문에 유령도 믿지 않았다.            (P34)   

  

“아, 그래. 돈을 번다고 했지. 요즘 말로 하자면 돈을 따라다닌다고 해야겠지만, 하나 광부의 동료라는 건 자신의 그림자 같은 거라네. 이것도 자네가 알아둬야하는 지식이야. 동료는 자신의 그림자나 마누라 같은 존재야.... ”   (P51)   

  

(괴로움은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이기적으로 바꿔놔 다른 괴로움에 찬 사람들을 얕잡아보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나중에 깨달았다. 그리고 이 사실에 그는 깜짝 놀랐다.)             (P51-52)     

고민이 있는 사람이 또 다른 문젯거리를 마주하는 경우, 이 문제가 그와 전혀 관계가 없다면 오히려 첫 번째 문제에 대한 치료제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무디는 지금 그런 기분이었다. 거룻배에서 내린 이래 처음으로 그는 최근의 불행을 되짚어볼 수가 있었다. 새로운 비밀이라는 이 상황 덕택에 그의 개인적인 기억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었다. 일어서는 시체, 피투성이 목, 그 울부짖음이 여전히 머릿속에서 그를 괴롭혔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고하고 놀랍고 무시무시했지만 이제는 그게 좀 납득이 되었다. 이야기는 나름의 가치를 얻었다.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서 그 대가로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P59-60)

     

“매수할 수 없는 사람은 없소. 어떤 사람에게는 금을 쥐어주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여자를 붙여주면 그만이지. 안나 웨더렐은 그 둘 다에 해당했지.”           (P65)  

   

“좀 모자라는 사람들만이 우연이라는 걸 믿는 법이라네.”             (P97)  

   

과도한 애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하고 길들여지지 않는 짐승 같은 것이다. 제멋대로 고개를 쳐들고, 제 자신을 위해 씌워놓은 굴레를 벗으려고 법석을 떤다! 로더백에 대한 발퍼의 존경심은 —너무도 쉽게 맴돌아졌던 그 감정은— 이제 엄청난 혐오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겨우 정부 때문에 잃다니! 다른 남자의 부인 때문에!

혐오감이 유발하는 비판적인 시각이 때로는 생각을 명료하게 만들어준다. 토마스 발퍼는 친구가 술잔을 비우고 한 잔 더 달라고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곧 그의 비웃음은 불신으로, 그리고 불신은 통찰력으로 변했다. 로더백의 이야기에는 여전히 딱 맞아들어가지 않는 조각들이 있었다.           (P116-117)     


사람은 그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을 바탕으로 평가를 받지만,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는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나 하려고 했던 말, 하려고 했던 행동 같은 걸로 평가할 수도 있지 않나? 평가라는 것은 그 사람의 상상력의 범위와 한계, 그리고 계속해서 달라지는 의심과 자존심의 한도에 의해 바뀔 수도 있는데.              (P210-211)     

“자네라면 좀 모자라는 사람들만이 우연이라는 걸 믿는다고 하겠지. 하지만 나는 말이야. 계속되는 우연은 우연일 수 없다고 생각해. 이렇게까지 계속되다니!”           (P295)     


퀴 롱에게 아편은 자국의 문명에 대해 서구권이 가한 용서할 수 없는 야만적 행위를 보여주는 상징이자, 이윤과 탐욕이라는 서구권의 활력 없는 목표에 대해 중국 문화가 보여주는 경멸 그 자체였다. 아편은 중국의 경고였다. 그것은 서양의 확장 정책에 따르는 그림자이자 양을 보완하는 음으로서 음울한 보충제였다. 퀴 롱은 종종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 경구를 전에도 여러 번 말했고, 앞으로도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말할 거라고 익살스럽게 덧붙이곤 했다. 손에 파이프를 든 중국인이라면 퀴 롱의 눈에는 모두가 배신자이자 멍청이였다.            (P381)  

