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포토라인에 선 사진기자
피의자나 참고인들은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사에 들어서기 전에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세례를 받게 된다. 이때 수많은 사진기자들은 혼잡한 상황에서 서로간의 질서를 지키며, 자신들이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합의해서 만든 선이 포토라인(photoline)이다. 이러한 포토라인은 취재경쟁을 하게 되는 언론사 기자들 간의 합의해서 만든 선이지만, 돌발적인 상황에서는 무너지게 된다. 어느 정도 양보를 하기로 약속을 하였지만, 갑자기 튀어나와 촬영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그 순간 포토라인은 무너지고 동시에 우르르 몰려들게 되고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선을 넘는 순간 사진기자들의 경쟁은 심해지고, 혼돈에 빠지게 된다.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이든, 물리적 거리이든 사진가는 선을 긋게 된다. 가상의 이미지 선은 사진가와 대상간의 암묵적 선이다. 망원렌즈나 광각렌즈를 떠나서 우리는 마음속에 선을 긋고 포토라인의 안에서 사진을 촬영하게 된다. 내안의 포토라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포토라인은 나의 기준이자 철학이다. 내가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 그 모든 것이 포토라인인 셈이다.
사람간의 관계에서도 선은 존재한다. 그 선을 넘어가게 되면 우리는 뭔가 나한테 무례하거나 뭔지 모르지만,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정한 선, 요정도까지는 이야기해도 되겠지 하고 선을 그으면서 이야기하게 된다. ‘이정도면 그냥 넘어가자’ ‘그래 그냥 받아주지 뭐’ ‘근데 이건 아닌 것 같아’ 머릿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정한 선을 긋고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선은 극히 상식적인 면에서 통용된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서도 이정도 물건은 괜찮겠지라고 합리화한다면 그 선은 무너지고 만다. 그 선을 넘다들다 보면 자신에게 합리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릴적 땅따먹기 놀이에서도 선은 존재했다. 선은 나의 영역이었고 경계인 셈이다. 우리는 위태로운 경계에 놓여져 있다. 마치 남사당패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의 선, 고층빌딩 벽면을 청소하는 사람이 의존하는 한 줄 선, 선은 또한 나의 존재를 지켜준다. 그런데 그런 선을 넘어서면 경계는 허물어지고 혼돈에 빠진다. 경계에 선 인생은 흔들린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의 경계는 흔들리기 때문이다. 경계를 지키는 것이 맞는 것인지, 경계를 허무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인생은 선택을 강요한다.
카메라에서도 기준선은 있다. 가이드라인인 셈인데 촬영을 할때의 노출은 어떻게 하는지, 적정노출은 무엇인지, 초점은 수동으로 할 때 어떻게 하는지 등등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진가에게 안내해주는 선이다. 구도를 잡을 때도 수직 혹은 수평선의 기준선은 촬영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격자(grid) 기능도 있다. 그리드 디자인은 보기 편한 디자인을 위해 사용되어진다. 시각적 안정성에 기인하여 안정된 화면을 구성하여 시각적 가독성을 주기 위함이다. 가상의 안내선들은 화면의 구도를 잡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어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안내선은 기준이 된다.
기준을 지키고 선을 넘지 말자, 나의 기준선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