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은하철도의 밤> 1985년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2022)
“그럼 여러분은 강이라고도 하고 우유가 흐른 자국이라고도 하는 이 희끄무레한 것이 사실은 무엇인지 아세요?”
선생님은 칠판 앞에 걸려 있는 커다란 검은색 별자리 지도에서 아래 위로 이어진 희부연 띠 같은 부분을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캄파넬라가 손을 들었습니다. 이어서 너덧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조반니도 손을 들려다가 문득 그만두었습니다. 분명 그건 모두 별이라고 언젠가 잡지에서 읽었지만, 요즘 조반니는 교실에서 늘 졸기만 할 뿐 책 읽을 짬도 없고 읽을 책도 없다 보니 어쩐지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선생님도 진작에 그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조반니, 너는 알고 있지?” (P9)
선생님은 빛나는 모래 알갱이가 들어 있는 커다란 볼록렌즈를 가리켰습니다.
“하늘의 강은 꼭 이렇게 생겼어요. 이 빛나는 알갱이 하나하나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에요. 이 렌즈의 중간쯤에 태양이 있고 그 옆에 지구가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여러분이 밤중에 이 한가운데 서서 렌즈 속을 둘러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쪽은 렌즈가 얇아서 빛나는 알갱이, 즉 별이 조금밖에 보이지 않겠죠. 하지만 이쪽이나 이쪽은 렌즈가 두껍기 때문에 빛나는 알갱이, 즉 별이 많이 보이고, 멀리 있는 것들은 희부옇게 흐려 보일 거예요.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은하설’입니다. 시간이 다 됐으니까 이 렌즈의 크기나 그 속의 수많은 별들에 대한 얘기는 다음 과학 시간에 계속하도록 하죠. 오늘은 은하 축제날이니까, 여러분도 밖에 나가 하늘을 잘 살펴보세요. 그럼 여기까지. 책과 공책을 넣으세요.”
교실 안은 책상 덮개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 소리며 책을 덮는 소리로 한동안 소란스러웠지만, 이윽고 다들 똑바로 서서 인사한 다음 교실을 나섰습니다. (P12)
조반니가 교문을 나설 때 교정 한구석의 벚나무 밑에 같은 반 아이를 일고여덟 명이 캄파넬라를 둘러싸고 모여 있었습니다. 오늘 밤 은하 축제에 푸른 불을 밝혀 강물에 띄울 하늘타리 열매를 따러 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조반니는 팔을 휘휘 흔들며 성큼성큼 교문을 빠져나갔습니다. 마을의 집들은 오늘 밤 은하 축제를 위해 주목나무 잎으로 만든 공을 매달고 노송나무 가지에 등불을 밝히며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조반니는 집으로 가지 않고 모퉁이를 세 번 돌아 커다란 인쇄소로 들어갔습니다. (P13)
“이번에 오실 때는 너한테 해달 가죽 윗도리를 가져다준다고 하셨지?”
“나를 보면 다들 그 말을 해요. 놀리듯이요.”
“애들이 놀리니?”
“네, 하지만 캄파넬라는 절대로 안 그래요. 캄파넬라는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면 가슴 아파해요.”
“네 아버지와 캄파넬라의 아버지도 너희처럼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더구나.”
“네,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캄파넬라네 집에 데리고 가셨어요, 그땐 참 좋았는데. 나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끔씩 캄파텔라네 집에 들렀고요. 캄파넬라네 집에는 알코올 램프의 열로 달리는 기차가 있어요. 작은 레일 일곱 조각을 이으면 둥근 레일이 만들어지는데, 전봇대랑 신호기도 딸려 있어서 기차가 지나갈 때면 신호기 불빛이 파란색으로 변해요. 한번은 알코올이 다 떨어져 석유를 썼더니 램프가 그만 새까맣게 그을어 버렸지 뭐예요.”
“그랬구나.” (P18)
“강에 가니?”
