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왼발> 1990년
아일랜드와 영국 합작 영화. 실존인물인 크리스티 브라운(Christy Brown, 1932~1981)이 쓴 책을 원작으로 한 실화 바탕 영화이다. 한국에서는 1991년 첫날에 개봉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장애인 연기를 실감나게 연기해 이 영화로 199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뇌성마비 장애인이자 왼발 화가였던 크리스티 브라운의 자서전이다.
나를 진찰한 대부분의 의사들 입에서 ‘가망 없는 선천성 뇌성마비 환자’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정신박약아이며 평생 그렇게밖에 살 수 없다고 엄마에게 아주 완곡하게 알려줬다. 이미 건강한 자식을 5명이나 키웠던 젊은 엄마로서는 청천벽력일 수밖에 없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절대로....!”
하늘이 무너져도 내 아들만큼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던 엄마의 믿음이 오만해보일 만큼 의사들도 자기 의견들을 확신했다.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위해 의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내가 치료 불가능한 구제불능의 식물인간이며, 심지어 실낱 같은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그 당시엔 그렇게 보였다)을 엄마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사들이 얘기해준 대로 내가 ‘백치’라는 사실을 엄마는 결코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비록 내 육체가 불구하 하더라도 정신만큼은 불구가 아니라는 사실, 당신의 그 믿음을 증명해줄 수 있는 지푸라기 같은 증거 하나라도 엄마는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P11)
하지만 난 비틀린 근육과 뒤틀린 신경들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덩어리에 불과했다.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니 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난 차단되고 분리되어 있었다. 마치 내 삶과 그들의 삶 사이에 유리벽이 가로놓여, 그들의 영역 바깥으로 쫓겨난 것 같았다. 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뛰어놀 수 있기를 열렬히 희망했다. 하지만 나를 꽁꽁 묶은 속박의 끈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한순간에 모든 게 변해버렸다. 내 삶의 방향이 분명한 형태로 빚어졌고 나에 대한 엄마의 믿음도 헛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동안 가슴속에 꼭꼭 감춰두었던 두려움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감격했다. 기다림과 불안감으로 초조해하던 인내의 세월 뒤에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쉽게 다가왔다. 그 때문에 난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그 장면 전체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P17)
그런데 줄곧 내 관심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건 모나 누나의 분필이었다. 선명한 노란 색깔의 길고 가느다란 것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노란 분필은 검은 색의 서간과 비교돼 아주 돋보였다. 작은 금막대기처럼 빛나는 그 분필이 그렇게 매혹적일 수가 없었다.
내 영혼은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한동안 오로지 노란 분필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난, 나도 모르게 갑자기 그들처럼 직접 분필을 갖고 놀고 싶어졌다. 그러자 난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도 모른 채 그만 모나 누나의 손에 있는 분필을 빼앗아 버렸다. 그것도 나의 왼발로.
그때 내가 왜 왼발을 사용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에게도 수수께끼였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내 발가락들에 묘한 관심을 보이긴 했었다. 하지만 내 두 발 중의 어느 하나라도 어떻게든 써보려고 시도한 적조차 없었다. 내 발들은 내 양손과 마찬가지로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날, 나의 왼발은 분명 내 의지로 뻗어져 아주 버릇없긴 하지만 누나의 손에서 분필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난 분필을 발가락으로 꽉 쥐고 충동적으로 석판 위에 아주 거칠게 휘갈겨댔다. 그런 다음 순간적으로 놀라고 당황해서 멈춰버렸다. 그 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또 분필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된지도 모른 채 내 발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노란 분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참 후 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온 가족들이 숨을 죽인 채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P18-19)
그렇지만 난, 기어코, 그 A자를 그려냈다. 내가 그린 A자가 석판 위에 있었다. 어린 애들 낙서처럼 온통 볼품없이 삐뚤삐뚤하게 그어졌지만, 그건 분명히 A자였다.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엄마의 뺨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크리스티......”
이윽고 아빠가 다가와 감동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나를 어깨 위로 훌쩍 들어올렸다.
비록 글자 하나뿐이지만, 난 마침내, 그것을 해냈다!
