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령화 가족> 2013년
얼마 전, 나는 드디어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낭떠러지의 끝에 도달했다. 탈출구도 없고 구원의 빛도 보이지 않는 회생불능의 완전한 파산! 그것이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이었다. 신용불량자가 된 지는 이미 오래였고 알량한 월세보증금은 밀린 방세를 까느라 한 푼도 남아 있질 않았다.
주변 사람 모두에게 돈을 꾸었고 아무에게도 빚을 갚지 못했다. 낯도 없고 부조할 돈도 없어 그들의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어쩌다 그런 자리에 가더라도 종국엔 술에 취해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벌이기 일쑤였다. 선배들은 나를 부끄러워했고 후배들은 나를 경멸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앞서 나를 떠난 건 바로 아내였다. 아내는..... (미안하지만 아내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누구보다도 먼저 실패의 냄새를 맡았고 그 즉시 보따리를 쌌다는 사실만 밝히겠다) 모든 인간관계가 파탄나고 급기야 아무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P11)
내가 연출한 영화는 단 하나의 미덕도 없는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호평인지 혹평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과 같은 평도 있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지구상의 모든 감독들이 가지고 있는 목표와는 분명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게 뭔지 아묻 모른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물론, 흥행에 실패한 이후 십여 년간 아무 일도 안 하고 방 안에 누워 전화만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안면이 있는 프로듀서들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하고, 후배 시나리오 작가를 꾀어 여관에 들어가 함께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그렇게 쥐어짜낸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겐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제작자의 믿음을 배신하고 스태프의 노고와 배우들의 열정을 배신하고 나아가 관객들의 꿈을 배신한 나는 더 이상 영화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변절자였다. 결국 준비했던 시나리오들은 각기 장편영화 한 편 분량의 안타까운 사연만을 남긴 채 모두 사장되고 말았다. (P17)
휴, 여전히 가관이로군. 냄비에 코를 박고 닭죽을 퍼먹는 그의 모습을 보다 나는 벌써 마음이 심란해졌다.
바로 이 거구의 사내가 이 집의 장남이자, 나의 형이라는 인간이다. 이름 오한모. 쉰두 살에 백이십 킬로그램. 폭력과 강간. 사기와 절도로 얼룩진 전과 5범의 변태성욕자. 정신불구의 거대한 괴물..... 한마디로 인간망종이다.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며 파란만장한 청춘을 보냈던 그는 몇 년 전, 아는 후배와 함께 라텍스 사업을 해보겠다며 캄보디아로 건너갔다가 이 년 만에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슬그머니 엄마 집으로 기어들어와 삼 년째 눌어붙어 있는 중이다.
그는 이제 닭죽을 다 먹고 냄비 바닥에 눌어붙어 있는 것을 숟가락으로 긁어먹기 시작했다. 못 보는 새에 그는 살이 더 찌고 머리는 반백이 되어 어느덧 초라한 중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저 인간도 이젠 폭삭 늙었구먼. 내가 인기척을 내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비로소 그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넌 여기 어쩐 일이냐?
그는 여전히 바닥에 눌어붙은 닭죽을 긁어먹으며 물었다(닭죽은 원래 바닥에 눌어붙은 게 더 맛있다). (P19)
이때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엄마는 난장판이 된 거실을 보고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를 보자 오함마는 어린애가 일러바치듯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인모새끼도 여기 들어와서 같이 살겠대.
엄마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벌써 알고 있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방 하나 남는데 뭐가 걱정이니? 한 명 더 들어와 산다고 이 집이 금방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이미 내가 처한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던 걸까? 오함마는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엄마는 내가 들어와 사는 것을 이미 기정사실화한 듯 문간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옷은 내가 치울 테니까 다른 짐들이나 일단 베란다에 내놔라. 정리는 나중에 하고. (P23)
--너는...... 누구니?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여자애가 도전적인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여기 우리 할머니 집인데요.
그 말은 여긴 우리 할머니 집인데 당신이야말로 왜 여기 자빠져 있냐는 뜻인 것 같았다. 할머니라니? 그럼 오함마가 그동안 어딘가 숨겨놓았던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내가 알기론 그가 여자와 두 번 동거를 한 적은 있지만 정식 결혼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이가 있다는 말도 금시초문이었다.
--할머니라면..... 그럼, 너희 아빠 이름이 오한모니?
