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포기버블Unforgivable> 2011년
앙드레 테시네 감독의 영화 <Impardonnables> 또는 <Unforgivable>(2011) 영화이다.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Unforgivable>(2021)과는 다른 영화이다.
필립 지앙의 소설 <나쁜 것들>은 2009년에 출간되어 같은 해 장 프뢰스티에 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 앙드레 테시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가족의 일부를 잃은 한 남자의 인생을 자조적인 목소리로 그려내며,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용서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동차 사고로 부인과 큰딸을 잃은 육십대 작가 프랑시스. 유일한 가족인 작은딸 알리스는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 스타 여배우로 성장했다. 프랑시스는 재혼한 능력 있는 부인 덕에 생계 걱정 없이 소설가로서의 재기에 몰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작은딸의 실종 소식이 날아들면서 그가 감추고 있던 불안과 고뇌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가족 간에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받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주일이 지나자. 우리는 결국 경찰에 알리기로 했다. 거대한 조수가 밀려왔다. 로제는 이제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전화를 걸 만한 곳은 한 군데도 빠짐없이 연락해보았다. 알리스의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친구들. 심지어 그 아이를 정말이지, 전혀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수소문을 해봤지만 뭐든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지난 열흘 동안 그 아이를 봤다거나 말을 섞었다는 사람조차 없었다. 알리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쥐디트는 다시 산세바스티안으로 돌아갔고, 그래서 나는 거의 일주일 내내 로제와 쌍둥이하고만 지냈다. 로제는 굶어죽을 심산이 아닌가 싶었다.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녀석이 벌써부터 머리숱이 줄기 시작했다.
“로제, 먹고사는 게 쉽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네. 하지만 여자를 잃기는 쉬워. 그 두 가지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 눈을 크게 뜨고 그애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우린 그애를 잃어버렸어.”
나는 때때로 그를 혼자 내버려두었다가 한두 시간쯤 지난 후 다시 가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같은 장소에서 한가하게 반쯤 졸고 있었다. 안간힘을 다해 버텨보려 애쓰는 중이라고 말할 게 틀림없었다.
우리는 오전 내내 경찰서에서 파견된 수사관들과 함께 지냈다. 여하간 그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남자들과 여자들은 저녁이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들 자신의 문제들, 배우자들, 자식들, 이웃들을 만났다. 완전히 무관심하지는 않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알리스를 찾아 데려오기 위해 소파를 박차고 뛰어나갈 용의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P14-15)
“신문을 보면서 당신 생각을 했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프랑시스. 이건 분명히 잠시 스쳐 지나갈 나쁜 순간일 거예요.”
그건 그랬다. 언론이 떠들어대건 말건. 친구들이 있건 없건. 전화가 오건 말건.
여러 날에 걸친 탐문 수사와 내 딸의 과거 전적들로 미루어, 경찰은 이번 사건을 알리스가 그동안 간간이 저질러온 엉뚱하고 모험적인 해프닝들 중 하나이거나 구속을 싫어하는 예술가의 돌발적이고 격정적인 도피 행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했다. 수사를 중단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종적을 전혀 찾을 수 없고 새로운 단서조차 전무한 상태라서 수사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이해해달라. 계속 찾기는 할 건가? 물론 수색은 계속할 거라고 그들은 대답했다. 나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제자리를 맴도는 걸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사건이 빨리 만족스럽게 해결되기를 바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신 딸을 구해내어 건강한 모습으로 데려다주고 싶지 않을 경찰이 어디 있겠는가?
사복경찰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나는 한층 더 불안해졌다. 나는 그때까지 내 딸의 ‘목숨’이 위험에 처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P20-21)
내 주위가 온통 텅 빈 것 같았다.
나는 불을 피웠다. 타닥거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 벽과 벽 사이로 일렁이는 불꽃의 춤을 보기 위해, 그리고 대체로 효과 빠른 진통제 역할을 해주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서한집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스페인 연안은 이미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초저녁 별들이 정원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알리스의 실종이 쉼 없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무력함은 최악의 고문이었다.