이젠 나 자신과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물론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닌 발을 통해서이다. 비록 남들과 같은 방법이 아니더라도 말보다 더 오랜 생명을 가진 글을 통해 내 인생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발가락 사이에 움켜잡힌 부러진 노란 몽당분필로 석판 위에 휘갈긴 그 글자 하나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힘차게 뻗어갈 나의 길이었다. 그리고 감금된 내 육체와 정신을 해방시킬 유일한 열쇠였다. (P22)
천천히 연필을 발가락에 끼웠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해 오랫동안 쩔쩔맸던 여섯 글자를 썼다. 마침내 그 단어가 완성되자, 난 마치 무슨 대견한 일이라도 한 듯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내가 써놓은 글자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엄마가 천천스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엄마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쓴 단어는 '엄-마-(M-O-T-H-E-R)'였다. (P37)
7살이 되었다.
이제 내 형제들의 도움으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학교가 끝난 뒤 거리로 놀러나갈 때마다 나를 데리고 나갔다. 아이들이 ‘전차’라고 부르는 낡고 녹슨 고물차에 나를 태워 발로 밀고 다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의 한때는 그 비틀어진 핸들과 구부러진 바퀴가 달린 낡은 고물차와 함께 했다.
찌그러진 고물차는 나를 태운 채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여름날 저녁의 따뜻한 박명 속을 산책했다. 또 12월 밤의 차가운 잿빛 속에서 가로등이 켜진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삐걱거리며 달리기도 했다.
이제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내 존재를 이상하게 보거나 아무것도 캐묻는 법이 없었다. 단지 나를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또 어떤 것도 속이거나 숨기지 않는 순수한 동네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자랐다. 어쩌면 난생 처음 나를 보고 놀란 다른 아이들보다는 오히려 나와 어울리는 게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아이들 중의 상당수는 내 모습을 괴상하게 생긴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P41-42)
내가 8살이 되었을 때에도 발로 미는 낡은 차는 여전히 ‘나의 전차’였다.
난 왕처럼 그것을 타고 돌아다녔다. 비록 모든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손가락질 받는 못생기고 찌그러진 고물이었지만 말이다. 그 고물을 타고 거리에 나가면 보는 사람들마다 킬킬 거리며 힐난했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일종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밖에 이해할 수 없는 그 분신을 보고 있으면 어떤 이상한 위엄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난 그 차의 이름을 ‘헨리’라고 붙였다. 친구들이 복잡한 거리를 헤치며 헨리에 탄 나를 밀고 달릴 때, 뺨을 스쳤던 그 축축하면서도 향기로운 바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겨울밤도 떠올랐다.
형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고, 난 그 옆의 차에 앉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했다. 구경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난 충분히 흥분되었고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고물 헨리는 나의 왕좌였다. (P59-60)
난 내 세계의 밑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산다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게 달라지고 시들시들했다.
요즘 행복한 순간이 거의 없었다. 주방 창가에 멍청히 앉아 바깥에서 형제들과 그 친구들이 하는 축구시합을 구경만 할 뿐이었다. 특히 발 빠른 피터가 얼마나 골인을 많이 하는지 세어보다가 돌연 포기해버리기도 했다.
가끔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내게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곤 했다. 주로 공을 빼앗긴 아이들이었는데, 나도 손을 흔들어 답하려 했다. 하지만 팔을 쳐들 때마다 옆으로 휙 뻗쳐 창틀에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러면 난 뒤쪽의 소파 위로 몸을 던져 얼굴을 파묻은 채 흐느끼곤 했다.
이제 10살이 되었다.
하지만 걸을 수도, 말할 수도, 혼자 힘으로 먹거나 옷 입을 수도 없는 소년이었다. 난 진작부터 무기력했다. 단지 내 스스로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몰랐을 뿐이다. 나에 대해서는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다’는 사실 외에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무엇이 나를 그들과 ‘다르게’ 만들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 수 없고, 축구도 할 수 없고, 나무 위로도 올라갈 수 없고, 심지어 혼자 밥도 먹을 수 없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낼 방법도 없었다. 몇 가지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 또한 어렴풋이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내 마음 속에서는 온갖 비현실적인 환상과 구름 같은 허상들이 끊임없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것들은 조각조각 찢어지고 마침내 내가 불구자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순간적인 즐거움을 얻으려고 안달복달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도 아니었고, 그 작은 소년의 눈으로 이 넓은 세상을 바라보지도 않게 되었다. 이제 막 자신의 불행을 발견한 한 불구자의 시선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불구자, 그것이 내 운명이었다! (P83-84)
거울이 무서웠고 혐오스러웠다.
