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변무(騈拇, 테두리 안과 밖)

외편(外篇) ------------> 프레이밍(Framing)

by 노용헌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김정호, 하얀 나비 中에서-


외편 8장은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이 붙어 있는 사람(騈拇)에 대한 비유를 들고 있다. 변무는 나란히 할 변(騈), 엄지손가락 무(拇)라는 뜻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볼 때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의 참된 모습은 겉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진은 겉모양(외관)을 촬영하고 있지만, 그 내면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사진가는 노력한다. 그것이 바로 사진(寫眞), 참된 것을 묘사하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사진가의 길이다. 장주가 저술한 <장자>는 내편 7장, 외편 15장, 잡편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사진가의 입장에서 내편은 빛(Lighting), 외편은 공간(Framing), 잡편은 시간(Timing)으로 관점에서 해석해 보려고 한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이 세 가지의 성격으로 접근해 보았다. 카메라를 다루는 데 있어서 우리는 조리개, 셔터, 감도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 조리개(aperture)는 공간을 좌우하고, 셔터(shutter)는 시간을 좌우하고, 감도(ISO)는 빛을 좌우한다. 프레임을 규정하는 것은 크게 보면 공간적으로 보면 전체와 부분의 선택이고(근경, 중경, 원경을 선택하는 것), 시간적인 측면에 공간은 과정(process), 사건(event), 상태(state)의 상황이 만들어진다.


여섯 번째 손가락(第六隻手指)

“엄지발가락이 둘째발가락과 붙어 있는 변무(騈拇)나 육손은 나면서부터 그러한 것이라 해도 정상적인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군더더기이다. 사마귀나 늘어진 혹은 몸에서 나왔다고는 해도 인간의 본성에서 보면 군더더기이다.” 변무처럼, 인의덕성의 존중과 논리는 쓸데없다는 것을 비유로서 말하고 있다. “귀밝음이 지나친 사람은 오성(五聲)에 혼란을 일으키고 육률(六律)에 빠져 버리고, 변설(辨說)을 중시하는 사람은 탄환을 쌓아놓고 새끼줄로 묶는 것처럼 말귀를 따지려 들고 궤변에 마음을 쓰면서 남을 비판하거나 칭찬하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데, 이러한 것들 모두는 그릇된 짓이다”라고 말한다. 그 예로써, 지식인들, 양자(楊子)와 묵자(墨子) 같은 사람이 그 보기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들은 겉으로 보기에 인의예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쓸데없이 붙어 있는 변무나 육손이고, 덧붙은 것을 존중하는 것은 올바른 도(道)가 아님을 역설한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아니라 하나 더 있는 육손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발가락이 여섯 개이거나 손가락이 여섯 개라면 이는 자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여섯 발가락 혹은 여섯 손가락을 갖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이라고 혐오하거나, 오히려 나는 다른 사람보다 한 가지를 더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욕심일지도 모른다.

1999년, 취재로 만난 사람 중에서, ‘네 손가락의 즉흥환상곡’의 모델인 이희아 양을 만난 적이 있다. 특수학교인 서울 주몽학교에 다녔던 희아는 손가락이 4개뿐이고 무릎 아래가 없는 몸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희아의 손가락에 힘을 길러주기 위해 여섯 살 때 피아노를 가르쳤고, 하루에 10시간씩 피아노를 쳤던 그녀는 피아노 솜씨도 좋았다. 그녀는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라울 소사(Raoul Sosa)로부터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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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을 때 그 대상이 되는 물체를 피사체(被寫體)라고 부른다. 프레임에 담는 중요한 요소로, 주제(subject)이자 소재(object)이기도 하다. 풍경사진과는 달리, 인물 사진의 경우 프레임은 피사체의 인물을 다룬다.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그 대상과의 대화에서 출발한다. 그 대상인 피사체에 대해 사유하고, 대화하고, 질문을 던진다. 인물이든, 자연풍경이든, 사진가는 그 대상과의 관계맺음에 있다. 어떻게 소통하느냐는 그 사진가의 태도에 달린 문제이다. 카메라는 피사체를 포획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의 잔존된 기억들을 전달해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그저 뒤따라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이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왜 그럴까? 아마도 공간이 주는 아우라에 달려 있다. 공간속에 그 인물이 일치될 때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기 때문이다.


테두리 안과 테두리 밖(方內和方外)

대종사 편에서 테두리 이야기가 나온다. 테두리는 프레임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각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듯 하다. 사각 프레임 밖은 자신의 관점, 고집, 아집, 편견, 밖의 것들인 셈이다.

자상호(子桑戶), 맹자반(孟子反), 자금장(子琴張) 세 사람의 친구가 있었다. 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서로 사랑하되 서로 사랑함을 잊을 수 있을까? 누가 서로 돕되 서로 돕는다는 생각을 잊을 수 있을까? 자연이 얽매임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마지막에는 죽음과 삶마저 잊고 무궁한 우주에서 함께 노닐 수 있겠지.”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느 날 자상호가 죽었다. 그의 친한 친구인 자상호가 죽었는데 두 사람(맹자반과 자금장)은 죽은 친구를 향해 슬퍼하지도 않고 오히려 노래를 불렀다. 이에 공자가 말했다. “그들은 테두리 밖의 사람이고, 우리는 테두리 안의 사람이다. 그들은 세속을 초월했지만 우리는 세속 안에서 산다. 그들은 조물자와 벗하며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친구가 세상을 떠나도 슬퍼하지 않는 것이다. 인륜과 예교(禮敎)에 얽매여 있는 우리는 하늘의 벌을 받고 있는 것과 같아서 그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SNS, 또는 네트워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소외되고, 외롭고, 고독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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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Lc5FHrVTP0?si=9S8YYfim5OVdjG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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