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작가의 의도는 개뿔
자신의 사진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사진가는 자신의 사진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게 된다. 내 사진의 의미는 무엇이고, 내 사진은 어떻게 촬영되었으며, 그래서 내 사진의 의도는 이러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사진가의 설명에 수긍을 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작가의 의도’라는 한 마디에 말을 멈추게 된다. 작가의 의도라는 말은 ‘아님말고’식의 한 마디로 무책임한 말이기도 하다.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책임을 지고,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책임을 진다. 자신의 작품에 책임감을 가진다는 말은 작가의 혼, 사상, 세계관, 주체성 등을 작가는 작품에 쏟아 붓기 때문이다.(물론 작품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사진가들이 쉽게 범하는 것이 있다. 독자가 묻는다. ‘작가님의 사진은 왜 흔들렸는지요?(촛점이 맞지 않습니다)’, ‘사진이 정상노출보다 많이 어두운데 일부로 노출을 어둡게 처리한 것인지요?(노출부족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등을 한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의 의도입니다’ 작가의 의도는 개뿔. 뭐든지 알지 못하는 말로 씨부렁거리거나, 온갖 미사여구를 가져다 말하거나, 현학적인 말로 위로를 한다. 예술이란 원래 알 듯 모를 듯 어려운 것이라고. 여기에 편승한 예술작가들은 자신이 대단한 예술작품을 만들었노라고 말한다.
머리엔 빵모자에 파이프 담배를 물어야 작가인가요.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그림위에 글씨를 써 넣었다. 그는 현실이 보이는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림을 통해서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작가라는 허상에 빠져 현실을 속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작가이란 말인가. 작가는 일관성이 있게 끊임없이 작품에 자신의 고민을 쏟아내야 한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저자의 죽음』에서 “작가의 죽음의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독자의 탄생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독자가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독자들이 모두 작가인 셈이다.(오타쿠인 독자는 전문가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필름 카메라 시절의 사진은 그나마 전문성이라도 있었다. 촬영하고 그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이것도 이제는 전문적이기커녕 누구나 쉽게 접하고 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는 ‘디지털 사진학’ 강좌를 온라인으로 무료로 공개했다. 4년 동안 대학에서 기술을 가리키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몇일이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해야 유명해 질 수 있다” 영국작가 조지기싱의 1891년에 출간한 소설 ‘신 삼류 문인의 거리’에서 나온 말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나, 예술작가라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는 돈과 인기, 명예를 좇는다. 작가의 작품은 그의 유명도에 의해서 작품의 가격과 가치가 결정된다. 유명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대체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것인지. 진정한 의미의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를 생각해본다. 작가라는 말은 부담스러운 말이다. 유섭 카쉬(Yousuf Karsh) 사진가는 유명한 인물들의 포츄레이트로 유명하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함께 유명해진다. 유명한 사람을 찍어야만이 잘 찍는 사진가는 아닐텐데, 조훈연 9단이 얘기했다. “처음부터 바둑을 잘 두려고 했던 건 아니다. 한돌 한돌 놓다보니 어느새 지금의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