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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영화 <오래된 정원> 2006년

by 노용헌

[1]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갑자기 검붉은 색깔의 어린 장미가 가까이서 눈에 띄는데

아,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왔을 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 있었다.

장미가 그곳에 피어 있기 전에는 아무도 장미를 기대하지 않았다.

장미가 그곳에 피었을 때는 아무도 장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하지만 모든 일이 워낙 이렇지 않았던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P5)

영화 오래된 정원 07.jfif

먼곳에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발뒤꿈치를 시멘트 바닥에 자신있게 내리박는 것 같은 소리다.

마지막 순회점검을 오는 당직주임의 발소리가 틀림없었다.

근무중 이상 무!

하는 바깥초소 근무자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는 두 개의 철문을 지나야만 이쪽 사동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깨를 단단히 여미고 있던 솜이불 자락을 젖히고 일어나 앉았다.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새벽의 싸늘한 냉기가 등덜미를 쓸어내렸다. 나는 취침할 때마다 두툼한 털양말 위에 신던 큼직한 덧버선을 벗고 양말을 잘라서 만든 모자를 벗었다. 양쪽 가슴에 사동 방 번호와 내 번호 표가 붙어 있는 수의를 입었다. 천사백사십사번이 나의 오랜 이름이었다. 나는 이름을 거의 잊어버렸다. 이 번호를 언제 받았던가. 점호 때마다 이 이름으로 확인당했고, 편지를 받을 때에도, 작업장에서도, 면회를 갈 적에도, 모욕을 받거나 기합을 당할 때에도, 욕설 끝이나 앞에. 이 번호를 달고 자신의 존재를 부여받았다. (P7-8)


차의 문이 열리면서 조카인 듯한 사람이 뛰어나오더니 빠른 걸음으로 마주 다가왔다.

삼촌......

그는 먼저 나를 힘껏 껴안았다.

고생 많으셨지요.

뭐..... 잘 지낸 편이다.

그가 비닐봉지에서 두부를 꺼내어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이거 잡수세요. 어머니가 꼭 드시게 하라구 그러셨어요.

두부...... 거 다 미신이다.

이제부턴 남들이 하는 것처럼 하셔야 된대요.

나는 그게 누님의 진심이라고 알아들었다. 두부는 차갑고 싱겁고 뻑뻑해서 목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조카가 승용차 뒷문을 열어주었다. (P17)


길 좌우에는 키 큰 잡목들이 아직도 마른 잎새를 달고 빽빽이 늘어섰고 가끔씩 자동차가 천천히 지나갔다. 숲의 공기는 상쾌하게 맑고 차가웠다. 까치 한쌍이 즐겁게 우짖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오르내렸다. 누님이 말했다.

너 아무래두 어디 시골 가서 좀 쉬어야겠다.

시골요......?

나는 감옥의 내 방에서 범치기로 만든 그 가난한 사유물밖엔 아무것도 이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다.

저 안에서두 한선생 소식 들은 적 없지?

처음에는 누님이 누구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한선생...... 누구 말예요?

한, 윤, 희. 잊어버렸니? (P28)


영화 오래된 정원 13.jfif

어쩐지 그는 늙은이처럼 중얼거렸다. 사십대 중반이면 그도 늙었고 주위의 친구들도 거의 오십줄에 접어들었으리라. 한 세대가 흘러가버렸다. 광주, 그러나 이제는 저 울렁거림 따위는 없다. 전에는 그 도시의 이름만 떠올려도 마치 글자 주위에 불의 링을 달아놓은 것처럼 뜨거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무슨 특산물로 유명해진 관광지 이름처럼 들린다. 몇 년 만인가. 나는 턱짓으로 숫자를 헤아려보았다. 일년, 이년..... 십칠년, 십팔년, 십구년. 그들의 얼굴이나 기억할 수 있을까. 내 안에서는 저들은 모두 앳되고 어설프고 가난한 젊은이들이었다. 죽은 이들은 더욱 영원히 젊다. (P34)


비행기가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옛날처럼 창문 가리개를 내리라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비행장 주변의 낯익은 밭고랑과 개천을 내려다보았다. 멀리 시가지 쪽에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회붐하게 끼어 있었고 시내로 나가는 국도 양쪽에 줄지어 선 앙상한 나무들이 보였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대합실에서 서성대며 기다리던 그가 손을 번쩍 쳐들어 보였다.

어, 형님 여깁니다!

건이, 이게 얼마 만이냐.

나는 그를 덥석 안아보았다. 그러고는 새삼스럽게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흰머리가 관자놀이 주변에서부터 정수리 근처까지 희끗희끗 번져 있었고 눈가에 주름살이 많이 보였다. 나는 건이를 구치소에서 잠깐 보고는 헤어졌고 그는 형기를 마치고 먼저 나갔다. 나보다 대여섯살 아래였던가 싶다. 나는 광주에서 빠져나갔었지만 그는 시민군으로 무기를 들었고 나중에는 지하활동으로 뒤늦게 검거되었다. 만일 도청에서 포로가 되었더라면 건이도 진작에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내가 도피하고 있던 산동네 집에 건이가 찾아온 것은 도청에서 마지막 진압이 있던 이틀 뒤였다. 볼이 움푹 팰 정도로 초췌하고 땟국이 묻은 셔츠 바람이었던 그는 우리를 붙잡고 기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상운이 형이 돌아가셨어라우. 영준이는 나더러 먼저 피하라고 하더니 내중에 보니께 한방 맞고 가불고. 아, 그 새벽에 우리가 서로 껴안았던 포옹을 앞으로는 다시 할 수 없으리라. 일주일이 지나자 하나둘씩 그 도시를 빠져나온 동료들이 모였다가는 제각기의 구멍을 찾아 흩어졌다. 어떤 집에서는 노골적으로 박대하고 어느 집에서는 돈을 쥐어주며 제발 다른 곳으로 가라고 호소하고 또 어떤 이는 식구 하나를 늘리면서 숨겨주기도 했지. (P42-43)


한 두어 장 된다마는 사람이 그라먼 못쓰는 거여. 일 저질르고 도망 가불면 다른 사람들은 어쩌란 말여.

야야, 강욱이도 덕희도 다 낙하산 타고 떠버리는데 니는 도으원 한나 못 챙기고 협회다 위원회다 기념사업이다 맨날 남으 치다꺼리나 하구 댕김서 멀 하고 자빠졌냐.

야야, 골치 아퍼서 나는 상관허기도 싫다. 먼 놈으 오일팔 관계 단체가 그렇게 많다냐.

인생은 길고 혁명은 짧아 그런가. 사는 것이 다아 욕이여.

어, 남으 말 허구 있네. 수신제가 잘혀. 샛바람 피지 말고.

