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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영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81년

by 노용헌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1982), MBC드라마 원미동 사람들(1988)


1978년에 출간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도시 판자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 빈민층의 아픔을 난장이 가족의 시점으로 그린 단편소설이다. 낙원구 행복동의 도시 판자촌에 살아가는 난장이 가족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재개발사업지구로 지정되어 철거 계고장을 받고 아파트 입주권을 팔고 떠나야 하는 도시 빈민층의 애환과 고통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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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영호,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터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통장이 이걸 가져왔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

“철거 계고장예요.”

“기어코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집을 헐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할 것 중의 하나가 이제 나온 셈이구나!”

어머니는 식사를 중단했다. 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내려다보았다. 보리밥에 까만 된장, 그리고 시든 고추 두어 개와 조린 감자.

나는 어머니를 위해 철거 계고장을 천천히 읽었다.

낙원구

주택 444, 1-197x. 9.10

수신: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김 불이 귀하

제목: 재개발사업구역 및 고지대건물 철거 지시

귀하 소유 아래 표시 건물은 주택 개량 촉진에 관한 임시 조치법에 따라 행복 3구역. 재개발지구로 지정되어 서울특별시 주택 개량 재개발사업 시행 조례 제 15조. 건축법 제 5조 및 동법 제 42조의 규정에 의하여 1-197x-9-30까지 자진 철거할 것을 명합니다. 만일 위 기일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을 경우에는 행정대집행법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강제 철거하고 그 비용은 귀하로부터 징수하겠습니다.

철거 대상 건물 표시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xx구조 xx건평 xx평

낙원구청 장 (P80-81)


영희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몇 사람의 거간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아파트 입주권을 팔라고 했다. 아버지가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책을 읽는 것을 처음 보았다.

표지를 쌌기 때문에 무슨 책을 읽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영희가 허리를 굽혀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난장이가 간다’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말했다.

어머니는 대문 기둥에 붙어 있는 알루미늄 표찰을 떼기 위해 식칼로 못을 뽑고 있었다. 내가 식칼을 받아 반대쪽 못을 뽑았다. 영호는 어머니와 내가 하는 일이 못 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 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을 빨리 떼어 간직하지 않으면 나중에 괴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바닥에 놓인 표찰을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영희가 이번에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너희들이 놀게 되지만 않았어도 난 별 걱정을 안 했을 거다.”

어머니가 말했다.

“스무날 안에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겠니. 이제 하나하나 정리를 해야지.”

“입주권을 팔려고 그래요?”

영희가 물었다.

“팔긴 왜 팔아!”

영호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아파트 입주할 돈이 있어야지.”

“아파트로도 안 가.”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여기서 그냥 사는 거야. 이건 우리 집이다.”

영호는 성큼성큼 돌계단을 올라가 아버지의 부대를 마루 밑에 놓았다.

“한 달 전만 해도 그런 이야길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가 내준 철거 계고장을 막 읽고 난 참이었다. (P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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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철거 계고장을 마루 끝에 놓고 책을 읽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무엇을 바라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그 동안 충분히 일했다. 고생도 충분히 했다. 아버지만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또-- 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아버지보다 더 심한 고생을 했을 수도 있다. 나는 공장에서 이상한 매매 문서가 든 원고를 조판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짜기 위해 나는 열심히 손을 놀렸다. ‘婢 金伊德의 한 소생 奴 今同 庚寅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金今伊 丁卵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德水 己巳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存世 辛未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永石 癸酉生, 奴 金今伊의 양처 소생 奴 鐵壽 丙戌生, 奴 金今伊의 양처 소생 奴 今山 戌子生.’ 나는 그때 이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 판을 짜고 다음 판을 짜나가다 겨우 알았다. 노비 매매 문서의 한 부분이었다. 나는 열흘 동안 같은 책을 조판했다. 그 열흘 동안 나는 아버지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할머니, 할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할머니들이 최하층의 천인으로서 무슨 일을 해 왔는지 알고 있었다. 어머니라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음 편할 날 없고, 몸으로 치러야 하는 노역은 같았다. 우리의 조상은 세습하여 신역을 바쳤다. 우리의 조상은 상속, 매매, 기증, 공출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엄마를 잘못 두어 이 고생이다. 아버지하고는 상관이 없단다.”

