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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Dec 09. 2024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영화 <딸에 대하여>  2024년

젓가락으로 굵은 면발 하나를 건져 먹는다. 젊은 시절엔 이런 면 음식을 즐겨 먹었다. 세 끼 중 한 끼를 꼭 면으로 해결할 정도였다. 면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는 먹고 나서가 문제다.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부룩한 배를 어루만지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금 몸을 일으키는 짓을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식사를 끝낸 직장인들이 계산대 쪽으로 몰려간다.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커진다. 어디나 온통 젊은 사람들뿐이다. 주름과 기미로 뒤덮인 얼굴. 숱 없는 머리칼과 구부정한 자세.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든 언제든 나를 향해 너무나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내보일 것만 같다. 살피듯 조심스럽게 여기저기로 눈을 굴린다. 딸애의 우동 그릇은 빠르게 비어 가고 있다. 나는 계속 고민에 빠져 있다. 이 말을 정말 해야 할까. 해도 될까. 하지 말아야 할까. 해서는 안 되는 걸까.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하나다. 

이번 거절로 돌아올 보복.

너도 알다시피. 

한참 만에 나는 입을 연다. 알다시피, 그건 명백한 거절의 의사 표시다. 그걸 아는 딸애의 눈동자 위로 잠시 실망의 빛이 어린다. 

알아. 엄마 여유 없는 거.

딸애는 말한다. 그러면서도 내게 주의를 기울이고 무슨 말인가를 더 기다리는 눈치다. 나로선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이 나라의 집세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것은 멈출 줄 모르고 무섭게 자라나기만 한다. 그것을 손에 잡기 위해 달리고 뛰어오르고 점점 더 그 강도를 높여야 하는 게임에서 나는 제외된 지 오래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남은 건 그 집 하나가 전부잖니.

변두리 좁은 골목에 썩은 이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 주인을 닮아 관절이 닳고 뼈가 삭고 서서히 앞으로 고꾸라지는 이 층짜리 주택, 하루가 다르게 의기양양해지는 세상의 모든 집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집. 그게 남편이 내게 남긴 유일한 것이다. 실체가 분명한 것, 내가 통제력과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단 하나뿐인 것.                   (P8-9)     

삶의 테두리 너머로 가 버린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어떤 기운이나 기미가 조금이라도 닿을까 봐. 묻을까 봐 나는 몹시 겁을 내는 것 같다. 문득 저쪽 벽에 기대앉은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체념이 깃든 눈동자, 뭐든 다 알아 버린 것 같은 그 눈이 지목하는 다음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아서 나는 황급히 눈길을 피해 버린다. 눈을 감고서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면 어느새 내 뒤까지 바짝 다가온 뭔가가 어깨를 잡으며 와락 놀라게 하는 놀이. 성 씨는 아무렇지 않게 퇴근한 어느 날 심장이 멈춘 탓에 죽었다. 심장마비로 정리된 죽음. 도대체 죽음은 얼마만큼 가까이 온 걸까. 왜 이것이 이토록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고 나는 확신하게 된 걸까.          (P14) 

    

밖에 나가고 싶으세요?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잠시 젠과 눈을 맞춘다. 너무 오래 산 여자. 어디론가 기억이 줄줄 새고 있는 여자. 오래전 태어날 때처럼 여자, 남자, 그런 성별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다만 한 인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여자.

가끔 작고 마르고 보잘것없는 이 여자의 삶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유럽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한 후엔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데 평생을 허비한 사람.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 하나 가지지 못한 이 여자에게 내가 가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세계의 풍광과 1년 내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독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저쪽 테이블에서 소란이 인다. 노인 하나가 욕을 하며 리모컨을 내던지고 테이블 위에 놓인 교구들을 마구 흩뜨리기 시작한다. 담당 보호사인 교수 부인은 보이지 않는다. 또 어딘가에 숨어 몰래 전화 통화를 하거나 군것질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겠지. 나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휠체어를 끈다. 어차피 내 기운으로는 저런 남자 노인을 제지할 수 없다. 