안 마르는 그걸 알고 있었다. 안 마르는 그걸 이해했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나를 보러 와주곤 했다. 그녀는 쥐디트와 내가 더 이상 완전한 사랑을 엮어나가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나를 조금이나마 도와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렸다. 그녀는 내가 가는 길로 몰려드는 태풍들, 내가 건너고 있는 폭풍우들을 정확히 헤아리고 있었다. (P26)
알리스 이야기를 할 때면 때때로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두 여자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느닷없이 오열이 밀려와 목이 메곤 했다. 그럴때면 하수관에서 나는 듯한 꾸르룩 소리를 내거나 트림을 하듯 꺽꺽거리거나, 그도 아니면 배를 잡고 바짝 웅크렸다.
내가 두 딸의 아버지이자 아주 특별한 여자 조아나의 남편이던 그 시절 그들이 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그때를 입에 올리는 순간 내 배 속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나올 때에도. 제레미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어디가 안 좋으냐고 묻고 나서 이어 물었다. “크루아상 몇 개 먹어도 될까요?”
몇몇 젊은이들이 물을 뚝뚝 흘리면서 윈드서핑 보드를 들고 바닷물 속에서 나와 나와 바다를 감상하러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얼마든지 먹게.” 내가 말했다. “물론 내 딸이 평소에 모범적으로 처신했다는 건 절대로 아니야. 그 아이의 행실이 조신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 아이한테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들이 있어. 내가 보기에.....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리고 그 세계가 어떤 곳인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 안 그런가? 그 세계에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온전하게 빠져나오는 건 실제적으로 불가능해. 그런 곳에 몸답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 자식을 집어들어 창밖으로 내던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농담일세.” (P37-38)
내가 그 청년에게 직장을 구해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내 생애 최악의 시련들 중 하나를 겪고 있는 마당에 그럴 여유도 없었고.
그에게도 자신만의 문제들이 있었다.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바로 그러한 유사성. 그 음울한 공통점에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있어 서로가 그 짐들을 견대내는 것이 훨씬 덜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자기만큼 상처 입고, 자기만큼 망가지고, 자기만큼 막막하고, 자기만큼 짓밟힌 존재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는가? (P43)
“그 일은 십이 년 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어. 자네 아버지에게 일어난 것과 똑같은 일이 어느 운전기사에게 일어났지. 심장발작. 나는 알리스와 함께 차에서 내려 카페테리아로 걸어갔다네. 우린 바캉스를 떠나던 중이었어. 그 남자는 이미 의식을 잃었던 것 같아. 기름을 가득 실은 그의 탱크차가 마치 대포알처럼 주차장을 가로질러 달려와 우리 차를 들이받았어. 차 안에 남아 있던 아내와 딸이 산 채로 불탔지. 제레미, 아내와 큰딸이 우리 눈앞에서 불에 타 죽었어. 둘 다. 알리스의 엄마와 언니가 말일세. 그애를 비난하기 전에 그걸 잊어선 안 돼. 자네가 알리스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얘기를 해주는 거야. 코트니 러브를 봐. 그녀가 때때로 무절제한 행동을 저지른다고 해서 누가 그녀를 비난하겠나? 어쨌든, 자네도 이제 그 사건을 알게 되었군. 정신이 온전하다고 해도 살아가기 쉽지 않은 게 그쪽 세계인데 하물며 그런 사건을 겪었으니, 내 딸은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어. 그 아이에겐 용기가 필요했어. 나는 누구보다 그걸 잘 알아. 그건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 아니야. 사위 얘기로는, 알리스가 아직도 잠을 자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난다더군. 땀에 흠뻑 젖은 채, 너나없이 달려들어 자기 면전에 있는 사람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그런 세계에서.....”
나는 그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하묘지의 뚜껑이 다시 내 위로 닫혔다. 내 무덤의 무거운 돌이 제자리로 돌아와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그가 말했다. “모든 걸 다 잃은 건 아니잖아요.” (P46-47)
나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당장’ 돈부터 준비했어야지. 그들의 지시를 ‘당장’ 따라야 했어.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주었어야 했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구. 그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시도해선 안 되었어.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려선 안 되었어. 로제. 잔꾀를 부리려 해선 안 되었다고. 아주 간단한 일이었단 말일세.”
