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인간세(人間世, 빛의 쓸모)

내편(內篇) ------------> 빛(Lighting)

by 노용헌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양희은, 한계령 노래中에서-


심재(心齋) - 마음을 비우는 수행

공자의 제자 안회(顏回)가 스승을 찾아왔다. “저는 위나라로 떠나려 합니다.” 공자가 물었다. “무엇을 하러 가려는가?” 안회가 대답했다. “위나라 군주는 젊고 혈기왕성하며 독단적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배운 것을 실천하여 그 나라를 구하고자 합니다.” 공자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너는 화를 자초하려 하는구나. 도는 잡다한 것을 싫어하는데, 잡다하면 혼란스럽고, 혼란스러우면 근심이 생기며, 근심이 생기면 구할 수 없게 된다. 너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공자는 말한다. “먼저 재계(齋戒)를 하라.” 안회가 말했다. “저는 집이 가난하여 술을 마시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제사를 위한 재계일 뿐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심재(心齋), 즉 마음의 재계다.” 공자는 심재를 이렇게 설명한다. “뜻을 하나로 모으고,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며,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귀는 소리에서 멈추고, 마음은 부호에서 멈추지만, 기는 텅 비어 있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오직 도만이 텅 빈 곳에 모인다. 이 텅 빔이 바로 심재다.” 요즘 유행하는 것 중에 ‘불멍’, ‘책멍’, ‘숲멍’이란 말이 있다. 뒤에 멍하니 있는 행위들인데, 이런 행위가 바로 심재(心齋)이다. 마음을 비우고 빛을 바라본다면 그 빛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빛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빛의 쓸모는 무엇일까.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찌푸등한 몸을 좀 피고서 광합성(光合成)을 하러 나온다. 빛 에너지를 좀 받으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몸도 건강해진 듯하다. ‘마음을 비우는 수행을 하기’라기보다, 몸을 살리는 운동인 셈이다.


인간관계의 지혜 – 빈 배의 비유

엽공자고(葉公子高)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공자에게 조언을 구했다. “제나라는 우리나라를 가볍게 보고 있고, 저는 경험이 부족합니다. 성공하지 못하면 나라가 욕을 보고, 성공하더라도 과로로 병이 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계율이 있다. 하나는 운명이고, 다른 하나는 의무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운명이라 마음에서 제거할 수 없고,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것은 의무라 어디를 가도 군주 없는 곳이 없다.” 이어서 조언을 한다. “상대방의 좋아하는 바를 따르되 지나치지 않게 하고, 자신의 능력을 다하되 자랑하지 말라. 뱃사공이 물을 건너듯 자연스럽게 행동하라. 빈 배가 부딪혀 와도 화를 내는 사람이 없지만, 사람이 탄 배가 부딪히면 소리를 지른다. 자신을 비우면 세상을 건널 수 있다.” 인간세(人間世)편에서 장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장자의 글에는 비유적이고, 우의적 표현을 많이 한다. 노자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공자의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공자의 입을 통해서 공자의 생각을 전한다기 보다는 빗대어서 말하면서 의도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빈 배의 비유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가짐을 비우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실 욕망(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말이다. 마음을 비우고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쉬워보이면서도 어렵다. 머리는 비워야지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때로는 내가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자만심은 교만해지기도 한다. 내가 잘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나보다 더 잘 찍는 사진가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것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피카소 전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매일 똑같은 사진을 찍고, 식상한 사진들, 형식적인 행위들의 사진에서 뭔가 나는 다른 것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했던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대입시험을 준비하는 사진학과 학생처럼, 오늘은 조리개에 대해서 찍고, 내일은 셔터에 관해서 찍고, 그 다음날은 플래시를 사용해서 찍어보자고 하루 하루를 나만의 숙제를 던지고 그 미션을 수행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재미없었던 시간도 나름 재미를 붙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과 노력이 나에게 내공(內工)을 쌓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내공은 바로 내공(內空)이었다. 마음을 비우는 행위이다. 자신이 가진 강박감, 집착, 아집 등을 비워야 새로움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겸손과 은둔의 미학 – 스스로를 지키는 법

