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덕충부(德充符, 빛이 충만하리라)

내편(內篇) ------------> 빛(Lighting)

by 노용헌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오늘도 별이 진다네....”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노래中에서-


형체를 잊은 자의 가르침

위나라 사람들이 거리에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한 발이 잘린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형벌로 발이 잘린 왕태(王駘)라는 사람은 누가 보아도 비참한 신세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왕태를 따르며 가르침을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공자 자신도 왕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충만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는다. 형체는 비록 온전하지 못하나 덕은 온전하구나.” ‘덕이 충만한 표징’을 장자는 신체적으로 불안전한 인물을 통해 이야기할까?

상계(常季)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물었다. “왕태는 형벌을 받아 발이 잘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를 따르는 사람이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만큼 많으니, 그는 서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앉아서 논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텅 빈 마음으로 찾아가서는 충만한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정말로 말 없는 가르침이 있고, 형체는 불완전해도 마음이 온전한 것이 있는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는 성인이다. 내가 늦어서 아직 찾아가지 못했을 뿐이다. 나도 그를 스승으로 삼으려 하거늘, 하물며 나만 못한 사람들이겠는가. 비단 노나라뿐 아니라 천하 사람들을 이끌고 그를 따르려 한다.” 우리는 외모, 학벌, 지위, 재산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내면에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그 형식상 형태를 드러낸다. 사람의 형체는 형태에 의해 파악된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형태, 형체가 먼저 인식되기 때문이다. 첫인상의 오류는 아마도 이런데서 기인할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aura)는 사실, 언뜻 봐서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의 시선은 소외된 이들의 기이함과 진실의 불편함을 드러낸다. 그가 외적으로 기이함(Bizarre)을 주로 사진에 담아 왔는데, 그는 그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을 어떻게 했을까. 사진만 봐서는 그들이 일반인과는 다른 형체를 가지고 있다. 난쟁이, 거인 트랜스젠더, 정신 지체아 등 사회가 ‘프릭스(Freaks)’또는 ‘아웃사이더(outsider)’들을 주로 정면에서 불편하게 마주한다. 피사체인 그들의 소외감을 더욱 강조한다. 그들의 고립감과 불안을 역설적으로 카메라의 시선으로 꿰뚫고 있는 셈이다. 그녀의 도덕적 불편한 시선은, 불편함 그것은 그녀가 다른 모든 인간 존재의 잠재적인 영역임을 시사한다. 사회적 관습과 위선이라는 거울(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정상적’인지 되묻고 있다. 장자는 ‘덕이 충만한 표징’을 이야기하듯이, ‘빛이 충만한 표징’은 사진속에 그 대상이 가지는 진실된 내면이다. 내면은 그에게서 나오고, 그에게서 나오는 표징을 잘 파악하는 것이 사진가의 자세이다.


신도가(申徒嘉)와 자산 – 편견에 맞선 덕의 힘

신도가(申徒嘉)는 한쪽 발이 잘린 사람이었는데, 정나라의 재상 자산(子産)과 함께 백혼무인(伯昏無人)에게 배우러 다녔다. 자산은 신도가를 보고 불편해하며 말했다. “그대가 먼저 나가면 내가 남고, 내가 먼저 나가면 그대가 남으시오.” 같이 다니기 싫다는 뜻이었다. 신도가가 대답했다. “선생님의 문하에서 재상이라는 지위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는 재상의 지위를 가지고 남들보다 앞서려 하는군요. 나는 들었습니다. 거울이 밝으면 티끌이 머물지 않는데, 티끌이 머물면 거울이 밝지 못하다고, 오래도록 현인과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그대는 선생님께 도를 구하면서도 아직 이런 말을 하는군요.”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온전한 것은 우리의 능력만이 아니라 운과 환경의 결과입니다. 내가 이런 형편이 된 것도, 그대가 온전한 것도 모두 하늘의 뜻입니다. 그런데 왜 그대는 남들과 다르려고만 하십니까.” 편견을 가지고 보지 않는 시선. 노자나 장자는 그런 시선을 물과 같은 시선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멈춰 있는 물을 거울로 삼습니다. 멈춰 있는 물만이 물건들이 와서 멈추게 하고 사람들을 모여들어 멈추게 합니다.” 물과 거울은 왜곡되지 않고, 그대로를 비춘다. “죽음과 삶, 존속과 사라짐, 곤궁과 영달, 가난과 부(富), 어짊과 우둔함, 욕 먹음과 칭찬,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와 같은 변화속에서도 중요한 것은 평형(平衡)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덧붙여 말한다. “평형(平衡)이란 물이 가득히 멈춰져 있는 것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법도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안으로 그 평형을 보전하여 밖으로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덕이란 조화를 이룩하는 수양인 것입니다. 덕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그로부터 떠날 수가 없게 됩니다.” 평형은 달리 말하면 평정심(平靜心)이다. 사진가의 중립적 시각은 평정심에서 비롯된다. 어느 편에 감정이 쏠리게 되면 그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