거울을 볼 때마다 흐느적거리는 머리와 한쪽으로 삐딱하게 쳐진 입이 비춰졌기 때문이다. 거울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스런 현실을 증명해 주었다. 거울은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의 모습을 그대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입은 열리기만 하면 옆쪽으로 돌아가 바보같이 흉측하게 변했다. 뭘 얘기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턱 아래로 침을 질질 흘리며 끙끙거리기나 할 뿐이었다.
또 머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이쪽저쪽으로 건들거리고 덜렁댔다. 미소를 지으려고 하면 얼굴이 일그러지고 두 눈이 찌그러져 괴상한 탈바가지처럼 보였다.
본다는 것, 보고 확인한다는 게 이토록 끔찍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 흉한 모습을 보는 그들의 고통 또한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가슴이 무너지고 저렸을까.
다시 거울을 본다.
괴상한 얼굴이 맞받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괴롭고 미칠 것 같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순간, 난 피눈물을 흘리며 침대 옆의 벽에 걸려 있는 작은 거울을 왼발로 걷어찼다.
“쨍그렁......”
거울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거울 깨지는 소리를 들은 엄마가 위층으로 다급히 올라왔다.
“무, 무슨 일이니?”
“....”
왼발로 거울이 깨져 있는 곳을 조용히 가리켰다. 깨어진 유리조각들이 한 줄기 햇빛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크리스티. 이런 짓을 하면 7년간 재수가 없대.”
부서진 유리조각들을 쓸어 모으면서 엄마가 애써 미소를 띠며 말했다. (P85-86)
엄마는 내가 얼마나 정확히 베껴 썼는지 주방 일을 하다가도 수시로 점검하곤 했다. 그런데 점검하면서 잘못을 고쳐주는 학습방법이 자못 흥미로웠다.
“이건 중간에 쉼표가, 마지막엔 종지부가 사라져버렸네. 근데, 과연 어디 갔을까?”
“여긴 또 물음표와 느낌표가 서로 사이좋게 놀러간 모양이네. 근데, 왜 아직 집에 안 들어올까?”
“이건 V자를 U자로 잘못 썼네. 내가 옛날에 알파벳 가르칠 때 말한 거 기억나니? 이 두 글자는 같은 컵 모양이지만 똑바로 세워지는 건 U자고 쓰러지는 건 V자라고…. 너도 이 U자처럼 똑바로 서고 싶지? 그래서 M자처럼 막 달리다가 나중엔 W자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지? 그렇지?”
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엄마의 말에 불편한 고개지만 힘차게 끄덕였다.
예전에 엄마는 내게 알파벳을 가르치면서 글자들을 주변 사물에 곧잘 비유하곤 했다. 예컨대 Y자는 나뭇가지, I자는 연필, O자는 풍선, P자는 깃발, D자는 배부른 돼지… 식이었는데, 이상하게 머리에 쏙쏙 들어왔었다. 그때 M자는 사람이 달리는 모습, W자는 날개 달린 새에 비유한 것이 떠올랐다.
진지한 표정을 한 엄마와의 수업은 계속되었다.
이번엔 재빨리 주방에 가서 컵 두 개를 가져오더니 하나를 자빠뜨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 컵처럼 쓰러진 V자도 두 개가 모여 서로 힘을 합하면, W자가 되어 새처럼 날아갈 수 있다는 걸 항상 명심해. 알았지, 크리스티?”
엄마가 컵 두 개를 나란히 붙여 머리 위로 쳐든 다음, 여러 차례 훨훨 젖더니 내려놓았다.
“쿵쿵쿵!”
난 박수치는 의미로 왼발을 마룻바닥에 여러 번 내리쳤다. (P89-91)
“크리스티, 정말 대단해! 그림은 처음인데, 이렇게 잘 그리는 걸 보니, 앞으로 넌 천재적인 화가가 될 거야!”