어머니는 장남인 나에게만 말했다. 외할머니에게 들은 말을 나에게 전한 것이다. 천 년을 두고 우리의 조상은 자손들에게 이 말을 남겼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씨종의 자식이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 대에 노비제는 사라졌다. 증조부 내외분은 아무것도 몰랐다. 나중에서야 해방을 맞았다는 것을 알았으나 두 분이 한 말은 오히려 ‘저희들을 내쫓지 마십시오’였다. 할아버지는 달랐다. 할아버지는 유습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늙은 주인은 할아버지에게 집과 땅을 주었다. 그러나 쓸데없는 일이었다. 모르는 면에서는 할아버지나 증조부나 같았다. 증조부대까지는 선조들이 살아온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나 할아버지 대에는 그것이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교육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집과 땅을 잃었다.

“할아버지도 난장이였어?” (P86-88)


영희의 눈에 다시 눈물이 괴었다 커도 마찬가지였다. 계집애들은 잘 울었다. 내가 영희 옆으로 다가갔을 때 영주는 장독대 바닥을 가리켰다. 장독대 시멘트 바닥에 ‘명희 언니는 큰 오빠를 좋아한다’고 씌어져 있었다. 집을 지을 때 남긴 낙서였다. 영희가 웃었다. 우리에게는 그 때가 제일 행복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랑에서 돌을 져 왔다. 그것으로 계단을 만들고, 벽에는 시멘트를 쳤다. 우리는 아직 어려 힘드는 일을 못 했다. 그래도 할 일이 많았다. 우리는 며칠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떼를 지어 동네를 돌았다. 그때만은 더러운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도 울음을 그쳤다. 윽박지르는 주인의 기세에 눌린 개들도 짖기를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온 동네가 조용해졌다. 갑자기 평화스러워져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풍기는 냄새가 창피했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들과 악수할 때 아버지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아버지가 어떤 자세를 취했건 상관이 없었다. 난장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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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사람은 개천에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고, 우리 동네 건물을 양성화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른들을 따라 크게 손뼉을 쳤다. 다음 사람은 먼저 사람이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겠다고 하니 구청장으로 보내고, 자기는 이러이러한 나라 일을 하겠으니 그 일을 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또 손뼉을 쳤다. 우리도 따라 쳤다. 커서까지 나는 그때 일을 종종 생각하고는 했다. 두 사람의 인상은 아주 진하게 나의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계획을 내놓았었다. 그런데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혹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 줄 사람이었다. (P90)


나는 명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초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계속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밀어 줄 힘이 없었다. 자세히 보면 아버지는 같은 또래의 사람들보다 많이 늙어 보였다. 우리 식구들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신장은 백십칠 센티미터, 체중은 삼십 이 킬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은 이 신체적 결함이 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아버지가 늙는 것을 몰랐다. 아버지는 스스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체념과 우울에 빠졌다. 실제로 이가 망가져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눈도 어두워지고 머리의 숱도 많이 빠졌다. 의욕은 물론 주의력과 판단력도 줄었다. 아버지가 평생을 통해 해 온 일은 다섯 가지이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이다. 이 일들만 해 온 아버지가 갑자기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다. 서커스단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처음 보는 꼽추 한 사람을 데리고 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의 조수로 일하면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무대 위에서 해야 할 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우리들도 아버지를 성토했다. 아버지는 힘없이 물러섰다. 꼽추는 멍하니 앉아 우리를 보았다. 꼽추는 눈물이 핑 돌아 갔다. 그의 뒷모습은 아주 쓸쓸해 보였다. 아버지의 꿈은 깨어졌다. 아버지는 무거운 부대를 메고 일을 찾아 나갔다. (P95)


“아버지는 너무 지치셨다.”

어머니가 말했다.

“알겠니? 이젠 아버지를 믿지 마라. 너희들이 아버지 대신 일해야 한다.”