그게 다아 먹잘 것이 생기고 사는 거이 심심헌께 생기는 병이라고.

사업만 신경쓰지 말고 주변에도 좀 찾아댕기고 후배들 살림도 챙기고 최소한 경조사에 얼굴이라도 내밀어봐라. 효신이 꼴이 그게 뭐냐. 간이 굳어뻔져서 얼굴이 시커멓게 탈 때까지 그냥 모른 체하구 있었다니 그거이 무슨 공동체여. 봉한이 형은 왜 안 나온 거여?

어따. 남으 말 허구 있네. 고옹동체? 보상 시작되면서 그거 다 깨져버린 지가 언젠데.

만나면 왜 서로들 못 씹어서 난리냐, 난리가.

이게 사는 거여? 속이 헛헛허고 씁쓸해서 그런다 왜? (P48)


영화 오래된 정원 14.jfif

뭘 가르치세요, 학교에서.

그네는 멋쩍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나는 처음부터 윤희의 다소곳하게 웃는 입 모양이 좋게 보였다.

미술, 그림 그리기요.

근사한데요.

뭐가요?

하고 나서 윤희는 파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한 개비 빼어물고 불을 붙였다.

화가의 재능이란 하나두 믿을 게 못 돼요. 무수한 재능의 시체 가운데서 우연히 남은 거예요. 이런 시골학교에 와보면 대번에 알 수 있어요. 정말 깜짝 놀라도록 훌륭한 소질을 가진 애들이 한둘씩은 있으니까.

화가가 그런 말을 하면 누가 믿죠? (P57)


다리를 건너서 산굽이를 돌아나가자마자 두 산자락 사이에 가려 있던 시야가 한꺼번에 확 트였다. 마치 사람이 두 팔과 다리를 양편으로 벌리고 앉아 있는 것 같은 둥그런 산이 정면에 보였고 그 남향받이에 집 몇채가 띄엄띄엄 안겨 있었다. 길의 바깥쪽에서는 다리 건너 비좁은 산길 안에 이런 동네가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앞의 완만한 경사지에 과수원이 보였다. 계곡의 지류인 개천이 산에서 천천히 흘러내려오고 개천가에는 초가로 지붕을 이은 물레방앗간도 있고 과수원 너머 뒤편에는 짙푸른 대숲이 있었다. 이제 막 봄의 문턱이라 포근하고 흙냄새 풍기는 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왔다. 까치 한쌍이 말라붙은 열매 몇 개를 매단 가지뿐인 감나무 끝을 오르내리며 쾌활하게 우짖었다. 윤희는 바람의 맛을 보려는 것처럼 흐음, 하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여기가 갈뫼예요. (P61)


내가 아버지의 과거로 들어가볼 수 있었던 그해의 우리들의 화해기간에 대해서는 나중에 쓸 거예요. 내가 말했죠. 아버지의 치명적인 병이 밝혀지고 임종할 때까지 나는 그이를 지켜드렸다구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려서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커서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군사독재에 대하여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은 나의 자책이었을까. 나는 닥치는 대로 그 방면의 책들만 읽었죠. 그런데 어느날 당신이 나타난 거예요. 내가 처음으로 당신과 입을 맞추었던 날이 생각나요. 그래요. 그건 당신이 방과 작업실 공사를 끝냈던 그해 봄날 주말께였을 거예요. (P93)


영화 오래된 정원 01.jfif

우리는 광주항쟁이 끝나고 나서 당시에 나온 투사회보와 각종의 유인물들, 그리고 서울에서의 우리 조직의 작전성과들에 대하여 독회와 총화를 했다. 독회는 경춘가도 인근의 사설기도원에서 사흘에 걸쳐 진행되었다. 광주사태 수사결과문이 발표되었고 사회불안 불순 조종자 등 삼백여명의 지명수배자 명단도 나왔다. 명단에는 건이는 물론이고 동우와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행히 석준이는 아직 노출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조직 명명을 하고 나서 준비위 강령만을 채택했다. 규약은 준비위의 명칭을 벗어버리는 때에 구체화하기로 하였다. 촛불을 켜들고 자기비판을 하면서 도피해서 살아남은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로 눈물을 흘렸다. 가을이 되면 본격 가동하기로 결의하고 모임을 끝냈다. 여름이 끝나자마자 석준이는 일본의 작은아버지에게로 유학을 떠났다. 우리는 처음엔 서운하고 말리고 싶었지만 동우가 오히려 그를 격려했다. 우리는 앞으로 해외로도 줄을 대어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우리 외에도 그런 동아리들은 수없이 많았다. 제일 먼저는 심야에 광주 미문화원의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들어내고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지른 농민운동 현장 친구들이 있었고, 나중에 부산 미문화원을 항의 방화한 현상이는 그때 서울과 영남 지역에서 끈질긴 피작업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모두들 광주에서의 무자비한 양민학살을 보고 들었고 그것이 불의 시대였던 팔십년대의 시작이었다. 이전처럼 어중간한 생각이나 행태로는 막강한 폭력을 이겨낼 수가 없고 민중에 의한 권력의 장악은 한 세대가 지나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모두들 혁명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노동대중의 힘에 대하여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혁명의 전위를 키워가기 위한 사상학습으로 치달았다. 급진적인 경향은 절망과 치욕감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P103-104)


너의 길을 걸어라. 그리고 타인들이 말하게 내버려두어라!

이 말 가운데는 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신념과 그에 반비례한 외로움이 반영되어 있다. 더구나 남들이 쉴새없이 지껄이는 소음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하이드파크의 논설가들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하고 도서관을 오가며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던 고집쟁이 망명자, 뒤에 러시아인 대머리 아저씨가 같은 공간을 왕복했다. 그래도 이들은 나은 편이다. 수많은 불운한 변혁가들은 사나운 발밑에 개미가 으깨지듯이 아무런 사연도 없이 말살되곤 하였다. 그런데 기묘하기도 해라. 으깨진 자들은 형체도 잔해도 기억조차 남지 않았는데 짓누른 쪽은 오히려 영원히 용서하지 않고 죽은 자들과 그 비슷한 생각들까지 몸서리치게 증오한다. 자책 때문일까. 그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거야. 이러한 집착은 가해의 정도가 깊을수록 더욱 오래간다. (P115)