5년 전 엄마와 내가 몸을 떨고 진땀을 흘려가며 처음 왼발로 글자를 썼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엄마는 내 곁에서 나를 북돋아 주고 용기를 주었다. 이번에는 진땀을 흘리거나 몸을 떠는 일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해낸 것이다. 다만 그때와 다르다면 지금은 노란 몽당분필 대신 그림붓을 들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와 엄마에게 가장 뜻 깊었던 것은 내가 외부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곧 나의 왼발이 그린 그림은 나를 표현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수단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난 그림물감 속으로 점점 깊이 빠졌다. (P95)
카트리나 델라.
그녀는 내가 누군가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나에게로 왔다. 사실 그녀의 삶은 내가 살아온 길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럼에도 나로 하여금 평균적인 수준을 넘어 좀 더 높은 예술적 경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훨씬 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게다가 나의 내면세계를 좀 더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사람이 절실했을 때 나타났으니, 얼마나 백만원군이 되었겠는가. 실제로 그녀는 내가 뼈를 깎는 고통의 세월을 헤쳐 가는 데 엄마 다음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고작 11살밖에 되지 않았던 그 무렵엔 그런 걸 잘 몰랐었다. 단지 내가 그토록 그리던 ‘꿈의 여인’을 처음으로 만났다는 사실에만 흥분하고 도취되어 있었을 뿐이다. (P101)
난 13살.
이때까지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발견하지 못한 한낱 ‘꼬마화가’에 불과했다. 그림 그리기는 내 모든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다양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나를 표현했다.
그림 그리기는 나로 하여금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좀 더 명확하게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내 현실은 감옥 속의 죄수처럼 자유롭지 못했지만, 내 가슴 속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난 더욱 성장하고 있었다.
난 두 눈보다는 가슴으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거나 내 주위의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져 몇 시간씩 침대 속에서 혼자 뒹굴곤 했다. 그리고 백일몽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P115)
제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연민의 시선이었다.
그 순간 난 깨달았다.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이 필요한 나에게 얄팍한 동정이나 연민 같은 건 오히려 내 마음을 더욱 쓰리게 한다는 사실 말이다.
난 고개를 숙였고 제니는 멀리 사라져버렸다.
그 뒤로 난 몰라보게 달라졌다.
제니와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들은 그 몇 주일이 전부였다.
난 다른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꿈같은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었다. 내가 제니를 사랑하고 있었고 제니 역시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망상이었고 위선일 뿐이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쓰리고 아팠던 게 있었다. 내 결함과 불행이 타인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예단한 바로 그 점이었다. 난 제니와 있는 동안에도 진짜 그렇게 믿어버렸다. 난 바보천치였다.
델라 누나와 제니가 준 황홀감 속에서 나 자신을 망각하고 있었다. 나와 타인과의 ‘차이’도 엄연히 존재했다. 비록 짧은 몇 주일 동안이지만 눈 먼 대가로 순수한 기쁨만큼은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망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쓰디쓴 약을 다시 삼켜야 하는 것과도 같았다. (P122-123)
난 더 이상 도망갈 수 없었다.
이미 너무 커버렸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형제들은 자립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어른들이 되어갔다. 하지만 나에게는 내 태생적 한계와 터무니없는 옹졸함만이 남았다.
내 형제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목표가 있었고, 항상 활기차게 움직였다. 옆에서 보기에도 충만한 에너지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또한 전체와 조화를 이루려는 여유와 배려심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는 건 오직 왼발뿐이었다.
내 삶은 온몸을 숨겼던 컴컴한 구석과도 같았다. 그 구석에서 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으며 움직임을 감지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또 나가본들 말뚝 박을 입지도 없었다. 난 항상 똑같은 걸 생각했고, 똑같은 걸 느꼈고, 똑같은 걸 두려워하며 쳇바퀴처럼 살고 있을 뿐이었다. 난 철저히 닫혀 있었고, 단절되어 있었고, 병 속에 갇혀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절망과 보잘것없는 옹색함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내게 언제나 용기를 북돋워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자라면서 우리는 자주 충돌했다. 내가 그리 힘들이지 않고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지옥으로 꺼져!’였다. 말다툼을 벌이다 화가 나면 심지어 엄마한테까지 그런 상스러운 욕을 했다. (P129-130)
사람들은 내가 불구자임에도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아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굉장히 운 좋은 ‘비범한 불구자’란다. 물론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왼발로 그림을 그려본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늘 내게 붙는 ‘비범한’이라는 말의 수식어가 과연 무슨 소용인가?
