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편(雜編) ------------> 타이밍(Timing)
“흔들리는 그대를 보면 내 마음이 더 아픈 거죠 그댈 떠나 버린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이젠 다 잊어 주길 바래요 한없이 울고 싶어지면 울고 싶은 만큼 울어요 무슨 얘기를 한다 해도 그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는 걸 알기에 난 어쩌면 그 사람과의 만남이 잘 되지 않기를 바랬는지도 몰라요 그대를 볼 때면 늘 안타까웠던 거죠 우리의 만남이 조금 늦었다는 것이 이젠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요 그 누구보다 그댈 사랑했음을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 몰라도ㅡ 내가 그대 곁에 있음을 기억해요”
-김장훈,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中에서-
공자와 도척의 만남(孔子會見大盜)
공자는 유하계(柳下季)와 친구였다. 유하계에게는 아우가 있었는데, 이름을 도척(盜跖)이라 하였다. 도척은 졸개 구천 명을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하면서 제후들의 영토를 침범하고 털었다.
공자가 유하계에게 말하였다.
“아우가 도척으로 천하에 피해를 끼치고 있는데도 그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속으로 선생을 위하여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생을 대신해 가서 그를 설복시키도록 해 주십시오.”
유하계가 말하였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아버지 된 사람은 반드시 그의 자식을 훈계할 수 있고 사람의 형 된 사람은 반드시 그의 아우를 가르칠 수 있다 하셨습니다. 만약 자식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고, 아우가 형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지금 선생께서 비록 그렇게 주장하신다해도 그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또한 도척이란 녀석의 사람됨은, 마음은 솟아오르는 샘물 같고, 뜻은 회오리바람 같습니다. 그의 강한 힘은 어떤 적이라도 막아내기에 충분하고, 그의 언변은 자기 잘못을 꾸며대기에 충분합니다. 그의 마음을 따르면 기뻐하지만 그의 마음을 거스르면 성을 냅니다. 함부로 남을 욕하는 말도 합니다. 선생께서는 절대로 가지 마십시오.”
그러나 공자는 유하계의 만류를 뿌리치고 도척을 만나러 산으로 갔다.
공자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가 도척의 부하를 보고 말하였다.
“노나라에 사는 공구하는 사람이 장군님의 높은 의기를 듣고서 삼가 두 번 절하며 뵙기를 청합니다.”
부하가 들어가 아뢰니, 도척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다. 그가 말했다.
“이 사람은 노나라의 위선자인 공구가 아니냐? 내 대신 그에게 이렇게 말하거라. 그대는 말을 만들고 얘기를 조작하면서 함부로 문왕과 무왕을 칭송하고, 나뭇가지 같은 장식이 붙은 관을 쓰고, 허리에는 죽은 소의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띠고 다니며, 부질없는 소리를 멋대로 지껄이면서, 농사를 짓지도 않고 먹고 살며, 길쌈하지 않고도 입고 지낸다. 입술을 놀리고 혓바닥을 차면서 멋대로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내려 천하의 임금들을 미혹시키고 천하의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의 근본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함부로 효도니 우애니 하는 덕성을 마련해 놓고 제후들에게 요행히 인정을 받아 부귀라도 누려 볼까 하고 있다. 그대의 죄는 참으로 매우 중하다. 빨리 뛰어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대의 간으로 점심 반찬을 삼겠다.”
공자는 다시 부하를 통하여 아뢰었다.
“저는 장군의 형님 유하계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군막(軍幕) 아래에서 신발이라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부하가 다시 아뢰니 도척이 말하였다.
“이리 데려오너라.” “그대 하는 말이 나의 뜻을 따르는 것이면 살아남을 것이고, 나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이면 죽을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제가 듣건대 천하에는 세 가지 덕이 있다 하였습니다. 타고나기를 키 크고 늠름하며 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젊은이 늙은이나 높은 신분 천한 신분의 사람들이 그를 보기만 하면 모두가 좋아하는 것, 이것이 첫째 가는 덕입니다. 지혜가 천지에 걸쳐 있어 모든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중간치의 덕입니다. 용기가 있어 과감하고 많은 사람들을 모아 부하로 거느리는 것, 이것이 셋째 덕입니다. 사람이면 이 중의 한 가지 덕만이라도 갖고 있다면 충분히 제왕 노릇을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장군께서는 이 세 가지 덕을 다 아우르고 계시니, 신장은 팔척 이 촌이요, 얼굴과 눈에서는 빛이 나고, 입술은 진한 붉은색이고, 이는 조개를 가지런히 한 듯하며, 목소리는 황종(黃鐘) 음에 들어맞습니다. 그런데도 도척이라 불리고 계시니 저의 마음 속으로 장군을 위하여 부끄럽게 여기면서 아쉽게 여기고 있습니다. (...) 천하의 혼란을 혁신하시고, 전쟁을 없애고 군사들을 쉬게 하며, 형제들을 거두어 보양해 주고 조상들을 함께 제사지내게만 되시면, 그것은 성인이나 재사(才士)들의 행동인 동시에 천하의 소원이 될 것입니다.”
도척이 크게 노하면서 말하였다.
