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달생(達生, 프레임의 경지)

외편(外篇) ------------> 프레이밍(Framing)

by 노용헌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 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 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 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中에서-


공자가 초나라에 가다 숲속에서 꼽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긴 대나무 장대를 들고 있었는데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매미를 잡는 것이, 마치 손으로 잡듯 한 마리도 놓치지 않았다. 이를 보고 공자가 물었다. “어찌 이리도 매미를 잘 잡습니까? 이것의 특별한 재주나 비결이 따로 있습니까?” 노인은 이에 대답하였다. “저는 몸을 마른 나무처럼 세우고, 팔을 마른 나뭇가지처럼 듭니다. 천지가 크고 만물이 많아도 저는 오직 매미 날개만 알 뿐입니다. 돌아보지도 않고 기울이지도 않으며, 만물과 매미 날개를 바꾸지 않으니 어찌 잡지 못하겠습니까.” 공자가 듣고는 제자에게 말했다. “다들 새겨들으라, 마음과 뜻을 하나에 집중하면 신기(神技)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달생(達生) 편은 삶의 경지에 도달한 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집중과 몰입의 경지

꼽추 노인처럼, 자신의 삶에 있어서 달인들은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 그 차이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과 몰입에 있을 것이다. 프레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 듯싶다. 공간에서 어떤 부분에 집중하고 선택해야 할지는 사진가의 결정에 달려 있다. 그 상황에 몰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가 말한, 가장 순수한 ‘몰입 상태(Flow)’일지도 모른다. 불교에서 말한 ‘삼매(三昧, Samâdhi)’의 삼매경(三昧境)이기도 하다. 혼란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마음의 물결이 사라지고, 존재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 응결점을 몰입함으로써, 프레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기술의 극치

재경(梓慶)이란 유명한 목수가 있었는데, 그가 만든 북틀은 귀신이 만든 것 같았다. 노나라 제후가 그것을 보고서 재경에게 물었다. “무슨 비법이 있소?” 재경이 답했다. “저는 목수인데 무슨 도술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한 가지 원리는 있습니다. 저는 북틀을 만들려 할 때에는 감히 기운을 소모하는 일이 없이 반드시 재계(齋戒)를 함으로써 마음을 고요하게 만듭니다. 사흘 동안 재계를 하면 감히 이익과 상이나 벼슬과 녹(祿)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닷새 동안 재계를 하면 감히 비난과 칭찬이나 교묘함과 졸렬함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이레 동안 재계를 하면 문득 제가 지닌 손발과 육체까지도 잊게 됩니다. 이렇게 되었을 적에는 나라의 조정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안으로 기교를 다하기만 하며, 밖의 혼란 같은 것은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된 뒤에야 산림으로 들어가 재목의 성질을 살피고 모양도 완전한 것을 찾아냅니다. 그리고는 완전한 북틀이 마음 속에 떠오르게 된 뒤에야 손을 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적에는 그만둡니다. 곧 저의 천성을 나무의 천성과 합치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만든 기구가 신기에 가까운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재경의 비법은 재료의 본성에 집중하고, 자신의 기술을 잊은 듯 몰입할 때, 자신의 기술의 경지가 극에 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는, 발뒤꿈치에 기름(油)을 바르고도 높은 곳에 올라가는 묘기를 보이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는 이런 묘기의 비법을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저의 재주가 아니라 습관입니다. 처음 배울 때는 떨어질까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편안합니다. 익숙해지면 잊어버리고, 발이 마음을 모르고 마음이 발을 모릅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는 균형잡기 어렵지만, 일단 몸에 익숙해지면 잘 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의식적으로도 기술을 의식하지 않고도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숱한 실패를 거쳐 반복과 모방을 통해서 예술의 경지에 오르는 과정과 비슷하다. 어둠속에서도 떡을 썰었던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가르쳤던 일화도 떠올리게 된다. 공수(工倕)의 손가락은 도구와 하나가 되어 이것저것 따지며 마음을 쓰지 않아도 정확한 네모와 원을 그려낸다. 또한 사람이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그 몸과 꼭 맞아서 편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시비(是非)를 잊는 것은 그 마음이 외물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있어도 없는 듯 편안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편하다는 느낌을 잊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편안한 사람이다.


자연과 하나 되는 진정한 힘

공자가 여량(呂梁)에 구경을 갔다. 거기에는 삼십 길 높이의 폭포가 있는데, 물방울을 사십 리나 튀기면서 급류로 흐르고 있어 큰 자라나 악어와 물고기나 자라도 헤엄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한 남자가 거기에서 헤엄치는 것을 보고서, 고민이 있어 죽으려는 사람인 줄로 생각하고는 제자들을 시켜 흐름을 따라 내려가 그를 구해 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수백 보를 헤엄치고 나와서는 머리를 흩뜨린 채 노래를 부르며 언덕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공자가 물었다. “당신은 귀신입니까, 사람입니까? 물에서 헤엄치는 데에도 특별한 도가 있는 것인지요?”

“없습니다. 제게는 도가 없습니다. 저는 타고난 성질에서 시작하여 습관으로 자라고 버릇대로 헤엄을 시작했는데, 버릇이 성격으로 발전되고, 성격은 운명처럼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소용돌이와 함께 들어가서는 솟아오르는 물길과 함께 물 위로 나옵니다. 물길을 따를 뿐이지 사사로운 힘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여기에서 헤엄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물과 싸우지 않고 물의 흐름을 따라 헤엄쳤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자연의 힘에 저항하지 않고 자연과 하나될 때 오히려 자유롭게 노닐 수 있다는 것이다.


달생(達生)에 이르는 과정은 꼽추노인의 집중력으로, 재경(梓慶)의 평정심으로, 수영 달인의 자연스러움으로 애쓰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삶의 예술을 만들 때, 프레임에서 진정한 자유로움, 느낄 수 있다. 진정한 고수는 육체와 정신이 손상됨이 없는 것, 이것을 자연의 변화(흐름)와 함께 옮아갈 때 정신의 순수함이 극점에 이를 것이다. 조용하고 침착하며, 마치 아무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거대한 힘이 잠재되어 있다. 자신의 형체와 사물, 심지어 생명까지 잊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 이것이 장자의 달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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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lxemcnCi0U?si=4XUAVTVOROPHnX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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