어머니가 울었다. 어머니는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 접지 일을 했다. 고무골무를 끼고 인쇄물을 접었다. 나는 겁이 났다. 나는 인쇄소 부 조역으로 출발했다. 땀을 흘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명희는 나를 만나 주지를 않았다. 아주 쌀쌀했다.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을 두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마음이 차라리 편해졌다. 우리를 해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이 일정한 구역 안에서 보호를 받듯이 우리도 이질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았다. 나는 우리가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조역, 공목, 약물, 해판의 과정을 거쳐 정판에서 일했다. 영호는 인쇄에서 일했다. 나는 우리가 한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싫었다. 영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호는 먼저 철공소 조수로 들어가 잔심부름을 했다. 가구 공장에서도 일했다. 그 공장에 가 일하는 영호를 보았다. 뽀얀 톱밥 먼지와 소음 속에 서 있는 작은 영호를 보고 나는 그만두라고 했다. 인쇄 공장의 소음도 무서운 것이었으나 그곳에는 톱밥 먼지가 없었다. 우리는 죽어라 하고 일했다. (P96-97)

“아버지가 어딜 가셨을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불안해졌다.

“얘들아 아버지를 찾아 봐라.”

나는 아버지가 놓고 나간 책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이었다. 영희는 온종일 팬지 꽃 앞에 앉아 줄 끊어진 기타를 쳤다. <최후의 시장>에서 사온 기타였다. 내가 방송통신고교의 강의를 받기 위해 라디오를 사러 갈 때 영희가 따라왔었다. 쓸 만한 라디오가 있었다. 그런데, 영희가 먼지 속에 놓인 기타를 들어 퉁겨 보는 것이었다. 영희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기타를 쳤다. 긴 머리에 반쯤 가려진 옆얼굴이 아주 예뻤다. 영희가 치는 기타 소리는 영희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나는 먼저 골랐던 라디오를 살 수 없었다. 좀더 싼 것으로 바꾸면서 영희가 든 기타를 가리켰다. 그 라디오가 고장이 나고 기타는 줄이 하나 끊어졌다. 줄 끊어진 기타를 영희는 쳤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아버지는 개천 건너 주택가에 사는 젊은이에게서 빌렸다. 그의 이름은 지섭이었다. 지섭은 밝고 깨끗한 주택가 삼층집에서 살았다. 지섭은 그 집 가정 교사였다. 아버지와 그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지섭이 하는 말을 나는 들었었다. 그는 이 땅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왜?”

아버지가 물었다.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P101-102)


“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할 최소한도의 대우를 위해 싸워야 돼. 싸움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부딪쳐 일어나는 거야. 우리가 어느 쪽인가 생각해 봐.”

“알아.”

형은 점심을 굶었다. 점심시간이 삼십 분밖에 안 되었다. 우리는 한 공장에서 일했지만 격리된 생활을 했다. 공원들 모두가 격리된 상태에서 일만 했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의 일 양과 성분을 하나하나 조사해 기록했다. 그들은 점심시간으로 삼십 분을 주면서 십 분 동안 식사하고 남는 이십 분 동안은 공을 차라고 했다. 우리 공원들은 좁은 마당에 나가 죽어라 공만 찼다.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간격을 둔 채 땀만 뻘뻘 흘렸다.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을 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 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의 악조건과 흘린 땀에 못 미치는 보수가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자랄 나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발육 부조 현상을 우리는 나타냈다.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노-사가 공평히 나누어 갖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P106-107)


형은 고민하는 사나이의 표정을 종종 지어 보이고는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공책에 옮겨 적기도 했다. 형의 공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도 적혀 있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 나 주먹만은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반대 의견을 가지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십 칠 세기 스웨덴의 수상이었던 악켈 옥센스티르나는 자기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세계가 얼마나 지혜롭지 않게 통치되고 있는지 아느냐? 사태는 옥센스티르나의 시대 이래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지도자가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희생이라는 말은 전혀 위선으로 변한다. 나는 과거의 착취와 야만이 오히려 정직하였다고 생각한다./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 짓는 능력은 마비 당하고 또 상실 당한 것은 아닐까?/세대와 세기가 우리에게는 쓸모도 없이 지나갔다. 세계로부터 고립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 무엇 하나 주지 못했고, 가르치지도 못했다. 우리는 인류의 사상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못했고.... 남의 사상으로부터는 오직 기만적인 겉껍질과 쓸모없는 가장자리 장식만을 취했을 뿐이다./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말.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의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어떤 일을 준다는 것이다.’ (P109-110)


“진실을 말하고 묻혀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너희들이 그 꼴이 되었구나.”