영화 오래된 정원 15.jfif

얘, 글쎄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지막 무렵이 되면 자기 잘못을 정확히 알게 되고 또 자신을 용서하게 되더구나. 나는 절대로 그때를 후회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그런 길밖에 없었을까 하구 생각해볼 때가 많아. 그래, 세상에서 지어낸 삼라만상은 부처님 말씀처럼 세상이 지닌 한계만큼의 꼴로 나타나게 마련이지. 내 동료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그저 허공중에 빛나는 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양쪽을 보니까 서로 거울을 맞대놓은 듯이 그저 사람살이의 좌우가 바뀐 데 지나지 않았어. 내용은 서로 싸우는 동안에 서로를 닮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사람세상의 이 미완은 멋있지 않니? 미처 해내기 전에 같은 무렵에 살던 모두가 죽어버리니까. 불교에서 그걸 뭐라고 하더라. 백년 후에는 현재 세상에 살고 있던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댄다. 그맘때 사람들은 모두가 새사람들이지. 그렇게 거듭된단다. (P147)


활동가가 지하에 들어간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제까지 낯익은 자신과 주변을 일시에 끊고 얼굴 없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에게는 이름도 없고 특징도 없다. 다만 그는 보편적인 민중이 가지고 있는 생계수단을 획득해야 한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취업할 수 있는 기능을 습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직업이 없는 자는 그 순간부터 생존의 방식을 상실한다. 그뿐 아니라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가 없다. 직업을 가지고 자신이 들어선 낯선 세상에서 될 수 있는 한 빠른 시일안에 취약한 자기를 둘러싸줄 이웃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로 통하는 모든 통신수단을 단절한다. 진보, 편지, 인편은 물론 특히 전화는 사용하면 안된다. 도피자끼리의 연락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양자가 반드시 연결할 대리인을 통해야 하며 그 대리인은 두 단계로 처리해야 한다. 연결을 맡은 대리인은 사전에 반드시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 조직 중심은 외곽에서 도피자의 신변을 정기적으로 파악하며 기간중에 어떠한 임무를 주거나 연결을 시도해서는 안된다.

도피자는 특히 도시의 중심가를 피해야 한다. 복장과 말투는 평범해야 한다. 도심지를 보행으로 이동하는 것은 좋지 않다. 보도를 걸을 때에는 길의 안쪽으로 걷고 상가의 쇼윈도우를 적절히 활용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는 신호등이 켜질 때까지 대기하고 있는 군중의 뒤에 서서 기다린다. 언제나 군중 가운데 있을 때에는 너무 빨리 또는 너무 늦게 움직이지 않는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에는 가급적이면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는다. 긴 여정이라면 몇 번에 나누어서 갈아탄다. 도심지에서 버스를 탈 경우에 안전좌석은 운전석 뒤편 즉 차도로 향한 열의 문과 가까운 지점의 좌석이다. 보도 쪽으로 있는 자리나 특히 창가의 자리는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된다. 이동은 되도록 야간에 실행하고 그 다음은 새벽이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러시아워는 피해야 한다. 그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도록 미리 방비해야 할 것이다.

수칙은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특히 이런 말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었다.

도피자는 검거되지 않는 것이 그의 동료들에 대한 첫 번째의 의무이다. 도피자는 도피 그 자체가 가장 주요한 활동이다. 이를테면 그는 주위에 위험을 전파할 수 있는 전염병의 보균자와 같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격리하여 위험이 가실 때까지 자신과 싸워야만 한다. (P170-171)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사랑하는 이들의 일상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었다. 태어남이라든가 만남이라든가 싫증이라든가 넌더리라든가 이해라든가 죽음이라든가 미움과 노여움과 그리움이나 시시함, 그런 모든 것이 긴 장마철에 한무리씩 다가오던 끝없는 구름의 행렬처럼 차례로 스쳐 지나왔다. 기록영화에서 보았듯이 꽃봉오리가 움트고 꽃잎이 나오고 피어나고 활짝 피어나고 더 활짝 피어나 젖혀지면서 끝에서부터 시들어 움츠러들고 드디어는 차례로 말라 떨어져 가지 끝에 간신히 붙은 꽃잎 하나 흐느적이다가 슬로우 모션으로 나부껴 떨어지는 광경. 그리고 필름은 거꾸로 돌아가며 다시 환원된다. 이 모든 출발들은 매순간 새로 시작되는 것 같다. 나는 때때로 세기말의 그림들처럼 불안하다. 이별 또한 새로운 출발이 될 테니까, 어쩌면 그는 내게서 자기를 빼앗아갈지도 모른다. (P210-211)


당신은 사실은 세상구경을 나갔던 것이 아니라 내게서 일단 떠났던 것이지요. 아버지나 당신이 선택했던 그 시대의 가치는 이러한 시간을 ‘기만적인 자유에 머물게 하는 아주 하찮은 소시민적 영역’이라고 깔보게 했잖아요. 당신과 나의 사랑은 이제 돛을 올리고 부두 연안을 벗어나기 시작한 배처럼 앞으로 무수한 폭풍과 파도와 항해의 날들을 거쳐서 대양을 건너야 할 거였어요. 이제 겨우 우리는 시작했을 따름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전과 같이 계속되었어요. 나는 텃밭을 만들기로 교활한 생각을 해냈구요. 마침 장날에 읍내에 나가서 고추며 가지 토마토 모종을 사오고 갈아엎은 밭에다 상추며 쑥갓이며 씨앗을 뿌렸고 거름구덩이를 마련해서 호박도 심기로 하였어요.

우리 텃밭 만드는 게 어때요?

그래, 왜 진작에 그 생각을 못했지? (P225)


영화 오래된 정원 02.jfif

신문 좀 보겠습니다.

손님은 힐끗 눈길만 한번 주고 고개를 까딱했다. 나는 신문을 집어오면서 그와는 반대편 자리로 돌아앉았고 탁자 위에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주민등록번호를 쓴 작은 팻말을 들고 찍은 최동우며 건이며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검거된 인원은 전체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는 칠팔명 수준이었으나 기사내용으로 보아 발표된 조사내용은 매우 근접해 있었다. 아래쪽에서 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내 사진을 알아보게 되었다. 나는 잠깐 놀라서 숨을 들이마시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각기 음식을 먹느라고 내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진은 내가 군대 가기 전에 주민등록에 썼던 옛날 사진이었다. 머리도 길고 볼이 움푹 패었고 훨씬 어수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신문에 난 사진으로는 현재의 나를 알아보기가 어려울 거라며 자위했다. 내게도 짜장면이 나와서 나는 얼결에 신문을 덮고 면을 비벼서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으로 연신 면을 말아넣으면서도 신문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도표에 의하면 내가 조직책으로 되어 있었고 주범이었다.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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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가 붓질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전에 그네는 몇 번 목탄이나 콩테로 화첩에다 나의 초상을 소묘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윤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그림쟁이라면 우선 닮거나 최소한 비슷하게 그리는 게 기본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될 터였다. 어떤 것은 내가 보기에도 사진이나 거울에서 보아오던 내 특징들이 잘 살아나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하고는 어딘가 다른 데가 있었다. 나는 먼저 나와 닮았다고 생각되는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었는데 윤희는 나와는 반대로 바로 그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의 얼굴은 그냥 주전자나 물컵이나 사과 같은 정물이 아니거든요. 사람의 얼굴은 표정이에요. 마음이 투영되고 있는 그릇이지요. 그림을 그리는 자는 그걸 보아야 해요. 더구나 우리는 늘 함께 있잖아요.