애태타(哀駘它) – 추함과 극치와 내면의 매력

위나라에 애태타(哀駘它)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추함은 극에 달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와 함께 지내면 떠나기를 싫어했고, 여자들은 그를 보고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이 사람의 첩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모습은 추하고, 권력도 없으며, 재산도 없었는데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나라 군주가 이상하게 여겨 그를 불러 만나보니 정말로 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되어 군주는 그의 인품에 반했고, 일 년이 되자 그를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 마침 재상 자리가 비자 군주는 애태타에게 나라를 맡기려 했다. 그러나 며칠 후 애태타는 떠나버렸다. ‘곱게 잘 늙었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그 사람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원숙미가 있고, 나이가 드니 더 멋져 보인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사실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을 비교 대상이 아니라, 사실 그 내면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볼 때, 그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있다.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은 ‘인간은 추하지만 삶은 아름답다’라고 말했다. 장애로 인해 소외당했던 로트렉의 시선은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지만, 그는 어느 누구도 편견과 선입견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부도덕하다고 낙인찍힌 매춘부일지라도. 그는 그들의 삶을 결코 아름답게 미화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나약한 모습을 강조했다. 사람의 얼굴에서도 만 가지 표정이 나온다. 그 많은 표정들을 정확히 읽어내는 것. 내면의 매력을 발견하는 시선이다.


감정적으로 보지 않고, 편견을 가지고 보지 않는다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사람은 본시부터 감정이 없는 것이오?”

장자가 말하였다.

“그렇소.”

혜자가 말하였다.

“사람이면서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그를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장자가 말하였다.

“도가 그에게 용모를 부여했고, 하늘이 그에게 형체를 부여했는데, 어찌 사람이라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

혜자가 말하였다.

“이미 그를 사람이라 부른다면 어찌 감정이 없을 수가 있겠소?”

장자가 말하였다.

“그것은 내가 말하는 감정이 아니오. 내가 감정이 없다고 말하는 근거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서, 안으로 그 자신을 상하게 하지 않으며, 언제나 자연을 따르기만 하고 자기 삶에 이익을 주려 하지 않는 것이오.”

혜자가 말하였다.

“삶에 이익이 되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자신을 보유할 수가 있겠소?”

장자가 말하였다.

“도가 그에게 용모를 부여했고, 하늘이 그에게 형체를 부여했으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안으로 그 자신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오. 지금 당신은 자신의 정신을 소외하고 당신의 정력을 낭비하고 있소. 나무에 기대 서면 읊조리고, 오동나무 안석을 베고 누우면 장을 자오. 하늘이 당신의 형체를 갖추어 주었는데도 당신은 궤변으로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소.”


덕의 충만함이란 무엇인가

혜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사람이면서 사람의 마음이 없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장자가 대답했다. “도가 그에게 얼굴을 주고, 하늘이 그에게 형체를 주었는데, 어찌 사람이라 하지 않겠는가.” 혜자가 다시 물었다. “이미 사람이라 한다면 어찌 마음이 없을 수 있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마음은 내가 말하는 마음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해치지 않고, 항상 자연을 따르며 인위적으로 삶을 더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장자는 무정(無情)의 개념을 설명한다. 감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스토아 철학의 ‘아파테이아(apatheia)’와도 통하며, 현대 심리학의 ‘정서 지능(Emotional Intelligence)’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형체를 넘어선 온전함

숙산무지(叔山無趾)는 발가락이 잘린 사람이었는데, 공자를 찾아왔다. 공자는 그를 보고 말했다. “그대는 조심하지 않아서 이런 화를 당했는데, 이제 와서 무엇을 하려는가?” 숙산무지가 대답했다. “저는 무지하여 경솔하게 몸을 다쳤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발보다 귀한 것을 보존하려 합니다. 하늘은 모든 것을 덮고 땅은 모든 것을 실으니, 저는 선생님을 천지와 같은 분으로 알았는데, 어찌 이런 대접을 받으리라 생각했겠습니까.” 공자가 사과했다. “내가 경솔했소. 선생께서는 들어오시오.” 그러나 숙산무지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명심하라. 발가락이 잘린 사람도 저렇게 도를 구하려 하거늘, 하물며 우리들은 과연 온전한 사람이겠느냐.”


내면의 빛이 외면을 비추다

장자는 덕충부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그러므로 평정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면 만물에는 귀천이 없다.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는 귀하고 남은 천하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이 각자 스스로 귀하다.” 내면의 덕을 수련하라고 촉구한다.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그 덕의 온전함은 외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온다’라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슬픔과 기쁨을 가지고 있다. 내면에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것, 그것을 사진에 담을 때, 그것은 깊이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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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5IiE3YtG40U?si=i7WJ_Q2XTwayXIW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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