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편(雜編) ------------> 타이밍(Timing)
“저멀리 날아가는 새야 들판을 날아 어디로 가는지 끝없이 날아가는 새야 너혼자 외로이 떠나가네 끝없이 한없이 날아가는 새야 저산을 저강을 영원토록 외쳐 외로이 한없이 날아가는 새야 너 새가 되어가리 너 새가 되어가리”
-김종서, 새가 되어가리 中에서-
칙양(則陽)의 대화
칙양이 초나라에 놀러 갔다가 왕에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고 왕과(王果)에게 말하였다. 왕과는 공열휴(公閱休)를 추천하며 만나보라고 말하였다.
“공열휴란 어떤 분입니까?”
“그는 외물에 대해서는 외물과 동화하여 즐기고, 사람들에 대해서는 외물과 서로 통함을 즐김으로써 자기의 본성을 보전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는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로 하여금 화합하는 마음을 지니게 만들고, 사람들과 나란히 서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동화하게 만듭니다. 그들을 모두 아버지와 아들 같은 정의(情誼)로 귀착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가만히 들어앉아 있어도 그가 세상에 베푸는 바를 한 번 살펴보면, 그가 사람들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이와 같이 원대합니다. 그래서 공열휴에게 부탁드려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공열휴는 칙양과 만나 칙양을 왕에게 추천했을까. 이후 이야기는 없다. 자기 본성을 중시하는 공열휴의 입장에서 보면 초나라 왕에게 소개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한 정치인의 문자에서 인사추천에 관한 문자로 시끄러운 기사가 떠오른다. “000형이랑 000누나한테 추천하겠다” 결국 그는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환중의 도(環中之道)
옛날에 염상씨(冉相氏)는 자연 변화의 원리인 환중(環中)의 도를 깨달아서 만물의 무궁한 변화를 따랐다. 만물에는 과거가 없고 현재가 없고 미래도 없다. 자연을 스승으로 삼으려 하면서도 자연을 스승으로 삼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 모두가 외물(外物)에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외물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성인에게는 처음부터 자연에 대한 의식도 없었다. 처음부터 사람에 대한 의식도 없었다. 용성씨(容成氏)는 “날이 없으면 해도 없고, 안이 없으면 겉도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지혜에 의지하면 근심만이 생긴다’고 덧붙인다. 거백옥(蘧伯玉)은 나이 육십이 되기까지 육십 번이나 태도가 바뀌었다. 자신의 지혜란 것도 결국은 옳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장자는 말한다. “아서라, 내 이론도 결국은 그러한 시비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른바 그런 대로 그렇게 지내야만 하는 것인가?” 채근담(菜根譚)의 이런 구절이 있다. “불이물희 불이기비”(不以物喜 不以己悲). “외물에 기뻐하지 말고, 자신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지만, 나는 내 리듬으로 산다.”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소지(少知)가 태공조(太公調)에게 물었다.
“고을의 여론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태공조가 말하였다.
“고을이란 열 가지 성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풍속을 형성하는 것이다. 각기 다른 요소들을 합쳐 같은 하나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같은 하나를 분산시키고 보면 각기 다른 것이 된다.
사철은 각기 기후가 다르지만 하늘은 한편에만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한 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섯 가지 관직은 직책이 서로 다르지만 임금이 어느 하나에만 사사로이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나라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문인과 무인은 기능이 다르지만, 위대한 사람은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덕이 완비되는 것이다. 만물은 이치가 서로 다르지만, 도가 사사로이 치우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이름없는 무명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도는 무명이기 때문에 무위하다. 무위하지만 어떤 변화나 존재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시간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세상에는 변화가 있다. 화(禍)와 복(福)은 유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되는 수도 있다. 모두가 제각기 따르는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바르다고 인정되는 것이 한편에서는 잘못된 것이 될 수도 있다. 큰 택지에 비유하면, 갖가지 동식물이 한데 어울려 살고 있는 것과 같다. 큰 산에 비추어 본다면, 나무나 바위들이 다 같이 자리 잡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을 고을의 여론이라 말하는 것이다.”
시간은 시작도 끝이 있을까 싶다. 아마도 시작과 끝도 없는 것이 시간이 아닐까. 시간에 대한 고찰로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물질과 기억>에서, 이미지들의 기억은 A(순수기억), B(이미지-기억), C(지각)이라는 세 항들을 구별했는데, 이러한 지각에 이르는 과정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시간은 기억을, 지각을 변형시킬 수도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억은 변화를 가지기 때문이다. 세 항들을 직선 과정으로 본다면, A(순수기억)에서 C(지각)에 이르는 선이 시작과 끝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사유는 이 선의 과정 A에서 C로 가는 연속적 운동으로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 항들 중의 하나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다른 항이 시작하는지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는 말한다. “기억과 습관은 시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암’ 속에서 기억과 습관은 생존할 수 없다. 이미 그들의 비극적 운명은 결정되었다. 또한 기억과 습관은 시간과 함께 삼두 괴물을 형성한다. 습관은 권태에 의한 것이다. 습관은 삶을 지배하지만, 또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습관이 있기에, 우리는 두려움과 고통을 잊을 수 있다. 습관이 ‘죽는’ 매우 드문 순간, 우리는 두려움과 고통 등 그야말로 ‘삶의 실제’에 노출된다.”
https://youtu.be/KbEMPLGRtmc?si=0tVI-Isdw38TQF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