조반니가 이렇게 말하려다 목이 조금 잠긴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자네리가 소리쳤습니다.
“조반니한테 해달 가죽 윗도리가 생긴대!”
곧바로 모두들 덩달아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조반니한테 해달 가죽 윗도리가 생긴대!”
조반니는 얼굴이 새빨개져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다 아이들 틈에서 캄파넬라를 발견했습니다. 캄파넬라는 안쓰러운 듯 말없이 희미하게 웃고는 화났느냐고 묻는 듯한 눈길로 조반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조반니가 도망치듯 그 눈길을 피하며 키 큰 캄파넬라 옆을 스쳐 지나가자마자 아이들이 휘파람을 드높이 불었습니다. 모퉁이를 돌면서 뒤돌아보니 자네리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캄파넬라도 휘파람을 드높이 불면서 흐릿하게 보이는 맞은편 다리 쪽으로 걸어가 버렸습니다. 조반니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해져 갑자기 달음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손으로 귀를 막고 와와 소리치며 외발로 콩콩 뛰고 있던 꼬마들이 조반니가 신이 나서 뛰어가는 줄 알고 와아아아 하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조반니는 검은 언덕으로 곧장 내달렸습니다. (P25)
조반니는 언덕 꼭대기의 천기륜 기둥 밑에 이르러 헐떡거리는 몸을 차가운 풀밭에 던졌습니다.
마을 불빛은 바닷속 궁전 불빛처럼 어둠 속에서 환히 빛나고 마을 쪽에서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휘파람 소리, 띄엄띄엄 끊어지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멀리서 바람이 울어 언덕의 풀들이 가만가만 흔들리고 땀에 젖은 조반니의 옷도 차갑게 식었습니다. 조반니는 마을 밖 멀리 펼쳐진 어두운 들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들판에서 기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조그만 기차의 창은 작고 붉은 띠처럼 보였는데, 그 창 안에서 수많은 여행객들이 사과를 깎거나 웃거나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겠지 생각하자 조반니는 말할 수 없이 슬퍼져 다시 하늘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아, 하늘의 저 희부연 띠는 모두 별이야.’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하늘은 낮에 선생님이 하신 말처럼 텅 빈 차가운 곳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아늑한 숲과 목장이 펼쳐진 들판 같았습니다. (P27)
조반니는 등 뒤의 천기륜 기둥이 언제부턴가 흐릿한 삼각표 모양으로 바뀌어 한동안 반딧불 불빛처럼 깜박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삼각표가 점점 더 뚜렷하게 보이더니 마침내 깜박임을 멎고 짙푸른 하늘 들판 위에 섰습니다. 갓 벼려 낸 푸른 강철판 같은 하늘 들판 위로 시원스레 뻗어 오른 것입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은하 역, 은하 역.”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불똥꼴뚜기 억만 마리의 빛을 단번에 화석처럼 만들어 온 하늘에 박아 넣은 듯, 다이아몬드 회사에서 값이 떨어지지 않도록 몰래 숨겨 두었던 다이아몬드를 누군가가 한순간에 모조리 흩뿌려 버린 듯 별안간 눈앞에 환하게 밝아져서 조반니는 저도 모르게 연거푸 눈을 비볐습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조반니가 탄 조그만 열차는 얼마 전부터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조반니는 경편철도 위의, 조그만 노란 전들이 나란히 밝혀진 밤 열차 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푸른 우단을 씌운 의자는 대부분 비어 있었고 니스 칠이 된 맞은편 잿빛 벽에는 놋쇠로 된 커다란 누름단추 두 개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바로 앞자리에는 젖은 듯 새까만 윗도리를 입은 키 큰 아이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어깨 언저리가 아무래도 낯익어, 조반니는 그 아이가 누군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려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이쪽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캄파넬라였습니다.
‘캄파넬라, 너 아까부터 여기 있었어?’ 하고 조반니가 물어보려는데 캄파넬라가 먼저 말을 했습니다.
