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자가 재즈를 만나다

[15장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by 노용헌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焉若冬涉川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심불가식 부유불가식 고강위지용 예언약동섭천)

猶兮若畏四隣 (유혜약외사린)

儼兮其若容 渙兮若氷之將釋 敦兮其若樸 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 (엄혜기약용 환혜약빙지장석 돈혜기약박 광혜기약곡 혼혜기약탁)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숙능탁이정지서청 숙능안이구동지서생)

保此道者 不欲盈 (보차도자 불욕영)

夫唯不盈 故能蔽 不新成 (부유불영 고능폐 불신성)


탁정서청(濁靜徐淸). 흙탕물은 가만두면 절로 맑아진다는 뜻이다. 휘저을수록 더 혼탁해진다. 상처는 끄집어낼수록 더 아물지 못한다. 결론은 도를 깨달은 사람은 채우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不欲盈). 이 말을 달리 보면 지나감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지나간 기억, 지나간 시간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전인권이 부른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의 가사처럼. 그리고 또 다른 노래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의 “Don't Worry, Be Happy”(https://youtu.be/GMQ7kWMSWvM?si=MwOYn3cUqXU9OUhY). 케세라 세라(Que Sera, Sera)의 ‘될 대로 되라’와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세 노래들은 낙관적인 태도에서 출발한다.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은 현실을 회피하거나 도피하는 허무주의도 아니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현실을 낙관(樂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비틀즈의 렛이비(let it be)와 마찬가지로 탁정서청(濁靜徐淸)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개념이다. 때로는 버텨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시간의 개념이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물질과 기억>에서 시간의 개념을 설명했다. 베르그송은 순수기억(현재), 이미지-기억(과거), 지각(미래)이라는 세 항들로 구별했다. 베르그송의 철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지속(durée)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베르그송에게 시간 개념은 시계로 측정할 수 있는 공간화한 시간개념이 아니라 심리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지속(La durée)이 사물의 가장 내적인 실재를 이루고 있다는 자신의 직관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자 했다. 사진가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고 말한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그에겐 순간포착이었다. 그러나 제프 다이어는 <지속의 순간(Ongoing Moment)>으로 보았다. 작가와 피사체가 만들어낸, 즉 작가가 피사체를 포착하는, 혹은 피사체가 작가를 사로잡는 순간들은, 느리다가 빠르게, 종종 방향을 바꿔가며, 마치 재즈처럼 지속한다.


“순수한 현재는 미래를 먹어가는 과거의 붙잡을 수 없는 전진이다. 사실, 모든 지각은 이미 기억이다.”

-앙리 베르그송, 물질과 기억, P167-


“우연은 우연이 아닌 게 될 때까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나? 얼마 동안이 순간이고, 지속되는 순간인가?”

-제프 다이어, 지속의 순간들-


베르그송 시간 개념.jpg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은 1989년에 <민주적인 숲(Democratic Forest)>이라는 사진집을 출간했다. 이 사진집의 사진들은 정치적인 이슈를 촬영한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사물이나 풍경들이다. 길 위에 놓인 세발자전거, 꽃 장식이 걸려 있는 현관문, 벽에 걸려 있는 외투, 길가의 상점, 낡은 건물, 한적한 수영장 등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 컬러 사진에서는 기억과 시간이 지속되고 있다. 이글스턴은 “그 어떤 것도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사물들은 낯설어 보이는 동시에 무언가의 단서로 가득 차 있다.


윌리엄 이글스턴.jpg

1992년, 제34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 공연에서 나탈리 콜(Natalie Cole)이 부른 곡은 ‘언포게터블(Unforgettable)’이다. ‘언포게터블(Unforgettable)’은 자신의 아버지인 재즈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이 발매한 곡이다. 죽은 아버지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영상으로 무대에 재생하고, 동시에 아버지와 같이 듀엣으로 노래를 부른다.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상 수상자로서 시상식전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과거와 현재, 미래는 지속된다는 것을 나탈리 콜의 노래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Natalie Cole-Unforgettable

https://youtu.be/MwLUkcNnU6A?si=dtST3Yk-ktC-YPJ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노자가 재즈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