윤희는 지금 물감을 찍어 기초 스케치를 빈 캔버스 위에 해나가면서 다시 중얼거렸다.

모르죠. 당신이 떠난 뒤에나 완성될지...... (P251)


응, 그건...... 부적이다. 동네 여자들 따라서 점집에 갔다가 써주길래 받아왔다. 너희들은 미신이라구 하겠지만. 나두 전에는 그랬어.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 사람의 일이란 제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더라.

예, 어머니. 잘 간직하겠습니다.

나는 두 손으로 모시는 시늉을 하면서 지갑을 꺼내어 동전 넣는 곳을 열었다. 그 틈에서 윤희의 증명사진이 나타났다. 나는 얼른 들킨 사람처럼 어머니가 주신 부적을 포개어 집어넣고 지갑을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키는데 어머니는 갑자기 내 손을 잡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 위로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줄지어 흘러내렸다.

너 제발 몸조심해라. 난 아마 널 다신 못 보고 죽을지두 몰라.

그런 말씀 마세요. 이제 한 서너 달 있으면 다 해결될 테니 그럼 제가 돌아와서 모실게요.

아냐, 나두 다 안다. 네 아우와 누나가 서로 짜고 거짓말만 하고 있지만 네가 나라에 큰죄를 저질렀다는 걸 알아. 하지만 이걸 명심해라. 너만 옳다구 생각하구 행동하면 나라두 나중에 저희 잘못을 알구 바뀌게 될 게다. 세월이 걸리겠지만서두......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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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이름은 은결이루 지었다구?

그래, 하루 종일 우리말사전 들고 씨름했다.

나두 이담에 딸 낳으면 금결이루 지어야겠다?

하고 나서 정희는 이제까지 참아왔던 물음을 한꺼번에 터뜨리듯 말했어요.

도대체 언닌..... 이 지경이 되어서도 왜 식구들한테 연락을 안했어? 그 시인이라는 엉터리는 어디루 간 거야? 그에게는 알렸어?

나는 정희의 입을 잠깐이라도 막아두려고 말길을 돌렸습니다.

너 커피 한잔 줄까? 일루 나와.

내가 먼저 쪽문을 열고 부엌 봉당 겸 작업실로 쓰는 데로 내려갔고 정희에게 간이의자를 권했지요. 나는 그애가 주위에 널려진 캔버스며 화구 들을 둘러볼 동안 커피를 끓였어요. 내가 커피를 타서 그네에게 내밀자 정희는 찻잔과 받침을 받아들고 한모금씩 마시면서 구석에 세워진 작년 가을의 초상을 돌아보았어요.

저 사람이야?

그릴려구 했는데, 아직 안 끝났어.

미안해....... 언니. 아직도 난 잘 이해가 안 가니까.

아니 괜찮아. 저 사람 지금 징역을 살기 시작했어.

동생은 커피를 조금씩 마시면서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더군요.

참 모르겠어.

뭐가?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가 지녔던 인생의 한계를 그대루 물려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약점을 자기 것으루 사랑하게 된대. 언닌 아버지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닌가 몰라.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P296)


팔십삼년 사년은 어떻게 지나갔던가. 아마 그전 해와 다름이 없었겠지. 단식을 몇 번 하고 문을 차거나 철창을 식기로 두드리며 구호를 외치고 투쟁가를 부르고 징벌방에 갇히고를 반복했을 것이다. 말다툼을 하고 토론을 하다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고 하찮은 먹을 것을 가지고 욕설을 해대고 헤어져 독방에 돌아와서는 연민 때문에 곧 후회하게 되는 감방 동료가 한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싶었다. 공권력은 나를 너무도 잘 다룬다. 그들은 시간의 덧없음을 알고 있다. 일제 때부터 해왔던 행형술은 그동안 전쟁과 정권교체와 세월의 변화를 통해서 수많은 경험을 쌓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카드가 있었다. 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의 자세한 내용들은 모두 까먹었다. 그리고 큰 선에서의 원칙들만 남게 되었다.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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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얼마나 더 있으면 모범수가 되나요?

글쎄요. 일반수들의 경우에는 급수가 있어서 대개 형기의 삼분의 이만 징계없이 넘기면 가능합니다. 공안수의 경우에는..... 급수가 따로 없어서 역시 전향 여부가 중요한 문젭니다.

전향이라뇨?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자신있게 다시 말했어요.

그렇습니다. 자기가 가진 사상을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힌 서류를 제출하면 됩니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거든요. 나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어요.

머릿속의 생각을 누가 참견해요? 그리고 그건 반대루 법에서 금지하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의미 아닌가요?

즉, 자유민주적인 사상을 가져야.....

생각과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아닌가요?

아, 그만두시죠. 저는 이만 바빠서. (P34)


대중동원력을 가동시키지도 못하면서 학원자율화 문제에만 매달렸던 것입니다. 비공개 지도부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스스로 비판한다면 이러한 시스템이 오히려 대중의 정세판단을 가로막고 자발적인 운동 공간의 자생력과 확대를 막아왔다는 자책이 듭니다. 적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제도적으로 가로막혀 있다 할지라도, 대중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구심체로서의 대표조직인 학생회를 자주적으로 구성하고, 호국단 폐지투쟁을 동시에 벌여서. 자율화조치나 유화국면의 허위를 폭로했어야만 합니다. 사실상 현재의 유화국면은 광주학살 이래 돌이킬 수 없는 군사정권의 정통성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한 대외적인 제스처로서, 일조오천억 규모에 달하는 외채에 의한 전국적인 부도와 지난 여름의 외국투자 완전개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치 경제적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 처방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국면이야말로 우리에게는 학원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 그리고 일반민중 속에 군사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학생대중운동의 기초조직이 되는 과중심의 활동을 강화시키고 학생 개개인을 자발적인 선전선동 활동의 주체로 내세우는 대자보와 유인물 작업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공개적인 학생대중조직을 장악한 뒤에는 이 열린 공간을 통하여 대학끼리의 연합투쟁을 조직해나갈 것입니다. 대학들의 연합투쟁은 사회 속에서의 정치투쟁을 한층 극대화시킬 수 있으며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대학의 대중운동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P39)


그 무렵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담벽 안의 미물들과 정을 나누고 그리고 스스로 가슴속에서 지워버리면서 차츰 옷장만한 공간에 길들어갔다. 내 원칙은 무엇이었던가,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향하여 똑바로 걸어가겠다고 다짐했지. 나는 이제 겨우 그 길의 초입에 한발을 내디뎠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내가 없는 동안은 저 세상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견디는 일도 조금은 보탬이 될지도 몰랐다.

