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열어구(列禦寇,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잡편(雜編) ------------> 타이밍(Timing)

by 노용헌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 처럼 슬픈 찔레꽃. 달 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 새워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 처럼 슬픈 찔레꽃. 달 처럼 서러운 찔레꽃.”

-장사익, 찔레꽃 中에서-


열자(列子: 기원전 4세기경)는 중국 전국 시대의 도가(道家) 사상가로, 이름은 어구(禦寇)이다. 32장은 열자와 그의 스승인 백혼무인(伯昏暓人)과의 대화로 시작한다.


백혼무인과 열자의 대화

열자(列子)가 제나라로 가다가 중도에 되돌아오는 길에 백혼무인(伯昏暓人)을 만났다. 백혼무인이 말하였다.

“무슨 일로 되돌아오는가?”

“제가 놀랐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놀랐느냐?”

“제가 도중에 열 집 정도의 주막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그 중 다섯 집에서는 돈도 내기 전에 먼저 식사를 제공하였기 때문입니다.”

백혼무인이 말하였다.

“그런 것을 가지고 너는 어째서 놀랐다는 것이냐?”

“그것은 저의 속마음의 정성됨이 풀려지지 않고 육체 밖으로 새어나와 빛을 이름으로써, 밖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노인들을 저보다도 가볍게 여기고 공경하지 않도록 한 것이니, 자기 자신의 환난을 기른 것과 같은 일입니다. 주막 주인이란 특히 음식을 팔아가지고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거기의 이익이란 보잘것없고 그들의 권한도 가볍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처럼 저를 대하였으니 하물며 만승의 군주야 어떠하겠습니까? 그의 몸은 나라를 위해 애쓰고 있고 그의 지혜는 정사를 처리하는 데 다 쓰고 있습니다. 그는 제게 나라 일을 맡겨 제가 공로를 세우기를 바랄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놀랐다는 것입니다.”

백혼무인이 말하였다.

“그대의 견해는 훌륭하다. 그대가 그처럼 처신하면 사람들이 그대를 따르게 될 것이다.”


백혼무인이 열자를 찾아갔다. 열자의 집에 도착하니 문 밖에 신발이 가득 놓여 있었다. 백혼무인이 문 밖에 서서 뺨을 지팡이 손잡이에 기대고 잠시 서 있다가 이내 돌아서서 떠났다.

이 사실을 알고 열자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따라 나갔다. 백혼무인은 열자가 뒤쫓아 오는 것을 보자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열자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모처럼 오셨는데 어찌하여 들어와서 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으십니까?”

백혼무인이 대답했다. “그만두어라. 내가 전부터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일렀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너를 따르고 있으니 이는 네가 남들과 다름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백혼무인은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열자는 자신의 능력을 외부에 드러내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두고 신랄하게 꾸짖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도(知道不可說)

장자가 말하였다.

“도를 알기는 쉽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기는 어렵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이 자연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인위로 나아가는 근거가 된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스러웠지 인위적이 아니었다.” 노자의 <도덕경> 1장에서 “하늘과 땅이 막 열렸을 때는 사물을 역할과 의무의 틀로 묶어놓고 부르는 호명 체계가 없었다(無名天地之始)”라고 말했다. 이것이 현 실태는 내가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을 여행하며 느끼는 무한한 자유의 상태다. 노자는 또한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온갖 것의 어머니(有名萬物之母)”라고 말했다. 이는 우리가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사물이나 개념이 구체화되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신비롭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노자 또한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 도는 변함없는 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장자흉덕(莊子凶德)

“사람을 해치는 일 중에서 덕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그 마음이 눈썹처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이 눈썹처럼 움직이게 되면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보고 판단한다. 자기 마음대로 보고 판단하면 실패를 하게 될 것이다.

흉한 덕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덕을 마음 속에 두는 것이 그 중에서도 첫째 가는 것이다. 무엇을 덕을 마음 속에 두는 것이라 하는가? 덕을 마음 속에 두는 것이란 것은 자기 마음으로만 판단하여 무엇이나 좋아하고, 한편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욕하는 것이다.

궁해지는 데에는 여덟 가지 원칙이 있고, 뜻대로 잘 되는 데에는 꼭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육체에는 사람을 그릇되게 하는 여섯 가지 기능이 있다. 아름답고, 멋진 수염이 나고, 키가 크고, 몸집이 크고, 힘이 세고, 멋이 있고, 용기 있고, 과감한 여덟 가지가 모두 남보다 뛰어나면, 이것 때문에 궁해지는 것이다. 밖의 물건에 순응하고, 남을 따라 행동하고, 곤경에 빠져 남만 못한 듯이 행동하는 것, 이 세 가지 것은 모두 사람을 뜻대로 되게 하는 것이다.

지혜가 뛰어나면 많은 비난을 받게 되고, 용기와 힘이 있으면 많은 원한을 사게 되며, 어짊과 의로움을 내세우면 많은 책망을 듣게 된다. 삶의 실정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위대하나 지식에만 통달해 있는 사람은 작은 사람이다. 위대한 천명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자연을 따라 자유롭지만 세상의 작은 일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영원한 시간성(逍遙遊)

장자의 소요유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물리적 제약(制約)으로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자는 우물을 벗어나 바다를 보고, 바다를 넘어 우주를 보라고, 마침내는 우주를 넘어 무한을 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적 굴레를 벗어나 영혼의 진정한 해방, 생사의 경계를 초월하여 자유롭게 노니라고. 가능한 이야기일까. ‘나는 진정 자유로운가?’ 이 질문을 품고 우리는 서 있다. 바람이 분다. 수많은 구멍에서 수많은 소리가 들린다. 당신의 구멍은 자유의 소리를 내고 있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라고. 진정한 초월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문명이 아무리 진보해도, 인간은 여전히 유한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비우고(心齋), 자아의 경계, 한계를 초월하라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초월주의, 포스트모더니스트이자, 아나키스트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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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z_VM5UZVIM?si=AbulfEcBc3MFjh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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