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편(內篇) ------------> 빛(Lighting)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에 쉴 곳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에 편할 곳 없네. 내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에 쉴자리를 뺏고 내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노래中에서-
포정해우(庖丁解牛) – 자연의 결을 따르는 지혜
문혜군(文惠君)의 주방에서 한 요리사가 소를 해체하고 있었다. 그의 칼이 소의 몸을 가르는 소리는 마치 상림(桑林)의 춤곡 같았고, 그 리듬은 경수(經首)의 음률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문혜군은 넋을 잃고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포정(庖丁)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제가 처음 소를 해체할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삼년이 지나자 소의 전체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정신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의 작용은 멈추고 정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소를 해체하는 기술은 이제 숙련자로서의 장인(匠人)의 모습을 보여준다. 포정(庖丁)은 외적인 기술을 넘어서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사진가 또한 포정과 같이 빛의 요리사이자, 마술사이다. 빛을 요리하는 요리사로서 빛을 잘 볼 줄 알아야 하고, 빛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스튜디오 사진가들처럼 인공조명은 그들의 기술이다. 빛의 마술사, 연금술자처럼 루카스 사마라스(Lucas Samaras)는 빛의 조명들을 만들어낸다. 1966년 루카스 사마라스가 만든 건축물인 [반사되는 방](Mirrored Room)은 한 개의 탁자와 책상이 사면과 천정과 바닥이 거울로 된 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 대상물이 놓여 있는 6면이 거울로 된 방은 아마도 처음 접하게 되는 경우 흔치 않은 경우일 것이다. 각 면에서 반사하는 빛은 빛이 밝기가 허락하는 한 우주의 끝까지 확대된 사물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며, 그것은 우주의 크기로 확대된 인간의 의식세계를 암시하는 것이다. 무한히 반복된 허상에서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이나 무한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공간을 거울로 된 방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은 일정한 방향이 없이 모든 방향으로 퍼진 빛의 재현이며, 물리적으로 결합된 빛의 모습일 것이다.
19년 된 칼날의 비밀
포정은 또 이렇게 말한다. “좋은 요리사는 일년에 한 번 칼을 바꾸니,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요리사는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꾸니,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제 칼은 이제 십구 년이 되었고 수천 마리의 소를 해체했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쓰느냐에 달려 있다. 단지 장비탓만 하기 전에 프로는 장비의 속성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사진가는 카메라 장비의 성질을 잘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어낼 때,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장비가 바뀌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각 장비의 특성을 알고, 빛을 다루는데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오랜 숙련자는 항상 숫돌에 간 것 같이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다. 빛을 다루는 데 있어서 사진가는 빛의 흐름을 정확히 볼 줄 알아야 한다.
복잡한 부위를 만났을 때
숙련자 포정도 때로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제가 복잡하게 얽힌 부위를 만나면, 그 어려움을 알고 경계하고 조심합니다. 시선을 집중하고 동작을 늦추어, 칼을 매우 미세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면 이미 해체된 고기가 흙덩어리가 땅에 떨어지듯 쫘악 갈라집니다.”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포정의 모습에서 그는 자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집중력을 높이며 세심하게 접근함을 알 수 있다. 도심의 공간에서는 빛이 건물사이로, 사광(斜光)이 비추거나, 복잡하게 난반사(亂反射)된 빛들이 많이 있다. 포정의 눈으로, 장자의 눈으로 비친 복잡한 빛들을 사진가가 만났을 때, 그 사진가는 빛을 다룸에 있어서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의 1969년 촬영된 로스앤젤레스 거리의 사진에서는 빛의 양쪽에서 비춰진다. 그에게 있어서 빛은 사진의 주제인 셈이다. 그는 우리 모두가 매일 자주 보지만 거의 주목하지 않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자주 촬영했다. 거리에 뒤섞인 사람들 사이로, 빛은 창문에도 반사되어 태양이 두 개 있는 것처럼 복잡한 빛을 잘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진이 어떻게 보일지 알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또 다른 사진가 케네스 조셉슨(Kenneth Josephson)도 빛과 그림자의 유희를 잘 표현하고 있다. 1961년 시카고에서 촬영한 그의 사진에서, 인물은 빛 무늬를 만들고 시카고 고가 환승 선로 아래의 어둠을 꿰뚫고 만들어낸 빛을 포착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변화의 수용
장자가 친구의 장례식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다른 조문객들이 통곡하는데, 장자는 웃으며 장례식장을 나왔다. 제자들이 의아해하자 장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때에 맞춰 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요, 때가 되어 가는 것도 자연의 이치입니다. 때를 편안히 여기고 순리를 따르면 슬픔과 기쁨이 끼어들 수 없습니다. 이것을 옛날 사람들은 ‘하늘의 해방’이라고 했습니다.” 삶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장자의 모습은 최근, 김민기의 유언과도 닮아 있다. 뒷것 김민기가 마지막 남긴 말은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고(故) 김민기 학전 대표의 생전 유지(遺旨)를 2024년 7월 29일, 유가족은 간곡히 전했다. “고인의 뜻에 따라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공원이나 추모사업을 원하지 않는다”며 “유가족은 고인의 유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왜곡되지 않도록 받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양생의 진정한 의미
양생주(養生主)의 ‘주(主)’는 생명의 주인, 즉 정신을 의미한다. 단순히 육체적 건강과 장수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자유와 충만함을 기르는 것이 진정한 양생이다. 포정이 19년 동안 칼날을 상하지 않게 한 것처럼, 우리도 삶의 날카로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야겠다. 주(主)인(master)의 내공은 양생(養生)에 있다.
“기름은 촛불이 되어 타 없어져 버리지만, 불은 옮겨 붙여 주면 다할 줄 모르게 된다.”
(指窮於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
https://youtu.be/J6ErPgp-Hw0?si=5JDEFTSbceV4xV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