우리는 개천 위에 놓은 시멘트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난간 사이에 두 다리를 내리고 앉아 술을 마셨다. 아버지가 술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리 저쪽 끝에서는 곯아떨어진 주정뱅이가 코를 골았다. 아버지의 주량은 그의 반의 반도 안 되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주정뱅이 주량의 반을 마셨다. 밤이 늦어 동네 사람들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두 집만 깨어 있었다. 주정뱅이네 집과 우리 집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돌아갈 것 같았다. 형도 아버지가 든 술병을 빼앗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 눈을 감는 날의 일을 생각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다. 언덕 위 교회의 목사는 달랐다. 그는 인간의 숭고함, 고통, 구원을 말했다. 나는 인간이 죽은 다음에 또 다른 생을 시작한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숭고함도 없었고, 구원도 있을 리 없었다. 고통만 있었다. 나는 형이 조판한 노비 매매 문서를 본 적이 있다. 확실히 아버지만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이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첫 번째 싸움에서 져 버렸다. (P114-115)


“이십오만 원이 분명하죠?”

어머니가 물었다. 사나이를 따라온 나이 든 사람이 검은 가방을 열어 돈을 보여 주었다. 그는 마루에 앉아 매매 계약서를 썼다.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 서류가 든 봉투와 도장을 가지고 나왔다. 아버지는 계약서 매도자란에 ‘金不伊’라고 쓰고 도장을 눌렀다. 나이 든 사람은 아버지의 이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버지 이름이 갖는 아픈 바람의 뜻을 그가 알 리 없었다. 어머니는 소중하게 싸 두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넘겨주었다. 식칼 자국이 난 표찰, 아침 수저를 놓고 가슴을 세 번 치게 한 철거 계고장, 집을 헐값에 버리기 위해 생전 처음 내 본 인감증명 두통, 미리 서명해 두었던 명의 변경 신청서, 힘 하나 없는 식구들의 이름과 나이가 차례대로 적혀 있는 주민등록등본 두 통. 마당가 팬지꽃 앞에 앉아 영희가 고개를 숙였다. 사나이가 돈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머리를 저으며 뒤로 물러앉았다. 아버지가 그것을 받았다. 꼭 삼 초 동안 들고 있다가 어머니에게 넘겨주었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돈을 받아들었다.

다음날 아침. 명희 어머니는 사람들을 시켜서 집을 헐었다. 어머니가 십오만 원을 갚았다. 두 부인은 손을 마주잡은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용달차가 좁은 골목을 뚫고 들어와 명희네 짐을 실었다. 명희 어머니가 치마를 올려 눈물을 닦았다. (P118-119)