--아니요. 아빠 이름은 장해성인데요.
여자애는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다시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코미디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븅신, 뭐야. 재수없게.....
장해성? 장해성은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순간, 장해성이 누군지 떠올랐다. 장해성은 바로 매제의 이름이었다. 그럼 저 싸가지 없는 여자애의 엄마가 내 여동생 미연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외삼촌? 그러고 보니 미연의 딸을 본 게 얼마 만인가. 대강 사오 년 전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얼굴을 몰라보는 게 당연할 법도 했다. 아이들은 빨리 자라니까. 그나저나....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대는 조카를 보면서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P30-31)
그날 저녁, 사태의 전말이 밝혀졌다. 미연이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것은 저녁 아홉시경이었다. 그녀는 몇 년 만에 만난 나를 보고 알은체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곧바로 남편 욕을 퍼붓기 시작했는데 장해성, ‘그 개 같은 인간’이 툭하면 ‘술을 처먹고’ 들어와서 멀쩡한 사람을 ‘개 패듯’ 패는데 그동안 참다참다 마침내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오늘 민경을(바로 그 싸가지의 이름이다) 데리고 집을 나와버렸다는 것이다.
미연은 선글라스를 벗어 퍼렇게 멍이 든 눈자위를 보여주며 자신은 이참에 이혼을 결심한바, 다시는 그 개 같은 인간에게 돌아갈 마음이 없으며 또한, 당장 집을 얻어 나가려 해도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로 자신은 장사를 그만둘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학교에 다니는 민경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관계로 이런저런 궁리 끝에 어쩔 수 없이 엄마 집에 들어와 함께 살아야겠다는 거였다. (P34)
세 남매가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해도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엄마는 부지런히 밥을 해댔고 오함마는 여전히 방귀를 붕붕 뀌어대면서 하루 종일 걸근대며 뻔질나게 주방을 드나들었다. 그는 아프리카의 마냥개미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먹어치워 그가 지나가는 곳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또한 밤마다 옆에서 탱크가 지나가는 것처럼 큰 소리로 코를 고는 바람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하지만 둘이 한방을 쓰는 게 갑갑했는지 곧 제 스스로 거실 소파로 거처를 옮겨 그나마 탱크 소리는 모면할 수 있었다. 미연과 민경 모녀는 각각 카페와 학원에서 밤늦게 돌아와 서로 부딪칠 일이 별로 없었다. 비록 오함마가 바지에 손을 넣고 불알을 조몰락거리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이따금씩 방에서 나오던 민경으로 하여금 질색을 하게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엉겁결에 재구성된 우리 가족의 평균 나이는 사십구 세였다. (P42)
헤밍웨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름아닌 그의 손이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위태로운 눈빛과 만지면 손이 찔릴 것처럼 억세 보이는 그 유명한 턱수염도 분명 인상적이지만, 엽총을 든 채 방금 전 자신이 죽인 레오파드의 털을 쓰다듬고 있는 그의 두툼한 손은 항시 그의 얼굴에 앞서 떠오르는 것이다. 물오리와 영양, 담비와 사자 등 수많은 짐승들을 사냥했고, 나무책상에 앉아 노트에 뭔가를 끊임없이 적어넣었으며, 쿠바에서 카스트로와 악수를 나누었던 바로 그 손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머리를 향해 엽총의 방아쇠를 당겼던 그 손.....
