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양왕(讓王, 피사체의 시간)

잡편(雜編) ------------> 타이밍(Timing)

by 노용헌


“Don’t say love is different from goodbye Don’t say life is different from death Just be dear and let the silence hold you. Breath in the quiet. Where are the things I would love? but the sounds are you Let the silence hold you”

-웅산, Anitya 中에서-


양왕(讓王)의 양(讓)자의 뜻은 ‘사양하다, 양보하다, 겸손해하다’라는 뜻이다. 양왕편은 안합(顔闔)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안합과 마찬가지로 안회(顔回)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 두 사람의 삶은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이다. 이들이야말로 정말로 부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말한다. ‘지금 세속의 군자들은 대부분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삶을 버리면서까지 사물을 추구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장자는 말한다. ‘수주의 구슬로 참새를 쏜다’는 의미의 수주탄작(隨珠彈雀). “무릇 성인은 마음이 향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미리 잘 살핀다. 지금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수나라의 매우 귀중한 구슬로 천 길 벼랑 위를 날고 있는 참새를 쐈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비웃을 것이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건 그가 사용한 것은 귀중하고 그가 취하려는 것은 하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삶이야 어찌 수주의 구슬에 비하겠는가.” 사진의 노출(exposure)은 필름이 빛에 감광하는 정도이다. 이에 따라 광량을 조절하는 수단으로 조리개와 셔터가 작용을 한다. 필름에 도달하는 광량은 노출시간에 비례하며 F수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사진가에게 사진을 찍는 데에 있어서 대상의 귀중한 시간, 피사체의 귀중한 시간은 무엇일까. 그가 취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수주의 구슬은 피사체의 시간을 담는다. 아침 또는 저녁의 금빛 시간(Golden Hour)을 담는다. 앙리 베르그송은 시간은 기억이라고 했고, 사진가 앙리 까르티에 브레쏭은 기억은 인화된 사진이라고 했다. 사진에는 시간이라는 기억, 피사체의 기억이 담긴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영원히 남을 한 장면, 피사체의 장면을 포착(捕捉)한다.


안합의 이사(顔闔搬家了)

노나라 왕은 안합(顔闔)이 도를 깨우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모셔오게 했다.

안합은 누추한 집에서 삼베 옷을 입고 직접 소를 치고 살았다. 노나라 왕이 보낸 사신(使臣)이 안합의 집 앞에서 물었다. “여기가 안합 선생의 집입니까?”

안합이 대답했다. “그렇소. 이곳이 나 안합의 집이오.”

사신이 노나라 임금이 보낸 금과 비단을 선물로 내밀었다. 안합이 대답했다.

“뭔가 착오가 있나 봅니다. 돌아가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엉뚱한 사람에게 준다면 돌아가서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신은 안합의 가난하고 누추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엉뚱한 사람을 찾아온 건 아닌지 불안하던 차였다. 그러다가 그는 선물을 챙겨서 되돌아갔다.

사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안합을 찾아왔다. 하지만 안합은 이미 이사하고 그곳에 없었다.


벼슬을 거부한 안회(顔回不想做官)

공자가 안회(顔回)에게 물었다. “회야, 이리 오너라, 너는 가난하여 거친 음식을 먹고 지내는데 어째서 벼슬을 하지 않느냐?”

안회가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벼슬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게는 성 밖에 오십 무(畝)의 땅, 성 안에 열 무의 땅이 있습니다. 그 땅에 농사를 지어 죽을 끓여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성 밖에도 열 무의 땅이 있어서 뽕나무를 심어 옷을 지어 입고 신발을 만들어 신을 수 있습니다. 한가한 때가 되면 거문고를 연주하고 선생님과 도에 관해 이야기하지요. 이렇게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굳이 벼슬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원헌(原憲)과 자공(子貢)의 대화

원헌(原憲)과 자공(子貢)은 모두 공자의 제자였다.

원헌은 노나라에 살고 있었다. 그가 사는 집은 몹시 가난해서 천장에서 비가 새고 문으로 바람이 그대로 들어왔다.

자공은 큰 말이 끄는 수레를 탔는데, 수레 안쪽은 보랏빛 천으로 장식하고 겉 포장은 흰 천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큰 수레는 그 집 골목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마차에서 내려 그는 걸어 들어가서 원헌을 만났다. 원헌은 가죽나무 껍질 관을 쓰고 뒤축도 없는 신을 신은 채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문으로 나와 그를 마중하였다.

자공이 말하였다.

“아아, 선생께선 어찌 이렇게 고생을 하시오?”

원헌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은 가난하다 하고, 배우고도 행하지 못하는 것을 고생이라 한다 하였소. 지금 나는 가난한 것이지 고생하는 것은 아니오.”

자공은 우물쭈물 뒷걸음질치면서 부끄러운 얼굴빛을 띠었다. 원헌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세상의 좋은 평판을 바라면서 행동하고, 자기와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들만을 벗하고, 학문은 남에게 뽐내기 위해서 하고, 가르침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하고, 어짊과 의로움을 내세워 간악한 짓을 하고, 수레와 말을 장식하는 일들은 나로서는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이오.”

이 말을 듣고 자공은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원헌이 자공을 나무란 것은 그가 작은 것을 탐하느라 큰 것을 잃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가난을 이용해서 청렴하고 고상한 이미지를 꾸미는 것 또한 적절하지 못하고, 나쁜 짓을 저지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느니 가난하게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시간은 내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나는 무엇을 사진에 담으려고 했던가. 시간은 내게 무엇을 주고, 무엇의 흔적을 남겼던가. 무엇의 사진을 남겼던가. 어쩌면 시간은 내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여전히 나의 사진의 누군가의 희미한 흔적으로 남기를, 그리고 낯선 이에게 잠시 멈춰 서서 보기를, 바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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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1eZWg8y9iI?si=WVhF-mjrYkYrX0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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