행복동 생활의 마지막 며칠은 우리에게 악몽과 같았다. 우리는 영희를 찾아 헤매었다. 영희를 본 사람은 없었다. 영희는 가방도 들지 않고 집을 나갔다. 갖고 나간 것은 줄 끊어진 기타와 팬지 꽃 두송이 뿐이었다. 나는 좀 큰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이번에도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잔물결이 수초 사이로 밀려왔다. 지섭이 이발관 집 공터를 지나 곧장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 쇠고기가 들려 있었다. 대문 앞까지 나온 아버지가 그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아버지가 쇠고기를 부엌 안 어머니에게 넘겨주었다. 부엌 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형이 안쪽 아궁이 앞에 엎드려 불을 지피고 있었다. 형은 눈물을 씻으면서 일어나 아궁이에 나무를 넣었다. 어머니는 밖으로 나와 눈물을 씻었다. 우리는 며칠 동안 명희네 집에서 나온 나무를 쪼개 때었다. 형은 명희네 안방 문설주를 쪼개 아궁이에 넣고 나왔다. 형의 몸에서 연기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밭은기침을 했다. 아버지와 지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섭은 아버지에게 빌려준 책을 읽었다. 아버지는 그가 감옥살이를 했다고 말했었다. 아버지에 의하면 그는 잘못한 것도 없이 감옥에 갔다, 그는 마루에 걸터앉아 책을 읽었다. 형과 나는 시멘트 담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집들이 다 헐려 곧바로 동사무소가 보였다. 그 너머로 밝고 깨끗한 주택가도 보였다. 그 바른쪽은 슈퍼마킷이 있는 큰길이다. 영희가 한때 일한 빵집이 보였다. 형과 내가 유리창 밖에서 본 영희는 정말 예뻤다. 아무도 영희가 난장이의 딸이라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내 영희를 찾지 못했다. (P121-122)


내가 죽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사막으로 이어지는 지평선이다. 어둘녘에 모래 섞인 바람이 분다. 선 하나로 표시될 그 지형 끝에 내가 알몸으로 서 있다. 다리를 약간 벌리고 팔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머리도 반쯤 숙여 나의 머리카락이 나의 가슴을 덮었다. 눈을 감고 열을 세면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바람 부는 회색의 지평선만 남는다. 이것이 내가 아는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이 영원과 무관할 리가 없다. 우리의 생활은 회색이다. 집을 나온 다음에야 나는 밖에서 우리의 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회색에 감싸인 집과 식구들은 축소된 모습을 나에게 드러냈다. 식구들은 이마를 맞댄 채 식사하고, 이마를 맞대고 이야기했다. 작은 목소리라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실제 모습보다도 작게 축소된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까지 회색이다. 나는 나 자신의 독립을 꿈꾸고 집을 뛰쳐나온 것이 아니다. 집을 나온다고 내가 자유로워질 수는 없었다. 밖에서 나는 우리 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끔찍했다. 두 오빠와 마찬가지로 나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직전에 읽은 늙은 수부가 바다에 떠 있었다. ‘물, 물, 어디를 보나 물뿐, 그러나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배를 잃은 늙은 수부가 바다에 떠 있었다. 물 가운데서 그는 목말라 했다. 밖에서 회색에 싸인 축소된 집과 축소된 식구들을 들여다보고 늙은 수부를 생각했다. 그와 똑같았다. (P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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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혀 다른 세상 사람과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나의 첫 울음은 비명으로 들렸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의 첫 호흡이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모태에서 충분한 영양을 보급 받지 못했다. 그의 출생은 따뜻한 것이었다. 나의 첫 호흡은 상처 난 곳에 산을 흘려 넣는 아픔이었지만, 그의 첫 호흡은 편안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성장 기반도 달랐다. 그에게는 선택할 것이 많았다. 나나 두 오빠는 주어지는 이외의 것을 가져 본 경험이 없다. 어머니는 주머니가 없는 옷을 우리들에게 입혔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강해졌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반대로 약해졌다. 그가 나를 원했다. 그는 원하고 또 원했다. 나는 밤마다 알몸으로 잠을 잤다. 나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오빠들은 다른 공장에 취직이 되어 일을 나갔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잠이 든 듯 만 듯한 상태에서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했다.

“영희야, 넌 집을 나가 뭘 하고 있는 거냐?”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그의 금고 속에 우리 아파트 입주권이 들어 있어요. 그걸 전 밑으로 내려놨어요. 아직 팔리지 않았어요. 팔리기 전에 그걸 꺼내 가지고 갈래요. 그의 금고 번호를 알아놨어요.”

“누가 너더러 그런 짓을 하라고 했니? 빨리 일어나 옷을 입어라.”

“안 돼요, 엄마.”

“우린 성남으로 가기로 했다. 빨리 일어나라.”

“안 돼요.”

