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빛바랜 사진의 기억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안나서 미치는 것과, 생각이 나서 미치는 것, 잊고 싶은데 잊혀지지 않는 것, 아무것도 아닌데 기억하고 있는 것,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컴퓨터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기억이 아니어서,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기도 하고, 변질되어 덧칠되기도 한다. 이삿짐을 풀다보면 낡은 책 사이에 끼워진 사진 한 장이 기억을 소환한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주마등 펼쳐지고, 기억은 내 머릿속 잠재의식처럼 남아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노래가사처럼, 잊고 있었던 기억들은 내 텅빈 방안에 가득차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수많은 상황들을 기억한다. 그 기억의 순간들을 어쩌면 빛바랜 사진속에서 다시 불러들인다.
3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다시 기억하고 분류하고 정리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아닌 작업이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30년치 일기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기억은 조각나고 파편으로 남아 있는 시간들을 어찌 맞추겠는가 말이다. 2015년 현장 30주년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참 어려웠던 것 같았다. 내가 경험한 현장과, 그간 많은 선후배들이 겪었던 경험들을 정리한다는 것이 사실 너무나 어려웠지만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고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내어보았었다. 올해는 내창이형 30주기이다. 30년전의 그 기억에서 다시 현재까지 그 기억을 빛바랜 사진들로 기억을 붙잡으려 한다.
사진들을 대강 훑어보고, 스쳐지나가던 사진들을 다시 보고, 또 보며 놓쳤던 기억들을 다시 찾는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푼크툼(punctum)처럼 순간 강렬하게 느껴지는 그런 기억들. 사진은 어떤 이에게는 상처자국일수 있을 테니깐.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스투디움(studium)이란 우리의 인식을 말한다. 우리의 인식이란 일반적이고 통속적인 해석으로 사진을 바라보는 이의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인 길들여진 기준에서의 관점이다. 사진에 보여진 동네는 어디이고, 이 거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으며, 기본적인 해석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기억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의 마음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푼크툼의 기억들.
낡은 가방에는 오래된 시간들이 들어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가방의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오래된 기억들이 툭툭 나올것만 같아 보인다. 요즘은 디지털이라서 변색이 되지 않지만, 아나로그 필름으로 만들어진 인화지는 적당하게 세피아 톤으로 조색된 것처럼 시간은 오래됨을 증명한다. 오래된 빈티지의 와인처럼 오래됨은 더 깊은 향이 날 것 같다. 시간은 앞으로 가지만 사진은 뒤로 가는 것 같다. 누군가의 기억은 사진에 촘촘히 쌓여있다. 먼지처럼 쌓여진 사진을 훌훌 불어보고, 하얀 유리창에 썼다 지워진 기억들. 그냥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이 눈물이 난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 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있을 뿐이야♬
<김광석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