경찰의 손에 내 딸의 운명을 맡겨두었다니, 로제 녀석은 엄청난 고통을 받아 마땅했다. 만일 그의 행동이 알리스를 위한 게 아니었다는 의심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곳에 서서 가증스러운 멍청이의 말을 듣고 있었다. 또다른 가증스러운 멍청이들에게 이야기하는 멍청이의 목소리를, 그 멍청이들과 함께 작전을 세우는 멍청이의 목소리를, 몸값을 지불하러 가지 못해 모든 걸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 그 지긋지긋하고 한심한 카우보이 무리들. (P57-58)
나에게는 이제 예전과 같은 지구력이 없었다. 나는 더 약해졌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 나는 더 감상적이 되었다. 알리스의 부재는 그 아이의 엄마와 언니의 환영을 다시금 출현시키고 있었다.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게다가 이제는 ‘희망’마저 다시 나타나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희망, 확실한 근거라고는 전혀 없는, 복통을 일으키고 콧물을 바람에 휘날리게 만드는 그놈의 희망.
불타는 차의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내부를 가죽으로 마감한 카브리올레 형 사브 9000. 한 번도 바깥에서 재우지 않았던 차. 그 엄청난 광경. 으르렁대는 불길들.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알리스. 그 아이의 비명. 그 아이의 떨림. 두 여자가 두 팔을 촛대처럼 들어올린 채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광경을 지켜보는 동안. 조아나, 내 딸아이들의 엄마. 올가, 나의 맏딸.
나는 더 이상의 시련을 원하지 않았다.
쥐디트와 내가 결별의 과정으로 접어드는 것 역시 바라지 않았다.
때때로 인생이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P66-67)
저녁 바람이 불면서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 쪽에서는 그녀의 시선을 볼 수 없었다. 이제 그녀는 거리낌 없이 경멸하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녀는 나를 앞에 두고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를 즐겨 사용했다. 나를 경멸하기 위해서였을까?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내 존재 같은 건 아랑곳없이, 조심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자신의 외출과 부재에 관한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심지어 산세바스티안에 얻은 집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나에게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건 그다지 친절한 처사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인의 고통과 관련해서는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들에게 초래한 피해 상황을 확인한 후에야 놀라서 얼이 빠지고 기겁을 한다. 길거리 싸움판에서 멋모르고 휘두른 주먹 한 방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일처럼, 나는 결국 내가 그녀에게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서 받은 고통을 몇십 배로 되갚아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걸 다 갚으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P108-109)
나는 그 아이가 그리웠다. 뭔가를 빨리 찾아내고 싶었다. 마침내 뭔가가 궤도에 오르기를 바랐다. 그 무엇으로도 멈출 수 없기를. 내 발걸음이 나를, 멈춤 없이 곧바로 내 딸에게 인도해주기를. 나는 온 마음을 다해 바라고 있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나는 더할 수 없이 추운 겨울을 보내게 될 것이었다. 만일 내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징표를 내 손에 넣지 못한다면, 그 아파트를 샅샅이 뒤져도 결국 헛수고라면, 그러면 나는 정말로 완전히 파멸해버리고 말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아이는 왜 숨어 있는 것일까? 죽은 것보다는 숨어 있는 게 분명 나았다. 숨어 있는 편이 천 배 만 배 나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의문에 대한 대답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그 아이의 결혼 생활이 곤경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아버지에 그 딸. 영화 촬영 때 몇몇 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다는 소문도 알고 있었다. 거기서 단서를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뭔가가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혹시 지하실에 갇혀 있는 걸까? 아니면 다락방에? 아니면 어느 깊은 숲속에 피신해 있는 걸까? 이 도시에 있을까? 이 나라 안에 있긴 한 걸까?
그것에 관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의문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P116)
나는 냉장고를 조사하다가 과육이 든 오렌지주스를 잔에 따라 마셨다. 밤이 깊어지는 동안, 거의 모든 이들이 잠들어 있는 시각에.
바로 그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전등을 껐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스튜디오의 문이 열리면서 어떤 형체, 그림자 연극의 한 장면 같은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어둠 때문에 나는 더더욱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림자가 거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 뒤에 몸을 웅크렸다. 무기 없이 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칼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을. 요즘 세상에 미친 놈에게 걸리는 건 빈번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 해도 결코 드문 일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나는 염세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문을 읽고, 라디오를 듣고,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들을 뿐이었다. 어느 날 길에서 연쇄살인범과 마주칠 기회는 수없이 많았다. 그런 인간들은 정말로 우글우글했다.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림자가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깜짝 놀라 숨을 헐떡이면서 즉시 몸을 일으켰다. “알리스?” (P124-125)
그는 내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얻어맞는 것 따윈 전혀 두렵지 않다고 했다.
“요즈음 자네 어머닌 몹시 지쳐 있어. 왜 어머니한테 그렇게 무관심한 건가?”
