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나는 어떤 판단을 내리든 관계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할 것이다. 이것 역시 악몽임에는 틀림없을 테지만 이번에는 개념적 오류는 없다. 우리는 이 악몽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것은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지의 부자유가 가지는 악몽이다. 우리가 이토록 지속적인 부자유를 견딜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숙명론은 이런 의미에서 사실상 틀린 것이다. 그러나 숙고와 의지의 판단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도 있다는 가정을 해볼 때, 숙명론자가 두려워하듯 이것은 조건성의 결과가 아니고 또한 지속적인 의지의 조건성이 낳은 결과는 더더욱 아닌, 이 불행한 자 앞에 거짓 조건성이 놓여 있음으로 해서 나타난 결과다. 따라서 일반적인 조건성으로부터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도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관계없이 나는 내가 하는 것을 할 것이다는 어떤가? 여기서도 의지와 행위에 해당되었던 것이 동일하게 통용된다. 즉 개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나의 행위를 확정하는 의지에 대한 성공적인 영향력 행사가 결국 결정이기 때문이다.
-페터 비에리, 자유의 기술, P338~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