저녁 식사 시간 전에 누군가 병실 문을 열고 나를 부른다. 원무과 권 과장이다. 복도로 나온 내게 그는 내일 한 시간 일찍 출근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방송국에서 젠을 취재하러 오기로 한 날이다. 나는 그러겠다고 한다. 권 과장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다. 교수 부인의 말대로 권 과장은 내게 특별히 친절한 것 같다. 친절하다기보다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려 하는 것 같다. 그것이 다른 나머지 직원들의 태도를 결정한다는 걸 나도 모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늙은 요양 보호사들이 명백한 저임금, 비밀스러운 냉대와 멸시 속에 있는 걸 떠올리면 그나마 다행인 걸까. 그건 아마도 내가 보살피는 젠이라는 사람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선 어떤 환자를 맡는지가 중요한 법이니까. 적어도 젠 앞에서 사람들은 젠에게 존경과 예우를 갖출 줄 안다. 

근데 그 여자는 진짜 가족이 하나도 없대요?                (P18-19)     


고요하고 어두운 방에 누워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어쩌면 이건 늙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이 시대, 지금의 세대. 생각은 자연스럽게 딸애에게로 옮겨 간다. 딸애는 서른 중반에, 나는 예순이 넘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그리고 딸애가 도달할, 결국 나는 가닿지 못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나을까. 아니, 지금보다 더 팍팍할까.

다음 날 나는 출근하자마자 젠을 씻기고 기저귀를 채운 다음 간단한 화장 도구를 꺼낸다.        (P22-23)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을.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그런 후회는 언제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경험하지 않고 말로만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특히 힘이 세고 단단한 젊음으로 무장한 지금의 딸애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엄마,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냐고.

나는 듣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까닥하지만 딸애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는다. 딸애 말대로 2층의 두 가구 모두 전세를 주고 나면 매달 드는 병원비와 약값, 보험비와 생활비, 비상금과 용돈은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딸애는 냉장고 문을 소리나게 열고 찬물 한 컵을 가져온다. 밤이지만 공기는 여전히 뜨겁다. 나는 달려드는 모기를 쫓으려고 손을 휘휘 내저으며 선풍기를 딸애 쪽으로 돌려 준다.                 (P30-31)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 (P32) 

    

딸애는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자라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걸 저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심지어 통보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딸애가 말하지 않지만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모른 척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딸애와 나 사이로 고요히, 시퍼렇게 흐르는 것을 난 매일 본다. 

연락이 없어서, 엄마, 은행 갔다 온 거야?              (P36-37)     

안녕하세요.

그 애다. 딸애보다 호리호리하고 기다란 몸. 작고 흰 얼굴까지. 얼핏 보면 그 애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얼굴이 작고 팔다리가 긴 서양인처럼 보인다. 

그린은 일이 있어서 조금 늦는대요. 먼저 가 있으라고 해서 왔어요. 열쇠도 받았고요. 그래도 집 안에 들어가는 건 실례일 것 같아서요.

그 애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서 있다. 나는 소리 나게 대문을 닫고 세 개의 계단을 오른 다음 현관 문을 연다. 

짐은 밖에다 둬요.

나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이런 정체불명의 사람을 내 집에 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니, 결정은 오래전에 했다. 그건 바뀔 수 없다. 저런 애를 내 집에 들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간신히 이렇게 말한다. 

잠시 들어와요.

이런 후텁지근한 날씨에 딸애의 짐을 집까지 배달해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나는 얼음물 한 잔을 가져와 테이블에 놓는다. 유리컵에 담긴 동그란 얼음들이 서로 부딪치고 밀어내며 맑은 소리를 낸다. 청바지와 하얀 티셔츠를 입은 그 애는 딸애보다 서너 살쯤 어려 보인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아무렇게나 달라붙어 있다. 도대체 딸애는 이런 애를 어디서 만난 걸까. 다들 건장하고 능력 있는 남편감을 고르는 시기에 딸애와 이 애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어 버린 걸까.             (P40-41)    

 

“이 애들은 유식하고 세련된 깡패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주먹을 쓰는 대신 주먹보다 강한 걸 쓰는 방법을 가르쳐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뺏긴 줄도 모르고, 당한 줄도 모르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는 거겠지.” (P46)  

   

가해자가 눈앞에 있는데 어느 바보가 처벌을 해 달라고 말해요? 그렇게 손 놓고 있지 말고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조사하는 시늉이라도 하세요.

여긴 작은 동네다. 이런 식으로 그 애들이 소란을 피우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저들 부부가 뭘 하든 간에 그저 모른 척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저 애들은 부부가 되고 가족을 꾸리는 일의 고단함을 모른다. 그런 걸 모른다는 부끄러움도 없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도 생각하지 못한다. 나는 대문 너머 골목이 술렁이는 걸 확인한 다음 집 안으로 들어와 방문을 닫고 누워 버렸다. 