장자는 말한다. “곧은 나무는 먼저 베이고, 맑은 샘물은 먼저 마른다. 재능을 자랑하고 지혜를 뽐내면 화를 자초한다. 차라리 어리석은 듯 보이는 것이 지혜로운 처세다.” 노자 또한 같은 말을 한다. “대교약졸(大巧若拙)” “대변여눌(大辯如訥)”, “대지여우(大智如愚)”, “대간사충(大姦似忠)” 같은 의미이다. 우리 속담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처럼, 겸손을 이야기한다. 영화 중에 ‘놈놈놈’이란 영화가 있다. 한국영화에서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의 세 명의 주인공들의 캐릭터이다. 일생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겠지만, 나에게도 세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귀인(좋은 사람), 악인(나쁜 사람, 또는 유해한 사람), 그리고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겸손한 사람, 잘난척하는 사람, 사기꾼, 내게 유해한 사람은 절연하게 되고, 이기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 뭔가 부탁할 때만 찾는 사람. 참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인생이 마냥 꽃길만 걷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게 되는 운명에 있다. 남은 이렇게 하는데, 나는 과연.... 무얼 찾고 있는지.


기계와 인간성 – 순수함을 지키는 법

자공(子貢)이 초나라를 여행하다가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항아리로 물을 퍼서 밭에 물을 대고 있었는데, 그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적었다. 자공이 말했다. “여기 기계가 있으니 하루에 백 이랑을 관개할 수 있습니다. 힘은 적게 들고 성과는 크니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노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기계를 쓰는 자는 기계 같은 일을 하게 되고, 기계 같은 일을 하는 자는 기계 같은 마음을 갖게 된다. 기계 같은 마음을 가지면 순수함을 잃고, 순수함을 잃으면 정신이 불안해진다. 나는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쓰기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AI로 점점 발전해가는 기술의 진보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감추어진 순수함일 것이다. 순수함을 잃는다면 노인이 지적한 것처럼, 기계에 맹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계적으로 기교를 부리는 것에도 과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교(技巧)로써 힘을 다투는 사람은 처음에는 힘으로 내놓고 시작하지만 언제나 음모로써 끝맺습니다. 지나치게 되면 기묘한 기교가 많아집니다. 예를 따라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점잖케 시작하지만 언제나 어지러움 속에 끝나게 됩니다. 지나칠 때에는 기이한 즐김이 많아집니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합니다. (...) 사물을 초월하여 마음을 노닐게 하고 어쩔 수 없이 되어 가는 처지에 몸을 두고 마음을 기르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어찌 일부러 애써 일을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왕명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카메라는 빛을 기록하는 저장매체이자, 도구이다. 사진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 카메라는 몸체(body), 렌즈(lens)로 구성되어 있다. 바디는 빛을 기록을 저장장치로, 뇌에 해당한다. 렌즈는 빛을 받아들이는 장치로, 눈(eye)에 해당한다. 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플래시(flash), 인공 조명이 해당될 것이다. 기계적인 장치인 카메라의 기교를 부리기 전에 인간적인 시선이 담겨진 사진이었으면 좋겠다.


빛을 대하는 지혜

안합(顔闔)이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태자의 스승이 되어 먼저 거백옥(蘧伯玉)을 찾아가 물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덕은 선천적으로 각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와 더불어 무도한 짓을 하면 곧 우리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그와 더불어 올바른 일을 하면 곧 제 자신이 위태로워집니다. 그의 지혜는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는 알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저는 어떻게 대하면 좋겠습니까?”

거백옥이 대답하였다.

“잘 물으셨습니다. 경계하고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몸을 올바로 가지십시오. 태도는 종순해야 하며, 마음은 온화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에도 조심이 필요합니다. 종순하면서도 남에게 끌려 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온화하면서도 남에게 일을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태도가 종순하면서 남에게 끌려 들어가다 보면 전복되고 멸망당하여 무너지고 파멸하게 됩니다. 마음이 온화하면서 남에게 일을 드러내다 보면 명성에 뒤쫓다가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아이 같다면 그와 더불어 아이같이 되십시오. 상대방이 분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와 더불어 분수 없게 행동하십시오. 상대방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와 더불어 종잡을 수 없게 행동하십시오. 여기에 통달하게 되면 탈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빛을 대하는 데 있어서 사진가에게 중요한 것은 태도이다. 자신의 사진을 겸허하게 바라보고, 대상을 이해하는 것에서 항상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거백옥이 말하는 것처럼, 항상 올바른 행동에서 비롯된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지 않고, 탈 없는 경지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04IMG_7066.JPG

https://youtu.be/5PYX5msLRV4?si=csLFLGAa_zguA1Bd

매거진의 이전글03. 양생주(養生主, 빛을 다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