단식투쟁을 했던 일들이 생각난다. 한 서른번쯤 했을까. 사일구나 오일팔이니 해방절이니 무슨 국보법 철폐니 무슨 양심수 처우개선이니 하면서 해마다 제철이 되면 행사 삼아서 하던 단식은 길어봐야 사나흘 또는 일주일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그런 단식은 요란하고 표나지. 단식을 통고하고 준비된 성명서를 읽고 밖으로 향한 화장실 창살에 매달려서 표어처럼 단어마디가 딱딱 끝나는 문장으로 샤우팅을 하고 투쟁가를 부르고, 목이 가라앉고 침이 마르면 식기를 가져다 창틀에 요란하게 부딪치면서 이쪽이 비상사태임을 전 사동에 알리고 마지막으로 감방의 철문을 발로 차기 시작한다. 발뒤꿈치로 내지르다가 아프고 힘에 부치면 빗자루나 양동이로 두드리기도 한다. (P64-65)


나는 일반수와 달리 타협할 여지가 없으므로 마루에 붙어서 기어다니며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쓸어본다. 구석이나 모퉁이에 판자가 조금이라도 들뜨거나 움직이는 곳이 있으면 그곳을 계속해서 발을 바꿔 가며 눌러댄다. 한시간쯤 그러고 나면 손가락 끝에 못의 대가리가 조금 튀어나온 것을 알게 된다. 뒤로 비스듬히 누운 채로 못을 손톱 끝으로 잡고 힘을 주어 빼내려고 기를 쓴다. 어떤 경우에는 쉽게 뽑히기도 하고 아니면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고 마루 판자의 못 하나를 뽑는 일이 역사를 바꾸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사업이 되어버린다. 아, 드디어 못이 뽑혔다! 이 작은 쇠붙이야 말로 짐승으로부터 사고하고 일하는 인간으로 나를 바꿔줄 열쇠인 것이다. (P67)

영화 오래된 정원 04.jfif

나는 이번에 발행할 팜플렛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될 오월 이십일 화요일 밤 자동차 부대의 등장에 대하여 타자를 찍어나갔다.

무등경기장 앞에 택시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중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기사들도 보였다. 오후 여섯시까지 모인 택시는 이백여대가 넘었다. 운전기사들은 차를 질서정연하게 모아놓고 지금까지 시내 곳곳에서 목격했던 잔학상과 동료 기사들이 당한 부상과 죽음에 대하여 소식을 나누고 공수부대의 만행을 성토하면서 저지선의 돌파에 앞장서자고 결의했다. 그들은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각자 차에 올라타서 고속도로로 통하는 길을 따라 금남로를 향하여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렬이 금남로에 이르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저지선 앞에서 대치중이던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곧 그들은 손에 손마다 쇠파이프, 각목, 화염병, 곡괭이, 식칼, 낫 등속으로 들고 돌멩이를 던지며 차량을 따라 엄호하며 돌격했다. 갑자기 돌변한 사태에 놀란 계엄군은 엄청난 양의 최루탄을 쏘아대고 페퍼포그차로 전력을 다해 가스를 뿜어댔다. 마치 모든 시위 군중들을 질식사시켜버리려는 듯 쏘아대는 강력한 가스탄이 앞으로 진격하는 차량들의 유리창문을 부수며 차 안에 떨어졌다. 어지러움과 질식상태를 견디지 못한 운전기사들은 계엄군과 겨우 이십여 미터를 남겨두고 멈추었다. 차를 멈춘 운전기사들은 방향감각을 잃고서 연기 속에서 사방을 헤맸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고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면서 비틀거렸다. 이 틈을 타고 계엄군이 앞으로 돌진하여 곤봉으로 기사들의 머리를 타격하면서 운전기사 한사람에 서넛이 달려들어 패고 짓밟고 나서 연행해갔다. 뒷줄의 기사들은 재빨리 운전석에서 뛰어내려 피신했지만 수십명이 연행되어갔다. 차량을 엄호하던 시민들도 길 옆이나 부서진 차의 틈바구니에 숨어서 돌을 날렸다. 계엄군은 특공대답게 돌을 무릅쓰고 뛰쳐나왔다. 밀려든 차량들은 앞에서 저지를 당하는 바람에 서로 부딪치며 대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수백대의 차량들은 거의 유리창들이 깨어져버렸으며 계엄군 쪽에서는 앞등의 불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고 전방을 살필 수가 없었으므로 곤봉이나 총 개머리판으로 모든 차량의 앞등을 깨부수며 전진했고 시민들은 끈질기게 투석을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계엄군은 가까스로 시민들을 차량시위 대열의 끝까지 밀어붙였다. (P95-96)


나는 다시 열에 떠 있는 채로 까무룩하고 졸았던 듯싶다. 현우씨의 꿈을 꾸었다. 그는 어둠속의 내 방안에 들어와 벽에 기대어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모로 누운 채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고 어찌된 일인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빙긋이 웃고 있었다. 언제 왔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안은 어느 틈에 다시 갈뫼의 그 방으로 바뀌었다. 그가 기대고 앉은 벽 위로 창호지 바른 들창문이 보였다. 그리고 앉은뱅이책상과 촛불도 보였다. 내 옆에는 작고 네모진 은결이의 자리가 깔려 있었고 이제 갓난아가는 물처럼 가녀린 손을 이불자락 밖으로 빠금히 내밀고 잠들어 있었다. 그는 맞은편에 앉아서 나직하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무슨 노래인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방안은 그의 비좁은 옥방으로 바뀌었다. 아, 이런 데서 사는구나. 내가 본 것은 저만치에 무슨 구멍처럼 뻥 뚤린 옥창뿐이었다. 웬일인지 은결이까지 이곳에 따라들어와 있다. 그가 내 바로 옆에 누워서 두 다리를 구부리고 그 위에 은결이를 태우고는 연신 중얼 거렸다. 말 탄 양반 끄덕. 소 탄 양반 끄덕, 할 적마다 아이가 까르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그는 은결이를 내게 넘겨주더니 슬그머니 일어선다. 어디 가요. 잠깐 기다려요, 하며 일어나 그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려 하지만 몸을 꼼짝할 수가 없다. 은결이가 기어서 제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문만 남아 있고 그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은결이도 없어지고 앙앙대는 울음소리만 귓바퀴에 가득 한다. 나는 아이를 찾으려고 몸을 뒤척이며 두리번거린다. (P102)


