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안경과 카메라
안경을 쓰는 나에게 안경은 필수적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찾게 되는 것이 안경이다. 매일 안경을 쓰다보니 네 몸의 일부처럼 필수 아이템이다. 수십년을 쓴 안경이 없다면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추운 날 버스를 타면 김이 서린 안경, 먼지가 자욱한 날에 먼지가 덮인 안경을 상의 옷자락으로 닦으며 보게 된다. 안경은 내게 있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자, 나의 시각의 연장도구이다. 안경과 마찬가지로 카메라는 나의 시선이다. 사진가에게 있어서 카메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자, 사진가의 시선이다.
우리는 정치적 성향이 다를 때,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말한다. 내가 보는 안경은 어떠한 필터도 끼지 않은 가장 투명한 안경이다. 레드필터도 옐로우필터도 아닌, 단지 빛의 감량만 조절하는 ND필터, 자외선을 차단하는 UV필터일 뿐이다. 나의 시선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가 올바르게 보는 것인지, 비딱하게 보는 것인지 그것은 이후의 문제이다. 우리의 일상생활 대부분은 ‘본다’는 행위로 시작된다. 대상을 수동적으로 볼지, 적극적으로 볼지,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눈을 감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본다는 행위에서 관찰이 이루어지고, 관찰을 통해서 시선이 만들어진다. 화가 제스퍼 존스는 “내 작업은 눈에 익숙한 것들을 내가 어떻게 보는지를 ‘보는’지점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수동적인 ‘보기’에서 적극적인 ‘관찰’로 시선이 옮겨진다. ‘그냥 보는 것’과 ‘주의 깊게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패션 아이템으로 쓰는 안경이 아닌, 생활의 보조 수단이자 시각의 연장 도구인 안경과 카메라는 보기 위한 것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카메라는 내 눈의 연장이다’라고 말한다. 시각의 연장도구를 넘어서 창의적인 생각으로 시각을 확장하기 위해선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몸의 일부인 눈(eye)처럼, 안경과 카메라는 사진가에게 있어서 몸의 일부가 된다. 무협지에 나오는 도인은 검술을 연마하는데 있어서 칼과 몸이 일체되어 있다. 불교의 선승이 도(道)에 이르는 과정처럼, 브레송은 결정적순간이란 시각적 구성을 하기 위해 대상과 사진가의 의식의 일치를 말한다. 시각예술이라는 차원에서 사진은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새로운 시각이다. 사진가 모홀리 나기(Moholy Nagy)는 새로운 시각(New Vision)을 모색했었다. 나기는 새로운 시각적 인식으로서 ‘본다’는 문제를 역사상 처음으로 제기했던 것이다. 사람의 눈과 과학적인 시각의 눈과는 다르며, 인간의 눈이 경험하지 못한 시각의 확장으로서 인식하였다. 시각적 확장과 새로운 방식으로 ‘본다’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지난 2017년 1월2일 세상을 떠난 존 버거(John Berger)는 ‘어떻게 볼 것인가(Ways of Seeing,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글을 통해서 어떤 눈을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볼지에 대해서 질문한다.
“모든 게 다 시간 문제지요. 그가 말한다. 나는 그를 쳐다본다. 여든여섯인데도 마치 흐르는 세월과 특별한 계약을 맺은 것처럼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찌를 듯한 연푸른 눈이었는데, 마치 냄새를 탐색하는 개가 코를 찡그리듯 이따금씩 눈을 찌푸렸다. 그 눈을 바라보는 사람은 스스로가 얼마나 무딘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숨김없이 드러나 있는 눈이지만, 순결하다기보다는 관찰에 중독된 눈이다. 눈이 영혼의 창이라면, 그의 창에는 유리도 커튼도 없으며, 그는 늘 창틀 곁에 서 있고 어느 누구도 그의 시선이 미치는 곳 너머를 볼 수가 없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P61)
프레임 안에 섣부른 동정이나 연민을 끼워 넣지도 않고, 플래시를 터트려 짐짓 상황을 과장하지도 않고, 일상적인 사건에 남들이 보지 않는 것, 담담하고 성실하게 관찰하는 것, 그것이 나의 안경이자, 카메라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