내가 그의 무성한 털로 뒤덮인 손을 먼저 떠올리는 이유는 아마도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 때문일 것이다. 평생 작살을 던지고 낚시바늘에 찔리고 밧줄을 감느라 상처입어 자주 피를 흘리고 차가운 바람과 짜디짠 바닷물에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그의 손이 나는 왠지 작가 자신의 손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P62-63)
그녀는 딸아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따라서 공부를 해라, 마라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서 뭘 하든 남들이 학교 가는 시간에 학교 가고 학원 가는 시간에 학원을 가기만 하면 오케이였던 것이다. 그런 미연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바로 민경의 학교 교사나 학원 선생들로부터 전화를 받는 거였다. 그런 경우는 대개 민경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인데 수업을 빼먹었다든가, 선생에게 대들었다든가 하는 문제로 전화를 받는 걸 미연은 끔찍하게 싫어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해결방법은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용돈을 끊는 거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민경에게는 그 어떤 잔소리나 매질보다도 가혹한 처벌이었기 때문이었다. 비행의 경중에 따라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 용돈을 끊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민경은 울며불며 히스테리를 부리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광을 하고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용돈과 학원비로 맺어진 이 기묘한 모녀관계는 얼핏 생각하면 골치 아픈 양육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무지한 부모의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점에선 서로 물고 빨고 핥느라 개인의 인생을 모두 소진시켜버리는 여느 한국식 가족관계보다 더 간편하고 합리적인 면도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사와 뭔가 석연치 않은 직업, 복잡한 남자관계 등 늘 무언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두 모녀가 그런 식으로 서로 공존하는 방법을 찾은 건 어쨌든 다행이라면 다행한 일이었다. (P77-78)
미연이 처음 남자를 데려왔을 때도 상황은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제발이지 그가 미연을 데려가 이 가난한 집구석에서 해방시켜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만을 기원했다. 그것이 무능한 오라비인 내가 매제에게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하긴 세상 어느 오빤들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민경을 낳고 오순도순 몇 년 재밌게 사는가 싶더니 남자의 사업이 잘 안 풀려 미연이 ‘아는 언니’와 동업으로 카페를 차렸다는 얘기가 들리고 둘이 싸움이 잦다는 등, 미연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등 이런저런 불안한 소문이 나돌더니 결국 파탄이 나고 말았다.
이어 두 번재 남편인 장서방을 거쳐 ‘생활력’이 세 번째 남자였으니 대강 십 년에 한 번 꼴로 남자를 바꿔 데려온 셈이었다. 그러니 나로서도 딱히 할 말이 없어(신용불량자인 내가 ‘생활력’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집 안은 더위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썰렁했다. (P99)
나는 일어나 기척을 할까 했지만 왠지 미연의 비밀스런 순간을 엿본 것 같아 그냥 자는 체하고 있었다. 그녀는 삼십 분도 넘게 목석처럼 앉아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미연은 도대체 자신의 얼굴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이미 지나가버린 젊음의 흔적? 아니면 유난히 신산스러웠던 인생의 뒤안길? 또는 안개처럼 불투명하고 생각할수록 두렵기만 한 미래의 자화상?
나는 여자의 그런 뒷모습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그것은 미연이 아니라 중년 무렵의 엄마였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었을까? 엄마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 말고 지금의 미연처럼 오랫동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가 입고 있던 낡은 슬립은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남아 있어 그저 가난하고 각박하게 살아온 세월의 두께만이 무겁게 얹혀 있을 뿐, 여자의 속옷이 주는 특유의 성적 긴장이나 평온한 휴식 같은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그때 나는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을 훔쳐보며 희미하게나마 엄마의 부서진 희망 같은 걸 감지했다. 그런데 훌쩍 시간을 건너뛰어 또다시 여동생의 뒷모습에서 여자의 무겁고 숙연한 운명을 들여다보고 있다니, 여자의 인생은 그렇게 대를 이어 반복되는 것인가? (P103)
--저년이 근데 주둥이를.......! 넌 그만 방으로 들어가!
미연이 뭐라고 구시렁대며 방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이미 오십이 넘은 나이에 한배로 낳았든 두 배로 낳았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마는 가족 안에 나만 모르는 비밀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나는 갑자기 식구들 모두가 낯설게 느껴졌다. 평생 오함마를 친형으로 알고 지냈는데 엄마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면 오함마는 아버지가 밖에서 시앗을 봐 들여온 자식이란 말인가? 또한 미연의 말이 사실이라면 엄마와 오함마는 실제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란 얘긴데 아버지도 죽은 마당에 어떻게 엄마는 다 늙은 오함마를 제 자식 돌보듯 돌볼 수 있었을까? 미연이 가족의 어두운 비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일까? 그리고 오함마는? 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휴, 이제 와 출생의 비밀이라니, 이 무슨 삼류 막장드라마란 말인가!