나는 결코 비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단지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평범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내가 손 대신 발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경이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난 왜 그런지 모른다. 그저 두 손으로는 글을 쓸수 없기 때문에 왼발을 사용할 뿐이다. 그게 무슨 자랑이며 무슨 우월감을 가져다주겠는가.
사실 난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내 왼발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내가 바보같이 재주만 부리는 원숭이나 물개가 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난 동물원에 갇혀 재롱을 떠는 짐승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난 평소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대부분 델라 누나에게 보내는 것들이었다. 편지 내용은 주로 엄마가 갓 낳은 아기에 대해 얘기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젠 단순히 남의 얘기를 정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내 얘기를 직접 써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쓰는 일종의 창작인 셈이었다. 이런 생각이 결국엔 내 전부를 차지해버렸다. (P136-137)
마지막 아름다운 선율이 사라질 때까지 난 무엇에 홀린 먹먹한 상태 그대로였다. 음악이 끝나고 한동안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난 비로소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음악이 바로 헨델이 작곡한 오페라 <세르세> 중의 ‘그리운 나무그늘(라르고)’이었다. 이때 난 정말 음악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눈 뜬 것 같았다. 내 영혼의 살점을 저미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음악은 이처럼 나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 세계는 잔잔한 강물처럼 밝고 아름다웠지만 대부분은 한없이 깊은 슬픔의 세계였다. 난 라디오를 통해서만 음악을 감상했다. 평생동안 교향곡 연주회나 오페라 극장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난 위대한 작곡가들을 모두 알았고 그들의 음악을 구별할 줄 알았다.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바하, 슈베르트, 브람스, 슈만, 차이코프스키, 바그너, 비발디, 레스피기.....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쇼팽은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였다. 난 기회만 있으면 쇼팽을 들었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그의 음악만 들려주는 라디오가 없다는 게 너무너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음악에 빠져 있을 때만큼은 우울한 내 인생과 무의미한 내 존재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다.
음악 감상에 몰입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한 줄기 빛 같은 어떤 희망이 다가온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흠뻑 들이쉬며 맑은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다. 물론 그런 느낌은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뿐이었다. (P150-151)
그제야 난 처음으로 함께 가는 순례자들을 하나씩 찬찬히 둘러보았다. 내 바로 옆 좌석에는 19살의 처녀가 앉아 있었는데, 밝은 갈색 머리카락에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 처녀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은 아마 이 아름다운 머리카락 속에 감춰져 있겠지.... 그녀는 다리와 척추가 마비되었지만 두 눈엔 해맑은 미소가 넘치고 있었다.
그녀는 소아마비에 걸린 10살 이후로는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조금 대화를 나누다보니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그녀의 이름은 매이어였고 사는 곳은 코위클로였다. 취미는 독서와 영화감상이었는데, 내게 여러 책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또 춤에 흠뻑 빠진 언니가 자기한테 늘 춤 자랑을 한다고 했다.
“나도 춤추고 싶어요.”
매이어는 꿈꾸듯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매이어는 참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간간히 아픈 듯 이마에 손을 대며 지친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하느님, 언젠가는 나도 걸을 거예요. 그리고 꼭 무도회에 가서 춤추고 말 거예요!”
이렇게 힘주어 말했던 그녀는 이틀 뒤 루르드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마치 성지에 죽으러 가기나 한 사람처럼 말이다. (P154-155)
이처럼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장애인들을 만나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엄청 당황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고통에 빠져 있을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난 작고 좁은 껍질 속에 갇혀 있던 달팽이와 같았다. 그 달팽이가 비로소 껍질 너머에 있는 커다란 세계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들도 모두 불행한 운명을 갖고 있었다!