그 모든 소란이 끝나고도 그 애들의 소곤거리는 목소리는 얕고 허약한 내 잠 속을 쉬지 않고 드나들었다. 

모른 척하는 게 쉽잖아, 편하고. 그냥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정말 너무해. 진짜 너무한다고. 알 만큼 아는 인간들이 하는 짓이 다 개차반이야. 애가 자지러지게 우는데도 어쩜 그럴 수 있어? 애를 봐서라도 그럼 안 되는 거 아냐? 동네 사람들은? 뭐 구경났어? 다 듣고 있으면서, 어쩜 사람들이.

목소리 좀 낮춰. 너희 어머니 깨겠다. 

딸애의 목소리는 뜨겁고 그 애의 목소리는 적당히 서늘하다. 차가운 것은 아래로, 뜨거운 것은 위로, 곡선을 그리며 만들어지는 원. 그 둘을 섞으면 딱 적당한 온도가 만들어질 것 같다. 

이 애들은 세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책에나 나올법한 근사하고 멋진 어떤 거라고 믿는 걸까. 몇 사람이 힘을 합치면 번쩍 들어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거라고 여기는 걸까.         (P50-51)   

  

이 집 딸이 대학 교수잖아, 그지?

그래요? 대단한 일 하셨네. 큰 은혜지. 자식 잘되는 것만큼 큰 은혜가 없잖아요.

여기 권사님이 교직 생활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자식 가르치는 데인 돈 안 아꼈어. 그래도 투자한 만큼 이뤘으니 얼마나 좋아요.

누군가 버튼을 누르듯 말을 시작하면 자기네들 멋대로 살을 붙여 부풀린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내가 기도하러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걸까. 그래서 내가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왜 하필이면 내게 이처럼 어마어마한 고통을 주셨느냐고 따져 물을 수 없도록 필사적으로 막아서고 있는 걸까.

우리 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린트물과 책을 넣은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 하루 종일 전국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보따리 강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좁디좁은 차 안에서 끼니를 때우고 쪽잠을 자고 집에 돌아와서는 또다시 책과 글 속에 파묻혀 무너지듯 잠이 드는 불쌍한 애라는 말이 가슴을 쾅쾅 때리고 간다. 게다가 이제는 월세를 내겠다는 명목으로 정체불명의 여자애와 함께 내 집에 쳐들어와서, 부모를 욕보이려고 한다는 말이 금방이라도 새어 나올 것만 같다.                 (P53-54)     

민소매 셔츠와 짧은 바지를 입은 딸애의 팔이 돌아누운 그 애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사이가 좋은 자매, 가까운 친구. 그러나 이 애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그런 흔하고 평범한 이유가 아니다. 그게 뭐든 내 짐작이나 예상 밖에 있는 어떤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건 딸애의 착각이 아닐까. 아직은 어리석고 순진한 이 애들의 오해가 아닐까. 그래서 며칠이 지나면, 몇 달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던 일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눈앞에 보이는 이 장면을 구겨 버리고 아주 작게 만들고 멀리 던져 버릴 수 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모른다고 여기면 얼마간은 편해질지도 모른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들. 아무것도 모를 때엔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들. 그러나 뭐든 제대로 알게 되는 순간. 그것들은 발톱을 세우고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다. 진실과 사실. 그런 명백한 것들의 속성. 언제고 그것들은 사납게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벽 쪽으로 돌아누운 그 애의 다리 사이에 끼워진 딸애의 종아리. 살과 살이 맞닿고 숨이 합쳐지고 서로를 끌어당기며 그 애들은 마침내 한 몸이 된 것처럼 보인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당장이라도 둘을 깨워 멀리 떨어뜨려 놓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방을 나온다. 내가 쓰는 방을 제외하고 방은 두 개다. 선풍기도 두 개. 스탠드도 두 개. 테이블도 두 개다. 각자 하나씩 방을 차지하고 있다가도, 밤이 되면 왜 이렇게 꼭 붙어 자야 하는 걸까. 그러나 고작 살을 맞대고 누워 잠이 드는 것 말고 이 애들이 뭘 더 할 수 있을까.         (P62-63)     

“네가 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이미 많이 들었다. 무슨 말을 또 얼마나 해서 가슴에 대못을 치려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권리가 있다. 힘들게 키운 자식이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모습을 볼 권리가 있단 말이다.” (P66)     


