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산목(山木, 프레임의 정중동)

외편(外篇) ------------> 프레이밍(Framing)

by 노용헌

“어려서도 산이 좋았네 할아버지 잠들어 계신 뒷산에 올라가 하늘을 보면 나도 몰래 신바람 났네 젊어서도 산이 좋아라 시냇물에 발을 적시고 앞산에 훨훨 단풍이 타면 산이 좋아 떠날 수 없네 보면 볼수록 정 깊은 산이 좋아서 하루 또 하루 지나도 산에서 사네 늙어서도 산이 좋아라 말없이 정다운 친구 온산에 하얗게 눈이 내린 날 나는 나는 산이 될테야 나는 나는 산이 될테야”

-이정선, 산사람 中에서-


쓸모없음과 쓸모있음의 중간

장자가 산길을 지나가다 거대한 나무들을 보았다. 제자가 물었다. “산속의 거목은 쓸모가 없어서 제 수명을 누렸는데, 거위는 쓸모가 없어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스승님, 세상을 살면서 어찌 처신해야 합니까?”

장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쓸모없음과 쓸모있음의 중간에 머물겠다. 그러나 실제로 중간에 머물더라도 세속의 번거로움을 피하지 못한다. 오직 자연에 순응할 때에라야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다.”

동양고전의 ‘중용(中庸)’과 비교해서 생각해볼 만하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이란, 상하(上下)의 중간도 아니고, 좌우(左右)의 중간도 아니고, 선악(善惡)의 중간도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힘이 되는 쪽에 붙을지, 아닐지 어중간한 스텐스(stance) 또한 아니다. 기계적인 중간 흐리멍텅한 회색(灰色)도 아니다. 애매모호한 답이다. 인간사회에서 장자는 어쩌면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일지 모르겠다. 자연에서 노닐고 싶지만 그를 가만두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말한다. “인간 윤리의 변화는 그렇지 않다. 합해지면 떨어지게 되고, 이룩되면 무너지게 되고, 모가 나면 꺾이게 되고, 높으면 비판을 받게 되고, 뜻있는 일을 하면 공격을 받게 되고, 현명하면 모함을 받게 되고, 못나면 속임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 꼭 재난을 면할 수가 있겠는가? 슬프다, 너희들은 이것을 잘 기억해 두어라. 자연의 도와 덕이 행해지는 고장에서만 제대로 지낼 수가 있을 것이다.”


정중동(靜中動)

사진은 정중동(靜中動)이다. 찰나를 잡아내는 행위가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을 찾아내는 것이고, 고요함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언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말한다. 사진에서의 조형성은 정중동이라고, “사진에는 새로운 종류의 조형성, 즉 주체의 움직임에 의해서 만들어진 순간적인 선들의 결합이 있다. 우리는 그 움직임이 삶 그 자체가 전개되는 방식에 대한 예감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움직임에 조화를 맞추어 일한다. 그러나 움직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한 순간이 있다. 사진은 이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의 균형을 부도의 것으로 고정시켜 두어야 한다.” 이처럼 그는 움직임을 포착하였고, 그 움직임은 점, 선, 면의 기하학적인 구성과 균형을 이루는 정(靜)으로 표현한 셈이다. 정과 동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상호작용한다.


가난한 것이지 곤경에 빠진 것은 아니다

장자가 누더기로 기운 거친 무명옷에다가 삼줄로 얽어맨 신을 신고서 위(魏)나라 임금을 찾아갔다.

위나라 임금이 말하였다.

“어째서 선생은 그토록 곤경에 빠졌습니까?”

장자가 말하였다.

“가난한 것이지 곤경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옷이 해지고 신에 구멍이 난 것은 가난한 것이지 곤경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이른바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지혜를 가졌으되 천하를 교화하지 못하는 것이 곤경에 빠진 것입니다. 가시덤불 사이에 있을 때 원숭이는 조심스럽게 다니면서 함부로 뛰어다니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가시덤불 사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사고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보면 우리는 항상 불평불만을 하게 된다. 왜 나는 남들보다 더 멋진 프레임을 만들 수 없을까. 사진을 잘 찍을 수 없을까. 부정적인 프레임이 아니라 긍정적인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단지 관점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볼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볼 때 달리 보일 수 있다. 운전대만 잡으면 흥분하여 욕설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라, 내 사진이 별로 인 것은 언제나 장비 문제에만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곤경에 빠진 것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다. ‘왜 하는 일마다 잘 안 되는 걸까’ 영화 <레이닝 스톤>(켄 로치 감독)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진정한 가난은 물질적인 것의 결핍이 아니라 건강이나 아름다움, 부유함, 무엇을 좇든지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Alexander von Schonburg)는 말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라고 설파하는 서적들의 잘못된 점은, 행복의 진부한 상투어를 독자들 눈앞에 들이밀면서 이루지 못할 기대를 일깨워 불행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원래 어떤 삶이든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려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지하고 이루지 못할 꿈을 뒤쫓지 말아야 한다. 삶의 기복, 존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영원한 건강, 갈등 없는 배우자 관계, 물질적인 소원의 성취를 뒤쫓는 사람보다 어쨌든 행복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더 많다. 게다가 경이롭게도 행복은 외적인 상황과 무관하다. 부유하고 건강하고 가족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극도로 불행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찢어지게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데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영원한 행복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사람은 확실하게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 물질적인 부만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결단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P207-


내면의 아름다움

양자(陽子)가 송(宋)나라로 가서 여관에 묵게 되었다. 여관 주인에게 첩이 두 사람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예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추하게 생겼다. 그런데 추하게 생긴 여자가 귀여움을 받고 예쁜 여자가 천대를 받고 있었다.

양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여관 주인이 말하였다.

“그 중 예쁜 여자는 스스로가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나는 그녀가 예쁜 줄을 모르게 되었고, 추하게 생긴 여자는 스스로 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오히려 나는 그녀가 추한 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양자가 주인의 대답을 듣고는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잘 기억해 두어라. 현명한 행동을 하되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기만 한다면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호감을 얻지 않겠느냐?”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든 그렇지 않든 사실 이 두 가지 모두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가이고, 어떻게 자신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찰리 파커는 말했다. “음악은 너의 경험이고, 너의 생각이며, 너의 지혜다. 그것과 살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너의 색소폰을 통해 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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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Wp_lalZ75o?si=Ho4sv-p4QKghpPZ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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