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글맨> 2009년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1922년부터 1933년까지 베를린에서 살았으며 1939년에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그곳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번역가, 전기 작가, 소설가, 극작가 등으로 다양한 글을 썼으며, 20여 권의 저서를 남겼고, 20세기 소설과 동성애 인권운동 두 분야에서 모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집필한 소설 『베를린이여 안녕』(1939)이 크게 성공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2차 대전 직전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가난한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이 소설은, 《타임》지가 선정한 ‘현대 100대 영문 소설' 중 한 편으로 꼽혔다.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1935)와 『베를린이여 안녕』은 이후 1945년에 『베를린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한 권으로 묶였고, 1960~70년대에 크게 히트한 뮤지컬과 영화 〈카바레〉, 영화 〈나는 카메라다〉로도 만들어졌다.
『싱글맨』은 1964년,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60세일 때 쓴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 1962년이고 조지의 나이가 58세인 점에서, 그리고 생각과 관점에 있어서 조지와 작가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셔우드 본인은 ‘싱글맨’이었던 적이 없었다. 이셔우드는 1953년에 서른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돈 바카디를 만나서 33년간 연인으로 지내왔으며, 이 관계는 1986년 81세의 나이로 이셔우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2008년 다큐멘터리 영화 〈크리스와 돈: 러브 스토리〉로 만들어졌다.
서재로 부르는 앞 방을 지나서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참에서 한번 꺾이는 좁고 가파른 계단. 팔꿈치가 양쪽 난간에 각각 닿을 정도로 좁다. 173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조지 같은 사람도 머리를 숙여야 한다. 빽빽하게 지은 작은 집이다. 이렇게 작은 집에서 조지는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낀다. 외로움을 느낄 만한 빈 공간이 없으니까.
그래도....
날마다, 해마다, 이 좁은 장소에서, 작은 스토브 앞에 팔꿈치를 맞대고 서서 요리하고, 좁은 계단에서 간신히 서로 스쳐 지나가고, 작은 욕실 거울 앞에서 함께 면도하고, 계속 떠들고, 웃고, 실수든 고의든, 육감적으로, 공격적으로, 어색하게 조급하게, 화나서든 사랑해서든 서로 몸을 부딪고 함께 사는 두 사람을 생각하라. 두 사람이 곳곳에 남길 수밖에 없는, 깊지만 보이지 않는 흔적들을 생각하라! 주방으로 가는 문은 너무 좁다. 손에 그릇을 든 두 사람이 서둘러 가면 이 문에서 부딪치기 십상이다. 거의 매일 아침 계단을 내려온 조지가 자기도 모르는 새 갑자기 참혹하게 꺾인 듯, 날카롭게 갈린 듯, 길이 산사태로 사라진 듯 느끼게 되는 곳도 여기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늘 처음인 양 아프고 생소하게 깨닫는 곳도 여기다. 짐은 죽었다. 죽었다. (p10-11)
짐과 함께하는 아침 참이 하루 중 가장 좋았다. 두 잔 혹은 세 잔째 커피를 마시는 그때에 대화가 가장 잘 이루어졌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이야기했다. 물론 죽음도 있었고, 생존도 있었다. 생존에 있어서는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이야기했다. 순식간에 죽임을 당하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아는 것, 두 가지의 상대적 장단점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제 조지는 죽음에 대한 짐의 관점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질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공론으로만 들릴 뿐이다. 망자가 살아 있는 사람을 다시 찾는다. 짐이 조지의 사는 모습을 보려고 돌아온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좋기만 할까? 애당초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일까? 기껏해야 다른 나라를 잠깐 방문하여 자기 경험의 한계에서 잠시 그곳을 들여다보는 관찰자와 다름없으리라. 좁은 주방의 작은 식탁에 외로이 앉아서 초라하게 느릿느릿 수란을 먹는 이 인물, 삶의 수인을 멀리서 유리를 통해 들여다보는 관찰자. (P13)
조지는 말한다. 그러나 스트렁크 부인, 부인이 읽는 책은 틀렸어요. 그 책에는 내가 짐을 진짜 아들, 진짜 동생, 진짜 남편, 진짜 아내의 대용품으로 생각한다고 적혀 있죠. 그러나 짐은 무엇의 대용품이 아닙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짐의 대용품도 없습니다. 어디에도요.