“그리고 아프게 깨달았다. 이대로 딸애를 계속 당기기만 하면 결국 이 팽팽하고 위태로운 끈이 끊어지고 말겠구나. 이대로 딸을 잃고 말겠구나. 그러나 그게 이해를 뜻하는 건 아니다.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 푼 것뿐이다. 딸애가 조금 더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보한 것뿐이다.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무언가를 버리고 계속 버리면서 물러선 것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딸애는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른 척하는 걸까. 모르고 싶은 걸까.” (P68)     

지난해 가을에 강사 몇 명이 대학에서 잘렸대요. 보통은 계약이 그냥 갱신되는데 이번엔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계속 이야기하라는 의미로 그 애와 눈을 맞춘다. 누군가 또 심장을 힘껏 움켜쥐는 것 같다. 나는 입을 벌리고 심호흡을 한다. 딸애는 또 무슨 일을 벌인 걸까. 성급하고 부주의하게 또 무슨 후회할 일에 힘과 시간을 낭비하려는 것일까. 그 애의 말이 이어진다.

부당한 일이니까요.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지만 또 언제 내 일이 될지 모르고, 또 그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 같이 학교 측에 항의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모으고 알리고 뭐 그런 일을 한다고 들었어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다. 집 안의 풍경이 히끄무레해졌다가 천천히 제 형체를 되찾는다. 힘이 빠지고 몽롱한 기운이 맴돈다.

지난해 가을이라니, 세상에. 그래서 그걸 하느라 보증금을 다 까먹은 거구나.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일에, 그냥 모른 척하면 그만일 일에 또 참견하고 간섭하면서 일을 벌이는구나. 불이 붙은 것처럼 가슴 속이 뜨거워진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학교에서 그랬겠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랬을 리 없잖아요.

나는 이런 말을 한다. 그리고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 애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이유 같은 건 없어요. 강의 자체를 문제 삼는 모양인데, 그냥 싫은 거겠죠. 동성애자니까. 쫓아내고 싶은 것 같아요. 그 사람들요. 잘렸다는 그 사람들 말이에요.

동성애자라니. 그 말은 내 허락도 구하지 않고 곧장 내 귓속으로 들이닥치고 머릿속을 관통한다.                 (P78-79)     

난 널 키운다고 직장이고 뭐고 다 버렸다. 남의 손에 맡기는 게 불안해서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다가 결국 다 버렸어. 내가 널 어떻게 키운 줄 아니? 네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어. 세상에, 그런데 어떻게 넌 사사건건 날 이렇게 실망스럽게 하고 슬프게 만들 수 있니, 그러려고 작정한 게 아니고서야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

그래, 알아, 안다고. 엄마가 날 어떻게 키웠는지 너무 잘 안다고.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살잖아. 내가 어떻게 이보다 더 열심히 살 수 있어?

열심히 산다니.

숨이 막힌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겨우 말을 잇는다. 

어딜 가나 문제를 일으키고 늘 불평이나 하고 매사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게 열심히 사는 거니? 제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한번 봐라. 아무도 너처럼 사는 사람은 없어. 아무리 제맛에 사는 시대이라지만 이게 말이 되니? 이런 말을 하면 엄마와는 말이 안 통한다면서 날 뒷방 늙은이 취급이나 하지. 근데 그런 게 아니야. 너야말로 언제까지 젊은 줄 아니? 무슨 발못을 해도 그걸 바로잡을 시간이 항상 넘쳐 나는 줄 알아?

딸애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P101-102)    

 

엄마, 우린 소꿉장난을 하는 게 아냐. 그런 게 아니라고.

그래, 그럼 소꿉장난이 아니라는 걸 어디 한번 말해 봐라.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어떻게 될 수 있어? 너희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 자식을 낳을 수 있어?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해?

가족이 그렇게 쉽게 되는 줄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줄 아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무나 책임이나 그런 걸 너희가 알아?

엄마, 레인이랑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우리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우리도 너무도 잘 안다고.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왜 이렇게 소용없는 데 목을 매고 있어.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겠니? 무릎이라도 꿇고 빌까? 제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좀 알려다오.

딸애를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다.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바꿔 놓을 수 없다. 

엄마, 여기 봐. 이걸 보라고. 이 말들이 바로 나야. 성 소수자, 동성애자, 레즈비언, 여기 이 말들이 바로 나라고. 이게 그냥 나야.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를 부른다고, 그래서 가족이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이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냐고.

