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30.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by 노용헌

1970년대 시각예술비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영국의 미술비평가,화가,소설가인 존 버거가 올해 1월2일 프랑스 파리 교외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의 손꼽히는 명저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이다. 이 책에서는 그림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를 통해 성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인식을 되짚어볼수 있다. 그는 뛰어난 소설가이기도 했다. 58년 첫 소설 <우리 시대의 화가>를 발표했고, 72년 장편소설 <지>(G)로 영국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았다. 사진가 장모르와 함께 <제7의 인가>, 이외에도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우리 시대의 화가>, <벤투의 스케치북>등이 있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은 카메라가 아닌 글로 찍은 사진집이다. 이 책에서 그는 포토카피(photocopies)라고 말한다. 한 장의 사진이 묘사하는 장면을 글로 풀어놓아져 있다. 사진은 직관적이다. 어쩌면 사진은 사진일뿐일지도 모른다. 앞뒤 순간도 없이 짧은 순간의 사진은 그의 글로써 짧은 이야기를 이어낸다.

“그녀가 연주를 마친 직후에 내가 그녀를 그리기 시작한 적이 한번 있었다. 피아노 뚜껑은 열린 채로 였고 그 곁에 앉아 있었다. 눈을 긴장시킨 채 나는 기다렸다. 그리기의 충동은 눈에서보다 손에서 온다. 마치 저격수처럼 오른팔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나는 때때로 모든 것은 겨냥의 문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피아노 소나타 작품 번호 110 역시도. 그녀는 왼쪽 눈을 이따금 두리번거려 균형을 깨뜨린다. 이 약간의 비대칭의 순간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소중했다. 내 목탄 조각으로 무리 없이 그 순간에 닿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있다면... 내가 그녀를 그리고 있음을 그녀는 물론 알고 있었다. 그녀가 보내는 것이 내 겨냥을 벗어나지 않고 닿으면 좋은 그림 하나가 생기게 될 것이다. 대상과 닮게 그리는 것이 인물화의 조건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닮을 수도 닮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것은 신비로 남는다. 이를테면 사진의 경우 ‘닮음’이란 없다. 사진에서 그건 질문조차 되지 않는다. 닮음이란 생김새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같이 두 방향에서의 겨냥이 그림에 포착된 것이리라. 점차 그녀의 얼굴과 비슷하게 되어 갔다. 하지만 나는 결코 제대로 닮은 모습으로 그려낼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 종종 그런 것처럼,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어 버렸고, 내가 아무리 잘 그린다 해도 그것은 하나의 흔적 이상이 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P38>


그의 글은 사진을 묘사한다. 연주를 마친 그녀의 모습을 마치 사진을 보듯이 묘사하면서 그는 닮음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과연 나의 사진은 무엇이 닮아 있을까? 사진은 과연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사진은 어쩌면 단순히 흔적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잘 찍는다 해도 그것은 하나의 흔적 이상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사진만 봐서는 모른다. 그 사람이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이상한 놈인지 알 수 없다. 그에 대해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말이다. 사진은 닮아 있지만 결코 닮아 있지 않을 수도 있으니깐, 한 장의 사진의 의미는 곱씹어야지 그 의미를 알 수가 있다. 더군다나 그 현장에 있지 않다면 더군다나 더 그럴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의미를 둘 때, 그 의미는 알려진 것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미와 수수께끼는 뗄 수 없는 것이고, 둘 다 시간의 흐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확실성은 즉각적으로 전해질 수 있지만, 의심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의미는 이 둘에서 나온다. 사진에 담긴 어떤 순간은 보는 이가 그 순간을 넘어 확장된 시간의 지속 안에서 그것을 읽어낼 때에만 의미를 얻는다. 어떤 사진이 의미가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진에 과거와 미래를 덧붙이는 것이다.” <존 버거, 사진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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