   

예를 들어 그는 커다란 나무에는 항상 죽은 가지가 있게 마련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고의 군인은 결코 호전적이지 않고, 좋은 땔감이라 해도 화덕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딱히 적당한 상황 설명도 없이 이런 비유가 줄줄이 이어지는 바람에 퀴 롱은 조금 당황했다. 자신의 재치를 보여주지 않은면 안 될 것 같아서 퀴 롱은 대저울이 항상 무거운 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라는 약간 빈정거리는 말로 맞받았다. 이는 그를 찾아온 손님이 일관성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비유였다.                 (P383)     

“여러분의 이야기가 일부 바뀌었거나 생략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그가 이번에는 좀더 신중하게 말하며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보았다.

“그저 다른 사람이 진실이라고 하는 것을 의문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뜻을 표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왜 그런가?”
 여러 명이 한꺼번에 같은 질문을 던졌다. 

무디는 잠깐 생각을 하느라 뜸을 들이다가 마침내 대답했다.

“법정에서 증인은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물론 그것은 그 자신의 진실이지요. 증인은 두 가지 조건에 동의를 합니다. 그의 증언이 모든 진실을 포함해야 하며,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중 두 번째 조건만이 진정한 한정 요소가 됩니다. 첫 번째는 굉장히 많은 부분이 자유재량에 달려 있죠. 모든 진실이라고 하면 정확히 말해서 문제와 관련된 모든 사실과 자신이 받은 인상까지를 의미하는 겁니다. 사건과 관계없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고의로 오도되기도 하죠. 신사 여러분, —(방 안에 여러 계층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집단명사는 조금 기묘했다)— 저는 모든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사건과 관련된 진실만이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관련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관점의 문제라는 것에 여러분도 동의하실 겁니다. 오늘밤 여러분 중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위증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씀하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관점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이야기 내용만이 전부라고 제가 믿지 않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P410-411)  

   

“열정이라는 건 가장할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P420)     


“나는 그저 우리가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의미로 말했을 뿐일세. 숙 용승.”

“왜 ‘도와야 한다’고 하신 겁니까?”

“중국인의 목숨이 이 나라에서는 싸구려이기 때문이지.”

“금광에서는 모든 사람의 목숨이 싸구려입니다.”             (P475)  

   

[2]

그사이에 행성들은 움직이는 별들의 캔버스 속에서 위치를 바꾸었다. 태양은 기울어진 황도의 원을 따라 12분의 1만큼 전진했고, 이 움직임에 따라 전체적으로 새로운 세상의 규칙이, 새로운 시각이 나타나게 되었다. 태양이 전갈자리에 있을 때 우리는 차분하고, 꼼꼼하고, 멀리서 고상하게 있었다. 인간을 내려다볼 때면 그 사람을 고칠 방법을 찾았다. 그의 실패에 비탄하고 그의 재능을 평가했다. 그 자신의 본성을 저버리라고 유혹하면, 혹은 아예 유혹 없이도 혼자서 천성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관련된 진실 외에 진실이란 없고, 하늘이 점지한 관련성이란 움직이는 톱니바퀴, 기울어진 축, 돌아가는 다이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매 분마다 달라지고, 절대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고, 절대로 멈추지 않는 시계장치 같은 조직적 행위이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좁은 기억에 갇혀 있지 않다. 이제는 우리의 확신이라는 환영을 통해서 바깥을 바라볼 것이다. 우리가 바꾸고 싶은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거기 사는 상상을 할 것이다.              (P10)     

“제 영혼이 소환된다면 저는 안도할 겁니다. 저라면 즉시 받아들이겠습니다. 사후세계는 굉장히 지루한 곳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무디가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우리는 평생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삽니다. 관심을 쏟을 그 주제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 모두 굉장히 지루해지지 않겠습니까? 정신을 돌릴 만한 것도 없고, 앞질러 생각할 만한 것도 없고, 고민할 것도 없지요. 시간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될 겁니다.”