그때까지 난 이런 세상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우물 속의 개구리처럼 바깥의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한 채 살았다.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내 눈으로 확인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들이 짊어진 고통의 짐이 너무 무거워보여 내 불행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나만 불행한 게 아니었다! 세상의 고통이란 고통은 모두 나 혼자 떠맡기라도 한 것처럼 난리치며 엄살을 부렸던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P156-157)
충분히 고칠 수 있다니!
내가 나을 수 있다니!
문제될 게 없다니!
두 발로 화장실도 가고, 또 걷고, 뛰고, 달릴 수도 있다니!
두 손으로 세수도 하고, 밥도 먹고, 공도 던지고, 마음껏 엄마의 얼굴도 쓰다듬을 수 있다니!
내가 지금까지 받았던 차마 말할 수 없는 그 모든 모욕과 수모와 쓰라린 상처가 한순간에 행복으로 바뀌었다. 내 얼굴은 더없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난 이미 인생의 정점에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티.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아주 힘들 거야. 그 고통을 견디는 집념과 의지만 있으면 넌 나을 수 있어. 하지만.....”
이 대목에서 에이린 박사님이 말을 멈추더니 내 얼굴을 그윽이 바라보았다.
“먼저 각오해야 할 게 있단다. 아무런 희생 없이 좋은 일이 오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지?”
“.....”
각오?
희생?
난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눈만 껌벅거렸다. 단지 ‘굳은 의지’의 다른 표현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사님이 갑자기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네가 희생해야 하는 건....”
“....?”
“네 왼쪽 발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거야.....”
내 왼발!
내 모든 것!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난 생살이 찢어지고 뼈가 비틀어지는 신음소리가 마구 세어나오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는지 피가 배어나왔다.
난 오로지 왼발로만 소통할 수 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다. 세상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왼발이 없으면 난 벙어리요, 죽은 시체나 마찬가지였다.
내 표정을 본 에이린 박사님은 너무 안타까웠는지, 거듭 차분한 말로 나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그래, 그게 너무 가혹하다는 건 나도 충분히 이해해. 정말 엄청난 희생이지.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출구인데 어쩌겠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방법이 없단다. 물론 왼발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위대한 화가나 작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
“.... 하지만 그 대신 자유로이 걷거나 말하거나 손을 사용하는 건 포기해야 돼. 그러니까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뜻이야. 이제 모든 건 네 결심에 달려 있어.”
“....”
“그래, 왼발을 다시는 쓰지 않기로 약속할 수 있겠니?”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만약 내가 왼발을 포기한다면 이제부터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힘든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아주 잔인한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물론 그것을 견뎌낸다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 하겠어요!” (P200-202)
그러나 여기 있는 아이들은 달랐다.
‘이해’라는 게 있을 리 없고,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공포감만이 존재할 뿐이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뒤틀린 몸과 바싹 마른 다리들. 꽉 움켜쥔 작은 손들, 구부러지고 꼬일 대로 꼬인 발가락들, 비뚤어진 목,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몸, 여기저기 구석에 빗자루처럼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채 꼼짝도 않는 아이들... 정말 끔찍했다.
비로소 내 어릴 때 모습이 상상이 되어 이 아이들의 모습 위로 겹쳐졌다 .
그렇지만 난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슬퍼하되 동정하지 말고 괴로워하되 연민을 보내지 말자. 그런 동정과 연민이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는 걸 난 이제 익히 알고 있다. 다만, 뒤틀어진 모습 뒤에 숨어 있는 그들의 맑은 심성만큼은 서로 충분히 교감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 혼자만 감옥의 창살 속에 갇힌 몸이 결코 아니었다.
그날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식구들이 내 옆으로 몰려와 병원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그렇지만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혼자 감당할 수도 없는 상처들이었고, 또 함부로 표현이란 걸 허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워넌츠 박사님은 일주일 정도의 내 적응시간이 끝나자 천천히 치료를 시작했다. (P213-214)
차차 그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갤웨이에서 봉사활동을 하러 이 병원에 왔는데, 이름은 쉴라였다. 그녀는 다정했고 친절했다. 많은 아이들이 쉴라를 좋아했고 쉴라 역시 모든 아이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나눠주었다. 처음 쉴라의 외모에만 감탄했던 난 그녀의 마음씨가 더없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한 번 감동했다.