나는 저수지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방죽에 앉아 담배를 한 갑 가까이 축내고 날이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P114)
미국적인 삶에 2막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헤밍웨이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피츠제럴드의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영화감독의 삶에 2막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바꾸고 싶다. 감독들에겐 두 가지 종류의 비애가 있다. 하나는 제 아무리 충무로생활을 오래 했어도 데뷔를 하기 전엔 그저 익명의 감독 지망생일 뿐, 유령처럼 아무런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불행한 건 일단 영화를 한 편 찍고 나면 그때부턴 평생 영화감독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한번 감독은 영원한 감독’인 셈이다. 하지만 감독 가운데 데뷔작이 곧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확률이 칠십 퍼센트이며 세 편 이상 영화를 만들 확률은 십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감독들은 감독은 감독이되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유령감독으로 충무로의 뒷골목을 배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끝내 공연되지 않을 2막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P118-119)
엄마를 포함해 나나 미연이나 오함마나 전과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두 실패의 낙인을 간직하고 있었고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에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우리 식구들에겐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형제간의 따뜻한 우애와 건강하고 깨끗한 아이들. 서로에 대한 걱정과 배려, 유순하고 성실한 가족구성원들, 사랑이 넘치는 넉넉한 저녁식사(어머니, 이 뚜껑에 밥 좀 비벼서 드셔보세요. 짜지도 않고 알이 꽉 찼네요. 그래, 참 맛있구나. 애비도 뚜껑 하나 줘라)......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그저 위선에 가득 찬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실은 그것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판타지일까?
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였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두리만을 떠돌며 낭떠러지를 걷듯 살아온 천애의 삶. 아무리 똥줄 타게 뛰어다녀봤자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무능과 무지, 숱한 수모와 상처, 불명예와 오명의 역사..... 도대체 내가 어떻게 가족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P140-141)
아버지는 옷이나 구두에 신경쓰는 남자가 아니었다. 평생 제대로 된 옷 한 벌 산 적이 없었다. 엄마가 친척집에서 얻어다주는 옷들과 동네시장에서, 그것도 깎고 또 깎아서 산 나일론 재질의 싸구려 옷들로 평생을 살았다. 그런 아버지가 딱 한 번 사치를 부린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부츠였다. 아버지가 날품을 팔다 어찌어찌 중고 오토바이를 한 대 구해 방산시장에서 배달 일을 할 때였다.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근처 암시장에서 물 건너온 부츠를 한 켤레 사 신고 들어온 거였다. 카우보이들이 신었을 법한 롱부츠였다. 아버지는 비싼 말표 구두약을 물 쓰듯 아낌없이 써가며 부츠에 광을 냈다. 질 좋은 송아지가죽은 곧 파리가 미끄러질 만큼 반짝거렸다. 아버지는 배달 일을 하는 내내 그 부츠를 신고 다녔다. 그 때문에 한여름엔 기절할 정도로 발냄새가 지독해 식구들 모두 불평을 해댔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허영이었다. 그는 그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말 대신 오토바이를 탔다. 그리고 소를 모는 대신 혼수이불과 온갖 종류의 원단을 실어날랐다.
그런데 엄마는 왜 아버지의 부츠를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을까? 나중에 나에게 신발이 필요하다는 걸 미리 알았던 걸까? 아니면 평생 초라하게 살았던 아버지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이어서였을까? (P201-202)
술집이 문을 연지 한 달쯤 되어가던 어느 날. 오함마는 약장수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에 들렀다. 동생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그들은 오함마를 우스개 삼아 농담을 주고받았다. 돼지처럼 살찐 오함마의 몸집과 우스꽝스런 옷차림, 과장된 말투 모두가 놀림감이 되었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 오함마를 흉내내자 다 같이 킬킬거리며 즐거워했다. 그들 가운데 약장수도 있었다. 문 뒤에서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 오함마의 마음속에선 서서히 분노가 자라났다. 지금은 비록 핫바지가 되어 꼭두각시로 전락했지만 그도 한때는 잘나가던 주먹이었다. 나는 아직 죽은 시체가 아니다. 그날 오함마는 차마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에 비수 같은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
오함마는 언젠가 그들에게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음속 깊숙한 곳에 절대 품어서는 안되는 위험한 생각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내 비록 지금은 차가운 관 속에 시체처럼 누워 있지만, 동생들아! 너희들은 곧 비 오는 달밤에 시체가 일어나 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P222-223)
엄마가 말한 인간적인 정리란 게 무엇이었을까? 밖에서 낳아 데리고 온 아이를 제 자식처럼 받아준 게 정리였을까, 아니면 배 다른 자식을 제 자식처럼 거둬먹인 게 정리였을까? 하긴 두 사람에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울 때조차도 아버지는 엄마의 과거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또한 미연을 다른 형제들과 층하를 둔 적도 없었고 그 점은 엄마도 마찬가지여서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해서 오함마를 우리와 차별한 적이 없었다. 혹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남편이 죽은 지 십 년이 지나도 굴종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부장이데올로기의 희생자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부부간의 정리마저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 집은 이미 콩가루가 되어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 엄마가 미연 아버지네 집으로 들어가서 살 거예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 양반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기로 했다. 세간도 그렇고 그 양반 사정도 그렇고 해서....