“하지만 산 사람의 세상을 엿보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지 않겠나?”

개스코인이 말했다.

“그 반대로 저는 그게 굉장히 외로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과 현재의 모든 일을 알면서 무엇 하나 만질수도 없고, 무언가를 바꿀 수도 없는 상태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니까요.”

개스코인은 접시에 소금을 쳤다.

“뉴질랜드 원주민 전통에서 영혼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소.”    (P46)  

   

개스코인과 프랜시스 카버는 정식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 물론 카버의 평판은 개스코인도 익히 아는 터였다. 주로 안나 웨더렐이 한 달 전에 이야기한 뱃속의 아기가 살해당한 사건으로 편향되어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전직 선장을 피하는 것이 합당한 행동이겠지만, 개스코인은 반감을 남들 앞에서 표현하기보다는 은밀하게 속으로만 품는 편이었다. 그는 속으로 싫어하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에서 진정한 기쁨을 느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은밀한 샘과 같아서 자신이 내킬 때에 마음대로 그 샘을 흐리거나, 거기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였다.             (P113)     


더니든. 1862년 6월.

선생님.

제가 이렇게 새로이 편지를 드리게 된 것은 제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구혼 기간은 굉장히 짧았습니다만 그 내용은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였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저는 로렌스에서 협곡을 따라 금을 찾았고, ‘적당한 자산’은 모았습니다만 아직 노다지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웰스 부인이라고 불러야 할 이 여자는 굉장히 근사한 여성이고, 옆에 함께 다니면 굉장히 자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의 제수가 되겠군요. 이미 제수가 있으신지, 아니면 웰스 부인이 처음일지 궁금합니다. 이 편지 이래로 한동안 저에게서 소식을 듣지 못하실 겁니다. 저는 아내를 부양하기 위해서 던스탄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금광 열풍에 대해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최근에 저는 어느 정치인이 금을 도덕적 문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광산에서 수많은 타락한 행위를 목격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런 열풍 이전에도 타락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정치가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저 같은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잘 지내시길 빕니다.

크로스비 웰스                        (P166-167)    

 

“여자들은 주목받는 걸 좋아하죠.”

웰스 부인이 동전을 받아들고 문을 좀더 넓게 열었다. 매너링이 복도로 들어오자 부인이 덧붙였다. 

“하지만 매너링 씨는 형편없는 거짓말쟁이로군요. 정말로 시계 감는 것을 잊었다면, 일찍 오는 게 아니라 늦었어야죠.”

부인이 그의 뒤로 문을 닫고 체인을 걸었다.

“검은 옷이로군.”

매너링이 지적했다. 

“당연하죠. 저는 최근에 미망인이 되었으니까. 상중이 아니겠어요?”

“하나 가르쳐주지. 검은색은 영혼에게는 보이지 않는 색이오. 부인은 그걸 모르셨나보군. 이제는 아실 테지! 그래서 우리가 장례식 때 검은 옷을 입는 거요. 색깔이 있는 옷을 입으면 죽은 자의 관심을 끄니까. 검은 옷을 입으면 영혼이 우리를 구분하지 못하지.”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군요.”

웰스 부인이 대꾸했다.                (P183-184)    

 

“내가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매너링 씨가 자신의 운세를 말해주기를 바라서 그런 걸 물은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매너링 씨는 내 능력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내놓기를 바라며 묻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해줄 수 없는 거예요. 나는 점술사이지, 논리학자가 아니니까요.”

“다음 일요일의 일도 보지 못한다면 형편없는 점술사 아니겠소?”

“이 분야에서 사람들이 가장 처음 배우는 교훈은 미래의 어떤 것도 흔들림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거랍니다.”

