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이 기억을 본다

[19화 바벨 도서관]

by 노용헌

말은 다시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말은 망각될 수 있다. 말에 망각이 있는 것 역시 말이 지나치게 강하게 존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말의 침묵에 대한 우월권이 그 때문에 완화되는 것이다.

말이 망각 속에 가라앉는다는 것은 사물이 우리에게 잠시만 속해 있을 뿐, 소환 명령에 따라서 언제든 그것이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한 표시이다.

말은 침묵 속에 가라앉아 망각된다. 그리고 그 망각은 용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언어의 구조 속에 사랑이 짜여져 들어 있다는 한 표시이다. 말은 인간이 망각 속에서 용서까지 하도록 인간의 망각 속으로 가라앉는다.

말의 사라짐, 즉 망각은 또한 죽음을 준비한다. 인간을 비로소 인간이 되도록 하는 말이 사라지듯 인간 자신도 사라지고 소멸한다. 언어의 구조 속에는 죽음도 짜여져 들어 있다.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P46~47-


학교 안쪽에는 바벨(Babel) 도서관이라 불리우는 곳이 있다. 이곳은 마치 바벨탑처럼 생겨 학생들 사이에 불리는 명칭이다. 가끔 나도 이곳에 책을 빌리거나, 시험기간에 종종 이용한다. 지하에는 식당이 있어서 가끔 라면을 사 먹기도 했다. 도서관의 구조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이다. 위로 갈수록 피라미드의 구조로 점점 작아진다.


D선배는 아마도 저 도서관에 있을 듯싶다. 전공 시험준비를 하거나, 졸업 이후 취직을 하기 위해서거나 도서관에 있겠지, 하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트를 지나고 넓은 책상에는 학생들이 뜨문뜨문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 책장이 있는 진열실들 사이에는 사람의 키 만한 책장 사이에 책들이 가득 있었다. 중앙을 지나 왼쪽 끝머리에는 위 층으로 연결된 계단이 있다. 2층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계단은 또 다른 공간으로 이어주고 있다. 도서관의 책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는 기억의 기록들이다. 열람실 목록 카드를 뒤적이며 책의 목록들을 확인하고, 무덤같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책장 넘버(number)를 확인하면서 책을 찾아 가던 내 모습이 상상되기도 한다. 그런 공간에 다시 찾아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선배는 어떤 코너에 있는 걸까. 각각의 책들은 죽은 자들의 기록들이다. 그 기록은 겹겹이 쌓여 있고, 점점 그 위로 낭만적인 꿈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유토피아의 세계다. 아마도 제일 위층인 5층에 있는 걸까. CA1, CA2, CA3, CA4, CA5 는 바벨 도서관의 영역이다. 대뇌의 측두엽 안쪽에 위치한 해마(hippocampus)처럼 말이다. 도서관은 기억의 창고이다. 새로운 기억들이 계속해서 쌓여 간다. 기억은 고요히 침잠(沈潛)되어 있다. 기억의 파문(波紋)을 열기 전까지는 가라앉아 있다. 도서관 안은 침묵의 공간이다. 밖은 소리의 공간이다.


인류에게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이 있다면 축음기와 카메라일 것이다. LP판은 소리(말)를 담는 매개체이고, Film은 이미지(상상)를 담는 매개체이다. 신이 인간에게 불과 물이라는 매개체를 주었듯이, 축음기와 카메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매개체이다.


잔디밭에서 십여 명이 모여서 꽹과리와, 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 소리가 학교를 들썩이게 만든다. 나는 시장 통에서 자라왔다. 어머니가 동네 지역시장에서 옷집을 했었다. 시장은 말 그대로, 종합 백화점이다. 입구에는 먹거리를 파는 집에서부터, 양복점, 포목점, 쌀집, 철물점, 석유집, 자저거포, 세탁소, 약국 등이 있다. 반대편 출구까지 이어지는 시장 안은 항상 어두웠다. 60촉 백열등이 곳곳에 달려 있었고(내 기억에는 형광등이 나중에 생긴 듯하다), 지붕은 함석 슬레이트라 비만 오면 비오는 소리가 지붕을 타고 들려왔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흥정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말(言) 소리, 말은 소리를 낸다. 사람들의 소리 외에도 많은 소리가 들린다. 개가 짓는 소리, 자동차 소리, 기계음(떡방앗간의 기계소리)의 소리들, 라디오나 텔레비전 소리, 백색소음(白色騷音). 그 많은 소리들은 파문(波紋)을 일으킨다. 공기 중에 진동하면서 전달된다. 사진은 그런 파문이 없다. 침묵할 뿐이다. 소리가 제거된 음소거(音消去)의 상태다. 말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진은 팬터마임(pantomime)을 연기하는 연극처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알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침묵의 언어이다. 침묵은 상상을 이야기한다. 사진은 이미지(Image)를 다루고 있고, 그 이미지는 상상(Imaginary)이다.


“선배, 가투(가두투쟁) 안 나가고, 여기서 뭐 하세요?”

“.... 어 뭣 좀 찾으려고....


그녀가 읽던 책을 덮었다. 책 표지에 씌여진 책 제목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픽션들>이었다.


....


어쨌든, 현실은 아마도 픽션(fiction)이고, 상상일지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보르헤스의 도서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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