스트렁크 부인, 부인의 구마 의식은 실패했어요. 조지는 변기에 앉은 채 소굴 밖을 엿보면서, 스트렁크 부인이 진공청소기 먼지 봉투를 쓰레기통에 비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말한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여기 있어요. 바로 당신들 한가운데에. (p28)
모두가 짐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그 사람들은 짐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그 사람들의 말, 그 사람들의 생각, 그 사람들의 생활양식, 그 모두가 짐을 죽게 했다. 그러나 조지가 이런 생각에 깊이 빠져 있어도, 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짐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미국 인구의 사분의 삼을 증오할 변명거리일 뿐이다..... 조지의 턱이 움직인다. 이를 간다. 조지는 증오를 씹고 또 씹으며 되새김질한다. (p38-39)
정말 놀랍게도 아직 시나 소설이나 희곡을 쓰겠다는 학생이 꽤 많다! 이들은 수면 부족으로 멍한 채, 수업과 파트타임 일과 결혼 생활 사이사이 짧은 빈 시간에 글을 휘갈긴다. (...) 당위성에 예속된 한가운데 어디에서, 가능성이 미친 속삭임을 던진다. 살아라, 깨쳐라, 경험하라, 무엇을? 경이를! 지옥에서 보낸 한철, 밤 끝으로의 여행, 지혜의 일곱 기둥, 공(空)의 투명한 빛.... 이들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 물론이다. 최소한 한 명. 많아야 두세 명. 이 수천 명 중에서.
이제 그 학생들 속에서 조지는 현기증 같은 것을 느낀다. 아, 세상에. 이 학생들이 모두 어떻게 될까? 무슨 기회가 있을까? 지금 당장, 여기서, 내가 소리쳐서 쫓아내야 하지 않을까? 가망 없다고!
그러나 조지는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어이없게, 부적절하게, 거의 자신도 모르게, 조지 자신이 희망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잘못이 아니다. 정말이다. 다만, 조지는 거리에서 진짜 다이아몬드를 5달러에 파는 사람 같을 뿐이다. 바삐 지나가는 대다수는 절대로 감히 그 말이 사실일 수 있다고 믿으며 걸음을 멈출수 없을 테니,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p47-48)
이 경기는 잔인하다. 그러나 그 잔인함은 관능적이고, 그래서 조지는 뜨거운 흥분을 느낀다. 격렬한 반응을 바라는 감각이 조지에게 찾아든다. 조지는 떨리는 쾌감을 느낀다. 너무 잦은 일. 이제 안타깝게도 그 감각에 진저리가 난다. 조지는 이 젊은이들의 아름다움에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두 젊은이는 절대 모르겠지만, 이들 덕분에 조지는 지금 이 순간을 경이롭게 느낄 수 있고, 인생을 덜 미워하게 되고……. (P54)
그 사이에 조지는 가만히 서 있는다. 천천히, 신중하게, 마술사처럼,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서 강단에 놓는다. 그러는 동안 조지의 눈은 강의실 안 얼굴들을 훑는다. 입술은 희미하면서도 굵은 미소를 짓는다. 학생 몇몇이 미소로 답한다. 조지는 이 가식 없는 대면이 유난히 즐겁다. 그 미소, 그 밝고 젊은 눈들에서 힘을 느낀다. 조지에게는 지금이 하루 중 최고의 순간이다. 똑똑하고, 활기차고, 도전적이고, 조금 신비롭고, 무엇보다도, 낯선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p58)
자유주의자들은 말합니다. 박해하는 다수는 극도로 나쁘기 때문에, 그러므로 박해받는 소수는 흠 없이 순수해야 한다고. 이것이 얼마나 당찮은 말인지 모르겠나요? 악한이 더 나쁜 악한에게 박해받지 않도록 막는 것은요? 원형경기장에 있던 기독교 순교자들은 모두 성인이어야 하나요?
