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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재즈를 만나다

[64장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by 노용헌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判 其微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기안이지 기미조이모 기취이반 기미이산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합포지목 생어호말 구층지대 기어누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無孰故無失 (위자패지 집자실지 시이성인 무위고무패 무집고무실)

民之從事 常幾於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 칙무패사)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 (시이성인 욕불욕 불귀난득지화 학불학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 이불감위)


천리길도 발밑에서 시작된다(千里之行 始於足下). 일의 시작은 처음이고, 처음 가졌던 마음으로 실천하고 마지막까지도 그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가지라고 노자는 말한다. “사람들의 일은 대개(民之從事) 거의 완성될 무렵에 망친다(常幾於成而敗之). 마지막을 처음처럼 조심한다면(愼終如始), 실패하는 일이 없다(則無敗事).”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블루오리진’이라는 우주 회사의 슬로건은 ‘그라디팀 페로키테르(Graditim Ferociter)’라고 한다. 이 말의 뜻은 ‘한 걸음씩 용감하게’라는 라틴어이다. 대부분은 지레 겁먹고 그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거나, 한 걸음을 걸었지만, 중도에 포기하거나, 결과는 애초 생각과는 동떨어져있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은 한 수 한 수를 두는 바둑과도 닮았다. 최근 영화 <승부>에서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바둑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을 죽을 때까지 벌이게 된다. 조훈현 국수의 모토는 무심(無心)이다. 욕심을 비우고, 평정심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바둑의 신동이었던 이창호처럼, 10대 때 남들이 평생 할 공부를 이미 끝냈었다. 그런 그도 20살이 되고서는 결국 정신적으로 탈이 나게 되었고, ‘자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하고 이러한 우울한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마르몽텔의 <회상기>를 읽으면서부터라고 한다. 밀은 메말라 있던 자신의 감정이 문학작품을 통해 다시 느껴질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행복이 모든 행동의 시금석이요, 인생의 목적이라는 확신이 흔들린 적은 정말로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목적이 이것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지 않아야만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행복 이외의 다른 어떤 목적 ㅡ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서, 인류의 진보에서, 심지어 어떤 예술이나 취미에서,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 이상적인 목적으로서 뒤따라오는 것 ㅡ 에 정신을 집중하는 사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요컨대 그들은 행복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목표로 하면서 부차적으로 행복을 찾는다.”라고 자서전에서 그는 말한다. 밀은 <자유론>에서 ‘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적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를 말했다. 사회가 한 개인의 의견 표현을 침묵시키는 것,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박탈할 그런 권한이 있는가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견에 따라 행동하는 데 자유로워야 하는가? 즉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육체적이거나 도덕적인 방해 없이 자신의 의견을 삶 속에서 실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하는가? 사람이란 자신의 일생을 바쳐서 완성해나가고 찬란하게 꽃피워 나가는 살아있는 존재이자,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벤담이 '최대 행복의 원리(the great happiness principle)'라고 일컬은 공리의 원리(the principle of utility)는, 개인과 사회의 이해를 조화시키는 도덕의 그물망에 의해 만들어진다.

1916년 “맹인(Blind)”이라는 제목의 이 사진은 폴 스트랜드(Paul Strand)가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은 목에 “맹인(Blind)”라는 단어가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있는 할머니를 묘사하고 있다. 사진 속 여성은 엄숙하고 내성적인 표정을 짓고 있으며, 눈은 카메라에서 멀어져 있어 표지판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시야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은 임응식 사진의 <구직(求職)>과도 닮아 있다. 이 사진은 “우리를 주체-주체 관계가 아닌 주체-객체 관계—이 경우에는, 시각장애인 거지와 보고 있는 사진가 및 관람자 간의 관계—로 끌어들여 한탄하는 실명(blindness)을 만들어낸다”고 아도르노(Adorno)는 말한다. 사진속의 글자, 언어 지시적 속성은 사진속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스트랜드의 포츄레이트(portrait)는 우리가 그것을 보는데 있어서 지표나 현상성(phenomenality), 그 두 가지 사이의 인위적인 다의(多義)성, 피사체의 상태에 대한 강력한 감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더 넓은 사회적 주제를 반영하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해석을 만들어낸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과 같이 시위사진에서도 그들의 요구를 문자로 표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광우병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사회도 다양한 손 피켓들이 등장했고, 피켓의 문구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사진가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폴 스트랜드-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은 6세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다. 10대 후반부터 재즈로 전향하여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의 연주는 ‘비밥’ 연주처럼 전통적인 재즈 스타일을 넘어서, ‘스윙’ ‘블루스’ ‘발라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든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조 패스, 냇 킹 콜, 엘라 피츠제럴드, 디지 길레스피, 듀크 엘링턴 등 수많은 거장 재즈 뮤지션들과 협업을 하였다. 《Oscar Peterson at the Stratford Shakespearean Festival》은 피터슨의 경력에서 획기적인 음반으로 널리 간주되고, 재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삼중주들 중의 하나이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곡들로는 1960년대에 작곡되어 미국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 운동에 의해 영감을 받은 "카나디아나 모음곡"과 "자유에 대한 찬가(Hymn to Freedom)"가 있다(https://youtu.be/tCrrZ1NnCuM?si=0ilx9SWzFA-13PRH). 1993년 뇌졸중으로 인해 왼손이 마비되는 신체적 장애를 겪었지만, 그는 한 손으로만 연주하면서도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치 않았다. “중요한 건 나의 건강상태가 아니다, 다만 팬들 앞에서 완벽한 연주를 들려줄 수 없다는 게 아쉽다.”

Oscar Peterson & Count Basie – Jumpin' At The Woodside

https://youtu.be/XIs1vcoPQbw?si=YdL0K_NbtLS3wwU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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