오함마와 미연이 나가고 나니 다시 엄마의 남자가 들어온다고?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무엇보다 네가 좀 불편하겠지만 어떡하겠니, 사람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살아야지. 그 양반이 워낙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양반이라 신경쓸 것도 없을 게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 해도 머리가 다 벗어져가는 나이에 생면 부지의 의붓아버지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살게 되다니! 도대체 이 막장드라마는 언제쯤 끝이 날까? (P238-239)
약장수는 매우 치밀했으며 어설픈 허세 따우는 부리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한쪽 면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두려움과 공포. 욕망과 나약함 등 삶을 비극으로 빠뜨리는 치명적인 약점들에 대해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녀석도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존엄과 자존심에 대한 거였다. 나는 약장수를 향해 히죽 웃어 보였다(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얼굴은 이미 퉁퉁 붓고 피범벅이 되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엔......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귀에 이상이 생겼는지 목소리가 마치 우물 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공명했다.
--내가 다 얘기해주려고 했거든, 오함마가 어디로 갔는지. 누구랑 함께 갔는지, 돈을 어디로 송금했는지 신사적으로 다 털어놓으려고 했어. 사실은 나도 그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그런데 내 마음이 변했어.
약장수의 표정에 잠시 당황한 빛이 스쳤다. 그는 모든 상황을 잘 이해하고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영혼은 이미 그가 생각한 상황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자존심이 상했거든. 니들처럼 배운 게 없는 놈들은 잘 모르겠지만 원래 사람은 이렇게 다루면 안 되는 거야. 우린 위대한 문명을 창조한 존재고 우리 스스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도록 제도를 발전시켜왔거든. 니들이 무슨 짓을 하면서 살아도 좋지만 절대로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돼.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언어는 명료했다.
--하지만 니들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날 짐승처럼 다뤘어. 그게 얼마나 슬프고 끔찍한 일인지 너희들은 모를 거야. 그것은 단지 나 개인을 두들겨팬 게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피 흘리며 이룩한 위대한 유산을 짓밟은 거야. 남대문에서 약이나 팔던 일개 양아치새끼들이 말이야. 그래서 난 네놈들에게 단 한마디도 해줄수가 없어.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어쩌면 내가 너무 맞아서 잠깐 미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보다 더 강한 분노와 오기가 내 몸 안에서 끓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장수는 양복을 벗어 흡혈귀에게 건네고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길게 찢어진 눈에선 잔인한 살의가 번뜩였다. (P251-252)
캐서린은 내 속옷을 사고 잠옷과 실내화를 샀다. 우리는 원룸오피스텔에서 함께 밥을 해먹고 산책을 하고 침대에 느긋하게 기대 앉아 옛날 영화를 봤다. 대부분 <미치광이 피에로>나 <피아니스트를 쏴라>와 같은 누벨바그 시대의 영화들이었다. 그것은 대학 시절 프랑스문화원에 함께 드나들면서 보았던 영화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구문화에 대한 선망과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어 가요 대신 팝송을 듣고, 방화 대신 외화를 보고, 한국소설 대신 번역소설을 읽은 세대였다. 학교에서 배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한때 열심히 ‘독재타도’를 외쳤지만 우리가 이룬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때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들뜨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다시 제자리인 것 같기도 했다. 때론 아무런 지도도 없이 전속력으로 어딘가를 향해 달리다 막다른 벽에 부딪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세대는 어느덧 옛날 영화나 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중늙은이가 되고 말았다.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삶 전체가 뿌리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신기루를 쫓아 살아온 원숭이짓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실소를 지었다. (P266-267)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내 앞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운좋게 피해갈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미리 걱정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싶진 않다.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P286-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