“너의 증조할머니 동생 한 분이 알몸 시체로 수리조합 봇물에 막혀 있었단다. 왜 그랬는지 아니? 주인 서방과 잠자리를 함께 했기 때문야. 주인여자가 너의 증조할머니 동생을 사매질해 숨지게 했단다.”

“엄마, 전 달라요.”

“같아.”

“달라요,”

“같아.”

“달라요!”

“넌 이제 그것 때문에 망한다. 어린 게 그것을 좋아해.”

“그래요. 전 좋아해요.”

“망할 것!”

몸부림치다. 눈을 떠보면 밤중이었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날 줄 몰랐다. 나의 몸에서는 그의 정액 냄새가 났다. 그는 나를 좋아했다. 그는 어린 나를 좋아했다. 그는 완전하게 나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도덕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금고에서 우리의 것을 꺼냈다. 그의 금고 속에는 돈과 권총과 칼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돈과 칼도 꺼냈다. 나는 달 천문대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버지는 이미 오십억 광년 저쪽에 있는 머리카락좌의 성운을 보았는지 모른다. 오십 억 광년이라면 나에게는 영원이다. 영원에 대해서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P13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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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누워 난 한겨울 동안 어머니는 취로장에 나가 일했다. 어머니가 집을 나설 때마다 맞았던 그 새벽의 빛깔을 이제 알았다. 자갈 채취선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들려왔다. 내가 탄 택시는 남산 터널을 빠져 시내를 가로질러 달렸다. 죄인들은 아직 잠자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구할 자비는 없었다. 카는 낙원구에서 내렸다. 나는 낙원구의 거리와 골목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다방에 들어가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면서 아버지의 도장이 찍힌 매매 증서를 꺼내 찢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 일대는 채마밭이었다. 나는 차를 마시고 채마밭 위에 깔아 놓은 포장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제 더 이상 헤맬 필요가 없었다. 나는 곧장 행복동 동사무소를 향해 갔다. 동사무소는 아침부터 붐볐다. 내가 줄 뒤에 가서 서는 것을 건설계원이 힐끗 보았다. 그는 일을 하다 말고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난장이 딸 아냐?” (P134)


그는 아직까지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서도 그는 아는 것이 없다. 절망에 대해서도 모를 것이다. 빈 식기들이 맞부딪치는 소리, 손과 발, 무릎, 그리고 이가 추위에 견디지 못해 맞부딪치는 소리를 그는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가 원할 때마다 알몸으로 그를 받아들이며 삼킨 나의 신음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벌겋게 달군 쇠로 인간에게 낙인을 찍는 사람들 편이었다. 나는 가방을 열어 칼을 만져 보았다. 그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건물 안에서 한 사나이가 나왔다. 그가 사나이를 맞아 악수하고 함께 차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승용차는 사람들을 옆으로 밀치면서 주택공사 마당에서 나갔다. 눈물이 또 나의 눈에 내배었다. 그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P140)


“네가 집을 나가구 식구들이 얼마나 찾았는지 아니? 이 방 창문에서도 보이지. 어머니가 헐린 집터에 서 계셨었다. 너는 둘째치구 이번엔 아버지가 어딜 가셨는지 모르게 됐었단다. 성남으로 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안 계셨어. 길게 얘길 해 뭘 하겠니.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벽돌 공장 굴뚝을 허는 날 알았단다. 굴뚝 속으로 멀어져 돌아가신 아버지를 철거반 사람들이 발견했어.”

그런데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다친 벌레처럼 모로 누워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두 손으로 가슴을 쳤다. 헐린 집 앞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키가 작았다. 어머니가 다친 아버지를 업고 골목을 돌아 들어왔다. 아버지의 몸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내가 큰 소리로 오빠들을 불렀다. 오빠들이 뛰어나왔다. 우리들은 마당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갔다.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서서 손을 들어 보였다. 어머니가 조각마루 끝에 밥상을 올려놓았다. 의사가 대문을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가 나의 손을 잡았다.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울지 마, 영희야.”

큰 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 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 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께.”

“꼭 죽여.”

“그래, 꼭.”

“꼭.” (P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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