어느 날 아침 난 유난히 기운이 없고 풀이 죽어 있었다.
난 벽에 기대 앉아 우울한 생각으로 눈을 내리깐 채 컴컴한 지옥 속을 헤매고 있었다. 가끔씩 불쑥불쑥 엄습하는 절망감 속으로 다시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힘내, 크리스티!”
고개를 들어보니 쉴라가 나를 격려하며 웃고 있었다.
그 미소 때문에 내 우울한 마음이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쉴라와의 행복한 관계 덕분인지 운동할 때도 더욱 힘이 솟았다. 어느 날, 용기를 내 며칠 전 동생에게 받아쓰게 한 편지를 그녀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답장을 받았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편지 때문에 타인과 나 사이의 벽이 차차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육체적인 장애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자유’나 ‘해방’이라는 말을 쓴다.
그 ‘자유’나 ‘해방’ 같은 말들이 육체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는데도 말이다. 육체적인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해서 ‘완전한 자유’를 얻은 건 아니다. ‘완전한 자유’나 ‘해방’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정신적인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깨달은 자의 ‘각성’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육체적인 고통은 그들의 정신적인 고통에 비해 아직 몇 단계 아래에 있었다. 그들의 고통은 진정한 어른의 고통이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육체적인 고통 외에 진정한 어른의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훗날 내 육체적인 한계가 극복된다 하더라도 내 정신적인 삶이 없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P219-220)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원고는 마치게 되었다. 그 끔찍한 첫 시도를 마친 뒤, 우리 둘 중에 하나도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은 게 신통할 뿐이었다. 수만 단어를 쓰고 나자 난 지쳐버렸다.
‘어느 정신병자의 기억’
이게 내 첫 번째 원고의 제목이었다. 제목이 내용을 잘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살 때의 나를 ‘백치’나 ‘정신박약아’라고 진찰한 의사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풍자와 조롱이었다.
간혹 내 나름대로 개념을 정리해 표현하기도 했는데, 어떤 것은 꽤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령 ‘불구자’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 또는 ‘하늘의 실패작’이라고 표현했다. 또 ‘패배’라는 말 대신 ‘패배주의’라고 썼는데, 웬만한 단어는 끝에 ‘주의’라는 말을 붙여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하게 만들기도 했다.
불가능한 일을 묘사할 때는 ‘불가사의’라는 단어를, 뭔가 앞뒤가 조리가 맞지 않을 때는 ‘부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디킨스 같은 작가들의 책은 읽지 않으면서 춤이나 파티처럼 유흥문화에 빠진 피터 같은 부류들은 ‘물질주의자’로 표현했다. 그 당시 난 사물에 대해 나만의 개념으로 사고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P230-231)
그 뒤 콜리스 박사님은 본격적으로 글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박사님이 교수라는 사실도 알았다.
“무슨 이야기를 쓰든 글을 쓰는 데는 먼저 2가지 원칙이 있지. 첫째,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어야 하고, 둘째, 독자가 그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써야 한다. 그걸 어떻게 할까? 그 방법은 가능한 긴 문장보다는 간결한 문장을 사용하는 거야.
지금까지 넌 붓으로 그림을 그려왔지. 이번에는 그와 똑같이 펜으로 꾸준히 연습을 하는 거야. 지금 여기 이 방을 한번 묘사해 봐. 저기 얼룩진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며 깨진 거울, 또 저 책들과 컬러 사진들....“
난 이제껏 누구한테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들을 열심히 들었다. 박사님의 이야기는 흠뻑 빠져들 정도로 흥미로웠고, 당장 그의 말대로 연습하고 싶었다.
이후로도 콜리스 박사님은 내게 여러 번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P240-241)
“다리를 구부려야지!”
“배를 더 집어넣어 봐.”
“똑바로 잘 앉아 있어 봐.”
그럼 난 깜찍한 도로시를 보며 그저 웃기만 했다. 이 때문에 도로시는 항상 내게 화를 냈다.