내가 석방된 지 이십여일이 지나갔다. 그리고 갈뫼에서 사박오일을 보냈다. 나는 윤희가 남겨둔 노트며 낡은 화첩들이며 편지묶음들을 읽으면서 밤이 깊을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거기에는 내가 잃어버린 바깥세상의 인생이 있었다. 처음 며칠 동안 격앙되었던 감정들은 지금 조금씩 무디어져가고 있다. 울컥하면서 명치를 치받던 느낌은 슬픔이나 억울함 같은 구체적인 것이 아니었고 마치 피부의 감촉 같은 것이었다. 무감동하게 바짝 마른 황야의 돌처럼 굳어 있던 마음속으로 촉촉한 물기가 번져오는 느낌이었다. 여름날 석양녘에 낮잠을 자고 깨어난 것과도 같이 사람들이든 산과 들의 풍경이든 너무도 선명하고 새롭고 뚜렷해서 낯설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거울 속에서나 자신을 볼 수밖에 없으므로 나의 두 눈은 화면 이쪽의 렌즈에 지나지 않고 세상은 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이 저 바깥쪽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P111)

영화 오래된 정원 18.jfif

오선생님이라면 혹시..... 오현우 선생님인가요?

네.......

대답만 하고 나는 다시 할말을 잃었다. 목소리는 침착하게 이어졌다.

저는 만나뵌 적이 없지만, 나오셨다는 소식은 신문에서 봤습니다.

그네는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서 연이어 말했다.

언니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삼년 전에...... 암으루요.

나는 같은 어조로 말했다.

알구 있습니다.

아, 편지........ 받으셨군요. 그 무렵에 누님 되시는 분의 학교루 보냈어요.

나와서 봤지요.

이제 한 이주 되셨지요?

네, 그쯤 되었어요.

지금 어디 계세요?

갈뫼에 내려와 있습니다.

잠깐 말이 끊겼다. 나는 그네가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는 불안해진 내가 불렀다.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에, 갈뫼에 가셨군요. 언니 떠나고 나서 주욱 못 가봤다가 지난 겨울에 은결이하구 있다가 왔는데......

은결이요..........?

드디어 내가 도달하려고 했던 말의 시초를 잡은 셈이었다.

거기 계시면 다 아시겠지요. 지금 열여덟. 고삼이랍니다.

그렇군요.

하고 나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며칠 후에 서울 올라가면 한번 뵙겠습니다. (P120-121)


언니나 우리는 아이에게 아버지에 관한 얘기는 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려선 미국에 갔다고 그랬구요. 몇 년 전부터는 돌아가셨다구만 해왔어요. 아까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나서 언니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바깥세상에 나오셨으니 당연히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시간은 어느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구요.

나는 거기서 슬그머니 끼여들기로 했다.

정희씨 판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곧 그애도 어른이 될 테지요.

네, 그렇습니다. 대학에 가서 생활의 폭도 넓어지구 그러면 자연스럽게 되지 않겠어요? 나는 조금 전까지 은결이하구 얘길 나누었어요. 즈이 아버지 친구고 돌아가신 엄마하구두 친구였던 분이라구 그랬어요. 은결이하구 한번 통화하구 싶어하신다구요.

나는 처음처럼 또 가슴이 두근거렸다. (P123-124)


그래, 팔십오년 가을쯤이었을 거야. 그 전해부터 정치범 장기수들에게도 귀휴와 사회참관이 시작되었으니까. 사회에서의 폭압도 유화국면으로 바뀌었듯이 그 무렵부터 전향제도가 폭력에서 회유로 전환되었다. 선배들은 칠십년대에 지도를 맡은 폭력배들에게서 고문을 받으며 죽어나갔고 버티던 이들도 여러 사람이 자살했다. 나는 구치소에서 교도소를 넘어가자마자 먹방에 갇히기도 하고 개밥을 먹기도 하면서 전향공작에 시달렸다. 예전의 공작반은 이름만 전담반으로 바뀌었고 교무과와 보안과가 서로 경쟁적으로 성과를 올리려고 우리를 달달 볶았다. 공안수든 시국사범이든 간첩조작사건이든 이른바 집시법 사건이든 가리지 않고 머릿속의 사상을 바꿀 것을 끈질기게 강요했다. 요즈음 뱃속을 관찰하는 투시기가 나온 것처럼 머리에다 대고 비추어보면 붉고 푸른 색깔이 판명되는 기계라도 발명해야 할 판이었다. 내가 빨갱이인지 파랭이인지는 나도 잘 몰랐다. (P127)


영화 오래된 정원 19.jfif

팔십칠년 봄에 나는 대학원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방대학에 강사자리를 얻어서 일주일의 이틀을 지방에서 보내다 오곤 했다. 봄부터 각 지방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이어서 초여름에 이르도록 박종철군 고문치사 규탄과 호헌철폐를 위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유월에 이르러 항쟁은 차츰 대단원을 향해서 치달려갔다. 나도 어쨌든 동창들 관계로 사회문화단체에 적을 두고 있어서 그 무럽에는 여러번 불려나갔다. 백발 노인이 되어 버린 선배들부터 우리 같은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시민시위대는 종로에서 명동으로 시청 앞에서 서울역으로 차도에까지 발 디딜 틈도 없이 군중을 이루어 행진했다. 나도 무슨 힘이 남아 있어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는지 모른다. 모두들 최루탄에 견딜 수 있도록 비닐봉지와 마스크를 쓰고 멀리 나가지도 못하는 보도블록 조각을 팔매질했다. 전국에서 수백만이 되는 여러 계층 군중들이 온통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래, 그때에 우리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파쇼독재를 몰아내고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새롭게 세우리라 작정했다. 군부는 친위 쿠데타 직전에 한걸음 물러나 직선제를 공표하는 선에서 전국적인 항쟁을 잠재웠고 그때부터 우리의 실패가 시작되었다. 항쟁이 만들어놓았던 공간 안에서 이제껏 눌려만 살아왔던 노동자들의 생존권투쟁이 시작되었지만 대중은 그들과 하나가 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직선제로 선거에 의하여 정권을 바꾸는 길만이 유일한 것처럼 보였다. 항쟁이 끝나고 나서 곧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P180-181)


미경아, 예술과 혁명이 가는 길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처음 시작했던 삶으로 되돌리려는 안간힘이야. 지상에서 비롯된 새벽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지상에 세워진 한낮의 모든 허접쓰레기 같은 제도를 부숴버리는 일.

