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편(外篇) ------------> 프레이밍(Framing)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오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어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위에로 넘어 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
-한대수, 물 좀 주소 中에서-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은 어떤 의도나 목적 없이도 완벽한 질서를 만들어내며, 그 속에서 만물은 자연스럽게 생성하고 변화한다. 공간을 프레임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사진가가 공간을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공간을 프레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진의 프레임도 하나의 공간이다. 전시장에 걸려 있는 액자도, 전시장 공간도, 인간은 공간을 구성하고자 한다. 광화문 광장의 공간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많은 빌딩들이 있다. 공간을 최소한으로 디자인을 하든, 뒤죽박죽 구성하든, 공간은 사진가에게 중요한 요소이다. 그 공간에 사진가(존재)는 서 있고, 시간이 지나감을 담는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존재하고, 사고하며, 테이블, 의자, 그리고 실제로 공간과 시간의 전체 구조와 같은 확장된 것(extended things)으로서의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인 셈이다. 후설에 공간은 ‘사태 그 자체’로 돌아가(환원) 마치 현미경을 들이댄 것처럼, 체험된 시간이며, 체험된 공간이다. 공간들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그 위치(Lage)가 변하거나 멈추거나, 움직임으로써 현상학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는 사물과 공간의 현상학적 개념을 키네스테제(Kinästhetische)로 설명한다.
사물과 공간
황제와 광성자의 대화에서, 광성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알고자 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이고, 그대가 다스리려는 것은 사물의 찌꺼기입니다. 그대가 천하를 다스린 이후로 구름은 비가 되기도 전에 떨어지고, 나뭇잎은 누렇게 되기도 전에 떨어지며, 해와 달의 빛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그대처럼 아첨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찌 지극한 도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의 공간은 변하지 않는 듯이 보이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는 그 공간은 똑같은 조건이지 않다. 타임랩스로 촬영된 이미지는 구름이 빨리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다. 공간 속의 사물 또한 그렇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하늘과 통하는 것이 도이며, 땅에 따르는 것이 덕이며, 만물에 행해지는 것이 의로움인 것이다. 위에서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일이다.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재주이다. 재주는 일에 지배되고, 일은 의로움에 지배되고, 의로움은 덕에 지배되고, 덕은 도에 지배되며, 도는 하늘에 의하여 지배된다.”
사물과 형체
오브제(object)로서의 사물은 형체(figure)를 말한다. 공간은 하나의 점(dot)에서, 이것들이 모이면 형체를 형성한다. 장자는 그런 공간 속의 형체를 잊은 것처럼, 형체와 노닌다. 그의 마음의 움직임은 프레임의 사물(물건)에 의해 결정된다. 불쑥 나타나는 형체의 움직임에도 그는 형체를 잊고 함께 노닌다. 그 경지가 신묘한 지극한 도의 경지이다. 까마득한 가운데에서 홀로 밝음을 보고, 소리 없는 가운데에서 홀로 화(和)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형체는 정신을 보존하게 되며 제각기 원칙을 지니게 되는데, 그것을 본성이라고 한다. 배경(backgroud)과 형상(figure)으로 프레임은 구성된다. 배경은 자연을 말하고, 형상은 장자의 형체이다. 동곽자(東郭子)가 장자에게 물었다. “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장자가 대답했다. “없는 곳이 없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개미에게 있다.” “어찌 그렇게 낮은 곳에 있습니까?” “돌피에 있다.” “어찌 더욱 낮아집니까?” “기와나 벽돌에 있다.” “어찌 더욱 심합니까?” “똥오줌에 있다.” 도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야기이다. 황제가 곤륜산에서 노닐다 돌아오는 길에 그만 신비로운 구슬인 현주(玄珠)를 잃어버렸다. 황제는 아는 것이 많은 ‘지혜’를 불러서 현주를 찾아오라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 이주(離朱)에게 밝은 눈으로 찾아오라 명했으나 역시 찾지 못했다. 이어 귀가 밝은 성문(聲聞)에게 이 일을 맡겼으나 그 또한 차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무상(無象)’을 보낸 뒤에야 찾을 수 있었다. 도는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마음을 비운 자만이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섯 가지 색깔
장자와 노자는 다섯 가지 색깔, 다섯 가지 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노자 도덕경 12장에서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五色目盲), 다섯가지 음은 사람의 귀를 멀게 하고(五音耳聲), 다섯 가지 맛은 사람의 입맛을 잃게 한다(五味口臭)고 말했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본성을 잃는 데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로 다섯 가지 빛깔은 눈을 어지럽혀 눈을 밝지 않게 만든다. 둘째로 다섯 가지 소리는 귀를 어지럽혀 귀를 잘 들리지 않게 만든다. 셋째로 다섯 가지 냄새는 코를 자극하여 콧속을 메이게 만든다. 넷째로 다섯 가지 맛은 입안을 흐려 놓아 입을 병나고 상하게 만든다. 다섯째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마음을 어지럽혀 본성을 날아가 버리게 만든다.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삶에 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양주(楊朱)와 묵자(墨子)는 자기의 주장을 드러내 놓고 스스로 제대로 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오색(五色): 파랑, 노랑, 빨강, 검정, 흰색, 아름다운 미술을 가리킴
오성(五聲):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의 옛 음계. 아름다운 음악을 가리킴
오취(五臭): 고기 비린내, 그을음 냄새, 향기, 생선 비린내, 썩은 내.
https://youtu.be/XlbFSRaowTA?si=ZS2BbTLdqjxhdBk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