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살롱사진과 뽀샤시
살롱사진(Salon Picture)은 19세기말 유행한 회화주의 경향의 사진을 말한다. 살롱에 걸어놓고 감상하기에 알맞은 사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초상화에 대한 욕망은 사진에서도 폭발적인 인기였고, 사진이 산업생산품이 아니라 예술로서 인정받고자 했던 욕망과 함께 등장했다. ‘살롱’이라고 불리 우는 귀족들의 사교모임이 국가의 문예정책과 맞물려 예술가로서 명예도 얻고자 했던 것. 이러한 살롱 콘테스트는 지금까지 많은 사진공모전도 그 맥락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포토콘테스트는 경쟁적인 상금과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사진의 그 의미는 퇴색될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진전들이 1859년 프랑스 왕립아카데미가 창설한 파리살롱전과 달리 진화된 사진전을 열까 의문이다.
당시 예술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평론가들),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계급성에 따라 귀족주의적이고, 부르주아의 취향에 의해 살롱전에 초대받지 못한 그룹은 인상주의 화파와 사실주의 화파의 그림들이었다. 그들은 살롱전입상과는 거리가 멀었고, 심사기준에 반발과 함께 살롱전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이들은 또 다른 살롱전을 기획하였고, 1863년 살롱전에 낙선한 작품들의 전시회가 <낙선전(Salon des Refuss)>이다. 또한 완전한 출품의 자유, 심사 폐지를 취지로 하는 <앙데팡당 전>이 만들어지고 했다. 런던사진협회는 1892년 ‘이어진 고리 집단(The Linked Ring Group)’를 만들고 1893년 제1회 런던 살롱전을 열었고, 이후 다른 나라에서도 비엔나 살롱, 베를린 살롱, 파리 살롱 등이 열렸다. 이러한 사진전(회화주의 풍)에 반해 스티글리츠는 미국에서 사진분리파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살롱사진의 문화사적 의의, 이영욱>
살롱사진의 예술성은 화화와 같은 사진의 표현 효과를 얻기위해 여러 가지 제작 기법을 개발하였다. 목탄화나 파스텔화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고무인화법이나 브롬오일 인화법, 카본 인화법등 다양한 인화와 연초점 효과, 캔버스와 같은 질감의 거친 인화지등이 그것이다. 살롱사진이란 것이 어떤 주의나 예술관은 아니다. 살롱사진은 당시 ‘사진이 예술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지고 논쟁에 대한 반증이다. 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사람들은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전반적인 성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차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사진은 그저 과학적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기술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예술성을 인정받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회화는 인상파가 대두되었고, 이 인상주의 그림과 함께 회화주의(Pictorealism) 사진이 등장했던 것이다. 화가들의 밑그림을 위한 사진은 사진가들 스스로 회화주의적인 사진을 작업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으젠드 앗제 또한 화가들의 밑그림을 생계로 하였고 자신은 새벽의 인적 드문 파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붓과 팔레트를 든 자화상>을 찍은 에드워드 스타이겐 또한 당대의 흐름처럼 회화주의에서 사진의 발전을 모색했다. 이러한 사진의 회화적인 분위기는 로베르 드마시의 고무인화 사진처럼, 유화적인 분위기는 미술(예술)의 당시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픽토리얼리즘의 전통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서도 새로운 주관적 표현에 차용되었다. 20세기초 픽토리얼리즘의 기술적인 시도들은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어 새롭게 재생산되었고, 자신의 주관적 표현을 위한 이러한 형식적인 면들은 다양해졌다. 이러한 기조에는 “그림-사진(peinture-photographie)”에 있다. 그림같은(picturesque) 사진은 디지털시대의 대중들에게 새로운 디지털 픽토리얼리즘이다. 포토샵의 여러 기능중 필터의 기능은 사진을 뽀샤시, 흑백 등 다양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아트 필터의 기능은 소프트 포커스, 거친 필름과 같은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해준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이고, 아름다운 사진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