웰스 부인이 말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사람의 운세는 말을 함으로써 항상 바뀌거든요.”         (P185)   

  

“아름다운 여자들의 문제는 말이야. 그들이 그걸 이미 알고 있고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거지. 나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여자가 좋아.”

클린치가 잠시 후에 말했다.

“멍청한 여자다.”

“멍청한 게 아니야. 겸허한 거지. 주제넘지 않고.”

“나는 그 단어를 모른다.”

클린치가 다시 한 손을 흔들었다.

“너무 많이 말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언제 조용히 해야 하는지 알고, 언제 말을 해야 하는지 아는 여자 말이야.”

“교활하다?”

타우웨어가 말했다. 클린치는 고개를 흔들었다.

“교활한 게 아니야. 교활한 것도 아니고, 멍청한 것도 아니지. 그냥..... 조심스럽고 조용한 거야. 순진하고.”

“그 여자가 누군가?”

타우웨어가 슬쩍 물었다.

“아니, 이건 진짜 여자가 아니야. 신경 쓰지 말게.”             (P204-205)     

“종교인이신가요, 무디 씨?”

“저는 철학자입니다. 종교에서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에는 굉장히 관심을 갖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디가 대답했다.

“그렇군요. 제 경우에는 그 반대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 철학에만 저는 관심을 갖습니다.”    

개스코인이 이 말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훌륭합니다. 아주 훌륭해요.”

그가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무디 역시 어느새 미망인의 예리함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여자가 주도권을 쥐게 놔둘 마음은 없었다.

“우리에겐 공통점이 별로 없는 것 같군요. 웰스 부인, 이렇게 공통점이 부족하다고 해서 우정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타당성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아요. 그것만큼은 확인을 했죠. 하지만 정반대의 질문을 하나 드릴까 해요. 살아있는 영혼은 어떠한가요? 죽은 사람을 ‘알 수’ 없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알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P211)   

  

물고기자리를 넘어가면? 자궁에서 피퉁성이의 생명이 태어난다. 우리는 따라갈 수 없다. 끝에서 처음으로 뛰어넘을 수 없으니까. 양자리는 집단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황소자리는 주관적인 태도를 단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쌍둥이자리의 규칙은 배타적이고 , 게자리는 원인을 찾고, 사자자리는 목적을 추구하며, 처녀자리는 계획을 바란다. 하지만 이것들은 제각기 진행되는 일들일 뿐이다. 12궁의 두번째 행동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천칭자리는 개념으로, 전갈자리는 재능으로, 궁수자리는 목소리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염소자리에서 우리는 기억을 얻고, 물병자리에서는 통찰력을 얻는다. 그리고 12궁에서 가장 오래되고 마지막을 점하는 물고기자리에 와서야 일종의 자아를 얻어 완전해진다, 하지만 자신과 자기인식이라는 두 가지 요람을 반영하는 물고기자리의 두 마리 물고기는 정신의 우로보로스이고 - 운명의 의지이자 운명 지어진 의지를 뜻한다- 자기 파멸의 궁은 공기도 없고 문도 없는, 안에서 모르타르를 발라 만든 죄수가 지은 감옥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곗바늘이 움직이면서 되돌릴 수 없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P251)     


“그는 부인의 참회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내 말을 기억해두십쇼. 셰퍼드 부인. 부인의 참회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원하는 겁니다. 조지 셰퍼드가 원하는 건 복수예요.”

셰퍼드 부인이 마침내 말했다.

“조지는 복수라는 개념을 혐오해요. 그걸 야만적이라고 부르는걸요. 복수란 정의가 아니라 질투로 인한 행동이라고 하고요.”

“그 말이 맞습니다만, 모든 사람이 뭔가를 질투하는 법이죠.”  

문가의 검은색 그림자가 흐릿해지며 사라지고, 카버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들렸다. 오두막 문이 닫히고 셰퍼드 부인이 볼트와 체인을 거는 덜그럭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가벼운 발소리가 다가오더니 침실 문이 열렸다. 셰퍼드 부인은 놀란 얼굴로 아 숙을, 그리고 그의 손에 있는 권총을 보았다.