자,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소수집단에도 나름의 공격성이 있습니다. 소수집단은 다수에게 공격하라고 부추깁니다. 소수집단은 다수를 미워합니다. 이유가 없지 않죠. 소수집단은 다른 소수집단까지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소수집단은 모두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소수집단은 저마다 자기 집단이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자기 집단이 가장 심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죠. 소수집단은 모두를 미워할수록, 또 박해만 받을수록, 더 험악해집니다! 사랑받는 것이 사람을 험악하게 만들까요? 그럴 리 없죠! 그런데 왜 미워함으로써 그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은 자기 상황을 미워합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만든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미움의 세계에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만나게 된다 해도 사랑을 알아볼 수 없어요!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다! 사랑 뒤에 무엇이, 무슨 꿍꿍이나 계략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p77-78)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위기 상황에서, 각각의 전쟁은 조지에게 질병과 같은 상처를 남겼다. 가장 끔찍한 것은 절멸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훨씬 더 끔찍한 두려움이 생겼다. 살아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살아남아서 파편만 남은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그 세상에서는 스트렁크 씨가 그랜트와 그의 아내와 세 아이들에게 총을 겨누어도 자연스럽겠지. 그랜트는 음식을 충분히 비축하지 않아서 가족이 굶주리고, 그래서 위험해질 수도 있으므로. 그리고 동정을 품을 때가 전혀 아니므로. (p96)
조지는, 바로 지금, 인간들을 전혀 조금도 업신여기지 않는다. 인간들은 무례하고 돈만 바라고 아둔하고 저급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지는 자랑스럽다. 기쁘다. 점잖지 못할 만큼 신난다. 저들의 대열에 공개적으로 지지를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저 경이로운 소수집단, 살아 있는 사람들의 대열. 저들은, 보도에 있는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운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조지는 적어도 잠시나마 알고 있다. 조지가 싸늘한 죽음이 있는 곳에서 방금 돌아왔기 때문이다. 도리스가 곧 맞이할 죽음.
나는 살아 있어. 조지는 혼잣말을 한다. 살아 있어! 생명력이 뜨겁게 용솟음친다. 즐거움과 식욕도. 비록 이 시체 같은 늙은 고물 몸이라도, 아직 피가 뜨겁고 정액이 생생하고 골수가 충분하고 살이 온전한 육신에 들어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모퉁이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젊은이들은 틀림없이 조지를 늙어서 몸을 떠는 노인으로 본다. 기껏해야 뜯어먹을 먹이로 본다. 그래도 조지는 그 젊은 팔과 어깨와 샅의 힘과 먼 친족 관계라고 여전히 주장한다. 돈 몇 푼이면, 한 명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가서, 가죽점퍼와 딱 붙는 리바이스 바지, 셔츠, 카우보이 부츠를 벗기고, 벌거벗은 부루퉁한 표정의 젊은 운동선수와 쾌락의 레슬링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조지는 돈 때문에 내키지 않게 몸을 내놓는 젊은 육체를 사고 싶지 않다. 조지는 자기 몸에 기뻐하고 싶다. 살아남은 자의 힘들게 승리를 거둔 늙은 몸. 짐보다 오래 산 몸, 도리스보다 오래 살 몸.
조지는 체육관에 들르기로 마음먹는다. 오늘은 체육관에 가는 요일도 아니지만. (p115-117)
조지는 집에서 편하게, 지금 산 재료로 저녁을 만들고, 책꽂이 옆에 있는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서서히 잠드는 밤을 상상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집에서 만족스럽게 보내는 저녁으로는 더할 수 없이 그럴싸하고 멋진 장면 같다. 그러나 금세 조지는 그 장면을 무의미하게 만들 허점을 발견한다. 그 그림에서 빠진 것은 짐이다. 소파 맞은편에 반대로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짐. 각자 책에 몰두하고 있지만, 서로 상대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는 두 사람. (p128)
샬럿은 조지와 포옹을 하는 사이, 입에 입을 맞추고, 갑자기 혀를 넣는다. 샬럿은 전에도 자주 이런 행동을 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일만 번의 시도 끝에 한 번 있는, 술을 핑계로 삼은 유혹 중 하나다. 어떤 관계를 제 궤도에서 이탈시켜 다른 궤도로 홱 옮기려는 시도. 여자들은 이런 시도를 영원히 계속할까? 물론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이런 시도를 절대 멈추지 않는 덕분에 오히려 좋은 패배자가 되는 법을 익힐 수 있다. 조지는 적당히 시간을 두고 가만히 있다가 몸을 뺀다. 샬럿이 다시 조지에게 매달리지는 않는다. 이제 샬럿은 더 이상 막지 않고 조지를 보낸다. 조지가 샬럿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샬럿은 마침내 이불 속에 들어가는 어린아이 같다. “푹 자.” (P163-164)
조지는 이 모두를 케니에게 설명하고 싶다. 그러나 너무 복잡하며, 조지는 케니가 자신을 이해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조지는 케니가 이해하기를 원하며, 이 대화가 결국 무엇에 관한 것인지 케니가 안다고 믿을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정말이지, 이 순간, 케니가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조지는 두 사람을 둘러싸고 빛나는 대화의 전기장을 거의 느낄 수 있다. 확실히 조지는 빛나는 기분이다. 케니로 말하자면, 무척 아름답다. 라포르로 빛나는, 조지가 케니를 묘사하기 위해 찾아낸 말이다. 케니에게서 빛나는 것은 유행하는 매력 그 무엇도, 단순한 지성도 아니다. 두 사람이 앉아 있다,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며, 아, 그 훨씬 이상으로, 상호 이해로 정말 활짝 웃으며. (p175-176)
“그렇지만, 이건 선생님 잘못이 아니지만, 저희는 결국 늘 과거에 빠져서 꼼짝 못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도, 티토노스가 있었죠, 있죠. 과거를 헐뜯으려는 것은 아니에요. 뭐, 제가 나이를 먹으면 과거가 훨씬 더 중요해질지도 모르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 또래 애들한테는 과거가 아무 상관 없다는 거예요. 저희가 과거를 중요시한다고 말해도, 그건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죠. 제가 보기에 그 이유는, 우리한테 아직 과거가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한테는 잊고 싶은 일만 있죠. 고등학교 때의 일이나 한심하게 군 일이나....”