나도 지난 2년 동안 병원에 다니면서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내가 병원을 다니며 가장 먼저 배운 건 긴장을 푸는 법이었다. 언뜻 쉬어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그 어떤 것보다 어려웠다. 긴장을 푼다는 건 단순히 침대 위에 통나무처럼 누워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정상인들도 어려워하는 훈련이었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축 늘어지도록 근육을 완전히 이완시키려면 먼저 정신적인 긴장을 완전히 풀어야 한다. 또 어떤 특정한 대상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내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머릿속은 항상 불안정했다.
그나마 난 ‘수면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팔다리를 움직이지 않는 ‘정지훈련’에 성공한다고 해서 ‘긴장이완 훈련’에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다. 난 잠잘 때조차 팔다리를 움직이지 않게 하려고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긴장을 억지로 풀려고 하는 것은 가장 나쁜 방법이었다. 억지로 하게 되면 육체적인 긴장만 더욱 쌓여 결과적으로 몸과 마음의 긴장을 제대로 풀 수가 없기 때문이다. (P253-254)
그런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콜리스 박사님이었다. 난 재빨리 글쓰기를 멈추며 왼발을 오른발 밑으로 감추었다.
“안녕, 잘 지냈니?”
박사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태연하게 인사를 했다.
“아, 코, 콜리스 박사님.”
난 너무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콜리스 박사님은 아무런 눈치도 못 챈 것 같았다. 난 애써 웃음을 지으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요즘의 날씨 등 평범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내가 쓰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박사님이 말했다.
“그래, 왼발을 다시 불러내야 했구나.”
순간, 난 너무 부끄러워 실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조용히 오른쪽 다리 밑에 숨어 있는 왼발을 밖으로 꺼냈다.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 누군가 옆에서 받아써주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지?”
나는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충분히 이해가 돼. 너를 탓하자는 얘기가 아니야. 근데, 왼발을 사용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한 에이린 박사님에게는 꼭 비밀로 하자. 그리고 꼭 필요하고 정말로 못 견딜 때만 왼발을 사용해. 알았지?”
박사님이 내 어깨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박사님의 넓은 이해로 인해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내 글쓰기에 대한 욕구와 그것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었다. 박사님의 깊은 이해심과 내 왼발의 존재 덕분에 난 굵은 쇠사슬에서 풀려난 느낌이었다. 이렇게 가끔은 나의 왼발과 함께 자유로운 내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P281-282)
난 드디어 내 인생에 가장 멋진 날이 찾아왔다.
그날은 더블린에서 ‘벌 아이브스의 콘서트’가 열린 날이었다. 지금도 마음이 벅차오른다.
콜리스 박사님 가족 중에 벨슨에서 입양한 키 작은 헝가리 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이는 검은 머리와 피부를 가졌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콜리스 박사님이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는 건강이 극도로 안 좋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건강이 악화돼 런던의 체스트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아이에게는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더블린에 있을 때 우연히 미국 출신의 포크송 가수인 벌 아이브스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그 가수는 우연히 더블린에 왔다가 이 아이를 만났는데, 첫 만남 이후 지금까지도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P285)
마침내 콜리스 박사님의 낭독이 끝났다.
숙연한 분위기를 깨고 앞줄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객석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난 옆에 있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연신 모자를 만지작거리는 아빠의 붉은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
홀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콜리스 박사님이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내가 일어서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휠체어에서 겨우 일어나자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와 거센 파도처럼 우리를 뒤덮었다.
그때 갑자기 객석에서 어떤 사람이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들고 앞으로 다가왔다.
콜리스 박사님이 허리를 굽혀 그 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 엄마가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박사님이 마이크를 들자 박수소리가 멈추었다.
“이 꽃을 받을 사람은 여기에 계신 분입니다. 바로 크리스티 브라운의 훌륭한 어머님께 이 붉은 장미를 드리겠습니다!”
콜리스 박사님은 엄마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후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왕처럼 고상하고 기품 있게 장미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그런 다음 청중들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자 다시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쏟아져나왔다. 홀 뒤쪽에 있던 짐 형, 패디 형, 피터, 프랜시스 등의 내 형제들이 모두 힘차게 손을 흔들며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때 무대 위로 벌 아이브스 가수가 다시 나왔다.
그는 흥겨운 가락의 아일랜드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난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노래를 즐길 수 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난 의자 깊숙이 편하게 앉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왼발’이 노래의 리듬에 맞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P298-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