“지친 게 아니에요. 차여서 그런 거지.”
“어머닌 지금도 충분히 걱정이 많은 사람이야. 더 보태주지 않아도 된다고. 제발 인정을 좀 베풀어. 자네 때문에 늘 근심 걱정이잖나.”
우리 자식들은 우리에게 애를 먹이고 있었다. 분명히 인정해야만 했다. 이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그런 운명에서 벗어난 부모는 드물었다. 제레미가 자신의 동맥을 그은 후에 안 마르그리트가 비틀거린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일을 견뎌낼 어머니는 거의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최근에 애인에게 ‘차인’ 어머니들 중에 그런 일을 감당해낼 어머니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테니까. (P133)
하지만 그 문제에 신경쓸 시간이 나에게 있을까? ‘아직도’ ‘여하한’ 문제에 신경쓸 여유가 내게 있을까?
나는 내 주위에 성벽을 쌓아올리기 위해 다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지하게 생각중이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논평이나 별 볼 일 없는 단편들을 근근히 써왔다. 실제 노력보다 훨씬 더 과장해서, 마치 심혈을 기울여 써낸 결과물인 척하면서,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반드시 다시 소설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소설을 써보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 같았다. 소설을 쓰는 작업에는 그 외의 모든 일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 정도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이점이었다.
나는 그런 경험이 잦았다. 마지막 소설들을 쓸 때 그 집필 작업은 내게 일종의 엄폐호였다. 그리고 정황상 지금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소설의 그러한 힘에 다시 의지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나의 소설들은 나를 꽁꽁 둘러싼 숲, 나 외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숲이었다. 조아나가 죽은 후 나는 그녀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을 정신없이 써내려가기 시작했고, 기꺼이 인정하건대 그로 인해 간신히 목숨을 지탱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작업이 항상 쉽지만은 않았다. 어떤 날들은 죽음보다 음산했고, 1945년 8월 6일 현지 시각 여덟시 십육분 이초 이후의 히로시마 거리들보다 황량했으며, 광활한 얼음 대륙보다 삭막했으니까. 나는 개떼처럼 나를 물고 늘어지는 비평가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서점가에서는 웬만큼 반응이 있었다. (P140-141)
애니멀 콜렉티브의 <밴시 비트>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인간이 단순히 고통과 추함을 세상에 퍼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 비가 오고 있었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 음악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불가피하게 잔을 내려놓고, 전쟁이나 기근 등등을 겪지 않게 해준 신에게 감사하면서 춤을 추기 시작해야 할 순간, 엉덩이를 흔들며 걷고 만족의 미소가 얼굴에 떠오르게 내버려두어야 하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 순간들을 지켜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갔다. 내 생각에, 대체로 인생은 그런 순간들과는 달리 오히려 고통스러운 사건이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는 날마다 춤을 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해안 위로 비가 철철 내리는 동안 잠시 음악에 몸을 맡겼다. 마치 전기 콘센트 속의 구더기처럼 흐느적거리면서, 날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만약 음악이 없다면 우린 어떻게 될까? 나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좋은 백포도주 한 병을 땄다.
조아나가 죽은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춤을 추지 않았다. 춤다운 춤을 춘 적이 없었다. 나는 춤을 추기 위해 쥐디트와 결혼한 게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결혼한 거였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게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춤추는 것은 때때로 정말 도움이 되었다. 나는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었다. 이 집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곤 오직 나 하나뿐이었으니까. 음악은 나의 정수리로 스며들어 발바닥을 뚫고 땅속으로 사라져갔다. 대양 위로 금속판 같은 구름들이 떠 있는 검은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구름들은 서로 부딪치면서 수평선을 올라타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면 나는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 들었다. (P144-145)
쥐디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뿌루퉁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녀는 파리 생활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했다. 손녀들 때문에 지쳐 있었다. 그녀는 소설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묻곤 했지만 내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쁜 년, 내가 지금 <전쟁과 평화>나 <길 위에서> 같은 작품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다니.