“이 바보 같으니, 벌건 대낮에! 경찰이 다섯 걸음 옆에 있는데!”

아 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금 조지 부인은 딸꾹질을 하는 것 같았다. 부인의 목소리가 반쯤은 속삭였고, 반쯤은 비명처럼 약간 높아졌다. 

“제정신이에요? 내 집 문 앞에서 사람을 죽이면 나는, 나한테는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죠? 도대체 어떻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당직 경찰이 다섯 걸음 옆에 있는데..... 아무것도.... 게다가 조지는! 도대체가!”            (P341-342)     

“복수란 정의가 아니라 질투에서 나오는 행동이오. 법을 이기적으로 뒤트는 행동이지.”

셰퍼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복수란 실제로 이기적인 행동이지요. 하지만 그게 법과 딱히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데블린은 위스키를 마저 비웠고, 셰퍼드는 한참 있다가 술잔을 비웠다.

“형님 일에 관해서는 굉장히 유감입니다. 셰퍼드 소장님.”

데블린이 잔을 난간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뭐, 몇 년이나 된 일이요.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지.”

셰퍼드가 위스키 병을 닫으면서 대답했다.

“어떤 일은 절대로 지나가지 않아요.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는 법입니다. 잊을 수가 없지요.”

셰퍼드가 그를 보았다.

“경험에서 하는 말 같구려.”

데블린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제가 경험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관점을 통해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P383)     


“믿음이란 얻는 게 아닙니다. 그저 주는 거죠. 자유롭게 주는 거예요! 그런 질문에 도대체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스테인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질문을 간단하게 바꾸죠. 왜 웨더렐 양을 믿습니까?”

“제가 그녀를 믿는 이유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왜 사랑하게 됐습니까?”

“그녀를 믿으니까 사랑하게 된 거죠!”

“피고는 지금 순환논법으로 말하고 있어요.”

“네, 그럴 수밖에 없잖습니까! 진정한 감정은 언제나 순환되는 겁니다. 순환되거나, 아니면 모순되는 거죠. 왜냐하면 그 원인과 표현이 똑같은 것의 앞뒷면 같은 거니까요! 사랑이란 왜라는 이유들로 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유들이 모여서 사랑을 만들어낼 수도 없습니다. 제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진실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겁니다.”      (P452-453)  

   

스테인스가 움찔했다.

“그리디론 말인가요?”

“20파운드쯤인가?”

그는 영 감출 수가 없었다.

“25파운드였습니다.”

매너링이 탁자를 내리쳤다.

“바로 그거야. 자네는 현금 더미 위에 앉아 있으면서 4주 동안 1페니도 안 썼어. 왜지? 무슨 이유가 있나?”

스테인스는 즉시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마침내 말했다.

“전 항상 자신의 비밀을 감추는 것과 다른 사람의 비밀을 지키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비밀을 부르는 단어와 자신이 만들지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지키기로 한 비밀을 부르는 단어가 따로 있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사랑을 주는 것, 또는 주고 싶은 것은 감정과 사랑 받고 싶은 감정은 엄청나게 다르죠.”              (P619-620)   

  

안나가 매너링에게 진 빚은 지난 한 달 동안 두 배로 늘었다. 백 파운드라니! 그걸 갚는 데에는 10년이, 어쩌면 그 이상이 걸릴 것이다. 이자율에다가 아편값, 그리고 그녀의 가치가 당연히 나날이 떨어질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그녀의 숨결이 창문 가장자리를 하얗게 만들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그 부분을 건드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어떤 격언이 떠올랐다. 몰락한 여성에게는 미래가 없다. 출세한 남성에게는 과거가 없다.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던 걸까? 아니면 그녀가 혼자서 지어낸 걸까?                        (P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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