“아, 좋아! 나도 이해할 수 있어. 자네들은 아직 과거가 필요 없지. 자네들한테는 현재가 있으니까.”
“아, 현재는 정말 짜증 나요! 저는 현재를 경멸해요. 지금 현실의 모습 말이에요. 아, 오늘 밤은 예외죠, 당연히.”
(...)
“좋아, 과거는 쓸모없다! 현재는 나쁘다! 인정해! 그래도 자네가 부인할 수 없는 게 있어. 자네는 미래에 붙잡혀 있잖아. 미래는 깔볼 수 없지.”
“그런 것 같아요. 세상에 남은 것. 많지 않겠죠. 미사일들을 생각하면....”
“죽음.”
“죽음요?”
“응, 제대로 들었군.”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설명해 주세요.”
“죽음이라고 말했어. 죽음을 많이 생각하냐고.”
“아, 아뇨. 거의 안 하죠. 왜요?”
“미래. 미래에는 죽음이 있으니까.”
“아, 그렇죠. 그래요. 선생님은 거기 요점을 두실 수도 있겠네요.” 케니가 씩 웃는다. “그거 아세요? 우리 이전 세대가 우리보다 죽음을 더 많이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거. 제 말은, 사람들이 집에서 애국자인 척할 때, 한심한 전쟁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할 생각을 하던 애들은 분명히 엄청 화났을 거라는 뜻이에요. 그렇지만 이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누구나 동감할 겁니다.”
“그래도 나이 든 사람한테 화날 수 있잖아. 끝장나버리기 전에 그 사람들한테 충분히 시간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야.”
“네, 맞아요. 화날 수 있어요. 안 되나요? 제가 화낼지도 모르죠. 선생님한테 화낼지도 모르죠.” (p176-179)
“저기, 있죠. 여기 왔을 때, 오늘 선생님을 우연히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선생님께 여쭐 게 있어요. 방금 그게 생각났는데...” 케니는 길게 한 모금에 남은 술을 마저 마신다. “여쭙고 싶었던 건 경험에 관해서예요. 흔히 그러잖아요. 나이를 먹으면 경험이 쌓인다고. 그게 아주 대단한 거라고 하잖아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경험이 쓸모 있나요?”
“어떤 경험?”
“뭐, 다녀온 곳, 만난 사람. 이미 겪은 상황. 그래서 다시 그 상황에 마주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아는 것. 그런 것들요. 나이가 들었을 때 현명하게 만들어준다고 하는 그런 것들요.”
“글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경우는 내가 이야기할 수도 없고, 내 경우에는, 무엇에도 전혀 현명해지지 않았어. 내가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건 사실이지. 그런 일을 다시 마주하면, 혼잣말을 하겠지. ‘또 나타났군.’ 그래도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아. 내 견해로는, 나 개인적으로는, 나는 계속 점점 더 철없고 또 철없고 또 철없어져. 그게 사실이야.”
“설마요. 정말이세요. 선생님? 젊었을 때보다 철없다고요?”
“훨씬 훨씬 더 철없지.”
“세상에나..... 그럼, 경험은 아무 쓸모도 없나요? 경험을 쌓은 뒤나 아무 일도 겪지 않았을 때나 마찬가지라는 말씀이세요?”