“다들 열심히 달렸지만 늦었어. 자네리도 있는 힘껏 달렸지만 결국 따라오지 못했어.”
조반니는 ‘그래, 우리는 지금 같이 여행을 떠나는 거야.’하고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P29-30)
건너편 기슭도 파르스름하게 환히 빛났다가 스르르 번지고 억새도 이따끔 바람에 일렁이는 듯 은빛으로 번져 마치 숨결이라도 내뱉는 듯 보이고 수많은 용담 꽃은 마치 은은한 도깨비불처럼 풀잎 사이로 언뜻언뜻 숨었다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백조의 섬은 강과 기차 사이에 기다랗게 가로놓인 억새풀에 가려 뒤편으로 두어 번 보이다가 그마저도 이내 멀어져 조그만 그림 같아져 버리고, 다시 억새가 서걱대는 소리가 들리다가는 마침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조반니 뒤쪽에는 검은 머리쓰개를 덮어쓴 키 큰 가톨릭 수녀가 앉아 있었는데, 동그란 초록빛 눈동자를 지그시 아래로 떨어뜨린 채 아직도 백조의 섬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에 경건히 귀 기울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손님들은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조반니와 캄파넬라도 가슴속 가득한, 슬픔을 닮은 새로운 감정을 다른 말로 무심히 주고받았습니다.
“이제 곧 백조 역이구나.”
“응, 11시 정각에 닿을 거야.” (P37)
“여기에 앉아도 될까?”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어른의 목소리가 조반니와 캄파넬라의 등 뒤에서 들렸습니다.
해진 밤색 외투 차림에 흰 천으로 싼 꾸러미 두 개를 양 어깨에 둘러멘 붉은 수염 남자의 목소리였습니다.
“네, 괜찮아요.”
조반니는 어깨를 살짝 옴츠리고 인사했습니다. 그 사람은 수염사이로 옅은 웃음을 내비치며 천천히 그물 선반 위에 짐을 얹었습니다. 조반니가 까닭도 없이 쓸쓸하고 울저해져 정면의 시계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멀리 앞쪽에서 유리 피리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습니다. 기차는 이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캄파넬라는 천장 여기저기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검은 장수풍뎅이가 전등 하나에 앉아 천장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붉은 수염 남자는 정겨운 웃음을 지으며 조반니와 캄파넬라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기차는 점점 빨리 달리고 창밖으로 억새와 강물이 번갈아 반짝였습니다.
붉은 수염 남자가 머뭇머뭇 둘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어디까지 가니?”
“어디까지든지요.”
조반니가 조금 쑥스러워하며 대답했습니다.
“호오, 그러냐? 사실 이 기차는 어디까지든 간단다.”
“아저씬 어디까지 가는데요?”
갑자기 캄파넬라가 싸울 듯이 다그쳐 묻는 바람에 조반니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건너편에 앉은, 고깔모자를 쓰고 큼직한 열쇠를 허리춤에 덜렁거리고 있던 사람도 흘낏 이쪽을 보고 웃었기 때문에 캄파넬라도 그만 얼굴을 붉히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붉은 수염 남자는 딱히 화내는 기색도 없이 볼을 씰룩거리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금방 내릴 거야. 나는 새를 잡아서 파는 장사꾼이거든.”
“어떤 새요?”
“두루미나 기러기지. 백로나 백조도 잡고.” (P44-45)
“이 부근은 백조 구의 끝 부분이란다. 저길 봐, 저게 그 유명한 알비레오 관측소야.”