“명예와 봉록에 유혹되고, 교묘한 언사에 좌우되는 사람은 모두 속물이다. 내가 기골이 장대하고 보는 사람들마다 나를 좋아하는 것은 부모가 내게 주신 덕이다. 네가 칭찬하지 않는다고 내가 그것을 모르겠는가? 게다가 면전에서 칭찬하는 사람은 등 뒤에서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네가 지금 내 앞에서 칭찬하지만 내 뒤에서 욕하지 않으리라 어찌 알겠느냐? 네가 나를 위해 큰 성을 짓겠다며 부귀영화로 나를 유혹하려 하지만 부귀영화란 그저 연기와 같다는 것을 내가 모르겠느냐? (...) 게다가 천하의 일이란 큰 이득이 있으면 큰 해가 따르는 법인데 내가 이를 어찌 모르겠느냐? 네가 오늘 한 말은 모두 내가 버린 것들이다. 하나같이 미친 소리일뿐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너는 서둘러 이곳을 떠나라. 너의 허무맹랑한 주장은 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 너는 문왕과 무왕의 도를 닦고서 천하의 이론을 장악함으로써 후세 사람들을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넓고 큰 옷에 넓다란 띠를 띠고 헛된 말과 거짓된 행동으로 천하의 임금들을 미혹시켜 부귀를 추구하고 있다. 도적 치고 당신보다 더 큰 도적은 없다. 천하 사람들은 어찌하여 너를 도구(盜丘)라 부르지 않고 반대로 나를 도척(盜跖)이라 부르는가?”
“너는 달콤한 말로써 자로를 설복시켜 자기를 따르도록 만들었다. (...) 너는 스스로 재사(才士)요 성인으로 자처하는가? 노나라에서는 두 번이나 쫓겨나고, 위(衛)나라에서는 추방당하였으며, 제나라에서는 궁지에 몰렸고,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도 포위를 당하였으니, 천하에 몸둘 곳이 없게 되었다. 너는 자로로 하여금 처형당하여 몸이 소금에 절여지게 만들었으니, 환난으로 말미암아 위로는 몸을 보전할 길이 없고, 아래로는 사람 노릇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너의 도를 어찌 귀중하다 할 수가 있겠는가?
세상에서 높이는 사람 중에 황제(黃帝)보다 더한 이가 없다. 그러나 황제도 덕은 완전하지 못하여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전쟁을 하여 사람들의 피가 백 리를 두고 흐르도록 만들었다. 요임금은 자애롭지 못하였고, 순임금은 효도를 다하지 못하였으며, 우임금은 일하느라 몸이 깡 말랐고, 탕임금은 그의 임금을 내쳤으며, 무왕은 주왕을 정벌하였고, 문왕은 유리(羑里)에 갇혔었다. 이 여섯 사람들은 세상에서 높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엄격히 논한다면 모두가 이익 때문에 진실에 대하여 미혹됨으로써 억지로 그의 진실한 성정(性情)을 어겼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행동이야말로 심히 수치스럽다 할 만한 것이다.”
이에 공자는 두 번 절하고 부리나케 산을 내려왔다.
공자는 도척을 훈계하러 갔다가 오히려 도척에게 훈계를 당하고 왔다. 겁도 없이 호랑이에게 다가가서 그 수염을 뽑으려다 호랑이 밥이 될 뻔했던 공자의 이야기이다.
시간을 훔치다
장자는 도척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위선적인 삶, 인의를 가장한 해악들을 이야기한다. 도척이, 사람의 성정에 대해서 한 말이다. “눈은 좋은 빛깔을 보려 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들으려 하고, 입은 좋은 맛을 보려하고, 의기는 만족을 바란다. 사람은 최고로 오래 사는 게 백 살 정도이고, 중간치 오래 사는 것이 팔십 살 정도이고, 아래로 오래 사는 것이 육십 살 정도이다. 병들고 여위고 죽고 조상(弔喪)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을 빼고 나면 그 가운데 입을 열고 웃고 지내는 것은 한 달 가운데서 불과 사오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은 무궁하지만 사람이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사람의 운명은 한계를 가지고 있고,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게 되고, 노화(Senility)는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부족한 시간을 쪼개면서 일을 하게 된다. 내게 조금 더 시간이 있다면 하고, 말이다. 사진은 누군가의 기억을 훔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기억을 카메라라는 저장장치에 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기억이든, 타인의 기억이든 말이다.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 될지 모르는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에서, 노년의 소설가를 화자로 내세워 기억과 정체성,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는 소설을 쓰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만든다는 일이 과연 진실에 다가가는 일인지, 아니면 타인의 삶을 왜곡하는 행위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혈액암 진단을 받은 반스는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치료는 불가능하지만 관리는 가능하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꼭... 삶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안 그런가?”
겹겹의 시간성
겹겹의 시간과 공간속에서 우리는 살고, 기억하고 기억은 겹겹이 쌓이고, 그리고 사라진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한 단편이기도 하지만, 사진가는 수많은 단편들을 겹겹이 보여줄려고 한다. 1837년 촬영된 다게르의 파리의 불레바르드 거리 사진에서 가로수 길 끝에서 구두를 닦기 위해 발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당시 다게르타입의 사진들은 감광도가 좋지 않아 장시간 노출을 주어야 했다. 최초의 사진에 등장한 인물사진은 8시간 동안이나 꼼짝 않고 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500분의 1초로 분절된 시간에서 겹겹의 시간을 담을려는 노력은 타임랩스(Time Lapse)나 슬로우셔터(Slow Shutter)등 장시간 촬영으로 담으려고 노력하는 사진에서 보여지기도 한다. 시간의 흐름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잊혀진다. 그러나 남아 있으려는 기억은 겹겹이 쌓이고, 흔적처럼 남는다.
https://youtu.be/DkUD481MoD4?si=pqvFIdftINxpM10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