나는 다시 먹을 것으로 돌아가마. 아름다운 젊은이 예수가 처음에 출발했던 이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엇이었겠어? 땅에서 가장 소박하고 욕심없는 식사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상의 양식으로서. 죽음을 앞둔 그에게 최후의 만찬은 사실은 새로운 출발점이었던 거야. 죽음이 산것들의 새로운 탄생이듯이. 그러면서 그는 작별을 고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지. 수많은 환쟁이들이 그의 마지막 밥상 모습을 수천점이나 그렸단다. 굳은 흑빵과 막 거른 거친 포도주가 전부인 식사.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미경아. 이 문디 가시나야, 사랑은 입술에 발린 루주처럼 혓바닥 위에 얹힌 말재간이나 추상적이고 거창한 짓이 아닐거야. 글쎄 즈네들이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간대. 웬만한 자극 가지고는 놀라지 않는 세월이니까 말들을 과격하게 해. 사랑은....... 전체의 절반은 밥 같은 몸이고, 절반의 절반은 끊임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 같은 일상이고, 절반 중에 그 나머지의 절반은 주변의 이웃이 완성시켜준단다. 그렇게 늙어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다들 절반도 못 가서 실패하고 그리고 노년은 쓸쓸한 각자의 고독이야. 절반의 절반까지만 가도 다행이고 거기서 못다한 건 후생에서나 다할까.

이제 다시금 먹는 이야기. 내가 아는 이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더라. 전쟁 끝난 직후에 여름 우박이 오고 날이 가물고 그래서 초겨울이 왔는데 식량이 떨어졌대. 온 식구가 방에 군불을 때고 누웠는데 밤에는 차라리 나은데 한낮에는 못 견디겠더래. 갑자기 아버지가 비칠거리며 텃밭으로 나가더니 괭이로 땅을 파더래요. 개나 말이 배고프면 땅을 파듯이. 그러곤 치명적으로 기운이 빠질 텐데도 진땀을 흘리며 괭이질을 했다지 뭐야. 굶주림을 무엇으로 극복해, 세계에 물질이 생긴 이래로 모든 것을 이루어낸 노동으로, 그것으로 모여진 힘으로 극복해야 해. (P190-191)


나는 그곳에 가봤어. 네가 신나를 뿌리고 불덩이가 되어 떨어졌다는 공장 정문 건너편 그 건물 옥상에 올라가봤어. 일층은 부대찌개 전문식당이고 이층은 다방이고 그 위는 당구장이더라. 나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게 당구장 앞문을 슬쩍 지나서 가파른 시멘트 층계로 올라가 그 끝에 있는 작은 철문에 이르렀다. 녹슨 문을 밀어보았더니 요술처럼 쪽문이 슬그머니 열리는 거야. 그래서는 한발을 내딛자마자 삭막한 슬라브 지붕 위에 서게 된 거야. 빈 소주병들이 뒹굴어다니고 오줌 지린 냄새도 났어. 나는 네가 섰던 자리에 정확하게 가서 발을 디뎌볼 수가 있었다. 공장 정문이 똑바로 보이는 바로 그 지점이겠지. 노동자들이 길을 메우고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퇴근시간 무렵이었을거야. 너는 무엇처럼 보였을까. 아마 꽃은 아니었을걸. 차라리 네가 뿌린 유인물이 그렇게 보였겠지. 너는 타오르는 물체처럼 그냥 털퍼덕, 떨어졌어.

내가 곁에 있었다면, 우린 다 같은 딸인데도. 내가 엄마가 되었을 것 같애. 내 손으로 쓰다듬어주면 너의 그슬린 머릿카락은 푸슬푸슬 부서져내리고 손가락은 타다 남은 삭정이 같았겠지만. (P198)


영화 오래된 정원 05.jfif

나는 여길 떠나고 싶어했어요. 봄에 은결이를 정희네로 보내고는 더욱 그랬지요. 정희두 그맘때는 아들을 낳아서 벌써 세 살이 되었구요. 유학이나 가버릴 작정을 했지요. 나는 바깥에서 거기에 있던 나를 살펴보고 싶었는지두 몰라요. 뉴욕은 나에게 맞지 않을 것 같았어요. 너무 복잡한 건 음식이든 옷이든 불편하지요. 빠리는 나중에 확인했지만 자유가 축제처럼 펄럭이다가 일시에 젖어 떨어지는 만국기 같았어요. 나는 그냥 무덤덤하게 베를린으로 갔어요. 첩보영화에 많이 나오는 음울한 습기의 도시로. (P200)


장벽쪽으로 다가서자 한쪽을 헐어낸 곳으로 자동차와 동독 시민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행렬에 길을 열어준 서독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로 맞고 있었지요. 성미 급한 서독 젊은이들은 장벽의 곳곳에서 해머로 벽을 부수려고 내려치기도 하고 벽 위에 올라가기도 했어요. 장벽 밖으로 나와 서로 포옹하는 젊은 남녀도 보였고 어린이들과 가족을 태운 남자가 차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장벽의 허물어진 사이로 서행을 해서 나오는 것도 보였구요. 유니폼에 가죽장화를 신고 권총을 찬 경비병들과 코트를 입은 장교들은 묵묵히 그런 광경을 보기만 하고 서 있어요. 사방에서 합창소리가 요란했어요. 어느 틈에 마리가 샴페인을 따서 몇모금 병째로 마시고는 내게 내밀어주더군요. 나도 얼결에 병을 들고 마셨어요. 장벽을 나오는 사람과 길가에 섰던 사람들의 포옹이며 인사말들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울컥 하고 격한 느낌이 올라와서 그만 울기 시작했지요. 머리카락은 이미 이슬비에 젖어 있었고 얼굴도 촉촉했는데 내 눈물이 뜨겁게 느껴지더군요.

너 왜 우니?

마리가 내게 물어요. 마주 쳐다보니까 그네도 울고 있잖아요.

우리나라가 생각나서요. 당신은 왜 울어요? (P245)


영화 오래된 정원 20.jfif

사람은 어떤 경우에 낯선 게 좋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기 집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남의 집에 가서 잘 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너는 아직 성인두 아니구 가출한 거나 같아. 나는 네 가족에게 널 돌려보내주고 싶구나.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네가 결정할 문제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깊이 생각해봐라. 평소에 무슨 불만이라두 있었어?

그전부터 내 맘대루 된 건 하나두 없시오. 내가 좋아서 기계를 전공한 것두 아니구.

응, 그건 잘못되었구나. 한데 유학 나오고 싶은 다른 젊은이들도 많이 있었겠지.

기럼요, 전 군에두 안 갔는데요. 수십 대 일이야요. 시험이 꽤 까다로와요.