창밖으로 온통 불꽃놀이 폭죽을 터뜨린 듯한 은하수가 보이고 강 한복판에 검은 건물이 네 채쯤 보였습니다. 그중 한 채의 평평한 지붕 위에 눈이 번쩍 뜨이도록 커다랗고 맑디맑은 청옥과 황옥 구슬 두 개가 원을 그리며 소리 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습니다. 노란색 구슬이 반대쪽으로 돌며 점점 멀어지고 파란색 구슬이 이쪽으로 다가와 서로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겹쳐지자 아름다운 초록색 볼록렌즈 모양이 나타나고 초록색은 점점 더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다 파란색 구슬이 노란색 구슬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위치에 이르자 한복판에는 초록색 렌즈가, 가장자리에는 밝은 노란색 테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어서 두 구슬이 서서히 비껴가면서 초록색 렌즈 모양을 반대로 뒤집고 마침내 서로 완전히 떨어져, 처음 보았을 때처럼 파란색 구슬은 저편으로 멀어지고 노란색 구슬은 이쪽으로 다가와 다시 방금 전과 정확히 같아졌습니다. 그러자 어두운 관측소는 형태도 소리도 없는 은하의 물에 둘러싸인 채 잠을 자듯 고요히 가라앉았습니다.
“저것은 물 흐르는 속도를 재는 기계란다. 물도.....”
새잡이가 말을 이으려 할 때였습니다.
“차표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언제 왔는지 빨간 모자를 쓴 키 큰 승무원이 세 사람 옆에 반듯이 서서 말했습니다.
새잡이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조그만 종이를 꺼냈습니다. 승무원은 그것을 흘낏 보고는 이내 조반니와 캄파넬라에게 눈길을 돌려 ‘너희들은?’ 하고 묻듯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 그게.....”
조반니는 당황해서 주뼛거렸지만, 캄파넬라는 더없이 자연스레 조그만 잿빛 차표를 꺼냈습니다. (P53-54)
그때 문득 나직한 기도 소리가 들리고, 조반니와 캄파넬라는 여지껏 잊고 있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아아, 그 넓은 바다는 태평양이 아닐까? 빙산이 떠다니는 북극의 바다 위에서 누군가가 조그마한 배 위에서 바람과 얼어붙을 듯한 바닷물, 혹독한 추위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어. 나는 그 사람에게 너무나도 죄스럽고 미안하구나.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나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조반니는 고개를 떨군 채 침울해졌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그것이 진정 옳은 길을 가는 중에 생긴 일이라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그 한 걸음 한 걸음은 모두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겠지요.”
등대지기가 청년을 위로했습니다.
“네, 맞아요. 최고의 행복에 이르기 위해 갖가지 슬픔을 겪어야 하는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랍니다.”
청년은 기도하듯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린 남매는 피곤에 지쳐 저마다 의자에 기대어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좀 전까지 맨발이던 발에는 어느새 하얀색 부드러운 구두가 신겨져 있었습니다. (P63)
강 건너 기슭이 갑자기 붉어졌습니다. 버드나무고 뭐고 죄다 시커먼 빛을 띠고, 보이지 않는 은하수의 물결도 이따금 언뜻번뜻 바늘처럼 붉게 빛났습니다. 건너편 기슭의 들판에 새빨간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검은 연기가 높이 피어올라 차가운 보랏빛 하늘까지 캐워 버릴듯했습니다. 루비보다 붉고 투명하며 리튬보다 아름다운 그 불꽃은 취한 듯 비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저건 무슨 불꽃일까? 대체 뭘 태우기에 저렇게 붉게 빛나는 걸까?”
조반니가 말했습니다.
“전갈의 불이야.”
캄파넬라가 이번에도 지도를 들여다보며 대답했습니다.
“어머, 전갈의 불이라면 나도 알아.”
“전갈의 불이 뭐야?” (P79)
청년은 사내아이를 내려다보며 엄하게 말했습니다.
“싫어, 나도 좀 더 오래 기차를 타고 싶단 말야.”
조반니가 견디다 못해 말했습니다.
“우리랑 같이 타고 가자.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는 표를 갖고 있어.”
여자아이가 쓸쓸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여기서 내려야 해. 여기는 하늘나라로 가는 곳이니까.”