“아니, 그런 말은 아니야. 내 말은, 경험을 활용할 수 없다는 뜻일 뿐이야. 활용하려 하지만 않으면, 다시말해서, 어떤 일에 마주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게 경이로울 수 있지...” (p182-183)
전등들은 벌써 멀리, 저 멀리, 뒤로 보인다. 전등불이 밝지만 내뿜는 빛줄기는 전혀 없다. 높은 안개층에서 빛나고 있나 보다. 앞의 파도는 간신히 보인다. 그 암흑은 엄청나게 차갑고 축축하다. 격한 탄성 같은 울부짖음과 함께 옷을 황급히 벗어던진다. 마지막으로 한 방울 남은 조지의 조심성이 불빛과 순찰차와 경관이 올 가능성을 의식하지만, 조지는 망설이지 않는다. 더 이상 망설일 수 없다. 술집부터 내달린 이 질주의 끝은 오직 바닷물이어야 한다. (...)
조지에게는, 이 파도가 너무 높다. 정말 엄청나고, 높이 치솟는, 어둠에서 스스로를 펼치는 어둠, 신비롭게 굉장하게 반짝이고, 그러다가 둥글게 굽어서 천둥소리로 철썩 때리는, 인광을 반짝이는 포말. 조지의 온몸에서 인광이 반짝인다. 조지가 보석을 두른 자신을 발견하고 즐거이 웃는다. 웃고, 헐떡이고, 컥컥대고. 겁먹기에는 너무 취했다. 삼킨 짠물이 위스키만큼 취하게 하는 것 같다. 이따금 조지는 굉장한 케니의 모습을 눈결에 언뜻 본다. 무너지는 포말 절벽에 위에서 뛰어드는 케니. 그러다가 조지는 자신만의 정화 의식에 심취하여, 한 번 더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서, 양팔을 쫙 벌리고, 파도의 아름다운 세례를 받는다.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씻어낸다. 생각, 말, 기분, 욕망, 모든 자아들, 온 생애. 거듭거듭 조지는 다시 시작한다. 그때마다 점점 더 깨끗해지고, 자유로워지고, 비워진다. 조지는 혼자서도 완벽하게 행복하다. 케니와 자신, 단둘만 이 환경을 공유하고 있음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파도와 밤과 소리가 두 사람의 유희만을 위해서 존재한다. (p185-186)
케니는 말을 멈추고 조지를 바라보며, 최고로 놀리는, 꿰뚫어 보는 웃음을 짓는다. “선생님, 제가 무슨 생각하게요?”
“무슨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제가 로이스와 결혼할지 말지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죠? 저한테 다른 걸 물어보고 싶으시죠? 그런데 제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망설이시죠?”
“내가 자네에게 뭘 묻고 싶을까?”
분명히 유혹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 서로. 케니의 담요가, 대화와 맥주로 편안해진 영향으로, 흘러내려서 한쪽 팔과 어깨를 드러내며, 어느 철학자의 젊은, 애제자임이 틀림없는 제자가 입은 그리스 고전 의상 클라미스가 된다. 이 순간, 케니는 몹시, 위험하게, 아름답다. (p194-195)
조지가 영국으로 돌아갈까?
아니, 여기서 계속 살리라.
짐 때문에?
아니, 짐은 이제 과거다. 조지에게는 아무 소용 없다.
그렇지만 조지는 짐을 그토록 생생히 기억하잖아.
조지 스스로가 기억하려 애쓰고 있을 뿐이다. 잊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짐은 내 삶이야. 그러나 조지가 계속 살아가고자 한다면, 조지는 잊어야 한다. 짐은 죽었다.
그렇다면 조지는 왜 여기서 계속 살까?
여기가 짐을 만난 곳이니까. 여기서 새로운 짐을 찾게 되리라고 믿고 있으니까. 조지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조지는 이미 찾기 시작했다.
조지가 자신은 새로운 짐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찾아야 한다는 것만 알 뿐이다. 꼭 찾아야 하니까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조지는 점점 늙는다. 조만간 너무 늦은 때가 찾아오지 않을까?
조지에게 그런 말을 절대 쓰지 마라. 조지는 듣지도 않을 테니. 들으려 하지도 않을 테니. 빌어먹을 미래. 미래는 케니를 비롯한 젊은 애들이나 가지라고 해. 샬럿은 과거나 가지라고 해. 조지는 현재만 끌어안는다. 현재에 조지는 새로운 짐을 찾아야 한다. 현재에 조지는 사랑을 해야 한다. 현재에 조지는 살아야 한다……. (P209-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