그녀가 나의 작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건 특히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십일 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나를 열렬히 찬미하는 여자들 중 하나였다. 당시만 해도 내가 쓰고 있던 소설 이야기를 할 때면 그녀는 눈을 반짝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독자를 잃는 건 불쾌한 경험이었다. 만약 그 독자가 자신과 함께 사는 여자이기도 한 경우라면 기분은 더 비참하고 더러웠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내가 제레미에게 말했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독자를 잃는 건 채찍질을 백 번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야. 독자를 잃는 건 끔찍한 형벌이라고.”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지 한 장을 앞에 놓고 삼십 년 세월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다름아닌 문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란 훨씬 더 어려웠다. 어떤 한 문장의 절대적인 필요성. 그 문장의 아름다움,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그 문장의 은밀한 떨림에 대해 말하는, 그 심연, 그 감옥, 그 동굴을 설명하기란. 예증을 들기 위해 소리 내어 몇 페이지를 그에게 읽어준다 해도, 나는 어떤 벽과 맞닥뜨린 느낌. 사막의 입구에 도달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P148-149)
소설을 쓰는 것보다 더 혹독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그만한 노력, 그만한 헌신, 그만한 지구력을 요구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화가나 그 어떤 음악가도 소설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모두가 그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어떤 문장을 쓰면서도 이를 너무 세게 악무는 바람에 방 안이 휘청대며 윙윙거리기 시작할 때도 있었다. 헤밍웨이도 그런 얘기를 했었다. 초목은 저 혼자 푸르러지는 게 아니었다. 창밖의 풍경은 마술로 생겨나는 게 아니었다.
내 딸과 다시 정상적인 관계를 맺거나 쥐디트와 새로운 기반 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상황에서 소설을 쓰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으로 가장 실행 가능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생각은 더욱더 굳어졌다. 그 이외에는 달리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번갈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정신 상태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내와 큰딸을 잃은 사건이 있고 육 개월쯤 지난 후, 첫눈이 내린 새해 첫날 이른 아침에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P152-153)
알리스는 내 얼굴에다 자기 엄마의 일기장을 집어던졌다. 나는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즉시 알아차렸다. 일기장은 표지 모서리로 내 입술을 찢으면서 빠르게 방을 가로질렀다.
“아빤 구역질 나.”
“그건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리종으로의 그 짧았던 여행은 확실히 나에게 아주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다. 나는 욕실 안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턱 위로 흘러내린 피를 씻기 위해 조용히 문을 닫았다. 아이가 이내 따라와 문을 두드리면서 열라고 소리쳤다. 내가 찬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틀고 입술을 닦는 동안 알리스는 발길질을 해대면서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추자압하안 이인가안!!” 그 아이는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내 피가 세면대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동안 죄 없는 문을 사납게 두들겨대면서, “문 열어, 이 추자압하안 이인가안!!”
이튿날 시드니행 비행기에서 그 아이는 커다랗고 시커먼 안경을 쓰고 아침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는 함께 여행을 하며 몇 달 동안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가지라고 권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시작부터 모든 게 엉망이었다. 나라는 인간은 알리스가 자기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절대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바로 그 사람이었으니까 --그 아이가 직접 나에게 그렇게 말했거나 아니면 어쨌든 충분히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알리스가 그 일기장에서 무얼 읽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가 나를 어떻게 묘사했을지, 아주 나쁜, 아주 아주 나쁜 인간으로 묘사해놨을 게 틀림없었다. 조아나는 불분명하게 어물거리거나 빙빙 돌려 말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P173-174)
“해서는 안 되는 얘기겠지만, 난 그와 아주 멋진 일주일을 보냈어.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생겼어, 안 그래? 우린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어. 진정한 휴가를 보냈다고. 아빠 이외에는 아무도 내가 어디 있는지 몰랐지. 그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기분을 느낀 게 정말 얼마 만인지 몰라.”
“그래. 네가 하는 말을 백 퍼센트 이해한다. 때때로 숲속으로 들어가 종적을 감춰버리고 싶은 욕구가 일곤 하지. 더 이상 아무것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고 세상과 인연을 끊고 싶은..... 하지만 로제가 이번만큼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든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아주 길어. 만약 쥐디트가 어떤 녀석의 품에 안기려고 일주일 동안 자취를 감춘다면, 현재 우리 관계가 얼마나 식어 있건 간에 나는 그걸 이 세상의 보통 남편들과 거의 비슷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
나는 달걀 프라이를 두고 그 아이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에 대해 하늘을 저주해야 했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남겨준 것에 감사해야 했을까? (P189)
“당신의 종교에 용서라는 게 존재해요?” 그녀는 정원에서 춤을 추며 창유리에 부딪쳐 뿌옇게 흩어지는 엄청난 비의 커튼들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거야 어떤 거냐에 달렸지. 함께 산다는 건 어떤 가치들을 공유하는 걸 의미해. 넘어서는 안 되는 범위에 대한 합의. 그 범위내에서라면 용서가 가능한 거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즉시 밖으로 나갔다. 폭풍우가 그쳐 있었다. 헤어드라이어에서 나오는 듯한 따스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당신이 집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 내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항상 새벽 늦게야 잠들잖아요.”