“하늘나라에는 안 가면 그만이잖아. 우리는 이곳에 하늘나라보다 훨씬 좋은 곳을 만들어야 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그치만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이건 하느님의 분부인걸.”
“그런 하느님은 거짓말쟁이 하느님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하느님이야말로 거짓말쟁이야.”
“그렇지 않아.”
청년이 웃으며 조반니에게 물었습니다.
“네 하느님은 어떤 하느님이니?”
“사실은 잘 몰라요. 하지만 아무튼 진짜 단 한 분뿐인 하느님이에요.”
“물론 진짜 하느님은 한 분뿐이지.” (P83)
조반니는 무심결에 캄파넬라의 아버지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캄파넬라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요. 저는 캄파넬라와 같이 다녔어요.” 하고 말하려 했지만, 목이 메어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캄파넬라의 아버지는 조반니가 인사를 하러 온 줄 알았는지 한동안 조반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 조반니구나? 오늘 밤에는 정말 고마웠다.” 하고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조반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였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오셨니?”
캄파넬라의 아버지가 시계를 꼭 쥔 채 물었습니다.
“아뇨.”
조반니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상하구나. 나는 그저께 아주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만. 아마 오늘쯤 도착할 것 같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배가 늦어지는 모양이구나. 조반니, 내일 수업 마치고 다같이 우리 집에 들러 주겠니?”
이렇게 말하며 캄파넬라의 아버지는 은하가 가득 담긴 강 하류로 지그시 눈길을 떨구었습니다.
조반니는 갖가지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 말도 못한 채 캄파넬라의 아버지 옆을 떠났습니다. 얼른 어머니에게 우유를 가져다드리고 아버지가 돌아오실 거라는 소식을 전해야지 생각하자 발걸음은 벌써 강기슭을 올라 쏜살같이 마을로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P93-94)
<은하 철도의 밤>은 4차 원고까지 있지만, 1,2차 원고는 대부분 분실되어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고 3차 원고와 이것을 대폭 수정하고 앞뒤에 새로 내용을 덧붙인 4차 원고(최종형)가 남아 있다. <은하 철도의 밤>을 이야기할 때는 대부분 최종형을 일컫고 문학적으로도 최종형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차 원고에서는 그 이전 원고와 달리 불카니로 박사가 등장하지 않고, 3차 원고에는 없었던 은하에 관한 수업 장면, 조반니가 인쇄소에서 일하는 장면과 몸져 누운 어머니가 있는 집 장면 등이 앞부분에 새롭게 배치되어 조반니의 고독하고 힘든 상황과 단짝 캄파넬라와의 거리감이 자세히 드러나며, 조반니가 꿈에서 깨어 다시 마을로 내려갔을 때 캄파넬라가 강에서 실종되어 죽었음이 밝혀지는 설정 등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 작품은 독특하고 환상적인 세계 속에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삶과 죽음이라는 종교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주제를 그려 내었다고 평가받는다. 가난하고 고독한 소년 조반니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단짝 친구 캄파넬라와 은하 철도 여행을 하면서,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고 이별은 슬프지만 이 세상에서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깨닫고 삶의 용기를 얻는다. 미야자와 겐지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생명이 다한다 해도 광대한 우주 어딘가에서는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다는 종교적 확신을 품고 있었다. <은하 철도의 밤>은 그 확신을 이야기로 형상화한 것으로, 여기에는 사랑하는 여동생 도시코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은하는 여느 강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곤 하는데, 그런 은하를 캄캄한 밤중에 달리는 기차라는 설정 자체가 환상적이면서도 쓸쓸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거기에 ‘월장석으로 빚은 듯한 아름다운’ 용담 꽃, 수정 모래알. ‘푸른빛으로 타오르듯 반짝이는’ 은하의 물 등 작품 전반에 미야자와 겐지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빚은 환상적인 공간이 펼쳐지며, 독자로 하여금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면서도 근원적인 슬픔을 느끼게 한다. (P215-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