나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내가 염려하는 건 누군가 널 이용하는 일이다. 북에 있건 남에 있건 사람의 일생은 누구에게나 귀한 거야. 네가 처지가 아주 불리하고 살기 힘들다면 여긴 선진국이니까 누구나 망명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고생두 식구들 있는 데서 겪고 나면 나중에 훨씬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여튼 이선생은 영수에게 성의를 들여서 얘기했습니다. 나는 그가 진지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런 귀찮은 문젯거리를 공평무사하게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고 일단 신뢰가 갔어요. 서로 귀순했다고 우기고 떠들어대지만 내 생각으로도 나의 삶은 남한사회의 산물입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지요. 당신도 그랬지 않아요? 반대로 북의 인민들도 그렇겠지요. 그쪽이나 이쪽이나 자기들 안에서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구 생각했어요. 그게 우리들 분단의 조건입니다. (P264)


나는 겉으로는 전혀 의기소침해지지 않았어요. 그동안 열심히 이것저것 그린 덕분에 사십여점의 작품이 쌓였고 대작도 여덟 점이나 해냈거든요. 티어그르텐 부근의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어요. 마이스터쉴러를 마치는 데도 얼마쯤 도움이 될 거였어요.

입구 쪽에서부터 크로키들을 보여주고 소품과 큰 작품들을 잘 섞어서 배치하고 최근에 변화를 보인 것들을 맨 마지막에 걸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마리의 어린이 낙서 같은 함축된 선과 표현의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에요. 다만 나는 그런 느낌을 더 구체화시켰고 민화의 단순함과 축약을 활용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과거의 흔적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 양식에서 처음 시작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주관은 형상의 안쪽에 숨기고 객관성은 양식화를 통해 일종의 기호로써 드러내는 식이었지요. 그 기호를 보는 이가 자기 감각에 의해서 재구성하고 번역해낼 테니까요. 형상은 일그러지거나 겹쳐지거나 뭉개졌지만 기하학적인 어떤 제도의 틀 안에 갇혀 있기는 마찬가지였지요. 나의 큰 작품들은 이 제도의 틀을 더욱 엄격하게 갖추어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 안에 단순한 형상의 물질들이 터질 듯이 와글대는 그런 그림이었습니다 (P284)


나는 언젠가 친구를 비판하면서, 우리는 그 시대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라고 절망적으로 외쳤던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요새 와서 나는 이 말을 수정할 작정입니다. 지상에서 어느 때에나 사람들은 사랑을 했어요. 세상에 드러나는 모양이 시대마다 다르기는 했어도. 물살에 씻기어 닳아지고 부서지는 돌멩이처럼 일상에 시달리는 벗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회한에 잠기지 않기를 바래요. 지금 그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풍요로운 인생의 깊이를 존중하라고. 그리고 더욱 성숙한 사랑으로 지난날과 미래를 껴안게 될 것을 기대하구 있어요. (P303-304)


늘상 그렇듯이, 누군가를 묻고 애도하고 그러나 비통하게 울지는 않으면서 항상 내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감정이 북받쳐오른다. 내일이면 이러한 감정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살자,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삶 전체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아주 나이든 사람은 내향적이고 무감각하다. 그래, 하지만 덧붙인다면 이 내향적인 것은 아주 순수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머니의 존재가 늘 그러했듯이. (P306)


나는 한 남자의 아내 노릇도 아이의 엄마 노릇도 못하고 사십대가 되어서야 진정으로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해내지도 못한 실패한 예술가로서 이제 겨우 모성이란 것이며 그 세계관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때에 모성 자체를 뿌리째 앗아가는 병에 걸리다니. 인생은 참 묘하기도 하지요!

나 당신에게 부탁 한 가지 할게요. 언젠가 될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내 갈뫼 노트를 다 읽을 즈음이면 우리들의 아이 은결이를 알게 되겠지요. 감옥에 있는 동안에 나는 당신이 모르기를 바랐지만 언젠가는 당장 달려가서 아기를 철창 사이로 내밀어 그애의 웃음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더랬어요. 그리고 한동안은 그애에게서 또 당신에게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죠. 내게 가르쳐주거나 베풀어주지 못할 미래의 것들, 남겨두었다가 당신의 딸에게 모두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P308)

영화 오래된 정원 21.jfif

어느 여름날 일어나 운동시간에 나갔다가 방송이고 신문이고 난리가 나 있었다. 유신시대 이후 한강 남쪽에 번성한 중산층 구역에서 다리와 백화점이 차례로 붕괴했다. 그맘때에는 민간정부로 외형은 바뀌었다지만 사실은 군사파쇼의 이행기에 지나지 않았는데 삼십여년 근대화도 종결인 셈이었다. 죽어가고 살아남고 그리고 무너진 시멘트와 흙더미 속에서 버티다가 구조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일주일 이상이나 계속되었다. 여론은 불법적인 건축변조와 위험진단을 무릅쓰고 붕괴될 때까지 고객을 대피시키지 않은 채 영업을 강행한 기업주를 질타했다. 그러다가 별의별 묵은 사실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는 원래 일제 식민지 치하의 정보 끄나풀이었다. 그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으나 나중에 만주에서 일본 영사관의 문관이 되었다. 해방되어 귀국해서 미군정의 방첩대에 근무했고 전쟁중에는 미군에 배속되어 중국군 포로심문관이 되었다. 유창한 중국어와 만주의 항일연군 맥락을 이해하는 전문성이 그를 남한사회에서 유능하게 했다. 그는 정보부 창설에 관여했고 미군의 연락관을 했으며 당시의 미군 기지창이던 알짜의 땅을 불하받았다. 그러고는 부동산 재벌이 되어 아파트를 짓고 백화점을 지었다고 신문은 자세하게 써놓았다. 남에서는 개발독재와 근대화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었으며 북에서는 그맘때부터 대대적인 굶주림과 탈북이 진행되었다. 무너지기 시작한 분단시대의 마지막 단원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주변부의 혼란과 변화는 어쩌면 더욱 깊숙이 오래 이행될지도 몰랐다. 내가 할 일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아마도 일이 남아 있다면 그건 바로 일상과의 씨름이다. (P309-310)


기둥을 돌아서 내려가는데 저 계단 아래에 윤희가 서 있었다. 옷이 흰색인지 하늘색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얼굴은 나를 향하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향하여 비틀거리며 내려갔다. 마주 오는 사람들과 부딪치고 두 손을 저어 뿌리치면서 허둥지둥 걸음을 떼었다. 조금 아까만 해도 분명히 보였던 그네의 모습은 인파 속에 스며들었는지 이젠 사라졌다. 필름을 거꾸로 돌리면 방금 전에 나타났던 자취가 다시 반복될 수 있을까. 나는 손수건을 내어 이마의 땀을 씻고 두어 번 긴 숨을 내쉬며 숨을 골랐다. 찻집의 간판과 작은 격자창의 유리문이 바로 건너편에 보였다.

너희들은 어디로 날아가느냐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누구로부터 떠나왔느냐

모든 것들로부터

그들이 함께 있은 지 얼마나 되었느냐

조금 아까부터

그러면 언제 그들은 헤어질 것이냐

이제 곧. (P315)

영화 오래된 정원 22.jf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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