“그건 그래. 하지만 아침에는 일을 할 수가 없어. 당신도 알잖아. 아침은 젊은 가장들을 위한 거야.”
이제 달이 환하게 떠올라 있었고 하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반짝였다.
“이런 기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해.” 나는 진창 때문에 엉망이 된 내 가죽신을 보면서 말했다. 대기는 다시 위성류 냄새와 인동덩굴 향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어쩌다 내게 다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쥐디트가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말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나는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
“난 우리가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래전부터 문제가 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마른기침을 했다. 나는 이 여자 앞에서 바보처럼 행동했던 터라 대화의 방향을 바꾸기에 적절한 말들을 항상 찾아내지는 못했다.
“이번 소설 때문에 몹시 불안해.” 나는 마침내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P204-205)
“이봐!” 그가 급정거를 하면서 다시 외쳤다. 우리는 정원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귀를 멍하게 만드는 총성이 우리를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와 쥐디트의 시선이 마주쳤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녀를 나 자신만큼 원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토록 멍청하고, 그토록 순진하고, 그토록 어리석고 경솔하고, 무분별하며 부주의한 우리의 태도가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제레미는 두 손으로 권총을 움켜쥐고 있었다. 주유소를 습격했고, 자신의 팔목을 칼로 그었고, 자기 가슴 한복판에 방아쇠를 당겼던 바로 그 청년. 그 사내아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제레미가 다시 두 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취해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제레미가 차에서 내리더니 마치 상자에서 튕겨 나오는 악마처럼 우리에게로 곧장 돌진했다. 찢어진 티셔츠, 참담한 얼굴, 깨진 콧등, 멍이 들고 부풀어오른 동시에 번들거리는 눈 --내 생각으로는 그가 그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완벽한 스트레이트 펀치를 얻어맞은 게 틀림없었다. 그의 등 뒤로, 저 멀리 번갯불들이 번쩍이며 트루아 쿠론 호텔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마치 성모마리아의 발아래 엎드리는 가련한 사람처럼 쥐디트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그는 앞으로 아주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겪게 될 것이었다. 한 여자의 발아래 무릎을 꿇는 행위가 보장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아야만 할 터였다. 서양의 관습에 따르면 그것은 인생의 무시무시한 교훈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두 번재 총성이 터졌고, 피와 피보다 더 끈적끈적한 다른 물질들이 우리, 그녀와 내 몸 위로 튀어올랐다. 제레미는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쥐디트가 비탄에 잠긴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자기가 잘못된 궤도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단고 있었다. (P271-272)
예순 살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경험과 추억들이 쌓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 게다가 좋은 추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 젊은 날에는 몰랐던 수많은 근심과 고통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필립 지앙의 예순 살은 보다 여유롭고 지혜로워지고 관대해지는 나이가 아니라 슬프게도 더욱더 이기적이고 치졸해지고 파렴치해지는 나이다. 그래서 이 공감하기 어려운, 그러나 결국에는 사무치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늙은 작가 프랑시스는 자기 혼자 기대치를 만들고 자기중심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자기 혼자 배신감에 몸을 떨면서 엄폐호를 쌓고 그 속에 틀어박혀 고독과 고통을 말 그대로 ‘즐긴다’. 외롭다 외롭다 노래를 부르면서 정작 그 외로움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자기모순에 빠진 채.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이 남자는 자신의 왜곡된 프리즘을 통해 측근들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그의 시선에서 연민이나 이해 같은 건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타인들에 대해 눈과 귀를 닫고 있는 자기 중심적인 장님. 자신의 고통밖에 모르며 자기가 필요할 때만 주변으로 눈을 돌리는 인간. 그래서 그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비난을 받아 마땅한 존재, 결함을 지닌 미성숙한 인간이 된다. 주변의 모든 인간들이 그를 배신했고, 그래서 그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옹졸한 그 자신 역시 용서할 수 없다는 함의를 읽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은 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이 된다. (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impardonnables’이다.) (옮긴이의 말, P274-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