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망각은 유리 같은 것]
머나먼 과거에 몸을 담근 것은 잘못이었으리라. 그래봐야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 떠올리지 않은 지 벌써 여러 해라, 그 시절은 이젠 불투명한 유리 너머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어슬핏한 빛만 유리를 통과할 뿐 누구의 얼굴인지, 누구의 윤곽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매끈한 유리가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했다. 어쩌면 그는 자발적 기억상실을 통해 이제야말로 완벽하게 과거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너무 강렬했던 그 색채와 질감이 시간 속에서 누그러진 것이리라.
-파트릭 모디아노,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P82~83-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니?”
<백설공주> 동화에 나오는 대사이다. 나는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 거울을 보게 되면 내면의 위선이 보일 것 같다. 어쩌면 내안에 가지고 있는 거짓이 들킬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거울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말이다. 때로는 기쁨도, 때로는 슬픔도, 거울은 무작위로 비춘다. 거울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단지 반대편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다. 카메라라는 욕망의 기계는 거울로 이루어져 있다. 렌즈를 통해서 들어온 빛은 카메라 몸체에 숨겨진 거울의 반영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고, 고정하고, 해석된다. 기본적으로 반영(reflect)에 있다. 물에 비친 모습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든, 망원렌즈라는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관음증이든, 거울에 비친 모습들이 내 인식의 기초이다. 어쩌면 거울은 강제적이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라고 말이다.
라캉이란 철학자는 거울이론(mirror stage)을 통해서 욕망을 설명한다. 인간은 거울을 보면서 자아를 형성하고, 이상을 찾고,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런 욕망의 출발은 거울에 있다. 욕망은 무의식속에 자리잡은 거울에 있다. 거울을 벗어나서 인간은 살 수 없는 것인가. 인간의 결핍은 과연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인가. 왜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존 자르코우스키(John Szarkowski)는 사진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거울(Mirror)과 창문(Window)이다. 그러나 거울이든 창문이든 재질은 유리이다. 유리를 통해서 모든 것을 본다. 안경도 유리이고, 카메라 렌즈도 유리이며, 창문 또한 유리가 아니면 바깥세상을 볼 수 없다. 온통 건물은 유리 건물로 유행처럼, 지어져 있다. 통유리 건물 속에서 우리는 존재하고 산다. 거울만큼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울이 과연 제대로 반영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 거울은 생각을 하지 못한다. 단지 닮아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타인을 이해할 수도 없고, 내 자아를 찾기도 어렵다. 고통도 슬픔도 감정도 없다.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다. 사유하지도 않는다. 단지 침묵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한다. 철학은 “무엇이 참인가”보다 먼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 일이다. 묻지 않는 사람은 존재의 의미가 없을지도. 존재는 사진에 남겨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증명되지도 않는다. 존재는 끊임없이 말함으로써 증명될 뿐이다. ‘나 여기 있다’고 말이다.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는 유리가 놓여져 있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유리를 넘어서질 못한다. 유리의 건너편에서 볼 뿐이다. 유리에 반사된 모습들(또는 반영된 모습)은 과거이고, 유리를 넘어서는 미래의 모습이다. 미래는 상상되어진 어떤 것들이다. 뿌옇게 흐려지고 모호해진 유리는 우리의 과거의 모습을 흐트러놓는다. 유리 거울을 보는 것은 더 이상 실제(real)가 아니다. 그것은 거울 반사를 통해 만들어져 추상적인 이미지인 셈이다. 망각은 기억의 추상화를 거듭 만들어놓는 매개인 것이다. 그 매개체로서 유리가 존재한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 유리는 ‘거기에-있는(être-là)’ 것이다. 무참히 깨져버린 유리 조각에 손을 베이면 상처가 난다. 망각은 유리 같아서,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상처를 입힌다. 망각은 자칫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새살을 돋우게도 한다. 상처입은 기억들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그 기억에 짓눌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좋은 기억들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해서 망각은 아마도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탈 때 맨 뒷자리 창가쪽에 앉는다. 창가에서 바깥 풍경을 보기도 하지만 창문에 비친 이미지는 반대편 왼쪽의 형상들도 반사되어 겹쳐진다. 오른쪽 바깥 풍경과 왼쪽 바깥 풍경이 중첩되어 혼재되어 있다. 기억은 바깥의 풍경이고 안쪽은 망각의 풍경이다. 기억과 망각은 그렇게 혼재되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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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다 잊고 내게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