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89. 기억, 표상, 재현

by 노용헌

카메라의 기록은 순간의 현재를 찍지만, 찍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된다. 기억된다는 것, 그것은 과거의 기억의 표상이고, 재현이다. 과거에 지각된 대상이 기록에 의해, 기억에 의해 재생(再生)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나 시각적 표현으로 기억하게 된다. 기억은 뇌의 후두엽에 표상으로 보게 된다. 기억은 표상으로 보존되고, 다시 재현된다.


1.기억-우리는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 사진을 찍으면서 과거를 기억한다. ‘기억을 위한 지각’은 ‘기억에 대한 강박’으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많은 곳을 돌아 다니는 여행, 그리고 짧은 시간에 사진만이 남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댄다. 거기에서 우리의 지각과 체험은 우리의 기억 속에 쑤셔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의 기억의 일상일지도, 넘쳐나는 사진은 내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먹었으며, 어디에 있었다는 인증샷. 내가 무엇을 했다는 체험의 기억은 사진에 쑤셔넣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생각없이 의무감에 기계적인 반응으로 찍을지도 모르겠다. 핸드폰의 사진기능은 이러한 기억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제 기억은 내 기억속에서 다른 이의 카메라속에서도 여기저기 맞닦뜨리게 되었다. 사진가의 감각은 눈으로 시작하여, 머리로 인지하며, 그 사물에 대해 지각하며 기억된다. 기억된 것은 사진기라는 매체를 통해서 재현된다. 그 구성이 구상/추상이든 화면속에서 표현된다. 현대미술에서 사진매체의 이용은 대부분 기억의 도구로서 사진을 사용한다. 사진은 기록인 동시에 역사적, 문화적 기억인 셈인 것이다. 사진이미지는 기억을 대변하고 있다. 컬러사진보다 흑백사진에서 더욱 그 기억의 의미는 강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기억의 대부분은 주관적 기억의 하나로, 과거 기억의 자국, 다소 주관적인 작가의 경험치에서 나온 환유적 기억, 파편적 기억일 가능성이 크다. 그 기억이 객관적이고, 많은 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이후 문제일 것이다.


2.표상representation-사진은 사물의 표상이다. 또 사진과 피사체는 즉물(卽物)의 관계이다.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에 따르면 사진은 인덱스이다. 그는 기호를 ‘도상체계’, ‘상징체계’, ‘지표체계’로 분류했는데 사진은 이 가운데서 지표체계에 속한다. 도상icon이란 그 기시대상이 실존하지 않음에도 그것을 의미 있게 만드는 성격의 기호이고, 상징symbol이란 해석이 없으면 성격을 상실하는 기호이며, 지표index란 그 대상이 제거되면 그 자체로 대상이 되는 성격의 기호이다. 사진은 지표체계에 속하는 기호이다.-필립 뒤바, 이경률 옮김, <사진적 행위>, 마실가, 2004,P.26. 사진가인 주체는 자신의 기억을 표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재현된다. 영어로 표상[表象, Vorstellung]이란 재현과 같은 representation이다. 기억에 의해 의식에서 다시 불러낸 것이 기억 표상이다. 기억된다는 것, 떠오른다는 것이 표상이란 것이다. 예술의 영역에서 표상이란 말은 ‘표현한 것’ 또는 ‘표현된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초상화는 한 인물의 표상이자, 재현인 셈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현상 자체와 다르다. 사실 이 세상에는 색이라는게 없고, ‘파란색’은 우리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표상일 뿐이다. 우리의 기억 중 일부분만이 ‘표상’으로 만들어져 기억된다. 컴퓨터는 오직 0과 1이라는 정보를 이용해서 정보를 처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기적 신호를 이용해서 화면에 만들어지는 것이 표상이다. 우리가 지각할 수 있도록 표상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인간은 외부환경에서 받은 정보를 토대로 ‘심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을 만들어낸다.


3.재현representation-예술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 활동, 그리고 그 작품’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술은 특별한 재료를 이용하여 재현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곰브리치는 우리가 재현된 이미지를 볼 때 이미지가 실재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는 오랜 관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대상의 모사상이 아니라 하나의 표본, 표상일 경우도 많다. 즉 실재가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실재를 재현하는 역전된 현상이 예술을 통해 벌어진다는 것이다. 재현은 실재의 상황에 대한 표상이다. 언어나 이미지를 통해서 그것은 흉내내기의 모방의 과정을 통한 재현적 모방인 것이다. 미술에서 ‘재현’[再現, representation]이란 사람이나 장소 또는 사물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을 말한다. 어원인 라틴어 repraesentatio가 '다시(re) 현전케하는 것(praesentatio)'을 의미하고, 독일어의 Vorstellung이 '앞에(vor) 세우는 것(stellu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재현이라는 말은 대상을 대리하는 행위의 개념이다. 플라톤(Platon)은 문학을 비롯한 인간 행위는 '이데아의 가상'을 모방(mimesis)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처럼, 사진은 무엇을 재현하려 한다. 그렇다면 나의 사진은 무엇을 재현하려는가?


무언가를 기억하고, 역사를 기록하고, 나는 무엇을 재현, 재연하려는 걸까? 앗제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문에 ‘예술가를 위한 다큐멘트(기록, document)’라고 써 붙이고 자신의 사진을 화가들에게 팔았다. 그의 사진은 무엇을 재현하는 것일까? 다큐멘터리의 역사성, 사실성과 달리 사실과 허구 사이에 우리는 기억을 재연한다. 우리는 재연(再演)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기억을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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