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사진은 사랑이어라
나에게 있어서 사진은 놀이이자, 사랑이자, 힐링이자, 치유이다. 언어를 모르는 아이가 자신의 의사표현을 한마디 한마디 배우면서 말을 하듯이, 사진의 표현을 잘 몰랐지만, 한 장 한 장 찍으면서 사진언어를 배워간다. 반복하면서 실수도 하고, 그 의미를 조금씩 알아간다. 그런 사진은 나의 언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사진을 이용하여 우리는 가족사진을 찍기도 하도, 특별한 순간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사진을 선물하기도 한다. 사진으로 대신해서 치유되기도 하고, 사랑을 전달하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기도 하고, 연인끼리 스티커 사진을 서로 찍고 보관하기도 하고, 떠난 사람의 사진을 간직하기도 한다. 사진에 자연미를 담아서 감상하기도 하고, 사회에 있는 사물들을 해석하기도 하고, 사진속의 진의를 찾으려고도 하며, 역사와 사회문화를 가늠하려고 하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나의 자유의지(自由意志)이다. 내가 바라보는 사물이나 상황을 사랑으로 바라볼지는 순전히 나의 자유의지인 셈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치유한다기보다는 나의 마음을 치유하는 수단으로서 카메라는 나의 의지이다. 사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누구를 치유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 아픈 사람의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있다. 내가 개입해서 무엇인가를 바꾼다는 것은 사실 어렵다. 피사체를 사진에 담아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을 전달한다는 것이 사랑이 없다면 더욱 어려울 것이다. 기록자와 전달자는 항상 딜레마에 있다. 위태로운 경계선에 있기 때문이다. 경계선을 넘는 순간 어느 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진의 메시지는 힘찬 설득력을 가질수도 있다. 그리고 사진은 불분명하지만 명쾌하게 보여지기도 한다.
사진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사진으로 기록과 표현을 모체로 삼고 있는 사진가들에게, 취미로 사진하는 사람이든, 프로로 사진하는 사람이든 사진은 매력을 가진 매체이다. 글이 가지지 못한 현장성과 은유성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현학적이고 어려운 미사여구를 가진 글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하는 글이다. 사진도 아름답게 치장된 사진이 아니다. 한눈에 보여지고 전달되어지는 사진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사진일 것이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Marganet Bourke White)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백만 마일 가량을 여행한 것으로 평가한다.”그는 ‘약 250,000 장의 네거티브’를 찍었다. 그가 찍은 사진 중에서 여러 사람이 기억하는 사진은 1946년 작 ‘물레 짓는 간디’라는 사진일 것이다. 그 사진은 일부 감상자들이 거북해 하는 추상적인 사진이 아니어서 더 그렇다. 더군다나 버크 화이트가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를 촬영하기 위해 간디의 비서 5명을 어렵게 설득하여 만든 사진이라 그런 것도 아니다. 간디의 비서는 버크 화이트가 간디를 형상화하려고 했을 때 "당신은 실 잣는 방법을 아느냐"고 물었고, 버크 화이트가 “마하트마 간디하고 실을 잣기 위해서 오지 않았다. 간디가 실을 잣는 것을 촬영하기 위해서 왔다.” 비서가 버크 화이트에게 “당신이 이 위대한 사람의 심중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소?”라고 하는 등 어렵게 했었지만, 버크 화이트가 수사적인 질문 속을 여행하면서까지 그 사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버크 화이트의 사진 사랑의 표현이 넘쳤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물레 짓는 간디’의 사진을 보면, 그 사진에 있는 피사체가 마하트마 간디라는 것을 쉽게 알아낸다. 간디가 실 잣는 일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정화시켰음을 편하게 느낄 수 있다. 이는 버크 화이트가 간디라는 위대한 사상가를 사진으로 표현하기 앞서 사진 사랑의 열정이 강했기 때문이다. 간디의 인성에 담긴 자애를 표현해 낼 수 있었다. 버크 화이트가 만든 사진 ‘물레 짓는 간디’에는 인류를 사랑하는 간디의 심성이 가득 차 있다.