기어코 딸애는 전단지를 가리키며 결코 내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한다. 어떤 말들은 곧장 내 안으로 들어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것들은 육중하고 거대한 방파제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그때부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끝내 소화되지 않는 말들. 소화할 수 없는 말들.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말들. 

나는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 버린다.              (P107-108)  

   

아니, 뭐 하루 이틀 일이야. 갑자기 왜 이래. 생전 안 하던 짓을 하고. 그 노인네가 가족이야. 뭐야, 뭐 나 몰래 유산이라도 상속받았어? 아무 상관도 없는 노인네 병원 옮기는 걸 가지고 왜 난리야.

발목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다리 전체로 퍼진다. 허리가 아프고 손가락 끝이 저릿하다. 나는 계단 한쪽에 주저앉아 제멋대로 불뚝거리는 눈가를 매만진다. 

아니, 왜 그래. 왜 그러냐니까.

나는 고개를 젓는다.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저 여자가 왜 나로 여겨지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무나도 분명한 그런 예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기댈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게 저 여자의 탓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나는 이제 딸애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념해 버린 걸까. 어쩌면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 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을 받게 될까.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걸까.                    (P129) 

    

나와 마주 앉은 그 애들이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다.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을 수 있는 거리. 그러나 나는 이 애들이 나로부터 얼마나 먼 곳에 어떤 모습으로, 어디를 딛고 서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뚜렷해진다. 이 애들은 삶 한가운데에 있다. 환상도 꿈도 아닌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이 애들은 무시무시하고 혹독한 삶 한가운데에 살아 있다. 그곳에 서서 이 애들이 무엇을 보는지, 보려고 하는지, 보게 될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밥알은 좀처럼 삼켜지지 않고 나는 울컥거리며 치솟는 뜨거운 것들을 계속 삼킨다.         (P149-150)  

   

바라시는 게 복직이 아닌 건가요?

저희는 그냥 사과를 바랐어요.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도 원했고요. 학교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강사를 잘랐으니까요.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거예요. 강의 평가가 너무 안 좋았다거나, 그런 합당한 이유들요.

기자가 조그마한 수첩에 뭔가를 적는다. 그러나 딸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교문 안으로 들어간다. 놀란 비둘기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고 그 바람에 세워 뒀던 피켓 몇 개가 쓰러진다.

학교 측이 말하는 부적절한 강의라는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강사분이 아무튼 적절하지 않은 강의를 했다고 하던데요.

그건 핑계죠. 그건 정말 변명이에요. 잠깐만요.                (P151)    

 

권 과장의 얼굴에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 한 사람에게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걸 나도 안다. 오늘날 일이란 행위는 모두 훼손되고 더럽혀졌다. 그것은 오래전에 우리 세대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던 역할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일의 주인이 아니고 그것에 종노릇을 하며 소외당하고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리고 끝내는 일 밖으로 밀려나고 쫓겨나고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여사님도 여기 일 이번 달까지 마무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권 과장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내가 내내 이 순간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예상했지만 준비하거나 대응할 수 없는 일들, 나는 젠이 입원한 병원이 어디냐고 묻는다. 

아시잖습니까. 가족이 아니면 알려 드릴 수가 없어요.                (P160)  

   

내가 이런 곳에 있다는 사실. 욕설과 비난이 향하는 바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현실. 모든 게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딸애와 그 애가 만든 이런 장난 같은 일에 휘말리고 이번에도 바보처럼 당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이 장난 같은 일이라면, 하반신이 마비될지도 모르는 그 사람의 너무나 명백한 비극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딸애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공격할 순간을 기다리는 그 수많은 비극들은 어떻게 막아야 하는 걸까. 

그러므로 이제 나는 저기 반대편에 모여 선 사람들처럼 말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애들에게 보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조용히 침묵하라고 명령하고, 죽은 듯 지내거나 죽어 버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편에 내가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애들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서 있어야 할까.

나는 이 애들이 측은하다. 가엾고 불쌍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호기심을 보이다가 다시금 멀어지는 저 많은 행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P167)    

 

길게 숨을 내쉬면 이대로 몸이 다 녹아내릴 것만 같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본다. 한숨 자고 나면, 아주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일이 다 거짓말처럼 되어 버리면 좋겠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조롭고 수월한 일상, 그러나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 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면 고집스럽고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 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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